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심부에서

玉石同櫃

우리는 항상 당신의 곁에 산다

玉石同櫃 옥석동궤

: ‘옥(玉)과 돌이 같은 궤(櫃)에 있다.’ 착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 한 곳에 섞여 있음을 이르는 말.

그냥, 편하게 말하면 되는 겁니까?

네, 여길 보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아, 화면을 보고…… 음, 네. 알겠습니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그래요, 나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죽을 수도 있는 그곳에서 성공적으로 살아 돌아왔으니, 어쩌면 기적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백 년, 전 우리의 선조들이 몰아낸 괴물들을 기억하십니까. 어두운 숲속에 숨어 살다가 이따금 마을로 내려와 살육을 일삼던, ‘역사’ 속의 그 괴물들을요. 저도, 그 누구도 그들이 아직까지 살아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직접 보았습니다. 바다처럼 푸르게, 그리고 선명한 호박색으로 빛나는 그들의 눈동자를요. 모든 종족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말로는, 네 종족이 인간의 발이 닿지 않는 그곳에서 자유롭게 무리를 지어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보지 못한 두 종들은 멀리서나마 그들의 영역을 잠시 엿보았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영역에 대한 개념이 매우 확실합니다. 마치 야생의 동물들처럼, 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으나, 한편으로는, 인간 사회와 다를 바 없어서 어떠한 절차를 거쳐 서로의 영역을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기록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무역과 문화적 교류와 유학…… 심지어는 우리도 모르는 새에 우리 사회를 드나들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바깥’에서 배운 것을 그들의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세상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흠, 그 말이 사실이라면 굉장한 발견이 되겠군요. 그들은 당신을 경계하거나 위협하진 않았습니까?

경계는 제가 했습니다. 어딘지도 모를 만큼 어두운 산속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그곳에 발을 디딘 것은 어느 ‘안내자’ 덕분이었습니다. 털이 온통 새카맣고, 제가 말했던 파란 눈동자를 지니고 있는……. 그래요, 제가 앞서 보았다고 말했던, 그 종족이요. 처음 어둠 속에서 그 눈을 마주했을 땐 굶주린 들짐승인 줄 알고, 아, 이제 곧 죽겠구나,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게 달려들기는 커녕 오히려 제가 진정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저는 점점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무언가에 홀리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아니, 확실히 홀렸습니다. 그 푸른 눈동자에요. 저는 그저 홀린 듯이 걸었습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들의 영역에 도착한 후였습니다. 돌아갈 때도 그 ‘안내자’가 저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물론, 돌아가는 길도 홀린 채로 갔고요. 아마도 정확한 위치를 외부에 알리느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흥미롭네요. 그들이 당신을 이상하게 보진 않았죠?

네. 대신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자꾸만 기웃거리는 제게, 그들이 다가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대의 선조들이 당신들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든,

우리가 선이나 악, 둘 중 어느 것으로 정의되든,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당신들 곁에서 살아왔다

라고요.

언제나 우리 곁에서 살아왔다니…… 어떻게 들으면 참 섬뜩한 말이네요. 그렇게 폭력적인 이들이 정체를 숨기고 살아왔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습니다. 믿기지 않군요.

자, 마지막으로 당신은 이 이야기를 공석에서는 꾸준히 거절해왔는데, 갑자기 이렇게 심경이 바뀌게 된 데에는 무슨 특별힌 계기라도 있었던 겁니까?

저는 특별한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궁금한 것은 다들 똑같을 겁니다. 오래 전에 있던 흉악한 괴물의 모습은 어디로 간 건지, 왜 그들은 그들이 장난감처럼 대하던 우리의 삶을 모방하고 있는 건지…….

글쎄요…. 삽화 속에선 늘 흉측한 야수로 묘사되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역사가 거짓이라는 게 아닙니다. 저는 그곳에서 짧은 기간 생활하며, 당시 인간들을 덮쳤던 것들은 지금의 그들과는 별개의 생명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화를 한 것이죠. 솔직히, 그들은 외형마저 평범한 인간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제가 보았을 땐 수인들보다도 가장 덜 수인 같았으니까요. 인간처럼 각자 조금씩 다른 억양을 지니고, 또 물들기도 하며, 친구를 만들거나 로맨틱한 사랑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 무지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그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존재로서, 득실을 따지며 전쟁을 일삼는 우리 인간의 역사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들이 스스로 정체를 드러낸다면, 우리는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어야 할 겁니다.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그들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는 그제야 하나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그때가 되면 이 세상은…… 반드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고요.

2000.XX.XX

옥(玉)과 돌이 같은 궤(櫃)에 있다

N국 박물학자, □□□□의 생환 후 개인적인 인터뷰 녹취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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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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