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 6.0 효월의 종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임의로 정한 아젬의 이름이 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1.
에레보스는 ‘어둠’ 또는 ‘암흑’이며 어둠이나 암흑을 의인화한 신이다. 후대의 여러 전승에서 에레보스는 하데스의 "지하세계"의 일부로 묘사된다.
세상의 섭리는 처음부터 그를 하데스에게 안배했던 것이리라. 그녀의 부모가 에레보스라는 이름을 구태여 그녀에게 주었을 때부터, 이 종말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에테르를 보는 그의 눈에도 비치지 않는 이 섭리라고 하는 것이 정말로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에레보스, 혹은 아젬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그들의 다정한 여인에게 이름에서 유래한 비참함을 끝없이 놓아둔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받는 이가 비슷한 삶을 살기를 원하며 쥐여주는 이름이며 그 안에 담긴 사랑이야말로 가장 원초적이면서 강력한 마법이며, 세상으로 나아갔을 때 여럿에 의해 불리며 중첩되는 저주기 때문에.
그녀의 부모는 그들의 딸이 고요한 어둠이 늘 그러하듯 조화롭고 균형 잡힌 안식이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아이가 그런 식으로 자라나기를 원하는 부모만이 아이에게 에레보스라는 이름을 선사한다. 반대로, 하데스의 부모는 그의 아들이 손에 쥘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쥐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것이 지혜든, 힘이든, 그 무엇이든. 그런 부모만이 그들의 아이에게 '부유한 자'라는 이름을 선사한다. 그들에게 그 이름이 어떤 식으로 먹고 먹히는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휘틀로다이우스는 비록 운명이나 정해진 섭리 같은 것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데스를 알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에레보스라 자신을 소개하는 소녀를 만났을 때, 어쩌면 그런 것이,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그들을 굴려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휘틀로다이우스에 지나지 않지만, 소년은 하데스였으며 소녀는 에레보스가 아니었던가. 언젠가 하데스는 에레보스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것이다. 하데스에게 제 일부를 빌려주기만 하던 에레보스는 언젠가 그의 것이 될 것이다. 그에게 속하게 될 것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름은 영원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가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과거부터 나란히 붙여 쓰던 단어였고, 그들도 마찬가지로 영원을 살아갈 것이었기에.
그러나, 가면이 있음에도 섬세하기 짝이 없어 사소한 표정까지 읽히던 소녀는 그를 향해 얼굴을 붉혔다. 그를 향해 말을 더듬었고, 기꺼이 그를 향해 몸을 기울였으며, 그를 향해 머뭇거렸다. 등 뒤에서 모든 것을 바칠 것 같이 구는 명계의 총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것처럼.
그 사랑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마도 마찬가지로 그 여자를 아주 좋아했기에. 그들의 아젬, 에레보스는 기꺼이 그의 목에 팔을 휘감고, 뺨에 입술을 대며 며칠 후를 살아가고 있던 그를 현실로 끌어당기지 않았던가. 그 뺨이 어떤 빛으로 물드는지, 혹은 속삭이는 목소리가 그에게 있어서 얼마나 더 음악 같았는지, 혹은, 그를 끌어당기는 손의 불공정함에 이르는 그 모든 것이…….
그는 그 모든 것을 기억했다. 하나라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언젠가 그것들이 그에게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을 날을 기다리며, 그 모든 것들을 곱씹었다. 그때가 되어 그 귀함을 깨닫는다는 것은 너무나 현명하지 못한 일이 아니던가! 다행히도 그는 빛나는 이성이 지배하는 곳에서 중책을 맡은 이였으므로…….
결국 모든 일의 끝에 그 몇 없는 순간은 휘틀로다이우스라는 사람의 안에서 폭풍처럼 몰아칠 수밖에 없게 되었으나, 아, 안타깝게도 황혼은, 어둠은 모든 시간 속에서 명계의 것이었기 때문에.
아젬이 그를 사랑하는 만큼 그가 그녀를 사랑했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돌려주어 그 품에 안겨줄 수 있었더라도, 그녀는 언젠가는 명계의 총아에게 돌아설 수밖에 없었으리라. 결국 이름이 붙은 모든 것은 이름자에 끼워 맞추어져서 살아간다. 이름은 운명의 안배를 쉽게 만들기 위해서 만들어진 마법이었으며, 저주였고 주술이었다. 아주 거대하고 커다란 것마저 그 흐름에 곧잘 올라타지 않던가. 그가 그녀를 사랑했다는 사실은 아주 거대하고 커다란 것에는, 섭리에는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었고, 흘러가는 순간의 반짝임이었으며, 더욱 나아가 상상하지도 못한 오류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나 지금 조디아크에게 바쳐지기 전, 휘틀로다이우스는 그 섭리라는 것을 거스르는 것이 외려 재미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결국 그가 떠나는 그날까지 그들의 태양이자 타오르는 황혼은 명계의 총아를 사랑하지 않았고, 명계의 총아는 그 여자의 뒤를 쫓고 있었기 때문에. 태양을 동경하며 달려가는 어둠이 태양을 결코 잡지는 못하듯, 아, 그 여자가 남은 유한한 시간 동안에는 어째서인지 그에게 잡히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렇기에 그는 삶의 선택한 적도 없는 마지막 순간에 그녀를 떠올려보는 것이다. 떠나가는 이들이 마지막 순간에 떠올리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라던 선인의 말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그 목에 휘감기던 팔의 감촉이며, 뺨에 와닿던 온기며, 화를 내면서도 애정에 젖어 기이한 열기를 띠던 그 목소리의 선율을 더듬어보는 것이다.
사랑. 마지막의 앞에 서서야, 그는 그 사랑을 덤덤히 받아들였다.
정확히 말하면 하데스는 '보이지 않는 자', 디스 파테르가 '부유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에메트셀크에게는 부유한 사람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아서(반의적으로) 그렇게 썼답니다. 어쨌든 실제로 사용하던 하데스의 이명이기는 합니다.
휘틀로다이우스를 꽤 운명적인 상황에 순응하는 사람처럼 그린 것 같은데 온전히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상황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이었더라면 휘틀로다이우스는 조디아크를 만들 때 자신을 바치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요. 그러나 사랑이라는 건 언제나 충격적인 사건이고 이성의 힘만으로 벗어나기 힘든 인력이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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