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의 드라이브
두번 했다가는 몸이 남아나질 않겠구먼/내 말이_시야와세와 유리의
벌써 이런 시간이 됐나. 어둑어둑해진 바깥을 바라보며 느릿하게 숨을 내쉬었다. 병원 내의 카페조차 셔터를 내린 지 오래인 시간에 비아체 유리는 그제야 책상에서 몸을 일으켜 창문을 통해 바깥을 내려다보았다. 다차선 도로에는 빠르게도 내달리는 시내버스도, 그 흔한 차 하나도 없이 멀끔했다.
“이런. 오늘은 차를 두고 왔는데…….”
숙직실을 빌려야 할까. 지금쯤 당직을 서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을 숙직실을 떠올리니 좋은 생각 같지는 않아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택시라도 타야겠군. 핸드폰을 드는 순간, 손안에서 작은 진동이 울렸다. 화면에 띄워져 있는 이름은 ‘시야와세’였다.
“언제 퇴근할 셈이여?”
마치 기다리고 있다는 말투였기 때문에 유리는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아- 여보세요? 어디길래 그런 문자를 보내?”
“어디일 것 같남?”
“이건 또… 어려운 수수께끼구만. 음… 바다의 집?”
“오답이여, 교수 양반. 지금은 지하 주차장이제.”
“…어쩐 일로? 오늘 진료 있었어?”
유리는 가방 따위의 짐을 챙기느라 조금 뜸을 들였다. 그 작은 틈 사이로 의자를 집어넣는 소음이 수화기 너머로 들어가고, 이내 답변이 돌아왔다.
“진료도 있었고, 뭐… 가는 김에 같이 가믄 좋겠다 싶어서.”
“같이 가고 싶다고 3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어?”
3층입니다. 하는 음성과 함께 엘레베이터가 열린다. 유리는 한쪽 어깨에 핸드폰을 끼우고 시야와세의 대답을 기다렸다. 대답은 단순명쾌했다.
“여- 있잖어?”
“하긴!”
유리는 사람 없는 엘레베이터에서 웃음을 터트렸다가 잠재웠다. 곧 내릴 지하 주차장은 작은 소리도 꽤 크게 울리기 때문이었다. 유리는 핸드폰을 고쳐잡고 말했다.
“거의 다 왔어. 끊자. 어디에 주차했어?”
“어데보자……. 2-B 기둥 근처여.”
“아. 대충 알겠다. 금방 갈 테니까 기다리라고-?”
“이이~.”
구수한 대답을 끝으로 유리는 전화를 끊었다. 그야, 이 늦은 밤에 주차된 차는 적었고, 익숙한 차체는 이미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별이 잘 보이는 맑은 날의 드라이브가 시작되었다.
“내부 세차했어?”
“시간이 남길래. 이번에 새로 개업한데서 해봤는디. 괜찮은 것 같지 않남?”
“나쁘지 않네. 나도 거기서 해봐야겠다.”
차의 시동이 걸리고 좋은 차만큼은 아니지만 조용하게 바퀴가 움직인다. 적당히 빠르지만 빠르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인 운전을 하며 두 사람은 소소한 대화를 이어 나갔다.
“평화롭구만—.”
“역시 운전은 밤 운전이 좋아. 시원하잖어?”
“하하, 노안 오기 전에 충분히 즐겨두는 게 좋지 않겠나?”
“느는 벌써 온 것 같다는 말 같은디?”
“컴퓨터 화면을 계속 보려니까-. 일할 때는 안경 쓰고 할 때도… …어?”
갑작스레 들이닥치는 강한 빛, 유리는 벙쪄서 맹한 소리를 내고, 그 짧은 순간에 시야와세는 핸들을 틀었다.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자신이 피하기 위해 왼쪽으로 핸들을 틀었겠지만, 핸들이 틀어진 방향은 반대, 자신이 위험할 수밖에 없는 방향이었다. 유리가 그것을 눈치챌 새도 없이 강한 충격이 두 사람을 덮쳤다. 차체끼리 부딪혀 듣기 싫은 굉음을 내고 아주 짧은 순간 정신을 잃었던 유리는 고통에 찬 신음을 내는 동시에 함께 차에 탔던 시야와세를 찾았다.
“윽… 이런 젠장……. 괜찮아?”
“…….”
시야와세는 신음조차 내지 못하는, 의식을 아예 잃어버린 상태였다. 차가 정면으로 충돌했으면 나누어 받았을 충격을 온전히 받아버린 모습이었다. 머리와 팔에서 피가 흐르는 모습을 눈에 담은 유리는 빠르게 시야와세의 상태를 살피고 옷을 찢어 할 수 있는 처치를 시작했다.
“시야와세! 이봐, 시야와세! 정신 좀 차려봐!”
불행 중 다행으로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은 어디론가 튕겨 나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 유리는 그 핸드폰으로 즉각 신고했고, 그의 빠른 신고로 도시의 정적을 품고 있던 도로 위에서 구급차는 눈치 볼 것 없이 내달렸다.
그렇게… 기나긴 밤이 지나고 찾아온 아침. 다치지 않은 것은 아니었는지 이마에 거즈를 붙인 유리가 가족에게 무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나서야 어느 한 병상의 커튼을 젖히고 들어갔다. 시야와세는 유리가 들어온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침대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침상 옆에 앉은 유리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어, 너는…….”
잠시간의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메웠다. 그야 당연하겠지. 그 정도 사고면 당장 수술실로 들어가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유리는 모서리가 깨진 핸드폰으로 시야와세의 가족에게 연락을 취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부스럭거리는 작은 소음 사이로 그 보다 작은 목소리가 유리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여긴…….”
“…정신이 들어? 병원이야. 백수대병원 응급실.”
잠시간 말이 없던 시야와세가 누운 채 불편한 듯 몸을 움직였다. 유리는 그런 시야와세의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말렸다.
“움직이지 말라고-? 지금 골절에 이마도 찢어졌으니 충분히 안정을 취해야 해. CT상으로 이상소견은 없었지만… 혹시 몰라서 MRI도 의뢰해놨어. 이따 입원해서…….”
“느는… 멀쩡혀?”
“나보다 너를 챙기는 게 어때? 나는…보시다시피.”
유리가 멀쩡하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그제야 시야와세는 안심했다는 듯 웃었다.
“입원…까지 해야 할 정도여?”
“인마……. 이 정도 부상이면 이렇게 일어나서 대화하는 것도 기적이야.”
“나가 좀 끈질기긴 허제.”
농담이라도 할 생각이었는지, 바람 새는 듯한 웃음소리가 침상 근처를 맴돌았다. 유리는 한숨을 내쉬면서 시야와세를 바라봤다.
“…너. 일부러 그렇게 꺾었지.”
“뭘 말이여?”
“핸들 말이야. 핸들. 왜 그랬어? 잘못하면 죽을 뻔했단 말이야. 너.”
속이 상하다 못해 아려서 목소리에 물기가 배어 나온다. 의사의 입장에서 환자이면서 소중하디 소중한 형제를 잃을 뻔했다는 생각에, 이젠 괜찮다는 안심이 밀려와서 유리는 울렁거리는 감정을 삼키기 위해 얼굴에 손을 얹고 마른세수를 했다.
“그야… 느가 다치믄 큰일이니까.”
“팔도 다쳤잖아. 요리사가 팔을 다쳐서 어쩌려고. 차라리 내가 다쳤으면…….”
유리는 말을 마치지도 못하고 시야와세에게 멱살이 잡혀 이끌렸다. 병상에 있다고는 생각하기 힘든 힘으로 이끌려진 유리가 무슨 짓이냐고 말하기도 전에 노기서린 음성이 유리의 고막을 두드렸다.
“느가 다치믄 어쩌려고! 그려, 내는 요리사여. 요리사가 팔을 다치믄 큰일이제. 하지만 느는 의사여! 나가 요리 한두 달 안 헌다고 죽는 사람이 생기진 않다마는, 느가 다쳐서 치료를 못하믄 죽는 사람이 생겨! 근디 지금 느가 그딴 말을 할 셈이여?!”
시야와세는 여즉 남은 분노에 씩씩거리다가 그 일갈에 다 쏟아부었다는 듯이 힘없이 유리의 손을 풀고 푹신하진 않아도 따끈한 침대에 몸을 뉘었다. 어깨는 물론이고 허리도 아파지는 것이 꽤 많이 다쳤구나, 싶다가도 방금의 무리한 행동에 후회는 없었다. 유리는 그런 시야와세를 보고 복잡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시야와세… 나는, 나는 의사지만, 네 형이야. 만일 이번 일로 네가… 큰일이라도 나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
툭 건드리면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말투에도 시야와세는 심드렁하니 굴었다. 어쩌면 당연한 말이기에 그렇게 담담하게 대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느가 있는디 나가 왜 큰일이 난다고 그려. 봐, 지금도 멀쩡히 살아있잖어? …그거믄 된거여. 그거믄…….”
“…늙은이 같은 소리하기는.”
“이 정도믄 늙었제, 뭘.”
“진짜… 못 이겨 먹겠다니까, 이제.”
유리는 결국 헛웃음을 터트렸다. 고작 그런 이유였다니. 고작 그런, 작은 믿음 따위였다니. 그 믿음이 고마웠고, 과분했으며, 너무나도 달아서… 결국 눈물 두방울 섞인 웃음을 흘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야와세와 유리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드라이브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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