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속과 탈출

영속과 탈출 - 3

벨라도나, 아름다운

티온랩실 by 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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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괜찮아?”

 

부드러운 수건으로 조심스레 류건우의 젖은 얼굴을 닦아내던 류청우는 제 손길에 몸을 맡긴 류건우에게 질문했다. 그 질문에 류건우는 피식 웃고는 담담하게 답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닌데. 너도 알잖냐.”

“... 내가 말한 건 그게 아닌데, 형.”

“그래, 장난 좀 쳐 봤다. 괜찮아. 다친 데 없어.”

 

류건우의 얼굴에 검붉은 찻물이 쏟아진 것이 불과 10분 전. 그 범인이 더 당황해서 한바탕 난리를 피우다 돌아간 건 딱 3분 전. 갓 내어간 티팟이 얼마나 뜨거운지 모를 리가 없는데도 류건우는 별다른 처치 없이 그저 씻으러 가겠다며 류청우의 손에서 수건을 뺏었다. 얼떨결에 손이 비어버린 류청우는 붉게 부어오른 류건우의 목을 물끄러미 보았다. 시선을 느꼈는지 류건우가 고개를 돌렸다.

 

“왜.”

 

할 말이 많은 얼굴로 류청우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류건우는 이상할 정도로 자신의 상처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상처를 돌보는 건 차라리 류건우가 다 씻고 난 후에 류청우가 직접 해주는 게 더 나았다. 지금 열기를 빼자고 해봐야 류건우는 그냥 웃고 넘길 것임을 류청우는 알았기 때문에, 그는 표정을 털어내고 부드럽게 웃으며 류건우에게 적당히 시원한 물로 씻고 바로 침실로 오라고만 당부했다.

 

“그래. 이따 보자.”

 

침대를 정돈하고 가벼운 약품을 준비하다보면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어느새 샤워를 마치고 잠옷을 걸친 류건우가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며 걸어나왔다. 막 씻은 사람의 몸에는 미지근한 온기와 싸늘한 냉기가 공존한다. 물기가 마르며 시나브로 차가워지는 류건우의 손목을 약하게 잡은 류청우는 천천히 류건우를 침대에 앉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춥지는 않은데."

"알아요, 그래도."

"그럼 너도 들어오던가."

"하하."

류청우는 류건우의 무덤덤한 말에 그저 웃었다. 류건우가 저를 챙기는 것의 딱 반만 자신을 챙기면 류청우의 걱정도 반은 날아가버릴텐데, 라고 류청우는 생각했다. 씻은 직후의 열기 탓인지 목덜미를 무심하게 벅벅 긁어대는 류건우를 보고 기겁한 류청우가 황급히 얼음을 넣어 찬 수건을 목에 대주었다. 류건우가 갑작스런 냉기에 흠칫거리자, 류청우는 류건우의 손목을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떼어내지 말라는 뜻이었다. 화상에 대한 응급처치라기엔 사실 이미 늦었지만, 아예 안 하는 것보다야 이게 낫지 않겠나 싶은 마음이었다.

 

“잠깐만 이러고 있자, 형.”

“별로 아프지도 않은, 아.”

 

오늘도 제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을 실패한 류건우가 멋쩍은 소리를 냈다. 류청우가 짓던 엄한 표정이 순식간에 시무룩해졌기 때문이었다.

 

“병원은 못 가잖아.”

“그건 그렇지만.”

“형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무리 사람의 마음을 갖고 노는 것이 류건우의 직업이라지만, 류건우는 어쩔 수 없이 류청우에게 약했다. 아마 솔직하게 그 다정한 마음을 표현하기 때문이겠지. 저를 걱정하는 류청우의 속상한 얼굴을 보며 류건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류청우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이건 내가 하고 있을게. 할 거 하고 와라.”

“알았어, 형.”

“물수건 고맙다.”

“당연한 걸.”

 

걱정스레 류건우를 보던 류청우는 빨리 올게, 라고 덧붙이고는 방을 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던 류건우는 빠르게 냉기를 잃어가는 수건을 목에서 떼어냈다.

 

“이 정도로 끝난 거면 싸게 먹힌 것 아니냐.”

 

류청우에게 그런 일이 생겼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나를 죽여버렸을 거라고, 류건우는 생각했다. 단순한 가정일 뿐인데도 순식간에 공포에 질리려는 머리를 흔들었다.

오늘 그에게 차를 뿌리고 도망간 사람은 이번 의뢰인의 애인이라고 했다. 평범한 의뢰인인 줄 알고 응접실에서 맞이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오피스에서 맞이할 걸 그랬다고, 아마 그랬으면 류청우가 이렇게 속상해하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류건우는 가볍게 후회했다. 물론 류건우의 후회와 상관없이 회상은 이어졌다.

왜 왔냐고 물었더니 제 애인이 당신 때문에 살인자가 되었단다. 제 고용주에게 독약을 먹이고 저도 그걸 마셨단다. 류건우는 그게 누구를 가리키는지 단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애초에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 중 범죄자, 혹은 범죄를 저지를 예정이 없는 사람이 뭐 얼마나 된다고 그런 꿈만 같은 소리인가. 그게 누구 이야기인지 알아내기 위해 잠시 기억을 뒤적인 류건우가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얼마 전, 사람이 최대한 고통스럽게 질식사할 수 있는 독약을 원한다는 사람이 있었다. 제 연인을 죽인 사람이 알고 보니 저를 살려 주워온 고용주라고 했다. 그래서 주문대로 최대한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사할 독약을 제조해 보냈는데, 일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모양이었다.

 

“사정이 꽤 복잡해 보였는데.”

 

가해자도 피해자도 죽은 마당에 이제 와서 류건우에게 내 애인 살려내라고 발악해봤자 죽은 애인이 돌아올 일은 없다는 것은 아마 그 사람이 가장 잘 알 것이었다. 필요한 건 그저 화풀이를 할 대상일 뿐. 류건우도 그걸 빤히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먹고사는 입장이라지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어서 찻물을 맞아준 것 뿐이다. 류건우는 다시 열기가 오르는 목덜미를 손으로 짚었다. 금세 물기가 마른 손은 서늘했다.

 

“형, 나 왔어.”

 

그리고 류건우의 가슴도 다시 선득해졌다. 그에게도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가 류청우를 지키기 위해 했던 그 모든 일들이 실은 자신과 류청우를 해하고 있었다면. 류청우에게 들이닥친 모든 풍파가 실은 자신이 유도한 일이었다면. 자신이 죽음에 일조한 사람을 사랑한 누군가가 류청우를 노리고 있다면. 애초에 제가 이곳에 돌아온 것 또한 비슷한 이유가 아니었던가.

 

“형?”

 

류청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류건우는 저를 살피는 류청우를 꽉 끌어안았다. 갑작스레 몸을 맡기는 류건우 때문에 당황한 게 느껴지면서도 형이 자신을 먼저 안아줬다는 것 자체는 만족스러운지 한숨처럼 웃음을 뱉어내는 것이 느껴졌다. 그 온기에 기대어 류건우는 아주 옛날, 저에게 독을 가르쳤던 사람이 해 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니체였나, 어느 유명한 철학자의 말이라고 했다.

네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심연 역시 너를 들여다보게 된다고.

 

 

“어제는 미안했어요.”

 

다음 날의 첫 방문자는 류건우의 목에 잘 우려낸 얼그레이의 맛을 보여준 그 사람이었다. 뜻밖의 방문자에 류청우는 서늘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고, 류건우 역시 의외라는 듯 한쪽 눈썹을 미미하게 들었다. 류청우는 들이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았지만, 방문자는 전날과 달리 몹시 미안해하는 기색이었고, 그래서 류건우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방문자를 다시 응접실로 데려왔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사과하러 온 거에요. 어제는 내가 잘못한 거니까.”

 

류건우는 무감한 눈으로 상대를 건너다보았다. 그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덧붙일 말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문득 머리가 지끈거려 류건우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당신이 잘했다는 건 아니에요. ... 애초에 이 험한 뒷골목에서 번듯한 정보상 겸 약제사로 이름을 날린다는 것 자체가 그렇지만. 그러니 내가 사과하는 건 어제 당신에게 홍차를 던진 것 뿐이에요.”

“예. 그건 괜찮습니다.”

“사과의 의미로, 음, 이게 정보로서 가치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에게 의뢰한 내 애인의 이야기를 짧게 들려줄까 하는데요.”

“그러고 싶다면 말씀하시죠.”

 

류건우는 소파에 편히 기대어 앉았다. 들어둬서 나쁠 이야기는 없었다. 가치가 있는 이야기였다면 값을 지불하면 되니까. 그 태도에 조금 마음이 풀렸는지, 그는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어떻게 만났는지, 그에 대한 것들은 언제 알게 됐는지.

 

“우선, 나는 에스더라고 해요. 딱히 궁금하지는 않겠지만... 그래요. 시작할게요.”

“아마 그이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했던 것 같아요. 이따금 그런... 것들이 느껴졌지요. 처음엔 질투했어요. 화도 냈고. 그런데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더군요. 죽은 사람에 대한 사랑을 살아있는 내가 어떻게 이기겠나요.”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놓은 그가 목을 가다듬었다. 그를 조용히 응시하던 류건우가 천천히 일어났다.

 

“잠시 기다리시죠.”

“네?”

 

의아함을 표현하는 손님을 내버려둔 채 류건우가 응접실을 나섰다. 문을 열자, 어떻게 문을 열어도 안에서는 보이지 않을 위치에서 서성거리는 류청우가 곧장 눈에 띄었다. 류건우가 응접실의 문을 닫자, 류청우가 곧장 다가왔다. 류건우는 문득 흐릿해지는 시야에 눈을 끔벅였다. 조심스레 류건우의 어깨를 부축한 류청우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끝난 거야, 형?”

“아니. 금방 끝날 거야. 점심은 같이 먹자. 뭐 먹을래.”

“글쎄, 뭐 남았나 보고 정하려고... 그쪽은 왜요?”

“찾아올 게 있어서. 금방이야. 걱정 안 해도 돼.”

 

제 말만 간결히 끝낸 류건우는 류청우를 내버려둔 채 실험실 옆에 붙은 시약실로 쑥 들어갔다. 시약실이라는 이름이 붙은 방답게 어둑하고 건조하게 관리되는 그 방에는 정제 후 남은 것들이 정리된 채 보관되고 있어서, 류건우는 어렵지 않게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아트로핀 뷰티atropine beauty. 찾았다.”

 

지금 응접실에 있는 사람, 에스더, 의 애인, 그러니까 류건우의 의뢰인. 이제는 에스더의 전 애인이라고 불러야 할 사람이 의뢰한 독과 같은 것. 류건우는 그 작은 병을 주머니에 넣고 응접실로 돌아갔다. 짧은 길을 걸어가는 류건우의 뒷모습을 류청우가 물끄러미 보았다. 류건우의 눈이 평소보다 충혈된 것이 류청우의 마음에 걸렸다.

 

“죄송합니다. 계속하시죠.”

“어, 그... 네.”

 

그는 또다시 손을 꼼질거렸다. 아무래도 버릇인 모양이었다. 류건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상대가 다시 말을 이어가기를 기다렸다. 열감이 오르는 것처럼 머리가 점점 심하게 지끈거렸다.

 

“하루는, 그래. 내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지요. 그 이후로 그 사람이 이상해졌거든요. 무슨 말이었냐면, 정말로 그 사람을 여전히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그렇게 죽인 사람을 먼저 조져버리라고, 그런 다음에 다시 날 사랑해달라고. 아마도 그런 뉘앙스였지요. ... 비속어는 미안해요. 하지만 어떻게 순화시켜도 이 표현이 최선이네요. 아무튼, 내가 그 말을 한 다음날 그이는 약속이 있다며 하루종일 집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게 지금으로부터 한 달쯤 전이니까, 아마도 그때 당신을 찾아온 모양이에요.”

 

그 말을 듣고 류건우 역시 자신의 기억을 떠올렸다. 한 달 전, 예약도 소개장도 없이 소문을 듣고 왔다며 무턱대고 자신을 찾아왔던 한 남자. 그래, 이제야 전부 기억났다. 그 남자가 말했던 사연이 무엇이었냐면.

 

“그분은 자신의 은인이 그분의 전 연인을 뺏으려다 실패했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살해했다고 말했습니다.”

“...! 기억하시네요.”

 

류건우는 어깨만 살짝 움직여 답했다. 요 근래엔 조금 덜했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주로 조직의 의뢰만 맡아 움직였던 탓에 이러한 사연을 품고 그를 찾아오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아 기억을 떠올리기에 어렵지 않은 편이었으니까. 그런 사정을 모르는 앞자리의 사람은 그저 조용히 차를 마시며 다시금 감탄을 내뱉었다.

 

“그래요. 그 은인이라는 분이 하필이면 그 사람에게 호감을 품었다고 했어요. 하지만 결국 죽였다고 했으니, 당사자들이 다 죽어버린 지금와서 저로서는 그게 정말 호감이었는지, 질 나쁜 호승심이었는지 말할 수 없겠지만요.”

“그런 건 호감이 아닙니다.”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류건우의 단호한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에스더는 아주 오랜만에 희미한 웃음을 띄웠다. 류건우에게 찻물을 던지기는 했지만, 사과하러 돌아온 것이나 사고방식을 엿보았을 때 심성 자체가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조지라'던 단어 선택도 아마 죽이는 것을 상정한 발언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기야, 그러니 복수심에 불타던 그 의뢰인마저도 이 사람에게 그런 말을 남겼으리라. 괜히 류청우를 떠올리던 류건우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고는 계속 말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어쨌든, 아마 그렇게 당신에게 의뢰를 하고... 차차 주변을 정리하던 게 기억이 나네요. 자기 물건들을 정리하고, 나눠주기도 하고. 생각해보니 그이는 이미 죽을 생각으로 당신에게 의뢰를 했나보네요.”

 

그제야 납득했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던 그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류건우는 아무 말 없이 티슈를 뽑아 내밀었다. 잠시 훌쩍이는 소리만이 들리던 응접실, 류건우는 옆의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이건 그때 연인분께서 작성하신 계약서의 사본입니다.”

 

에스더는 그걸 왜 자신에게 보여주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류건우를 보았다.

 

“독의 이름과 의뢰인의 서명 부분을 제외하면 제가 기존에 작성해둔 서식을 그대로 사용했지만, 연인분의 계약서에는 추가된 조항이 있습니다. 보이십니까.”

 

에스더는 그 말을 듣고 손에 들린 사본을 찬찬히 살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를 발견한 에스더의 눈이 흔들리자, 류건우는 입을 열었다.

 

“언제가 되었든 당신이 찾아오면 보여달라고 하더군요.”

 

추가금이나, 그 외 사정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류건우는 판단했다. 그가 결국 두 눈을 꽉 감자 류건우는 주머니에 든 약병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눈시울이 붉어진 에스더는 천천히 그것을 집었다. 그 모습을 본 류건우는 가볍게 목례를 한 뒤 응접실을 나섰다.

손글씨로 추가된 조항에는 추후 그의 연인이라 주장하는 자가 찾아오면 의뢰한 독의 여분을 넘긴다는 것과 함께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흔적처럼 적혀 있었다.

 

손님을 떠나보낸 후, 류건우는 본능처럼 류청우를 찾아 부엌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위태롭게 흔들거렸지만, 류건우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걸었다. 시야의 끝에 류청우의 뒷모습이 담겼다. 부엌에서 말없이 재료를 손질하던 류청우가 류건우의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류청우.”

“형?”

 

앞치마에 급히 손을 닦은 류청우가 류건우에게 다가가자, 류건우는 그대로 류청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힘없이 제게 기대는 류건우를 반사적으로 안은 류청우는 불덩이처럼 뜨거운 류건우의 몸 상태에 경악했다.

 

“아무래도, 긴장이 풀려서... 그런 것 같은데. 나 좀 데려다주라.”

“그걸 말이라고...!”

 

드물게 화를 참고 있는 탓에 류청우의 턱에서 까득, 소리가 났다. 류건우는 말을 안 한 건 내가 잘못했지만 화는 내지 말라고 속삭이며 머리를 부볐다. 그 몸짓조차 너무 가벼워서, 류청우는 죄책감에 차마 고개조차 숙이지 못했다. 이 정도로 열이 올랐다면 한참 전부터 아픈 기미가 있었을텐데, 더군다나 류건우는 면담 도중 자신과도 짧은 대화를 나누었는데도. 그것도 눈치채지 못한 류청우 자신에게 화가 났다. 입술을 꾹 다문 류청우는 조심스레 류건우를 안아들고 침실로 향했다.

그날 밤, 류건우는 지독하게 앓았다. 류청우 역시 한숨도 자지 않고 류건우를 간호했다. 류청우는 열에 들뜬 채 저를 애타게 찾는 그 가냘픈 손을, 흐릿하게나마 정신이 들 때마다 저를 찾아 헤매이는 검푸른 눈동자를 외면하지 못했다.

 

의뢰가 종결된 후 간만에 찾아온 휴식. 본래라면 반드시 류건우와 함께 외출했겠지만, 사흘 내내 꼬박 앓은 류건우를 데리고 나가고 싶지는 않다며 류청우는 홀로 장을 보러 외출했고, 그래서 류건우는 느긋하게 침실에 틀어박혀 푹신한 이불의 보송보송한 감촉을 즐기고 있었다. 햇빛은 청명하고 살랑거리는 바람은 적당히 시원했다. 평화롭기 짝이 없는 아주 드문 날. 그러니 아이러니라는 말은 아마 이럴 때 어울릴 것이라고, 창밖에 들이닥친 불청객들을 보며 류건우는 생각했다.

 

“미친 새끼.”

“내가 할 말인데.”

 

마취약의 냄새를 인지한 류건우는 주사기를 꺼내려 했지만 그들의 손은 류건우보다 빨랐다. 류건우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불청객의 손에 이끌려 사라졌다.

그로부터 머지않아 류청우가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이 사용하던 침실은 텅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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