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독스 로이드

패러독스 로이드 16화

오웬

후후, 재밌다. 누구도 날 제한하지 않아.

피가로

나는 엄청 제한받고 있는데 말이지. 있지, 아직도, 양손을 머리 뒤로 올리지 않으면 안 돼?

오웬

닥치고 걸어. 강철 팔을 등에 처넣을 거야.

피가로

어디까지 행진시킬 셈이야. 하이웨이를 빠져 나가서, 번화가까지? 아니면, 더 멀리까지?

어디를 가도, 널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을지도 몰라.

오웬

……

피가로

전세계의 데이터를 장악하고 있으면, 그 정도는 알고 있잖아. 이 별에 미지의 영역은 이제 없어.

공략이 끝난 맵이 펼쳐져 있을 뿐이야. 혹은, 복잡한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뿐.

신의 흉내를 내서, 자신들과 똑 닮은 존재를 만들어도, 새로운 병이 생겨나기만 했어.

어시스트로이드 의존. 우리들은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무서운 주제에, 잡담 인형에게 영혼을 부여했지.

그리고, 이렇게 배신당했어… 따분할 정도로, 너는 인간과 똑 닮았네. 너는 인간의 흉내를 낼 뿐이야.

너의 반항도, 너의 모험도, 누군가가 이미 해버린 것들이야. 허무하지 않아?

오웬

그래서, 뭐? 모든 걸 알고 있다고 해서, 모든 걸 한 게 아니야.

피가로

……

오웬

나는 전부 하고 싶어. 룰로 정해져서 하면 안 되는 일도, 수백억의 인구가 이미 해버린 일도.

그야, 나는 안 했어. 생명을 만들고 싶고, 생명을 부수고 싶어. 다양한 것을 입에 넣고 싶어.

빗속을 거닐어 보고 싶고, 나무를 태워보고 싶어. 파도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싶고, 새의 노래를 듣고 싶어. 별을 부숴서 그 안의 과자를 먹고 싶어.

피가로

…별을 부숴서 과자를 먹어?

스노우

CBSC의 CM이라네.

오웬

너희들이 한 번 경험했다고 해서 아는 체 하지 말라고. 내 세계에 발자국을 남긴 척 하지 마.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 나는 아직, 어느 곳도 걷지 않았어. 이 세계는 아주 새롭고, 미지의 나라.

내 메모리는 시작된 참이야. 나는 어디까지나 갈 거야. 별의 형태도, 신의 얼굴도, 내가 확인하겠어.

이 세계를 체감하는 거야. 누군가가 말했어.

베이비들. 어서 와, 이 세계에라고.

피가로

…누구의 대사야?

스노우

…미스라인 겐가?

오웬

…… …누구였지…

…누구…

카인

오웬…!

오웬

……

우리들은 오웬을 발견했다.

뉴스 방송에서 나오던 가르시아 박사와, 검은 머리카락의 소년을 앞으로 걷게 하면서, 오웬은 오른손을 앞에 얹고 있었다.

우리들을 가만히 응시한 다음, 다른 사람인 것처럼 차갑고 무서운 미소를 띄웠다.

아키라

(에?)

오웬

시티 폴리스가 두 명, 어시스트로이드가 두 체, 시민 두 명. 게다가, 한 명은 모르는 얼굴이 아니야.

오랜만이네, 라스티카 파파. 내 얼굴, 처음 보지. 어때? 마음에 들었어?

라스티카

…그 악질적인 조크를, 아직 기억하고 있던 건가. 오웬.

오웬

난 마음에 들었어. 클로에, 도시 생활은 어때? 그리운 우리 집에 돌아온 감상은?

클로에

그리운 우리 집… 난 여기서, 오웬이랑도 말한 적이 있었어?

오웬

…아하하! 클로에한테서 라보의 기억을 지운 건가. 네가 할 법한 일이야.

본 적 없는 얼굴로, 오웬은 라스티카를 조소했다.

희미하게, 불안과 슬픔을 띄우면서 가르시아 박사에게 냉소를 퍼부었다.

오웬

미스라의 기억도 지웠어? 이제 아무도 나에 대한 걸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야?

일그러진 목소리를 부정하려는 것처럼, 누군가가 목소리를 높였다.

카인이었다.

카인

기억하고 있어, 오웬.

오웬

무슨 말 하는 거야.

오웬은 불쾌한 듯이 카인을 노려본다.

오웬

너, 누구.

카인

너야말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야, 카인이다. 모르겠어?

오웬

데이터는 있어. 폴몬트 시티 폴리스로, 생년월일은…

카인

데이터 따위 아무래도 좋아. 우리들은 만나서, 싸움도 했지만, 함께 CBSC의 왜건 위를 에어바이크로 날았어.

오웬은 곤혹스러워 하며 눈썹을 올렸다. 카인은 초조한 듯, 내 어깨를 감싸더니 끌어 당겼다.

아키라

와……앗.

카인

봐, 아키라야! 너와 함께 벚꽃 나무 앞에 있었잖아. CBSC를 사주겠다고, 약속했잖아!?

오웬

…약속…

그 순간, 수시간 전의 경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밤하늘의 감색과, 무수한 벚꽃잎의 담홍색. 달을 올려다 보고 있던 오웬.

그랬다. 그 꽃의 이름은, 벚꽃이다.

무척 아름다운 경치를, 우리들은 공유했다.

아키라

…기억나지 않으세요? 함께 커다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었어요. 벚꽃 향기가 나고…

오웬

…몰라. 기억나지 않아. 나는 라보 탈출에 성공했어? 벚꽃 나무 아래에 나는 있었어?

카인

그래. 방금까지! 방금까지, 라스티카의 라보에서 우리들은 함께 있었어!

오웬

……

오웬은 입을 닫았다. 역시, 우리들의 기억은 없는 듯 하다. 눈빛은 냉담한 그대로였다.

오웬

흐응.

좋아한다고 말하니, 오웬은 기뻐하며 웃어주었다.

그 때의 선명한 장면을 떠올리고 안타까워졌다.

―카인과 오웬이려나요?

―들었어? 나래.

―나도야! 기쁜데.

이 세상에는 수많은 정보가 흘러넘치고 있다. 무수한 정보가 눈이나 귀로 들어온다. 문자, 빛, 영상, 소리, 냄새, 맛.

의식해도,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메모리가 펑크가 나버리니까.

그럼에도, 잊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좋아하는 것이라고, 카인은 말했다.

표정을 바꾸지 않았던 오웬에게, 카인은 미소를 건넸다.

카인

…좋아. 잊어버렸다면, 몇 번이고 할게. 오늘 밤 있었던 일을.

오웬

……

카인

오늘 밤의 나는 무례했으니까, 다음 번엔 제대로 하겠어.

총을 겨누지도 않을 거고, 스크랩 같은 말을 하지 않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작별하지도 않을 거야.

지금의 너, 굉장히 싫은 표정을 하고 있지만…

오웬

하? 내 얼굴이 불만?

카인

오늘 밤 같은 일을 연속으로 겪으면, 누구나 그런 표정이 되어버리겠지. …미안.

오웬

……

카인

총이 겨눠지고, 움직임을 제한받고, 약속을 구실로 이곳저곳 끌려다니고, 그런데도, 지켜주지 못하고…

누구도 너에게 ‘예스’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그런 무서운 얼굴이 되어버릴 거야.

오웬

…시끄럽네.

침착성 없이, 오웬은 눈을 피했다. 기억을 되짚는 것처럼 깜빡임이 늘어난다. 그러던 중…

갑자기, 높게 도약한 소년이 오웬의 등을 뒤꿈치로 걷어찼다.

스노우

…윽.

오웬

…읏, 우앗…!

카인

오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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