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문대] 사랑해
인간과 인어
한때, 인어를 잡는 것이 꿈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인어란 본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고, 호기롭게 시작했던 도전은 결국 방향을 틀어 비슷한, 그러나 한참은 다른 물고기를 잡는 것으로 적당히 타협을 보았다.
혹자는 이 꼴을 보고 아직도 꿈을 버리지 못 한 어리석은 이라며 손가락질 하기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별로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청우는 그저 묵묵히, 매일같이 바다로 나가 그물을 던졌다.
하지만 그 성실함에 비해 성과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성과를 바라고 시작한 일이 아니기도 하고, 진짜로 바라는 건 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어서 그랬던 것도 같다. 전문적으로 누군가에게 배우려 하지도 않았고, 가끔은 기껏 잡은 물고기들을 전부 바다로 돌려보내기도 했었으니까.
그럼에도 매일같이 바다에 나온 이유는, 글쎄.
아직도 꿈을 버리지 못 한 어리석은 이의 미련이라고 해둘까.
하지만 요즘 들어 이런 것도 다 부질없는 행위 같아, 조만간 이 일은 그만두고 다른 일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물을 던졌었는데...
"나 참, 그렇게 잡으려고 애를 쓸 땐 잡히지도 않더니..."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건져낸 그물 속에, 인어가 잠들어 있었다.
그토록 바라왔던 그물 속 인어와의 첫 대면은 청우의 심장이 아플 만큼 가쁘게 뛰게 만들었다.
설렘도, 기쁨도, 놀라움도 아닌,
공포.
청우는 두려웠다.
이 모든 게 환상적인 꿈 같아서. 아니, 지독히도 사실감이 넘쳐서. 이 인어가 더 이상 살아있지 않을 것 같아서.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움직일 것 같아서. 그래서 자신을 잡은 청우를 원망할 것 같아서. 아니, 동화 속 이야기처럼 갑자기 거품이 되어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
눈 앞의 생명체를 두고 온갖 불안과 망상에 허우적거리던 청우는, 인어의 상체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에 바로 그물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게 꿈이든, 아니면 현실이든.
뭐가 되었든 간에 일단 인어가 멀쩡히 살아있어야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인어는 쉽게 죽지 않고, 작은 상처 정도는 금방 아문다는 정보는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청우는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인어의 몸에 상처 하나라도 날까 노심초사하며 그물을 풀어냈다. 그렇게 무사히 그물에서 인어를 풀어낸 청우는, 아직까지 깨지 않고 가만히 눈을 감고 숨만 쉬는 인어를 보며 잠시 고민하다 배 아래 수조에 넣었다.
그랬음에도 이 인어를 데려다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았다. 어릴 때는 그런 생각이 좀 더 명확했던 것 같은데...
이젠 그저 만나는 것 만으로 만족하게 된 걸까 싶기도 하고.
그렇다면 그대로 바다에 다시 돌아가게 놓아주면 될 것을 굳이 그 수조에 넣어 가둔 것은, 글쎄. 무슨 마음에서였을까?
어쨌든 답지 않은 충동이 고른 선택이라고 말해두겠다.
그렇게 물고기는 단 한 마리도 싣지 못한 배를 타고 육지로 돌아온 청우는, 그제야 인어를 데리고 집까지 돌아갈 방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에 있는 수조의 크기는 배에 있는 것과 비슷했지만, 입구는 그보다 배는 작아 도저히 인어를 집어넣을 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조의 입구를 망가트리거나, 바짝 마른 좌석에 인어를 두고 틈틈이 물을 뿌려가며 집까지 가거나... 인어를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거나. 그러나 마지막 방법은 도저히 선택하고 싶지 않았던 청우가 방법을 강구해내고 있을 무렵, 배에서 웬 벌거벗은 남자가 비틀비틀 걸어 나왔다.
...그건 인어였다.
방금 전까지 봄볕처럼 빛나는 노란 머리를 하고, 수조 안에서 잠들어있던.
인어가 사람의 모습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긴 했지만, 그저 뱃사람들 사이에 전해지는 유언비어 같은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다리를 얻은 대신 찬란한 빛을 잃은 듯, 검갈색의 머리로 나타난 인어는 인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사람 같아, 청우는 하마터면 이상한 사람이 접근 하는 줄 알고 공격할 뻔했다. 다행히 얼굴이 변하지 않아 그가 인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기에 생각에서 멈춰서 다행이지. 청우가 그런 생각을 하며 비틀거리는 인어의 모습을 보면서도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가만히 서서 지켜보기만 하고 있으니, 천천히 다가온 인어가 청우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사랑해."
청우는 제 귀를 의심했다.
인어의 목소리는 청우의 심장을 홀려낼 듯 아름다웠지만, 청우는 그 음률보다 내용에 더 집중했다. 잘못 들었다기엔, 태어나 처음 듣는 목소리가 선명하게 귀에 박혔다.
'사랑해.'
인간과 인어의 언어는 다르다. 같은 발음을 말해도 전혀 다른 뜻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인어의 언어는 인간보단 고래들의 울음과 유사했다.
그러니까, 이건... 인어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한 게 맞다는 뜻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사랑을 뜻하는 언어를.
"...무슨 뜻인지는 알고 말하는 거예요?"
"...사랑해?"
이런.
아무래도 인어는 인간의 언어를 익히지 못한 듯했다.
뜻을 알지도 못하고 사랑을 말하는 인어에 청우는 곤란하다는 생각을 하며 일단 뒷좌석에 굴러다니던 담요를 인어에게 덮어주고 차에 태웠다. 인간의 언어를 모르는 것 치곤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담요를 두르고 차에 탄 인어는, 청우가 모르는 멜로디를 청우가 모르는 언어로 불렀다.
늑대의 울음 같기도, 고래의 울음 같기도 한 그 노랫소리는, 인어의 노래라는 말에 걸맞게 청우의 귀를 사로잡았다. 얼마 가지 않아 자신도 모르게 가벼운 허밍으로 그 음률을 따라부르고 있음을 깨달은 청우가 소리를 멈추자, 차 안이 조용해지며 무심한 시선이 청우에게 붙었다.
"-?"
인어의 언어였다.
청우는 알아듣지 못했음에도 그 뜻이 짐작이 가는 것이, 사실은 자신이 이미 인어에게 홀려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차는 차가 아니라 배고, 나는 집이 아니라 바다 한 가운데 인어의 소굴로 가고 있다거나...
그런 잡스러운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쏟아지는 인어의 시선에, 청우는 결국 알지도 못하는 노래를 가벼운 허밍으로 이어 불러야만 했고, 차 안은 금방 두 목소리로 가득 찼다.
새벽부터 일어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그물을 던지고, 해가 지기 전 회수 해 집으로 돌아오고. 예상치 못한 동거인이 생겼음에도, 청우의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건 그 모든 일정에 동행이 추가되었다는 점이라던가, 집에 돌아온 후 수조를 닦고, 바다에서 퍼 온 물을 다시 채우는 정도?
아, 평소라면 놓아줬을 물고기들을 수조에 넣어둔다는 점도 달라지긴 했다. 아무리 인어가 쉽게 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식사를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문대 씨."
인어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매번 인어라 부르기 뭣하기도 하고, 인어도 가끔 청우를 부르고 싶을 때가 있을 테니 호칭을 정리하기로 마음 먹은 날,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류청우라 몇 번 말 했더니 인어도 알아서 이름을 알려준 덕분이었다.
"박문대."
"박문대?"
"박문대."
이름이 꼭, 음... 아니, 이런 말은 실례지.
자신도 모르게 이름에 대한 평가를 뱉을뻔한 청우가 말을 꾹 삼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에 인어, 아니, 문대도 마주 웃어주며 청우의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청우의 심장이 아플 만큼 가쁘게 뛰었다.
설렘, 기쁨, 놀라움.
어쩌면 그 모두를 합친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예를 들면...
"-사랑해."
청우는 그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한다는 말, 그만하면 안 돼요?"
"사랑해?"
"네, 그거요."
"...-사랑해."
"...후."
함께 산 지 몇 달. 문대는 청우의 말을 곧잘 알아듣는 듯하다가도,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양 굴곤 했다. 그 경우 대부분이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놓였을 때였던 것 같기도 하지만, 청우는 모르는 척, 아직 인간의 언어를 미처 다 깨우치지 못한 탓이겠거니 하고 넘겼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래선 안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랬다간, 정말로, 문대를...
사랑이라도 할 것 같아서.
...그건 마치, 인어에게 홀린 것 같지 않은가.
인어에게 홀린 사람들은 늘 인어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했고, 자신도 인어를 사랑하며, 그러니 바다로 떠나야 한다 주장하곤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 그들은 대체로 돌아오지 않았고, 돌아오더라도 금방 다시 먼 도시로 떠나 연락이 두절되곤 했다.
청우는 더 이상 문대와 함께 했다간, 인어에 홀린 사람들의 최후가 자신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이제라도 벗어나야지.
벼락같은 깨달음에 청우는 어쩌면, 믿지도 않던 바다신의 수호를 받아 인어에게 홀려가던 중 정신을 차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 마세요, 제발."
"...-."
청우의 부탁에 특유의 무심한 시선으로 청우를 살피던 문대는, 대답인지 투정인지 모를 말을 웅얼거리곤 수조 안으로 들어가 등을 돌렸다.
그의 등을 쳐다보던 청우는 인어를 잡아야겠다는 꿈을 갖고 살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분명, 아주 어릴 적부터 인어를 잡으려다 인어에게 홀린 사람들의 최후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음에도 인어가 잡고 싶어졌다면 필히 이유가 있을 터. 그 이유를 찾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쭉 타고 올라가던 중, 반짝 떠오른 무지갯빛 기억 하나가 청우의 정신을 사로잡았다.
아주 어릴 적, 청우는 바닷가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무슨 내용이었는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주변 어른들의 잔소리가 듣기 괴로워 도망치듯 빠져나와 파도를 따라 걷다 만난 처음 보는 낯선 곳. 그때 자신을 구해준 또래의 아이는 말도 없이 청우가 처음 들어온 해변으로 안내해준 뒤 바다로 사라졌었다.
그때, 바다 위로 살짝 보였던 무지갯빛 꼬리와 봄볕 같이 빛나는 머리카락이...
...그래, 어쩌면 그때부터 홀려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결국 정신을 차리겠다 다짐한 청우는, 여느 때처럼 문대와 함께 배를 타고 바다로 나와, 난간에 걸터앉아 흩어지는 포말을 구경하는 문대에게 말했다.
"문대 씨."
"-."
"...이제 바다로 돌아가요."
"...-?"
문대는 알아들었음에도, 알아듣지 못한 척 딴청을 부렸다. 그 모습에 청우는 문대를 뒤로하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함께 지낸 지난 몇개월 간 청우가 바다에 뛰어들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문대는 적잖이 당황하며 청우를 따라 바다에 뛰어들었다.
"-류청우!"
"문대 씨. 제가 왜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는지 아세요?"
"..."
"사랑하고 싶지 않아요, 문대 씨를."
"-?"
"그런데 문대 씨가 계속, 사랑한다고 말하면, 정말로 사랑해버릴 것 같아요. 그냥, 할 줄 아는 말이 그것 밖에 없는 거고... 인어니까, 사람 홀리려고 하는 말이라는 것도 아는데."
"-! 사랑해, 류청우. 사랑,"
"그만 하세요."
"..."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사랑한다고 하지 마세요.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 거 아니면, 하지 말라고..."
청우의 말에 문대는 조용히 청우를 보았다. 늘 닿던 무심한 시선이 아닌, 아주 낯선 시선이 청우를 찔렀다.
그 시선을 뒤로 하고 배에 올라탄 청우는 빠르게 육지로 향했다. 더 이상 바다에 있다간 정말, 저 존재에게 완전히 홀려버릴 것 같았다. 나를 사랑한다는 착각을 벗어나는 지금도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완전히 홀려버린다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 두려웠다.
결국 육지에 도착한 청우는 한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서 감정을 다스렸다.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게 바닷물인지, 눈물인지 분간도 가지 않을 만큼 괴로웠다.
이런 마음을, 문대는 모르고 있겠지.
"-류청우!"
그 순간, 어떻게 따라 온 것인지 익숙한 목소리가 청우를 불렀다.
아니, 너무 괴로운 마음이 만들어낸 환청인가?
그제야 선실에서 나온 청우는 자신의 배 앞에 서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문대를 보고 아직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기어코 인어에게 홀려 헛것을 보는 거라고, 그래서 문대가 보이는 거라고.
그렇게 문대의 부름을 무시하고 차로 향하니, 청우를 붙잡아 오는 손길에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와중에 헛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자 피어나는 안도감이 퍽 웃겼다.
"...문대 씨, 이거 놔요."
"사랑해."
"진심으로 하는 말도 아니잖아요."
"류청우."
"인어는, 원래 다 그러잖아요. 인간을 잡아먹기 위해 거짓된 사랑으로 사람을 홀리는 거잖아요. 문대 씨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이번만큼은 문대도 못 알아들은 척, 딴청을 피우지 않고 곧은 눈빛으로 청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랑해, 류청우."
이 또한 나를 홀리기 위한 말이겠지.
청우는 한숨을 쉬고 문대의 손을 뿌리쳤다.
"가요."
"류청우."
"더 이상 홀리기 싫어요. 이제 정말... 거짓말로 사랑한다는 말 듣기 싫다고요."
자신의 말에 문대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자, 청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허탈한 웃음만을 흘리며 등을 돌렸다. 그렇게 차 문을 잡은 순간 들려온 문대의 목소리는,
"-사랑해, 류청우..."
지독한 착각인 걸 알지만, 마치.
...정말로, 청우를 사랑이라도 하기에 뱉는 말 같아서.
이토록 애절한 사랑한다는 말을, 차마 거짓이라 치부하고 넘어가고 싶지 않아서.
"...나를 정말로, 사랑해요?"
"...사랑해."
청우는 결국 문대를 안았다. 흐르는 줄도 몰랐던 청우의 눈물을 닦아낸 문대는, 그 손길에 놀라 몸을 무른 청우가 도망이라도 갈 것처럼 보였는지 다급하게 목을 끌어안았다.
"사랑해..."
그리곤 꼭, 그 말 밖에 할 줄 모르는 존재처럼 사랑만을 중얼거리는 문대를, 청우는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
나만이 상대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이 아니기를.
당신의 모든 말에, 한 치의 거짓도 담겨있지 않기를.
"...나도 사랑해요."
청우는,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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