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기록

영웅의 대답

빛의 전사, 할 수 있을까? 이메레스

-주의: 6.0 효월의 종언 스포일러 / 특정한 빛전/모험가 묘사 없음 / 성별 상관 없이 모두 대명사 '그'로 지칭함 / 원본 이메레스 올라온 계정이 터진 관계로 원본은 찾는 대로 첨부함

빛의 전사는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할 수 있을까?

지금껏 수없이 받은 질문을 직접 내뱉으려니 기분이 묘했다. 동시에 지금까지 들은 물음에 자신이 믿음직하게 대답했을까, 싶은 걱정도 들었다.

종말 앞에 홀로 서서 영웅은 다짐했다.

할 수 있어.


설명을 마친 민필리아는 걱정스레 물었다.

“모험가, 할 수 있겠어요?”

이번 임무의 목적 역시 신의 소환을 사전에 차단하는 거였다. 이전 임무들과의 차이점이라면 여차했을 때 소환된 신을 토벌한다는 선택지를 염두에 두었다는 것이다. 맹주의 근심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모험가가 이프리트를 토벌한 것은 예기치 못한 사고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실력을 증명하긴 했으나 당사자에게는 썩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을지도 몰랐다.

모험가는 늘 그랬듯이 잠깐 고민했다. 이프리트와 맞붙었을 때보다는 상황이 괜찮았다. 그때는 아말쟈 족이 어떤 신을 모시는지도 몰랐다. 당연히 신 앞에 맨몸으로 내던져지리라는 가능성도 생각하지 못했다. 반면 지금은 코볼드 족이 믿는 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 또다시 싸워야 한다는 사실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충분했다.

민필리아는 자신이 맡기는 임무의 위험성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에게 부탁한 것이다. 그래서 모험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해 볼게요!”


아집이 불러낸 신을 눈앞에 두고서 푸른 용기사는 이렇게 물었다.

“이봐, 할 수 있겠나?”

빛의 전사는 생각했다. 토르당 7세가 힘으로써 성도를 지키려고 했다면 니드호그가 살아있을 때는 왜 나서지 않았는가? 천 년 넘게 살아온 용과 싸우기에는 목숨이 아까웠나? 그에게 지금 상황은 파렴치한 권력자가 힘과 영생을 탐낸 결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고작 이런 일에 휘말려서 오르슈팡은 가슴이 꿰뚫렸고, 이젤은 구름바다로 추락했다. 토르당 7세의 만행을 막지 못한다면 그 둘에게 목숨을 빚진 의미가 없었다. 결의에 찬 목소리로 영웅은 대답했다.

“해내야지.”


랄거 신상의 손 위에 드러누운 리세 헥스트는 중얼거렸다.

“우리, 할 수 있을까?”

그 옆에 나란히 드러누운 빛의 전사는 숨을 몰아쉬기 바빴다. 대련이 생각보다 격렬했던 탓이다. 리세는 친구의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알라미고 왕성 공략을 앞두고 저절로 튀어나온 불안이었다. 반응 없는 쪽이 오히려 고마웠다. 한편으로는 섣불리 드러낸 속내가 민망했다. 리세는 일부러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자기 말을 얼버무리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모험가가 조금 더 빨랐다.

“나는 너를 믿어, 리세.”

할 수 있을지를 묻는 말에 대한 답변으로는 영 생뚱맞았다. 그러나 친구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리세는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너도 날 믿어줘.”


1세계에서 모험가는 같은 질문을 두 번 들었다.

“영웅이여, 할 수 있겠나?”

첫 번째는 수정공이었다. 얼굴을 감춘 수수께끼의 마도사. 다른 세계의 사람을 불러낼 정도의 실력이 있는데 대죄식자 토벌에는 어째서 직접 나서지 않는 걸까? 하이델린의 가호를 핑계로 적당한 희생양에게 위험한 일을 떠넘겼을 가능성도 있었다. 수정공이 그런 사람이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의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러나 모험가는 약간의 불신을 숨긴 채 대답했다. ‘필요하다면.’ 왜냐면 이곳 역시 민필리아가 지켜낸 세계였으니까.

“할 수 있겠나?”

두 번째는 아르버트였다. ‘딱 한 발짝 더 나아갈 힘을 준다면, 할 수 있겠어?’ 빛의 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서 외쳤다.

“할, 수, 있어!”

아르버트는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영웅이 뭐라고 대답할지 이미 알았던 것처럼.

“좋아, 얼마든지 해 봐라!”


시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빛의 신은 경고했다.

“할 수 있겠습니까?”

빛의 전사는 대답 대신 무기를 꺼내 들었다. 맡은 역할에 따라 영웅의 앞을, 뒤를, 옆을 지키고 선 새벽의 혈맹도 마찬가지였다. 그 무엇보다도 명확한 대답이었다. 신은 미소를 지었다. 인간이 홀로 설 준비는 이제 끝났다. 남은 건 증명뿐이었다!

먼 옛날과 같이 시험이 시작되었다.


마지막 별에서 온 대답을 메테이온에게 전해준 뒤, 빛의 전사는 대답했다.

“해냈어요.”

질문을 던진 이는 이제 없지만 영웅은 되풀이했다. ‘해냈다고요.’ 마치 그이가 듣지 못할까 봐 두렵다는 듯이. 그러고는 제자리에 픽 쓰러졌다. 온몸에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다. 그제야 새벽의 혈맹에게도 생각이 미쳤다.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돌아가서 말해 줘야지. 내가 해냈다고….

할 수 있었다고.

모험가는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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