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건우] 과거에서
청우문대 전력 참가 - 주제 [일기장]
청우는 오랜만에 들린 본가에서 가볍게 짐정리를 하다가, 이상하게 눈에 들어오는 아주 낡고 빛 바랜 공책 한권을 뽑아들었다. 삐뚤빼뚤, 엉성한 필체로 적힌 자신의 이름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먼 시절의 자신을 귀엽다 느끼게끔 하기엔 충분했다.
이땐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으려나.
물론 어렸을 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상상에 잠겨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떠올리고 살진 않았던 것 같긴 하지만, 대부분의 어린나이의 아이들은 독특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나. 청우는 과거의 자신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문득 궁금해졌고, 그래서 표지를 넘겼다.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어렸을 때임을 증명하듯, 첫장부터 아주 엉성하고 커다란 그림이 청우를 반겨주었다.
이건 무슨 그림일까. 강아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에 지금도 그 실력이 여전하다는 사실이 조금 가슴 아팠지만, 차분히 눈을 내려 엉망으로 쓰인 글씨를 읽었다.
[오느른 형 과 감아치을 스다듬었다.]
형? 친척 형을 말하는 건가?
청우는 고쳐주는 빨간 펜 표시도 하나 없이 삐뚤빼뚤하게적힌, 아주 어린 날의 비밀 일기를 조심스럽게 해석해갔다.
[혀은 감아지을 조아해는 거갇다. 나도 형 종아해는대]
청우는 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마치 누군가 진심을 담아 꾹꾹 눌러쓴 비밀일기를 자신이 몰래 훔쳐 읽는 것만 같았다.
이걸 내가 읽어도 되는 게 맞나? 그에 대한 정답은 알 수 없었지만, 쓴 사람도, 읽는 사람도 모두 본인이니 뭐... 청우는 먼 과거의 자신에게 가벼운 죄책감을 가지며 뒷부분을 마저 읽어내렸다.
[형이 내 머리도 스다듬어 주면 조켙다]
음. 그 문장에서 청우는 전보다 더 이상한 기분이 되어, 급하게 다른 페이지로 눈을 돌렸다. 시간이 꽤 흘렀는지, 전보다는 깔끔해진 글씨에 청우는 일기의 기준이 궁금해졌다.
[오랜만에 형을 만낫다. 여전히 강아지를 조아하는지 마구 쓰다듬엇따 그러면서 강아지가아니라 개라고했다. 어이업어.]
[오늘은 가족이 너무만아서 형 엽에 꼬옥 붇어있엇는데 형이 내 손을 잪앗다. 무서운줄 알았나? 나 하나도 안 무서운대]
[영호ㅏ를 봤는데 형이 울엇다. 형 울어? 하고 무럿는데 안 운다고 했따. 거짓말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랫는데 내가 아무한태도 말안 하면 갠찬켓지?]
일기의 기준은 아무래도 ‘형’인듯 했다. 모든 일기마다 온통 형, 형, 형... 이때부터 연상이 취향이었나? 짧게 떠오른 생각을 웃어넘기고 페이지를 계속 넘겼다. 길지 않은 일기에 가득한 ‘형’과 있었던 일들이, 어린 날의 자신이 ‘형’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무 잘 느껴져서 귀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며 스스로 귀여워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웃기긴 했지만, 이건 아마 다른 사람이 봐도 귀여워했을거란 생각에 즐겁게 웃으며 페이지를 넘겼다. 이 일기를 현재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읽는다면 어떤 기분일지도 궁금하고. 그러니까...
[건우 형이 제일 좋아!]
건우 형이.
청우는 낯선 일기장에서 아주 익숙한 이름을 읽자 잠시 눈을 의심했다. 내가 지금 건우 형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글자를 잘못 읽었나? 그러나 몇번을 다시 읽어보아도 글자의 모양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그저 건우라는 이름만이 굳건하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와, 어릴 때 좋아하던 ‘형’이 건우 형이었구나.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마법처럼 어린 시절의 무언가가 떠오르거나 하진 않았지만,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쭉 건우를 좋아했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오긴 했다. 취향 참 한결같네.
이 짧은 일기들을 당사자와 함께 읽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머쓱한 얼굴로 뒷목을 만지작거릴까, 아니면 장난스런 얼굴로 미소지으며 농담을 걸어올까, 아니면 아주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보일까? 하지만 분명, 어느쪽이 되어도 즐거울 것이다.
청우는 일기장을 덮었다. 먼 과거의 청우가 쓴 이야기를, 미래의 건우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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