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끝에서 자줏빛 꽃의 겉잠을

눈물의 끝에서 자줏빛 꽃의 겉잠을 8화

미스라

…손을 줘보세요.

루틸

에?

미스라

<아르시무>

루틸

이건…… 조개 껍데기 팔찌?

미스라

빛나는 방패 상이 나왔던 그날 밤에 만든, 퇴마의 부적이에요.

몸에 지니고 있으면 더 레이븐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한 번은 반드시 무사할 수 있을 거예요.

루틸

…! 미스라 씨…

미스라

어차피, 쓸모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요. 말을 잊었다고 하니까.

…하지만, 뭐어. 고민하는 당신은, 뭔가, 이상한 얼굴이라서.

수기든 뭐든 읽어버리고 빨리 평소 표정으로 돌아와주세요.

루틸

…네, 힘낼게요. 평소 표정이 될 수 있도록!

감사합니다, 미스라 씨!


다음 날 아침. 나는 루틸과 함께 침실에서 오웬을 기다리고 있었다.

침대 위에서는 변함없이, 더 레이븐이 고통스러운 듯이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아키라

오웬, 안 오네요… 이제 의식이 시작할 시간인데도.

루틸

그러네요… 조금만 더 기다려보고 안 오면, 찾으러 갈까요.

이 침실은 의식의 시작과 끝의 장소다. 오웬이 처음에 더 레이븐을 깨우고, 마지막에 루틸이 더 레이븐을 잠재운다.

다른 마법사들도 각자의 역할이 있는 장소에서 더 레이븐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의뢰주인 지금의 영주에게 부탁받아서, 나는 의식 진행의 증인으로서 모든 것을 지켜보기로 했다.

루틸

……

공주의 수기와 라벤더 꽃다발을 껴안은 루틸이, 더 레이븐을… 괴물이 되어버린 마녀를 바라보았다.

본 적 없는 조개 껍데기의 부적 같은 것을 꽈악, 기도하는 듯이 움켜쥐고.

긴장한 그 옆모습에 나는 기도했다.

아키라

(…부디, 오늘 의식이 무사히 끝날 수 있도록.)

(부디, 눈물의 공주의 마음이 더 레이븐에게 닿기를.)

(이를 위해서, 우선은 오웬이 여기에 오기를……!)

……! 오웬!

오웬

……

루틸

다행이다, 와주셨군요! 오웬 씨, 감사……

오웬

와야지. 네가 더 레이븐에게 죽는 모습을 보고 싶으니까.

평소처럼 코웃음치면서도, 오웬은 조금도 이쪽을 보지 않았다.

원래같았으면 그의 말에 파랗게 질리거나 화내는 우리들의 얼굴을, 히죽거리며 즐겼을 텐데.

어안이 벙벙한 우리들의 옆을 재빨리 스쳐 지나가, 큰 보폭으로 침대에 다가갔다.

오웬

자, 의식을 시작할게.

현자님, 좀 더 가까이 와. 지켜보는 역할이잖아.

아키라

네, 넵. 저기, 오웬……

오웬

<쿠레 메미니>

나의 말을 끊듯이, 오웬이 주문을 외웠다. 그 순간, 방의 공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반짝거리는 아침의 빛이 넘쳐흐르는 듯한, 청량하고 산뜻한 눈을 뜰 기척.

오웬

……

오웬이 잠깐 눈을 감았다. 어슴푸레한 날개 같은 속눈썹의 그림자가 하얀 뺨에 내려앉았다.

그러고선, 살짝 침대에 다가서더니 허리를 굽혀 더 레이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평소와는 다른, 부드러운 미소. 잿빝의 머리카락이 살랑 흔들리고, 아름다운 모양의 입술이 깨우기 위한 말을 소리로 낸다.

오웬

ㅡ‘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당신의 축복의 날.’

‘자아, 저와 함께 가시죠.’

상냥한 음악처럼 내려앉는 눈을 뜨라는 말. 더 레이븐의 눈꺼풀이 느긋하게 움직였다.

더 레이븐이 멍하니 오웬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는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재빨리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웬

어이, 괴물 녀석. 멍하게 있지 마. 빨리 일어나서, 방을 나가. 바보 같으니라고.

아키라

(히엑, 힘껏 부리를 잡아당기고 있어…! 이, 이건 화내는 게……)

루틸

오, 오웬 씨. 조금만 더 상냥하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졌지만, 더 레이븐은 오웬의 행패에도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천천히, 무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더니 방을 나가는 오웬의 뒤를 비뚤어진 다리로 비틀비틀 따라갔다.

루틸

…부디, 잘 부탁드려요.

오웬의 등에 던져진 말. 그는 그것에 대답하지 않고, 더 레이븐을 이끌며 침실을 나갔다.

그 뒤를 나는 바로 쫓아갔다.


오웬이 더 레이븐을 데려간 곳은 성의 홀이었다.

그곳에서는 다음 에스코트 역인 미스라와 피가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피가로는 태연하게 서있었고, 미스라는 평소와 다름없는 나른한 모습으로 벽에 기대어 있었다.

미스라

아아, 드디어 왔다. 늦어요.

이 녀석을 깨워서 데려오는 것 뿐인데, 힘겨웠나요?

오웬

힘겨울 리가 없잖아. 이 녀석의 발이 느려.

피가로

그래그래. 싸움은 나중에.

자, 미스라. 대사를 말해서 에스코트를 바꿔야지.

미스라

저한테 지시하지 마세요.

피가로에게 불만을 말하면서도, 미스라는 더 레이븐의 앞에서 손을 내밀었다.

아주 약간, 황공해보이는 자세는 아서와 히스클리프의 끈기 있는 지도에 의한 것이었다.

가슴에 손을 올리고, 깊은 연못과도 같은 에메랄드 눈동자를 더 레이븐에게 향한다.

미스라

‘당신에게 축복을’

‘당신에게 감사로 가득 찬 성을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으로’


피가로

‘그럼, 우리들의 안내는 여기까지. 다음은 그가 안내하겠습니다.’

집무실의 문을 크게 연 피가로가, 단정한 행동으로 더 레이븐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것과 동시에, 다음 에스코트 역인 아서에게 가볍게 눈짓했다.

아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끄덕이며 반응한 아서가, 상냥하게 미소 짓곤 더 레이븐을 맞이했다. 순서대로, 더 레이븐을 창문 근처에 안내한다.

손끝까지 배려로 가득찬, 왕자님 다운 품격있는 동작에 생각치도 못하게 살짝, 감탄의 숨이 흘러나왔다.

더 레이븐을 향해, 아서는 창문 밖의 경치를 손으로 가리켰다. 자애롭게 눈동자를 가늘게 떴다.

아서

‘이것이, 당신이 지켜주신 영지입니다.’

‘이곳에 사는 모든 것을 대신해서, 당신에게 감사를’

끝없이 맑고 푸른 하늘을, 검은 새가 즐거운 듯이 날고 있다.

그 아래에 펼쳐진 건 아담한 시골 마을. 오래된 건물이 눈에 띄는 건 옛날부터 이 땅이 풍요롭고 평화로웠다는 증거다.

멀리서 낮은 산맥이 보였다. 저 산 어딘가에, 까마귀 마녀가 봉인했던 수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보이는 모든 것을, 수백 년 전, 까마귀 마녀는 지키고 있던 것이다.

눈물의 공주만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키라

(……그러니까, 집무실의 창문에서 밖을 보여주는 게, 의식에 포함된 거겠지.)

(눈물의 공주가 제발 전해지라고 생각하면서, 까마귀 마녀를 위해 어레인지한 의식……)

더 레이븐

…….

하지만, 더 레이븐의 모습은 눈을 떴을 때부터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유리 구슬처럼 새까만 눈동자에, 밝은 하늘과 정돈된 마을 풍경이 비추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어떠한 기쁨도, 감격도, 분노나 슬픔도 보이지 않고 더 레이븐은 멍하니 그곳에 서있다.

아키라

(자신이 마녀였다는 것도 잊어버렸으니까, 공주에 대한 것도, 영지에 대한 것도, 잊어버린 거야.)

(……기억하고 있는 건, 분노와 슬픔 뿐…)


클로에

앗! 와, 왔다…!

히스클리프

괜찮아, 클로에. 연습대로 힘내자.

조금 성을 둘러보고, 홀에 돌아온 더 레이븐을 클로에와 히스클리프가 맞이했다.

아서에게 이끌려 온 더 레이븐이 터벅터벅 다가오자, 함께 공손히 인사한다.

그리고, 조금 긴장한 모습으로 클로에가 더 레이븐에게 손을 내밀었다.

클로에

서… ‘성은 어떠셨나요?’

‘부디, 이 장소에 가득 찬 축복과 감사가, 당신에게 아름다운 꿈을 선사해주기를.’

때 묻지 않은 순진함이 있는 동작. 클로에의 꽃 같은 미소가 감사와 축복을 진심으로 전하고 있었다.

정중하게, 더 레이븐을 에스코트 해서. 문득, 이쪽을 본 클로에가 눈을 크게 떴다.

그 시선을 따라간, 히스클리프도 조금씩 숨을 삼켰다.

아키라

(뒤에서부터, 작은 발 소리가 들려…… 하지만, 사쿠쨩도 경계하고 있지 않아.)

(무엇이 더 레이븐을 자극할지 모르니까 돌아보지 말라고 들었지만, 설마……)

블루 그레이의 머리카락을 한 아름다운 영애의 모습이, 눈꺼풀에 떠올랐다.

분명, 의식의 행방을 보고 싶은 거겠지.

루틸과 똑같이, 이것이 두 번 다시 없을 정화할 기회라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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