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작파 (1)
청우건우, 희생양x흡혈귀 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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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喚想 - 지나간 것을 돌이켜 생각함.
작파作破 - 어떤 계획이나 일을 중도에서 그만두어 버림.
류건우에게는 어린 동생이 있었다. 친동생은 아니었고, 그저 적당히 먼 친척이라는 것만 알았지만 어쨌든 류건우는 어릴 적부터 보아온 그 아이를 제 동생으로 여겼다. 동생이 놀아달라 보채면 쩔쩔매면서도 놀아주고, 웃는 얼굴을 보면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떨어져 있으면 절로 시선이 향하는 어린 동생.
이젠 전부 과거형이었다. 류건우는 자신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밀을 간직한 몸이란 걸 알게 되었고, 동생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류건우는 흡혈귀였다. 더없이 아름다운 외모로 사람을 홀려 그 피로 생명을 유지하는 이. 물론 현대사회에서 아무나 잡아 흡혈할 수는 없었으니 행동 양식은 조금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을 꺼림칙하게 만드는 존재 말이다. 자신이 흡혈귀라는 것을 알게 된 열여덟 살, 류건우는 동생이 있는 평온한 가정에서 뛰쳐나왔다. 그는 고작 열네 살 어린아이인 동생이 자신처럼 돌이킬 수 없는 굴레에 얽힐까 두려웠다. 그나마 있던 보살핌마저 끊어낸 채로 어떻게든 알바를 하고 지원을 받아가며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까지 성공한 십 년의 세월 동안 류건우는 동생을 애써 무시하며 살아갔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애정어린 대상을 떼어놓고 살다보면 언젠가는 한계가 오는 법이다.
흡혈귀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뛰어난 재능을 하나씩 타고 태어난 탓에 집안에서는 그들을 골칫덩이로 여기면서도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따금 피에 굶주린 흡혈귀들은 해선 안 될 일을 저지르곤 했고, 결국 그들은 제어를 위한 희생양을 만들었다. 어른들은 발현한 흡혈귀의 피를 특수하게 가공해 집안의 피를 이은 또래의 아이들에게 먹이고, 거기서 살아남은 아이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다르게 말하면 살아있는 제물. 그 아이들은 흡혈귀에게 가장 달콤한 먹이, 동시에 그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독을 품은 피를 만들어내고 끝내 흡혈귀를 속박하는 족쇄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번 대의 희생양은, 류청우였다.
류건우는 흡혈귀다. 어른들에게 그 사실을 들킨 후, 붙잡혀 상당한 양의 피를 빼앗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평범한 학생에 불과했던 류건우가 별 탈 없이 생존을 위한 수혈팩을 공수하기 위해서는 집안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했으니까. 그렇지만 그게 제 동생의 목숨을 위협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류건우는 굶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피를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형.”
귀갓길에 거치는 유독 사람이 없고 어두운 길목, 류건우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풍겨오는 달콤한 향에 다급히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뾰족해진 송곳니가 입 안쪽을 사정없이 찌르는 게 느껴졌다. 아마 동공도 날카롭게 찢어졌을 것이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망했다.’였다. 십 년 만에 재회한 제 동생이, 류청우가 희생양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류건우는 도망쳤을텐데. 흡혈 욕구로 달아오르는 몸과 날아가려는 이성을 간신히 붙잡으며 류건우가 침착하게 말했다. 기억 속 어린아이는 어느새 훌쩍 자라 제가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큰 성인이 되어있었다.
“오지 마.”
“보고 싶었어요, 형.”
“오지 마, 류청우.”
치밀어오르는 흡혈 욕구가 류건우를 괴롭혔다. 그럼에도 동생이 다칠까 두려운 마음은 절실해서, 급한대로 날카로워진 송곳니를 제 팔뚝에 쑤셔박은 류건우가 가늘어진 동공으로 호소했다. 팔뚝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것도 모른 채 저를 피하려는 류건우를 보던 류청우가 주먹을 쥐었다. 류건우는 그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류건우에게 류청우는 동생이었지만, 류청우에게 류건우는 기껏해야 어린시절 몇 년 동안 보았던 친척 형이라는 게 전부였을 텐데. 아니, 그런 건 차치하더라도, 짝인 흡혈귀가 살아있는 한 희생양의 삶은 집안을 위해 말 그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만 했다. 오직 흡혈귀 하나를 통제하기 위해서. 류건우는 동생에게 그런 삶을 주고 싶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만나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류건우는 의식적으로 호흡을 느리게 하며 읊조렸다.
“네가 죽는다고.”
류청우가 희미하게 웃었다. 아슬아슬한 이성 속에 보이는 그 웃음이 너무도 아찔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형이 내 곁에 있다면 상관없어요.”
“뭐?”
“그럼 형이 내 곁을 떠나지는 못할 테니까.”
흡혈귀는 희생양을 떠날 수 없다. 이건 규칙같은 게 아니라 절대적인 법칙, 먹으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달려들고 마는 달콤함. 류건우는 멍한 눈으로 제게 다가오는 류청우를 보았다. 이성이 끊기기 전 류건우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저를 품 안에 가득히 끌어안으며 울고 또 웃는 류청우였다.
-
지독한 악몽을 꾸었던 것 같다.
눈을 뜨자마자 류건우는 스마트폰을 켜 날짜와 시간을 확인했다. 항상 일어나는 시각,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에서 정확히 하루 지난 날짜. 무엇보다도 옆에서 진득하게 나는 달콤한 향과 뚫린 팔뚝에서 올라오는 미약한 통증은 어제 류건우가 겪은 일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들었다. 류건우는 손을 들어 얼굴을 거칠게 문질렀다. 향에 그새 단련이라도 된 것처럼 되돌아온 이성이 빠르게 사고를 전개했다. 집에는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건지 궁금해졌지만, 자신이 흐릿한 정신으로도 용케 비밀번호를 불러주기라도 한 모양인지 옆에는 류청우도 고롱고롱 자고 있었다. 류건우는 가만가만 시선을 옮겨 류청우를 오래도록 보았다.
류건우가 류청우와 연락을 끊은 건 십 년 전이다. 여러 사정이 있어 연락처를 바꾸지는 않았지만 류청우와 조금이라도 연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시기에 류건우가 연락을 끊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예전에 살던 곳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지역이었다. 수혈팩 공급을 위해 주기적으로 연락하는 집안 어른을 뺀다면 류건우는 류청우와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었다. 그나마도 류건우가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후로는 집안과 연락하는 빈도도 줄어들었다. 그러니까 류청우가 자신을 찾아올 수 있었다는 건, 다시 말해 뜸해진 연락에 불안을 느낀 집안이 일부러 류청우에게 류건우의 행방을 흘렸다는 뜻이었다. 아마 본격적으로 자신을 제어하려는 수작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류건우는 침대에 누운 채 몸을 옆으로 돌렸다.
“... 형.”
잠꼬대인지, 진짜 일어난건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아 류건우는 움직임을 멈추고 류청우를 살폈다. 아직까지는 자고 있는 듯 눈꺼풀은 살짝 떨리기만 할 뿐 뜨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기억하던 것보다 성숙해진 얼굴이었다. 통통하던 젖살은 다 어디로 가고, 날카로워진 턱선과 깊어진 눈매가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앳된 티가 나서, 잠들어있는 지금은 뺨이 살짝 붉어졌다. 류건우는 습관처럼 류청우의 머리를 쓰다듬다 멈칫했다. 그 손길에 류청우도 잠이 깬 모양이었다.
“잘 잤어, 형?”
“... 그래. 너는.”
“나도. … 형, 출근해야 되지?”
류건우가 흠칫 놀라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빠듯하게 준비한다면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 그, 밥통에 밥 있고, 냉장고에 보면 반찬 몇 가지 해둔 거 있으니까 먹어. 나 간다.”
“아냐, 같이 가. 나도 가야 해.”
“뭐?”
“형, 빨리.”
자신을 재촉하는 류청우에게 등을 떠밀려 얼떨결에 출근했지만, 류건우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아무리 흡혈귀와 희생양이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고 해도 왜 출근길에까지 동생이 동행하느냔 말이다. 그 의문은 곧 해결되었다. 출근하자마자 상사로부터 날아든 통보 덕분이었다.
“아, 류 대리님. 우리 팀에 신입이 하나 들어왔어요. 옆에 계신 분은 류청우 씨 맞죠? 마침 같이 오셨네. 류 대리님 부사수로 붙이려고 하는데.”
류청우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인력 보충을 요구한 건 류건우니 교육도 어지간하면 자신의 몫이 되리라고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새로 온 인력이 굳이 제 동생일 이유는 대체 뭐란 말인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류건우가 류청우의 눈을 보았다. 그제야 류건우는 깨달았다. 류청우는 집안 어른이 친히 나서서 꽂은 거고, 그 이면에는 류청우의 의지가 있었으며, 고로 류청우는 집안의 압박에 의해 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스스로 원해서 제 옆으로 기어들어온 거라는 사실을.
일은 별것 없었다. 당장 급한 일이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류청우를 천천히 하나씩 가르치며 제 일을 소화하던 류건우가 하던 걸 마무리하고는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았다. 퇴근 시간이 조금 지나 있었다. 이미 한두 자리가 비어있는 사무실을 훑어본 류건우는 컴퓨터를 끄고는 류청우를 불렀다.
“청우 씨, 고생하셨습니다. 같이 퇴근하시겠습니까?”
“대리님이 좋다면요. 지금 가시려고요?”
“예, 오늘 해야 할 건 다 끝내둬서. 준비하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봅시다.”
사람이 가득한 버스를 타고 예의 인기척 뜸하고 어둑어둑한 골목을 지나면 류건우의 작은 집이 나온다. 류청우를 먼저 집에 들여보낸 류건우는 근처 담벼락에 대충 기대 섰다. 머리가 어지러웠기에 류건우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고 연기를 빨아들이는 단순한 과정이 그토록 간절했다. 그래, 흡혈귀란 사실 사람의 피를 주 영양 공급원으로 한다는 걸 제외하면 다른 인간과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담배 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불어오는 실바람에 어지러이 흩어진다. 그 모습을 보며 담배를 몇 번 더 빨아들인 류건우는 어느새 꽁초가 되어버린 담배를 비벼 끄고는 다시 담뱃갑을 열었다. 하나 남은 담배가 뚜껑이 열리는 서슬에 툭, 하고 넘어진 꼴이 퍽 우스웠다. 류건우가 돗대를 꺼내들고는 다시 불을 붙이려는데, 옆에서 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형, 담배 피워요?”
회사에서 나오자마자 기가 막히게 동생 모드로 전환한 류청우가 조심스레 류건우의 손에서 라이터와 담배를 빼앗았다. 순간적으로 치고 올라오는 달콤한 향이 류건우의 폐를 담배 연기 대신 가득 채웠다. 기묘하게 채워지는 충만감에 마지막 담배를 놓친 아쉬움은 사라졌지만, 그를 대신하듯 뭉근하게 몰려오는 열기에 류건우는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어. 가끔.”
“하지 마요, 건강에 좋을 것도 없잖아.”
류건우는 대답 대신 입꼬리만 슬쩍 올렸다. 그걸 본 류청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류건우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류청우가 끄는 대로 끌려 집에 들어온 류건우는 그대로 화장실로 밀려갔고, 씻고 나오니 눈앞에 보이는 건 따끈한 식사였다.
“내가 하게 두지 왜.”
“하하.”
먹을 필요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 녀석이. 삼킨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멋쩍게 웃는 소리를 낸 류청우가 재촉했다. 누군가 차려준 따뜻한 밥상은 오랜만이어서, 류건우는 묵묵히 음식을 입에 넣었다. 딱히 그걸로 배가 차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그 분위기 자체가 좋았다. 그래서 류건우는 그 모습을 류청우가 복잡한 눈으로 보고 있다는 건 눈치채지 못했다.
하나밖에 없는 침대는 동생에게 양보한 류건우가 바닥에 이부자리를 깔고 누웠다. 정확히는 그러려고 했다. 류청우가 공주님을 안듯 류건우를 안아올리지 않았다면.
“뭐, 뭐 하냐.”
“형이 바닥에서 자면 어떡해요. … 너무 가벼운데.”
드물게 말까지 더듬을 정도로 당황한 류건우를 그대로 제 옆자리에 뉘인 류청우가 류건우의 몸을 토닥이기 시작했다. 어릴 때 류건우가 류청우를 재우던 그 습관 그대로. 류건우는 조용히 그 진동을 음미하다 입을 열었다. 타이밍은 조금 뜬금없다 싶었지만 꼭 필요한 질문이기는 했다.
“여긴 왜 온 거냐.”
묻고 싶은 건 많았다. 어떻게 알고 온 건지, 왜 네가 희생양이 된 건지, 무엇보다도 그동안 잘 지냈는지. 하지만 류건우는 그 모든 걸 제치고 이곳에 온 이유를 물었다. 류청우는 질문해놓고도 제 눈을 슬쩍 피하는 형을 물끄러미 보았다.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한 류건우가 성급히 류청우의 입을 막으려 들었지만, 류청우는 이미 말을 시작하고 있었다.
“형이 보고 싶어서요.”
담백한 말투였다. 내용은 담백하지 않았지만.
“처음엔 형이 왜 갑자기 떠난 건지 몰랐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흡혈귀니 희생양이니, 그런 건 들어본 적 없었으니까. 그러고 얼마 뒤에 집안 어른들이 내 또래 친척들을 다 불렀는데, 거기에 형이 없었어요.”
흡혈귀의 형질이 발현한 사람의 또래를 전부 모아다 흡혈귀의 피를 먹여 거부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단 한 명을 찾아내는 작업을 위해 불린 아이들. 다르게 말하면 거기에 나타나지 않은 한 명이 바로 흡혈귀인 거다.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던 흡혈귀의 정체를 유일하게 눈치챈 사람이 류청우였다.
“거기서 확신했죠. 형이었구나.”
류건우의 가슴이 선득해졌다. 애써 숨기던 약점을 날카롭게 후벼파인 기분이었다. 류청우의 푸르던 눈이 검푸르게 가라앉았다.
“형이 흡혈귀가 됐구나. 나를 떠난 이유는 그거였구나. 내가 형한테 영향을 받아서 얽혀버릴까 봐 떠난거구나. 내가 평온하게 살기를 바라서 떠난 거구나.”
류건우는 자신이 떠난 뒤 류청우가 어떻게 살아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희생양이 되기 전까지는 평온하게 살았으리라, 추측한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류청우의 말은 류건우의 추측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제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형을 보며 류청우가 말했다.
“하지만 그 평온엔 형이 없었어요. 그건 평온이 아니었어요.”
류청우는 조심스레 류건우를 품에 안았다. 체온이 높은 몸에 조금 서늘한 몸이 닿았다. 류건우는 달라붙는 동생을 밀어내려 손에 힘을 주다가, 닿은 부분을 통해 전해지는 가느다란 떨림에 힘을 뺐다. 잠시 망설이던 류건우는 팔을 뻗어 제 동생을 안아주었다. 십 년 만이었다.
“형이 없는 일상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희생양이 되었을 때 오히려… 기뻤어요.”
류청우의 팔에 힘이 들어간 탓에 류건우의 얼굴이 류청우의 품에 묻혔다. 류청우는 제 표정을 류건우가 볼 수 없다는 것에 조금 안심했다. 자신조차 제 얼굴이 어떤 표정을 띄웠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이 희생양이 되느니, 내가 희생양이 되는 게 형에게 더 나을 것 같아서."
어릴 적의 부드럽던 다정함은 단 하나의 결핍으로 인해 비틀렸다. 류청우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류건우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아야만 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처럼은 아닐지언정, 류청우를 되돌려놓는 건 류건우의 몫이었다. 적어도 자신을 내던지면서까지 상대를 감싸려는 온기를 가진 건 류건우 하나로도 충분했다.
"형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다시 예전처럼 같이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품을 채우는 온기를 가득 끌어안은 류청우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냄새’는 제가 조절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첫날보다는 괜찮죠?”
“그래.”
잠깐의 정적 끝에 류건우가 대답했다. 가슴께에서 웅얼거리는 진동이 간지러워 류청우가 잠시 키득였다. 그리고는 질문했다.
“형, 키스해도 돼요?”
품에서 빠져나가는 온기가 달갑지 않다. 류청우는 애써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류건우를 보았다. 닫아둔 커튼 틈새로 비치는 달빛이 류건우의 얼굴 한쪽을 비추며 음영을 드리웠다. 촘촘한 속눈썹에 올올이 맺힌 빛망울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검은 눈에 드리운 모습은 강인하여 아름다운 동시에 지독하게 슬퍼보여서, 류청우는 굳이 듣지 않고도 그가 무어라 대답할지 추측할 수 있었다.
“자라, 류청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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