Luciadust
01. 상인의 땅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서쪽을 향하는 낙타들의 무리, 그리고 특유의 음을 흥얼거리며 길을 나서는 이들의 발걸음은 묵직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너풀거리는 낙타들의 장식을 가로지르는 건조한 바람이 있었다. 휘- 하고 부는 휘파람 소리. 블레어는 자신이 함께하는 이들에게서 자유를 느꼈다. 이히, 라히, 현자의 물음에 선 이가 있네, 라는 노랫소리가 여정을 채워나갔다.
"이봐, 조난자, 단단히 여며두는 게 좋아. 밤이 다가올 즈음이면 혹한의 땅에 맞먹는 추위가 찾아오니까."
"그건... 알아. 숨조차 얼어붙는다는 혹한의 땅보다는 덜 춥겠지. 이럴 때를 대비해서 단단히 챙겨입었..."
"아니, 아니야, 그 옷차림으로는 버티지 못해. 모래바람도 네 옷차림을 보면 바로 침입해 들어올 정도야,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로 가출을 해 버린... 귀족 나으리구만!"
호쾌한 웃음이 비춰진다. 웃음소리에 흔들리는 듯, 낙타에 매달린 장식들이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얼핏 들린 것도 같았다. 사실, 블레어는 저 용병이 자신을 구조하지 않았다면 사막을 떠돌아다닌다는 망령과도 같은 존재들에게 잡혀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으니, 그는 말없이 낙타를 이끄는 붉은 머리 용병의 등 뒤에서 가만 시선을 굴릴 뿐이었다.
누가 그랬던가. 사막에서 길을 잃어버린다면, 그 근처를 지나는 캐러반들이 구조를 할지도 모르니 신호를 보내는 도구를 두어 개쯤은 가지고 다니라고, 블레어는 그 말을 흘려듣지는 않았다. 물론, 그 신호를 보내는 마도구들을 두어 개 쏘고 난 뒤에 풀렸던 긴장 탓인지, 그간 참았던 허기와 피로로 쓰러졌다는 것이 문제였다.사실상 그가 그들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를 발견한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 라는 한숨을 내뱉고서 뒤이어 이어지는 붉은 머리 용병의 조잘거리는 이야기들을 가만 들었어야 했다. 혹한의 땅에서 생산되는 장작은 불꽃이 강하지만, 특수한 공정을 통해 느리게 타들어간다는 이야기라던가, 매의 대지를 지나는 길목에서 레인저들의 경계를 샀다던가, 시시콜콜하면서도 온 대륙을 돌아다녔다는 티를 자랑스럽게 내뱉는 것이 그리 거슬리지 않았다는 것도 있었다. -그가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능력이 있는 것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블레어는 생각했다. 계속 연이어 이어지는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지루해질 무렵, 그는 조심히 입을 열었다.
"헬리오"
"아, 조난자 양반! 왜 그러나? 혹시 탑승감이 나쁘다거나 한다는 불평을 한다면, 내려서 걸어간다는 선택지가 있는데. 아, 그게 아니라면... 상인에 땅에 언제쯤 도착하는지에 대한 불평 같은 거? 용병 따위가 무엇을 안다고! 같은 무례한 말은 제가 당신을 낙타에서 쫓아내 버릴지도 모른다는 신호이니, 기꺼이 받겠습니다~"
잠시나마 블레어는 저 용병이 지난 날 까지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했다. 다만, 저 용병의 성격으로는 무난하게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것과, 무례한 발언들을 유연하게 넘기는 강단이 그의 말투에서 묻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 또한 뒤이어 이어졌다. 멀뚱히 바라보는 저 용병의 낯이 어쩐지 머쓱해서, 그는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건 아니야, 상인의 땅... 까지 그리 멀지 않다면, 근처에서 쉬어도 될까.. 싶어서. 수 시간을 이동했으니까."
헬리오라고 불린 용병은 가만 생각을 하다 이내 긴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의 소리에 맞추어, 대열을 따르던 이들의 움직임이 멈추어 섰다. 낙타들을 이끄는 이들과, 그들이 끌어내는 마차 안에서 다채로운 이들이 나온 것도 같았다.
"터를 잃은 자들도 함께야?"
"왜, 문제 있어? 나조차도 불길하다는 붉은 머리인걸. 하하, 설마 출신지를 가지고 계층을 나누는 그런 분이신 건가? 아쉽지만, 네가 있던 곳의 편견은 나에겐 안 통해. 사막에 엎어져서 우리들한테 주워진 나으리잖아?"
이죽거리며 블레어에게 농조를 던지던 이의 앞에, 작은 아이가 쭈뼛거리며 그의 로브를 잡아들었다. 슬 보기에도, 양 눈의 색이 다른 것이 보였다.
"헬리, 우리들 소개를 안 했어. 저 사람만 주워가고 아무런 말도 안 했지?"
아차, 하는 낯이 헬리오에게서 지나갔다. 아이는 멀뚱히 있다가, 고개를 돌려 블레어를 바라보곤 장난스러운 낯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샤킨이야. 저 먼 연금의 땅에서 왔어. 엄마랑, 언니랑... 삼촌도 같이 , 대장을 따라다니면서 일을 돕고 있는데, 넌 블레어랬지? 평원의 블레어. 사실 처음에는 잘못 들어서 블랑인 줄 알았어. 까만 머리인데 블랑인 건 특이하잖아"
"...... 응, 반가워.. 샤킨, 그런데 일이라는 건 뭐야?"
"상단이야, 나으리. 샤킨은 셈이 빨라, 샤킨의 언니인 샤넨은 물건의 가치를 매길 줄 알고. 삼촌인 루드가는 호객을 잘 하지."
그는 잠시 흠, 하는 소리를 내보이고는 블레어의 어깨를 잡고는 한 명씩 가리키며 사람들을 소개했다.
"자, 저기에 안대를 낀 장정은 척안의 아쿤, 힘쓰는 일을 맡지, 그리고 책략가야, 저 너머에 검은 로브를 쓴 할멈은 점을 치곤 해, 자신에겐 이름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들은 스텔라라고 불러. 점을 치는 법을 나도 배우긴 했는데, 할멈보다는 반푼이지."
그가 연이어서 설명을 이어 나가는 이들의 수만 열은 넘었다. 대부분은 출신지, 그리고 외양도 제각기 다른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모두를 가족처럼 대하는 것 같았다.
"......"
"우리는 모두 버려진 자들이야, 누구는 짐승의 눈을 가졌다가 배척받고, 또 누군가는 자신들과 다르다며 밀려났지, 질투에 눈이 먼 이들이 내친 자들도 있고. 태어난 것 자체가 죄라고 하는 아이도, 불길하다며 가족이 버린 이들도. 적어도 나에겐 가족이야. 물론! 타인의 눈에는 떠돌이 용병대, 내지는 캐러반 같아 보이지만?"
"......"
"이제 와서 돌아가는 건 없어, 블레어. 네가 쓰러진 곳에서 거의 몇 시간은 넘는 곳을 건너왔다고? 곧 있으면 상인의 땅이랍니다. 귀족 나으리께서 적응하실지는 모르겠지만요?"
"자꾸 귀족 나으리라고 하는데, 내 어디를 보고 귀족이라는 거야!"
"지금까지 쓰셨던 모든 어투가 귀족들이 쓰는 말투였답니다~ 제가 출신이 박복하지만, 그 정도는 안답니다?"
"......"
"뭐... 그건 접어두자, 네가 쉬자고 한 것도 나름 좋은 선택이니까. 아쿤! 이 근처에 쉴 만한 곳이 있어?!"
"임시 막사를 만들 곳은 있지. 챙겨 둔 물은 많으니, 하루쯤은 괜찮을 거다."
장정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그는 알겠다는 듯 주변을 살피러 블레어의 곁에서 떨어졌다. 사막의 거센 모래바람이 잠시 수그러든 사이를 챙기려는 양, 모든 이들이 분주하게 막사를 만들어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블레어는 어리둥절한 낯으로 가만 그들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간의 자신이 지나쳐 온 모든 것들이 어쩌면 같은 생을 살아가는 이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나쳐갔다.
"......"
가만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다, 그는 이내 모래를 박차고 막사를 세우는 이들을 도우러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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