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박사의 검사지
박사x실버애쉬/BL/둘이 이미 사귀는 중
박사는 로도스 아일랜드의 중요한 고위직 임원이기에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꾸준한 관리를 해준다. 단순한 스케줄 부터 식단과 신체 관리까지. 그 관리를 때로는 거부하고 때로는 어기기도 하는 박사지만 신체검사는 뭘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신체 검사지의 경우는 대체로 운동 부족과 과로 등의 인정하고 바꾸기 어려운 습관들로 빼곡하게 채워지기 마련이었고, 피할 수 없는 장시간의 잔소리가 따라오곤 했다. 이번에도 분명 그래야 했지만...
"박사님 요즘에 운동 하시나봐요?"
"어...으응."
당당히 오른 근육 수치와 운동부족이 사라진 검사지를 들고 박사는 뒷면과 다음 장 그리고 표지 등등을 살펴보다가 심지어 옆선까지 바라보고 종이를 슥 옆으로 밀었다.
"여태까지 한 검사 중에서 최근게 제일 좋은 것 알고계시죠?"
"...알아."
"다음번 검사에는 과로하는 습관을 없애시는 걸 목표로 해봐요."
"그거 무린데."
"운동으로 체력이 붙어서 과로의 기준도 달라졌을거에요."
그렇겠지. 씁쓸하게 커피잔을 들고 마시던 박사는 지금 쌓여가는 서류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떠올리다가 끝내 작게 우울해졌다. 체력 붙으면 뭐하나 일만 늘어나는데. 물론 일을... 열심히 하는 건 다른 오퍼레이터의 부담도 덜고 좋은 거긴 하지만.
"그런데 요즘 무슨 운동 하세요?"
"글세..."
"훈련소에서 뵌 적이 없는 것 같아서요."
"그게. 어."
박사는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고 묵묵히 커피만 들이켰다. 침대에서 실버애쉬랑 아침까지 뒹굴어. 예전에는 1시간이면 지처 나가 떨어졌는데 지금은 3시간도 거뜬해. 그 새끼가 날 잡아놓고 놓아주지 않거든.
"개인 훈련해."
그 자식은 나랑 섹스하려고 로도스로 오는게 분명하다니까. 그리고 만년 발정난데다가 욕구불만이지. 내가 도망치고 핑계대는 순간 그 일 까지 다 처리하고 와서 나랑 섹스할 정도야.
"누구랑요?"
"비밀."
물론 뒷처리나 정리 같은걸 할 체력까지 다 끌어다 쓰는 바람에 실버애쉬가 뒤를 봐주고 있긴 하지만. 암살 걱정 없는 로도스에서만 섹스하려고 하니, 그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닐까.
"...혹시 협박 당하고 계신건 아니죠?"
"협박에 굴해서 운동 할 사람이었으면 나 진작에 운동부족을 벗어나지 않았을까."
"그건... 그렇지만."
눈치가 빠르네. 내가 요구한 적은 한 번도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는 걸 보면, 이걸 협박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애정이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오늘 때마침 실버애쉬가 하자고 오는 날도 하고.
"운동 하는 건 힘들지 않으세요?"
"가끔은 진짜 싫은 것처럼 말하긴 하지만 사실 정말 싫은 건 아냐. 가끔은 좋… 은 것 같기도 해."
그리고 섹스를 운동으로 치는 것 자체가 난 좀 그래.
"그거 다행이군."
"푸우웁."
마시던 커피를 거하게 뱉어 검사지 위로 튀긴 박사는 검사지 종이를 챙길 새도 없이 연거푸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등 뒤에 인기척 없이 다가온 실버애쉬가 박사의 등을 두드려 문질러 준다.
"내가 제시한 목표에 닿았나?"
"켈록. 커헉. 큼."
기침으로 인해서 반쯤 울면서 검사지를 사수하려는 박사의 행동에도 실버애쉬는 아무렇지도 않게 젖어 찢어질 것 같은 종이를 다른 손으로 잡아다가 달랑달랑 흔들어 본다. 주의깊게 살피는 곳은 근육량과 지구력 그리고 운동에 관련된 의사의 의견이 제시된 부분이다.
"지구력이 목표 이상으로 늘었군."
"아니 크. 크읍. 쿨럭."
기침을 막으려고 두드리는 건지. 더 큰 기침을 뱉도록 만드는 건지. 강한 힘으로 꾸욱 누르는 통에 박사는 제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책상에 명치가 눌린 채로 기침했다.
"좋아."
"안.. 쿨럭. 좋아!"
"어머나... 실버애쉬 씨가 박사님 운동을 시키고 계셨어요?"
"뭐 그런 셈이지."
거짓말이야 그거. 저 놈 머리속에는 내 좆 가지고 박힐 생각밖에 안한다고. 그게 운동이냐?? 생체딜도를 쓰는 방법 탐구지.
"감사합니다."
감사인사하지마!!! 박사의 속마음이 어떻든 고개를 끄덕이며 기쁘게 인사를 받는 실버애쉬는 이제 커피색에 완전히 물든 검사지를 휙 쓰레기통에 던지곤 박사의 뒷덜미를 잡아 끌어올렸다. 한 손에 들려올라가는 것 자체가 굴욕이다.
"몸무게를 좀 늘려도 좋겠어."
"쿨럭. 크.. 후... 검사지 봤잖아. 몸무겐 정상이야."
"그래도 체격 자체에서 오는 힘은 무시 할 게 못된다."
덜렁 들려서 팔뚝을 주물주물 거리는 행동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멀리서 보면 체격 검사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손바닥으로 은근히 문질러 손목에 열을 오르게 하는 것 자체가 이게 무슨 검사냐고 그냥 희롱이잖아!!!
"놔."
"싫군. 간만에 보는 건데도 이렇게 매정하게 대할 생각인가 맹우여."
습. 신체검사를 핑계로 저번 주 내내 아무 것도 안하긴 했다. 몸에 잇자국이나 그런게 남으면 큰일이니까. 실버애쉬도 별 말 없이 참아줬고 연락 없이 있었던 것 까지 생각 하면 오히려 미안하다고 해야할 판이다. 더군다나 둘의 사이가 소문나면 귀찮아진다. 물론 소문나도 박사는 상관 없지만 실버애쉬가 엄청 많이 위험해진다. 이렇게저렇게 얽힌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박사는 얌전히 실버애쉬의 팔에 매달려 있기로 결정했다.
"날 들고 이동할 생각이라면 내 체면과... 너의 취급에 대한 박한 소문을 고려해줘."
"나의 취급?"
"너랑 내가 네 입사 초창기와 다르게 막말 하고 나쁜 사이라고 우려하는 오퍼레이터가 있어서..."
"대체로 네 말투 때문이지 않나."
그건 그래. 하지만 네가 욕먹을 짓을 골라 하는 건 맞잖아. 그 짓거리가 침대 위고, 나만 알고, 다른 사람에게 말 할 수 없어서 그렇지.
"욕설을 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라는 게 분명 존재하긴 하지만. 우리 같이 대표나 얼굴로 나서는 입장에서는 확실히 조심해야 할 부분이 되기도 하는 군."
"네가 바라는 건 친구 였으니까."
지금은 연인이지만. 혀 아래로 사실을 슬쩍 밀어넣고는 박사는 작게 투덜거린다.
"박사님은 누구나 친해지실 수 있으시니까요. 사람마다 친해지는 방법도 다르고... 저는 험한 말이 오고가는 사이도 사실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마워."
"그래도 오퍼레이터들에게 조금은 더 친밀한 사이를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두분의 관계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진 않으니까요."
친밀한 사이? 둘이 서로 섹스하고 잠자리 같이 들고... 여기서 더 이상 뭘 더 친밀해질 수 있지. 사귀는 이상 이전처럼 낮간지러운 태도를 보이긴 어려웠다. 표면상 보이는 것들을 견딜 수가 없어서. 연기로... 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면 박사의 개인 운동 코치를 내가 한다고 알려주면 좋겠군."
"뭐어?!"
"일주일에 어느정도 스케줄을 잡아줬으면 한다."
"그래도 될까요? 바쁘지 않으세요?"
"맹우를 위해서라면야."
섹스를 위한건 아니고? 목끝까지 올라온 말을 가까스로 삼킨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필사적으로.
"그러면... 그렇게 할게요."
안돼! 박사는 여전히 아무 말도 못하고 덜렁덜렁 실버애쉬에게 매달려 당장 스케줄이 변경되어 바뀌는 상황이 진행되는 걸 보았다. 이 상황에서 누가 안된다고 그러겠냐. 로도스는 박사의 운동 건강을 챙기고, 실버애쉬는 로도스에 올 이유와 핑계거리 심지어 몸에 남는 어떠한 자국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며, 소문과 염려를 잠재우고, 박사는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그런... 모두가 행복한 일인데.
"이렇게 된 이상 지금이라도 운동을 하는게 어떻지?"
"나.. 나 쉬고 싶은데. 검사 한다고 한 끼도 못먹고 있었거든. 힘이 없어. 지쳤다고."
"간단한 운동은 식욕을 돋우기에 좋다."
아이고 *로도스욕설* 아침부터 섹스하게 생겼네. 죽상인 박사를 그제야 바닥에 놓은 실버애쉬는 천천히 손목을 잡아 끌었다.
"그럼 맹우를 빌려가지. 실례했다."
"그.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할 일이 아니라니까. 반쯤 체념하고 비척비척 끌려가던 박사가 개인 사무실 혹은 방문에 다다르기 전에 훈련소에 끌려서 정말로 아침 운동을 하고, 또 이어서 밤일 까지 연달아 했다는 건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저 박사만의 사소한, 작은 행복에 가까운 불행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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