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우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그러니 우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2

7세

원고 by 인간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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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다 안 달았으니까 헷갈리거나 잊어버리면 안 된다. 붉은 끈이 있으면 그 앞으로 가면 안 되고.”

“녹색 끈만 따라가요?”

“그래. 그럼 노란색 끈은 무슨 뜻이지?”

“어른들이랑 같이…?”

“옳지. 똑똑하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겠구나.”

“얼씨구, 맹자께서 이렇게 팔불출인 거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나 몰라. 의약당 위치는?”

“사당 쪽으로요.”

“다른 사람들 사택 어딘지도 알아?”

“네, 지리는 외웠어요.”

“무슨 일곱 살이 이렇게 똑똑하지? 잘했다.”

일곱 살이면 자유에 대한 개념도 어느정도 익힐 때가 되었단 뜻이다. 주희는 쓰다듬는 둘의 시선을 피해 선산을 두른 목책을 쳐다보았다. 목책. 주희의 키보다 열 배는 더 큰 것. 주희가 밖으로 나가게 하지 못하는 것…. 주희는 영민했으므로, 저 목책도 ‘유’가 베풀어주는 호의임을 알았다. 단지 마음이 그걸 인정하지 못할 뿐이다.

목책을 아무리 높게 세운다고 한들 그게 많은 것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바람을 타넘고 들어오는 웃음소리, 왁자지껄한 소란스러움과 장을 보고 돌아온 선생님들의 이야기. 놀이패, 새로 들어온 서적, 그런 것들…. 아마 어쩌면, 주희는 평생 모르고 살 수 있었던 것.

지반이 약한 부분은 미리 파악해두었다. 주희는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둘을 향해 배시시 웃어보였다.

흙더미는 툭 치기만 해도 금세 어린애 한 명 정도는 들어갈 구멍을 만들었다. 주희는 머리카락에 흙을 한가득 묻힌 채 목책 바깥으로 기어나왔다. 마침 장날이었는지 근방에서 우렁우렁하게 울리는 소리꾼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희는 그것이 놀이패의 소리임을 깨달았다. 머리의 흙을 대충 털어내고 -그래도 꼬질꼬질하긴 했다- 반듯하게 나 있는 길을 뛰어가자 몇 사람이 아는 체를 했다. 주희도 아는 사람이었다. 순황이 오기 전에는 종종 선산으로 올라와 어른들의 진맥을 봐주던 의사였다.

“맹자께서 나와도 된다고 하시던?”

“앗.”

“몰래 나온게야? 일곱 살이 장난기가 이리 많아서야. 자, 이거 쓰고 가거라. 오늘은 해가 강해서 안 쓰면 얼굴이 따가울거다.”

해가 다 져 가고 있는데도 햇빛이 그렇게 강한가. 주희는 삿갓을 받아들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의원이 낮게 웃으며 턱 아래에 고정 끈을 묶어주었다.

주희가 거리에 도착했을 즈음엔 장이 얼추 파하고 있었다. 놀이패가 악기를 정리하고 있었고, 좌판도 몇 개가 접혀있었지만 어린아이의 눈이 돌아갈 만한 곳은 여전히 운영 중이었다. 그들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장난감 따위를 구경하는 아이를 보고는 가져 가서 놀라며 제일 싼 것 몇 개를 쥐여줬다. 그럼 주희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제 손에 들린 것과 주인을 번갈아보다 “감사합니다!” 하고는 고개를 푹 숙여보였다. 삿갓 아래로 붉은 머리칼이 언뜻언뜻 비쳤으나 ‘유’의 영향을 가장 오래 받은 마을 사람들은 적의를 드러내지 않는 법을 알았다.

그들은 어린아이의 옷매무새도 정리해주곤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아이를 선산으로 보낼 계획을 짰다. 혁명 내내 ‘유’의 소리 없는 그림자가 되어줬던 이들은 이제 눈빛만으로 서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자연을 인간이 통제할 수는 없었던 것이 불행이라면 불행인 일이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삿갓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주희가 손에 쥐고 있던 끈 장난감도 삿갓 끈에 엉켜 하늘을 날았다. 노을빛이 아이의 머리 위로 드리워져 거리 위로 긴 그림자를 드리웠고,

“아이고, 이 사람아! 진정 좀 하게, 이런 곳에서 뭘 하겠다고!”

피 묻은 돌이 바닥을 굴렀다.

주희는 하곡의 생각보다 악의에 대해 훨씬 더 잘 알았다. 폭력에 거리낌없이 노출되어있던 상황이, 그의 무의식 속 깊숙한 곳에 가라앉은 폭군의 인상이 그렇게 만들었다. 마차가 뒤집히고 눈앞에서 선혈이 낭자하는데 제 어미가 요람 하나는 보호해보겠다며 마구잡이로 쑤셔넣은 것이 폭군의 수배서였다.

朱熹, 하늘을 더럽히고 땅을 욕되게 한 배신자 처형해야 할 성리학의 수괴 죽어 마땅할 의 없는 일천한 놈 ‘유’의 은혜를 저버린 변절자 살인자 살인자 살인자! 그것들은 잿더미가 되어 주희와 함께 숨쉬고 잠들었다. 그러니 주희가 황제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겠는가?

누군가가 던진 돌이 가느다란 포물선을 그리나 싶더니 주희의 손등을 치고 떨어졌다. 어린아이의 피부는 쉽게 물든다. 흙과 모래가 돌이 스친 길을 따라 까만 자국을 남기다가 곧 그 자국을 따라 핏줄기가 툭 터져 흘렀다.

아이의 손등이 새빨개지는 것과 동시에 덤벼들려던 광인을 다른 행인이 붙들었다. 울음인지 웃음인지 소리를 지르는지 통곡하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목소리가 사람들 사이로 파묻혔다. 뭉개진 발음으로 읊는 저주가 귀에 틀어박혔다. 주희는 제 회색 눈동자를 깜박였다. 그가 영특하다 하여 세상의 많은 단어를 전부 아는 것은 아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광인이 내뱉는 말은 대부분 주희가 접하지 못한 세속적인 언어였다.

“너 어서 선산으로 돌아가거라, 얼른!”

벼락처럼 말이 내리꽂혔다. 그제야 땅바닥에 꽂힌 것마냥 굳어있던 다리가 풀린 듯 주희가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모래색 머리칼의 남자가 무어라 하며 그 사람의 손을 단단히 붙잡고 있다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 묻혀 사라졌다. 시야 끝에서 뒤엉킨 사람들 사이로 온갖 색이 흩날렸다.

주희는 아까 장난감을 쥐여줬던 상인이 어깨를 돌려주고 나서야 겨우 걸음을 뗐다. 악의와 선의가 뒤엉킨 채 작달막한 등을 떠밀었다. 귓가에 자꾸 절규가 울리는 것 같았다….

순황이 주희를 찾은 건 어느 한 굴이었다.

용케 이런 곳을 찾았구나 싶었다.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하곡이 빗어줬던 머리가 흙먼지로 온통 엉망이었다.

“희야.”

“수, 순자님.”

“여기서 뭐 해. 머리는 왜 또 그렇게 엉망이고…. 너 다쳤니?”

“그으…. 좀 쓸렸어요. 괜찮아요.”

“… 너 나갔다 왔니? 나가서 뭐 맞았어?”

“아니에요!”

“아니면 아닌거지 왜 그렇게 화를 내.”

이제 일곱 살 된 애가 거짓말을 잘 할 리가 없었다. 순황은 애써 어설픈 거짓말을 모른 척 하고 주희 앞에 쪼그려 앉았다. 굴로 들어오는 새에 굴렀는지 무릎이 약간 까졌고 손바닥도 붉었다. 짧게 혀를 차자 주희가 움찔거리며 무릎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건 가서 치료해야겠다.”

“… 저, 순자님. 다른 분들께는,”

“이야기 안 한다. 너 맹자님 화내시는 거 본 적 없지?”

“네.”

“앞으로도 안 보는 게 좋을 걸. 자, 업히거라. 피곤할테니까 좀 자도 괜찮고.”

“네…. … 죄송해요.”

“됐다. 나가고 싶었을 수도 있지.”

등에 닿는 온기가 따끈했다. 순황은 주희의 몸에 흐를 피의 양을 가늠해보다 작게 침음성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제 목을 감싸안고 힉, 하며 헛숨을 들이키는 게 귓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이래보여도 이 몸 안에 흐르는 피 하나가 호수 하나 정도는 채울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그걸 알았는지는 모르겠다. 살아있는 폭군의 잔재, 하지만 폭군과 무관한 어린아이. 그러나 평생 잔적의 그림자 아래서 살아야 할 것….

주희가 피가 흐르지 않는 무기물이었다면 좀 더 괜찮았을까? 순황은 부질없는 상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주희가 받을 악의가 사라지는 일이 없는 탓이다.

순황의 등에 업혀 곤히 잠든 채 나타나는 게 꼭 몇 년 전 하곡이 한밤중에 아이를 데려왔던 때랑 겹쳐 보였다. 맹가는 화등의 불을 줄이며 의약당 침상 위에 누워 새근거리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무릎과 손바닥, 손등 따위에 남은 쓸린 자국은 붕대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항하사를 건너온 맹가는 거짓말 정도는 금방 알았다. 그것이 꼭 언어의 형태가 아니어도 그랬다.

“돌이라도 맞았나.”

“아~. 전 말 안 했어요. 맹자께서 혼자 알아내신 거에요.”

“그런 걸로 치지. … 정말 길을 잃은 건 맞고?”

“거기 굴이 있는 건 알고 있던 것 같은데요.”

“근거는?”

“그 근처에 발자국이 널려있지 않았던 거요. 목책에서부터 일직선으로 쭉 있었어요.”

보호를 위시한 감금이라고 생각했을까. 손을 뻗어 앞머리를 넘기자 지혜열이라도 나는지 이마가 뜨끈했다. 순황을 일별하자 바로 옆 협탁에 물그릇이 올라왔다.

“충년이 되면 장이라도 같이 보낼까.”

“보내셔도 돼요?”

“하곡이랑 같이 보내면 되겠지. 머리색도 닮았고, 낯도 비슷하잖아.”

“삿갓을 따로 짜 둬야겠네요.”

“멱리도 나쁘진 않겠네.”

아이는 내일 아침이 되면 일어날 것이다. 하곡은 순황이 둘러댄 변명을 철썩같이 믿는 눈치였으니 내일 동이 트자마자 의약당 쪽으로 올 것이고. 화등의 불을 완전히 줄이자 의약당 안으로 달빛이 들이쳤다. 순황은 아이 옆에서 밤을 샐 모양이었다.

“아침에 보자.”

“네, 들어가세요.”

맹가는 소리 없이 자리를 벗어났다. 달빛이 스산한 밤이었다.

하곡은 이제 주희를 볼 때마다 열을 재고 갔다. 주희가 열 살이 되어서도.

“애 안 아프다니까.”

“그치만 항상 이맘때쯤 감기 기운이 있지 않았어요?”

“이제 시월 초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빨리 내려가서 장이나 보고 와라. 해 일찍 지니까.”

“네.”

“희야, 하곡 잘 따라다녀야 한다. 손 꼭 잡고 다니고.”

“네….”

“그래. 오늘 장날이니까 구경 잘 하고 오고.”

“저녁 먹여야 하니까 단 거 먹이지 마.”

“그거 안 먹으면 장을 왜 보러 가요.”

“어허.”

목책의 문이 열렸다.

‘유’가 챙겨주는 주희의 생일은 중추절 언저리였다. 막 데려왔을 때 희가 제 이름만 알고 그 외엔 아무것도 몰라 겨우 익숙한 날짜를 골라준 것이 그때였다. 그즈음이면 마을도 명절에 맞추어 장을 크고 오래 열었다. 삼 년 전에 나왔을 떄보다 더 크고, 소란스러운 거리에 주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곡은 장거리를 처음 보니 놀랐겠거니 싶어하며 아이를 받쳐 안았다. 애 잃어버리지 말라며 매어준 방울 달린 팔찌가 찰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어디 가고 싶어?”

“서고!”

“의젓하네…. 나 이때는 책 안 읽었던 것 같은데. 집사가 근처에 있던가.”

“다른 데 먼저 가도 돼요.”

“으응, 집사 주인분이랑 ‘유’랑 잘 알아서 괜찮아. 제기 사는 거라 지루할텐데.”

“그럼 서고.”

“그래그래. 삼촌은 바로 옆 가게에 있을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불러야 한다.”

서고지기는 나이가 지긋한 어른이었다. 삿갓 그늘에 가려진 주희의 낯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현명한 치이기도 했다. 하곡은 짧게 말을 섞은 후 주희를 내려주었다. 서고의 가느다란 창살 사이로 빗겨들어온 햇빛이 붉은 머리칼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서고지기가 아무런 말도 안 했고, 그의 시선과 침묵이 긍정의 의미를 깨달은 주희가 우화집 앞쪽에 있던 걸음을 돌렸다. 햇빛이 닿지 않고 먼지가 소복히 쌓인 곳에 논집이나 역사서, 회의록 따위가 정리되지 않은 채 쌓여있었다. 주희는 손이 닿는 대로 책을 꺼내들었다.

제일 먼저 집어든 책의 겉표지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天下一元細論集.

‘인을 잃은 것을 적, 의를 잃은 것을 잔이라고 한다. 인의를 저버렸음을 잔적했다고 하고, 잔적한 이를 일개 필부라고 하지. 그러니, 그런 치가 제帝의 위에 앉아있다면 끌어내려도 좋다.’

머릿속에서 맹자의 말이 빙글빙글 돌았다. 칼날로 저며낸 것 같은 문장이 손끝을 같이 베어내는 것 같았다. 만물을 이와 기의 합일으로 여기는 것이 성리학이다. 앎이 있어야 실천이 있는 법이라고 말한 것도 성리학이었다. … 그걸 기반으로 십 년이 넘도록 사람을 탄압하고 죽였던 것도 성리학자였다. 바닥에 펼쳐진 열 몇 개의 역사서가 모두 하나의 결론만을 이야기했다. 그는 끌어내려지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춘 자였다.

그리고 그게 주희였다. 붉은 머리, 검은 눈. 성리학을 주창하는 ‘유’의 학자. 언젠가 파문당한, 그리고 언젠가 파문당할 수 있는….

삼 년 전의 악의는 정당했다. 흉지지 않은 손등이 저릿하게 아파왔다.

“얘야.”

“… 어르신.”

“곧 선생님이 올 텐데, 계속 보고 있어도 괜찮으냐.”

… 주희는 이제 시선 속에 담긴 오래된 원망과 분노를 알아챌 수 있다. 대답이 없자 노인은 조용히 옆에 와 책을 정리하는 것을 도왔다. 그런 행동은 분명 선의였다. 다만 그건 제 낯이 어린아이기 때문일 것이다. 삼 년 전에 그가 성인이었다면 사람들이 그를 막아줬을까? 역사서가 차곡차곡 쌓여 다시 책더미 위로 올라가자 노인이 작은 우화집 하나를 쥐여주었다.

“가져가서 읽어보거라.”

“저, 어르신.”

“어린아이가 알기엔 너무 이른 내용이다, 저것들은. … 네가 그 폭군도 아니지 않느냐. 마을 사람들이 무정하지는 않지.”

서고 바깥에서 타박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노인은 주희를 내버려두고 먼저 입구로 향했다. 주희는 눈을 깜박거리다 급하게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노인을 뒤따랐다. 품에 제기도구며 식료품을 한가득 안은 하곡이 뒤따라나온 주희를 보고 말갛게 웃었다.

“사고 싶은 책이라도 있어?”

“선물이니 그냥 가져가. 지학도 안 된 애에게 무슨 돈을 받겠다고.”

“그래도요. 나중에 오셔서 값 받아가시기엔 귀찮으시잖아요. 아, 희야. 전낭에서 동전 두 개만 꺼내드리거라.”

“됐대도. 나중에 내 맹자께 따로 값 치를 테니 그냥 가. 어린애까지 보려면 손이 네 개여도 모자라겠다.”

손이 없으니 주희는 자연스럽게 하곡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낯을 가린다고 생각하는지 머리 위에서 하곡이 멋쩍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서고지기는 희를 잠깐 힐끗하더니 금방 시선을 거뒀다. … 다행스럽게도, 그 시선에는 악의가 없었다.

몇 마디 대화 끝에 하곡이 걸음을 돌렸다. 주희도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하곡을 뒤따랐다. 등에 서고지기의 시선이 가 닿는 듯 싶더니, 이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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