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아무말해요

그 청소년

미치겠네……_비아체 얀의

그저 집에 가던 길이었다. 항상 걷는 그 길목에 항상 지나는 그 공공 놀이터. 우연찮게 들은 아기 울음소리가 근처 편의점을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바람에 그는 화장실이 보이는 그네에 앉아 하릴없이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발을 굴렀다. 뜨거운 햇빛이 달갑진 않았지만 불안이 해소될 때 까지는 그 자리를 벗어날 수도 없어서 그저 그 소란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5분, 10분, 20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잦아들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기가 제풀에 지쳐 울지도 못하는 것에 가까워보였다.

“미치겠네……. 들어가 볼 수도 없고.”

“어딜 들어갈 셈이냐?”

“여자 화장실. …어?”

“이― 미친 새끼가!”

“아니, 잠깐……!”

오해라고 말할 틈도 없이 얀은 무자비한 발길질에 바닥에 붙은 껌이 되었다. 그런 놈일줄 몰랐다고 씩씩거리던 그의 친구, 라임은 그의 하얀 셔츠에 발자국을 하나 더 남겨주고 나서야 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애 우는 소리가 20분째 나고 있다고?”

“그렇다니까……. 근데 애 엄마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그걸 먼저 말하라고!”

라임은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여자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아니, 말할 틈도 안 줬잖아…….”

늘 이런 식이다. 제 친구는 착하긴 하지만 손이 먼저 나가는 나쁜 버릇이 있어서…….

“아니, 손이 먼저 나가면 착한 게 아닌가?”

애매하네. 얀은 그런 생각을 하며 그의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나고, 라임은 제 셔츠를 벗어 검은색 반팔 차림으로 품에 안은 채 바깥으로 나왔다. 옷은 왜 벗은 거야? 의문을 표시하기엔 너무나도 다급한 표정이었다.

“애기 너무 뜨겁다! 어떻게 하냐?!”

그 말은 얀의 심장을 바닥까지 내던졌다. 얀은 칭얼거리는 아기의 뺨에 제 손가락을 가져갔다. 제 체온은 평균보다 높은 편에 가까웠지만, 그런 그의 체온보다 아기의 체온은 더 높았다. 얀은 한 걸음 먼저 발을 옮겼다.

“병원 가자. 응급실로 가면 받아줄거야.”

“이름도 모르잖냐!”

“방법이 있겠지!”

얀은 빠르진 않지만 힘껏 내달려 택시를 잡았다. 라임 또한 그 뒤를 따라 달리고 택시를 탔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막히는지. 요새 애들은 까졌다느니 투덜거리는 택시기사의 말을 무시하며 얀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못 받으려나, 역시 그렇겠지. 암담한 심정으로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 그때.

“여보세요?”

“아빠. 바쁜데 죄송해요, 아기가 많이 아파요.”

“오, 이런. 오고 있는 중이야?”

“차가 막혀서… 한 5분쯤 뒤에 도착할 거 같아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펜이 똑딱 눌리는 소리가 느리게 들려왔다.

“잠시만……. 아기가 어떻게 아파?”

“적어도 20분 이상 울었고, 어디가 아픈지는 모르겠어요. 온 몸이 불덩이에요. 어떻게 해야할까요?”

“쉬이……. 얀. 침착해. 네가 할 일은 최대한 안전하게 병원에 도착하는 일이야.”

“…알겠어요.”

“좋아. 아빠는 다른 선생님한테 전화 해야 해. 이따가 보자. 사랑해?”

“…네. 이따 뵈요.”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다. 하지만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건 왜 일까. 얀은 아기를 내려다보며 달래듯 조심스럽게 토닥거렸다. 라임은 그런 그가 불만인듯 퉁명스럽게 굴었다.

“뭐가 좋다고 실실 웃고 난리냐?”

“웃기는……. 안 웃었어.”

“앤 웃었어~.”

“라임…….”

“지갑이나 꺼내라! 손 못 쓴다.”

“아, 응.”

드디어 도착했다. 얀은 택시비를 계산하고 얼른 차에서 내려 병원으로 달렸다. 그러나 그들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환자분 성함 말씀해주세요.”

“그게… 그…….”

이름을 알리가 없잖아. 얀은 당황에 물들어 제대로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라임은 그 옆에서 아이를 능숙하게 안고 달래고 있다가 쯧, 혀를 차냈다. 몸으로 슬쩍 얀을 민 라임은 직원에게 말했다.

“비아체 선생님한테 전화로 이야기 드렸는데요.”

“어— 잠시만요?”

직원은 전화를 걸며 분주하게 움직였고 라임은 얀을 빤히 보다가 아기를 그에게 넘겨줬다.

“어? 왜? 팔 아파?”

“아니, 오빠한테 전화하게. 잘 들고 있어라! 그 작은 머리통에 이상이라도 생기면 네 녀석 머리랑도 이별시켜줄거다.”

“무슨 그런 험악한 말을.”

라임은 괜히 얀을 주먹으로 위협했다가 바깥으로 나갔다. 아마 형사인 제 오빠의 도움을 받으려는 거겠지. 얀은 다른 생각을 하다가도 아기가 칭얼거리자 아이를 고쳐 안고 어르고 달래가며 차례를 기다렸다.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아버지가 이야기를 미리 해뒀는지 얼마 지나지 않고 응급실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아이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부모를 찾지 못해 보육원으로 입소하게 되었다. 얀은 그 소식을 듣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냈다. 학교에 가고.

“얀! 축구하자, 축구!”

“아니. 괜찮아.”

“뭐가 괜찮냐! 하자니까!?”

“괜찮을거야…….”

“…야! 오늘 이 자식 몸 안 좋단다!”

집에 돌아오고.

“얀. 괜찮아? 안색이 좋지 않은데.”

“괜찮아, 누나. 정말로 괜찮아.”

“잠은 잘 자는 거지?”

“…나 들어가볼게.”

…그래, 사실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얀은 그 칭얼거리던 울음소리나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던 그 연두색의 눈동자를 잊지 못했다. 다음 날, 주말이라 학교에 가지 않을텐데도 그는 일찍부터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얀, 어디 가게? 아빠가 태워다 줄까?”

“아뇨. 괜찮아요. 생각할 게 있어서……. 산책 겸 다녀올게요.”

요 며칠 기운 빠진 채 돌아다니는 얀이 무척이나 신경쓰였던 유리는 신발을 신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조금은 우악스러운 손길로 얀을 쓰다듬었다. 곱슬거리는 머리는 헝클어지고 얀은 제 아버지를 돌아봤다.

“이 아빠를 속이기엔 백년 이르다! …뭐, 우리 아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만~ 상담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아빠한테 슬쩍 털어놔도 좋다고?”

“…알겠어요. 그럴 일까진 아닐 것 같지만.”

“뭐? 이 아빠 슬프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는 익숙하다는 듯 집 밖으로 나섰다. 더운 여름, 아스팔트에 아지랑이가 올라오는 것을 보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괜한 짓을 한 건 아닐까? 하다못해 바로 경찰에 신고했으면 부모님이라도 찾을 수 있었을텐데. 수많은 걱정과 생각들이 더욱 제 발걸음을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기가 있는 보육원 앞에 도착했다. 저에게는 익숙한, 고향같은 곳이었다.

“어머, 너 얀 아니니?”

“안녕하세요, 선생님.”

“많이 컸다~ 얘! 저번에 봤을 때는 이쯤— 이었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왔죠……. 자주 왔어야 하는데, 죄송해요.”

“죄송할 것 까지야! 오늘은 놀러온 거니? 라임은 요새도 종종 놀러오는데 네 소식을 듣지 못해서 영 걱정이었단다. 그 애 한테 물어봐도 비실비실한 콩나물같다고만 하고.”

“아하하……. 라임이 좀 그렇긴 하죠. 아, 어디 가시는 중이었어요?”

“어~ 갑자기 필요한 게 생겨서 잠깐 마트 다녀오려고. 들어가서 쉬고 있어. 올 때 음료수라도 사다줄까? 아직도 커피 좋아하니?”

“아뇨, 아뇨.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선생님께 인사를 드린 뒤에야 조용한 발걸음으로 보육원 안에 들어갔다. 이제 막 걷는 아이, 누워서 칭얼거리는 아이, 뛰어다니는 아이 할 것 없이 여럿이 있었다. 얀은 마치 제 집처럼 익숙하게 들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가볍게 안부인사를 건넸다. 도착한 곳은 그 아기가 있는 곳이었다.

“마레…….”

“바다라는 뜻이란다. 잘 지냈니?”

“덕분에요. 감사합니다. 원장 선생님.”

얀은 고개 숙여 인사하고 다시 아기를 보는데에 집중했다. 쌕쌕 숨소리를 내면서 잠들어 있다가도 들어오는 아침 해에 칭얼거리기도 했다. 얀은 익숙하니 아기를 안아들고 달랬다.

“들었단다. 네가 화장실에서 발견했다고.”

“네. 어쩌다보니……. 다행이에요. 아픈데도 없어보이고…….”

“잘 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어.”

“칭찬받을 정도는……. 아뇨, 감사합니다.”

“옳지.”

원장 선생님은 그를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주고 자리를 비켜줬다. 얀은 아기를 안고 토닥거리면서 분유도 먹이고, 기저귀도 갈아주며 시간을 보냈다. 중간중간 다른 선생님들이 다른 아이들을 보러 들어오면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있다보면 며칠 자신을 괴롭혔던 장래에 대한 근심같은 것이 잊혀지는 것이다. …이런 직업을 가져볼까. 그런 생각도 했다.

돌아가야할 때가 오고, 곤히 잠든 아기를 내려놓으며 얀은 조심스럽게 그 손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또 보자, 마레.”

자신이 구한 아이, 눈에 밟혀 어쩔 줄 모르겠는 그 아이, 저는 책임감도 없었고 그럴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다. 그는 조용히 보육원을 빠져나왔다.

“…며칠만 더 보면 마음 정리가 될거야.”

얀은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그 초록 눈망울이 어른거렸지만 책임감도 없는 주제에 동정하면 안된다고 자신을 어르고 달래고 채찍질했다. 좋은 집에 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얀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무거운 발걸음 따라 눈물 자욱이 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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