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IF

: 도을

: oc by 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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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한 죽음이었다.

곁에는 동료와 가족 하나 없다. 외로이 홀로였고 또한 삶에 의미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영광스러운 죽음도 아니었을 뿐더러 몇 번이나 황급하게 도망쳤더라. 악착같이 도망을 거듭하는 치졸함, 비웃음당하기 좋은 꼴이었다. 실상 제게 내려질 명령이랄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므로 낡은 구속과 낙인은 무의미하다. 한 번은 낙원의 문이 닫히자마자 남겨둔 채 뒤돌아섰었는데. 그러나 끈질기게 제 발목을 잡아채는 게 늪보다 지독했다. 하나는 제 입으로 내뱉은 계약이었고, 또다른 것은 명약관화한 특징이라, 죽을 때까지 빌런의 적으로 살아야 하는 지독한 운명추. 결국에서야 추적을 떼어놓지 못하고 말았던.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뒷골목은 늘상 다를 것도 없는 죽음의 현장이었다. 구석으로 몰린 사냥감의 처절한 발악에도 누구 하나 돕는 이 없으며 나서는 이 없다. 지나가는 이들은 방관, 혹여 눈이 마주칠까 무기를 다잡으며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원래 그런 곳이었다. 하위 구역에서는 흔한 일이다. 헛웃음이 나온다. 이렇게 죽으랴? 비식 실소하며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비틀 떨었다.

몇십 시간을 싸웠는지도 모른다. 도을의 뒤는 이미 벼랑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도주를 포기하고 칼과 총을 꺼내들었고, 그 후로는 머리를 비우고서 기계처럼 피하고 베고 겨냥하고 쏘았다. 상대는 여럿이었고 이쪽은 하나. 도을이 살을 내주면 다른 이가 뼈를 취했다. 계속해서 병장기가 부딪히고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 제 상처는 늘어만 갔다. 나이프의 날이 나가고, 탄띠가 비었으매 총열이 비틀리고 개머리판이 우그러진다. 남은 무기가 없으면 상대의 무기를 가로챘다. 가로챌 만한 무기도 없으면 손톱이 부서져라 할퀴고 이빨이 나가도록 살점을 물어뜯었다. 자비 없이 상대의 눈을 터뜨리고 상처를 쑤시며 머리를 맞부딪혔다. 처절했다.

그러나 끝은 오는가. 우악스레 머리채가 붙잡히고 흙먼지가 입에 달라붙는다. 무너지는 인영을 둘러싸고 상대의 말이 이어졌다.

"■ ■■ ■■..."

"■■.. ■"

귀의 고막이 찢어져 피가 흐른다. 웅웅대는 소리만을 간신히 삼키고 내밀한 것은 분류하지 못했다. 그러니 저들이 무어라 하는지 들을 수 없다. 모로 보나 배신자나 히어로라 욕하고 있겠지. 굳이 들을 필요도 없는 것들이다. 입을 열었으나 허전한 입으로부터는 불분명한 소음만이 흘러나왔다. 직전부터 입 안을 굴러다니는 살점이 무엇인가 했더니 혀였나 보다. 지친 이능이 허공에서 타닥이며 전기다발이 부딪혔다. 난데없이 이능 사용이 억제될 버디에게는 조금 미안했는가? 뭐, 데면데면했으니까. 희미하게 생각이 잔흔을 남기며 꺼진 촛불처럼 한 줄기 연기로 화했다. 눈이 까맣게 죽어갔다. 투명하게 박제된 동물처럼 빛을 잃는다. 시야는 이 개싸움이 시작된 후로 잃어버린지 오래였으므로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온통 검정이었다.

더 이상 흘릴 피 없어 회색으로 거뭇하게 죽은 피부가 거칠다.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려 시도하는지 계속해서 잘게 발작한다. 갈비뼈는 죄다 부서져서 가슴을 찌르고, 사지 중 온전하게 남아있는 것이 없다. 관절이란 관절이 죄다 역방향으로 비틀리고 꺾이고, 뚫리고 잘리고 갈린 상처에서는 피가 칼처럼 쏟아졌다. 꽂힌 날붙이가 몇이며, 바람구멍은 무수할 테다. 지혈을 위해 억지로 지졌던 흔적 위로 계속해서 상처가 덧입혀졌다. 몸에 남아있는 붕대는 이미 피에 젖어 너덜대고, 옷은 더 이상 피를 흡수할 수 없어 축축했다. 검은색 옷을 훑으면 붉은 핏줄기만이 가득하다. 피로 얼룩진 인두겁을 겨우 붙들고 숨이 이어질 듯 끊어진다.

찬바람이 불었다. 

그러고 보니 겨울은 제비가 이만 떠나야 할 계절이라지. 몽롱한 생각에 젖어 심상으로 침잠했다. 현실의 감각이 둔하고 정신이 부유한다. 서서히 흐르는 피가 잦아든다. 그 순간 미미하게 정신이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갚아줘야만 해. 

이대로는, 

제 손을 올려 목걸이를 비틀어잡았다. 들어가지 않는 힘을 죄다 쏟아부었다. 비틀린 손가락에 어떻게 힘을 주었는지도 알 수 없다. 본디 죽기 직전이면 기적이 일어난다 하지 않는가? 목걸이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붉게, 뜨겁게, 그리고 그 열기의 대상인 도을이 만족스레 입꼬리를 휘었다. 얼굴에 가득 들이차는 희열과 만연한 함박미소. 결코 도망칠 수 없으리라. 주춤이며 물러나는 상대의 발짓에 담긴 두려움이 기꺼웠다. 큰 소리, 열기, 끊기는 퓨즈, 비명. 도을은 곧 찾아올 의식의 소멸을 직감했다. 

....

......

깜박, 깜박깜박. 생각이 끊기지 않았다. 이상하다. 도을은 가만 눈을 깜박였다. 왜 의식이 사라지지 않지? 

그러고 보니 묘하게 답답했다. 허전한 상대의 존재감, 익숙하며 불길한 감촉, 답답함, 미묘하게 달라붙는 습기 어린 냄새, 촉감, 제 입을 파고든 것이..

"우윽, 으..."

웅얼거리는 불분명한 소음. 짧은 말소리가 입 안을 파고든 무언가에 막혔다. 도을은 이빨을 세워 그것을 잘근잘근 물고 씹었다. 이게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자살방지용이라는 얼토당토 없는 소리를 하며 당한 것이 몇 년 전이었더라. 입마개는 입장상 히어로의 이름을 뒤집어쓰고 나서는 사용한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감옥에서의 그 몇 년뿐이었다는 말이다. 입마개와 구속복을 차고, 어두운 곳에서 시간감각 없이 끔찍한 고독과 세뇌같은 교육에 몸부림쳐야 했던. 생각이 이어진다. 알고 싶지 않았으나 알아야만 했다. 그러니까 그 시절이라고? 태연한 상황 파악과 달리 천천히 허공을 더듬는 동공이 확장과 수축을 반복했다. 근육이 긴장으로 수축하고 전신이 식은땀으로 푹 젖기 시작한다. 미처 조절할 수 없는 반사적인 반응.

씨발. 지옥이다. 분명 본인은 죽었으니 지옥이 분명했다. 사후세계 말고는 해석할 여지가 없다.

지옥에 갈 줄은 알았다. 공무원 몇 년 했다고 살인이 면죄될 수는 없으니. 하지만 이런 모습의 지옥은, 정말이지, 도을은 당장이라도 이곳에 떨군 자의 발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무릎을 꿇고 구차하게 빌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금방 겪은 죽음을 다시 겪고 싶은 충동이 만연하게 솟아올랐다. 혀를 깨물고 싶어도 입속을 헤집는 입마개가 그걸 막았다. 희미해진 기억은 계기라도 있으면 언제라도 튀어오르니, 어쩌면 제게 가장 효과적인 벌이라는 반증이었다. 바닥으로 넘어진 몸뚱아리, 거세게 몸을 꿈틀이며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한편, 상황실에서 도을을 지켜보던 히어로 선후배 둘은 눈을 의심했다. 지난 5년간 끈질기게 무반응이었던 것이 갑작스레 반응을 일으킨다. 갑작스러운 행동이었으므로 짐작할 수도 없다.

"우리 뭘 했었냐?"

"아뇨! ..진짜 왜 저러지? 트리거도 없는데?"

이 정적이고 등적인 인과의 나날 속에서, 하루 하루는 단순했다. 교육한다. 대상은 고통스러워한다. 멈춘다. 세 단계가 말초적으로 반복되는 나날이다. 통제되지 않는 반응에 무심코 교육 음원을 재생한다. 화면의 어둠 속 거세게 몸을 비틀던 빌런의 움직임은 순간 정적. 멎는다. 직전까지 발광하던 것이 뚝, 반응을 멈추니 살아있는지 의심이 들었다. 생체 정보는 별 것 없는데.. 여상히 중얼이며 빌런의 정밀한 생체 정보를 확인했다. 어느 시점부터 급격하게 커지는 심장 박동, 식은땀, 알 수 없는 말소리, 그와 비례해서 떨어지는 혈중 산소 농도, 올라가는 숨소리.. 미친, 작게 읊조렸다.

"선배!!!"

"씨발, 갑자기 뭐가 문젠데?"

"글쎄요? 제가 그걸 알면 정신과 의사를 하고 있었겠지요?!"

계기판 옆에 있던 열쇠를 쥐고 다급하게 의자를 박차고 일어다. 죽으면 곤란하다. 감옥의 문을 열자 빌런의 꼴은 참혹했다. 얼굴은 눈물과 식은땀으로 범벅이고,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호흡이 거칠다. 목에는 핏대가 돋고 눈은 크게 풀렸으며 흰자위는 실핏줄이 터져 붉었다. 온 몸이 덜덜 떨려 구속복이 금방이라도 터지게 생겼다. 후배가 다급하게 입마개를 꺼내고서는 산소호흡기를 붙였다. 헐떡이는 숨소리가 좁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도을이 정신을 차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긴 전투의 정신적 피로감, 기진한 긴장감, 늘어진 경계심 그 틈새를 비집고 부지불식간에 들이닥친 트라우마가 한데 어우러져 큰 타격을 입혔던 탓이다. 산소 호흡기를 울리는 거친 숨소리가 가라앉고, 뻣뻣하던 몸에 긴장이 풀려 느슨하게 가라앉는다. 식은땀은 여전하지만 전처럼 극단적이진 않았다. 두 인영의 뒤로 비쳐들어오는 빛 덕분이었다. 희미하게 가시는 어둠, 천천히 돌아오는 시야에 게슴츠레 눈꺼풀을 열며 눈을 굴렸다. 

"야, 너 무슨 일 있냐? 뭐 새 마음 들었어?"

..별로 보고 싶지 않던 얼굴이다. 미미하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살인자는 살인자라고, 인정 사정 없이 모독하고 사고의 체계, 자? (도을은 이 부분에서 숨을 헐떡였다.) 의식.. 을 부수기 여념없던 사람. 제가 갱생에 성공한 이후로 다음 대상자를 찾아 진행했다고 들었다. 그러다 한계까지 내몰린 빌런의 발악에 휘말려 사망. 그 후로 성공 사례로 도을 두 글자만 기재된 채 종결되었었다. 모로 봐도 저쪽이 낙원에 갈 법한데도 지옥에 떨어졌다니. 얼굴을 보니 불쾌한 공포와 함께 온몸이 곤두서는데도 그 사실이 못내 즐거웠다. 적어도 제게 있어 악마보다 더한 사람이었는데 누가 기뻐하지 않을까.

"선배! 그래도 방금 의식 돌아왔는데.. 아 네. 살인자죠. 네넵."

기억 한 켠을 자리하는 목소리. 저쪽은 살아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언제 죽었는지 모르겠다. 낙원이 닫히고, 모두가 각자도생으로 흩어졌으니. 빌런에게 버디를 잃고 저를 대하는 태도부터 냉막해졌다. 빌런에게 인정이라고는 한치도 보여주지 않는 사람이, 왜 이렇게..

도을의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런 사치스러운 생각이나 할 처지가 아니었음을 잊고 있었다. 산소호흡기가 떨어지고, 그제야 제게 면밀하게 닿아오는 공기가 느껴진다. 오랫동안 갇혀있어 찝찝하고 음울하며 미적지근하게 피부를 깔짝이는. 싫다. 정말 싫다. 마음만 같아서는 이것을 찢고 부수고 흔적도 없이 증발시켜 버리련만. 바닥에 눌려있던 탓에, 저 둘 뒤로 흘러드는 찬 공기가 갈급했다. 눈을 질끈 감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입 안쪽이 오랫동안 메말라 있어 텁텁했다. 무엇이 되었든, 지금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애초에 오랜 공무원 생활로 온갖 소리는 다 들었고, 자존심은 다 내버려 둔 지 오래였다. 말했지 않았던가.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발 밑에서 기어 빌 수도 있다고. 입술을 짓씹었다. 구차하게 빌 시간이다.

[ ..라서, 본 대상자의 이후 범행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판단, 교육 이수를 종료함. 갑작스러운 이변 후 큰 트라우마의 발생을 확인하였으며 이후 범행 가능성에 대해 명확히 단언할 수는 없으나, 대상자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전자 발찌를 부착키로 함. 따라서 본 물품을 기재부에 요청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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