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M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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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런 일이 잦으시군요. 코트를 받아 들며 말하는 집사장에게 그는 쓴웃음으로 대답하는 것을 대신했다. 근래 황궁에서 찾아온 이들이 그의 아침을 깨우고, 밤이 되면 돌아오는 일이 허다했다. 규율을 따르지 않고 내린 갑작스러운 소명召命이었지만 그것에 불만을 가진 귀족은 없었다. 목숨이 관련되어 있는 문제다. 귀족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행동했고 황제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총애하던 가신이 피살된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에도 여제는 언제나와 같은 얼굴로 모여든 이들의 면면을 살폈다.

클라크의 죽음에 대해서는 모두 범인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입에 올릴 가치도 없었다. 황제도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제관을 불러들인 것이 아니었다. 그저, 며칠 뒤 치뤄 질 가신의 장례에 대해 몇 마디 짧은 조문의 말과, 관련된 이들의 안전을 당부했을 뿐이다. 서황제의 오랜 친우라는 인연으로 기사단장의 자리에 올랐다고는 하나, 평범한 귀족이 쉽게 맞서 싸울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하물며, 클라크는 귀족 중에서도 무골이라 이름 높았던 자였다. ‘검’을 찍어 누를 수 있는 사람은 제국에 오직 하나 뿐. 오늘의 조의는 제국 내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동황제의 곁임을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나 다름없었다. 안된 일이야. 지나가듯 말하며 제관을 훑는 금안이 날카로웠다. 행여 오해라도 살까, 제관은 바닥에 바짝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라고 할까요?”

“됐어. 쉬고 싶군.”

더 이상의 대답없이 고개를 숙이는 집사장을 뒤로 한 그는, 힘없는 걸음으로 계단을 밟아 올랐다. 사교 시즌인지라 제도 가까이 지어 놓은 저택에 기거하고 있지만 황궁에 가는 것은 역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귀족으로 태어나 교육을 받으며 자랐지만, 상대의 기색을 살피고 속내를 읽어내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다. 사람들은 그가 생각한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동황제의 세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서황제의 손을 들어주었을 뿐인데…. 서황제가 측근인 기사에게 납치당해 사라진 후로 피로감은 더욱 커졌다. 자신의 침실로 향하던 그가 이마를 문질렀다. 느낌이 좋지 않다…….

그는 서재로 걸음을 돌렸다. 불을 내려 어두운 복도에 달빛만이 창백하게 비쳤다. 걷는 그의 뒤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흔들렸다. 걸어가는 와중에 생각을 정리한다. 황제 중 한 쪽이 죽었을 땐, 새 황제를 옹립할 수 없지만 납치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죽었다고 하는 명백한 증거 또한 없다. 소문이 제도 밖으로 새어 나가, 외곽 귀족들의 여론이 흔들리기 전에 뭉쳐야 했다. 동황제에게 유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쪽에 지나치게 힘이 실리는 것을 내키지 않아 하는 이들도 있었기에 그의 뜻이 담긴 편지를 보낸다면 몇 명 정도는 답해줄 것이다. 그는 문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

손바닥에 감기는 느낌이 유난히 서늘해 그가 짧게 숨을 들이켰다. 과민 반응이다. 클라크를 죽인 것이 단순한 습격이라면 그가 걱정할 일은 없다. 왕의 검이 한 짓이라면, 더더욱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는 크게 어깨를 움직여 숨을 골랐다. 천천히 문을 열었다. 답지 않게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용인들마저 쉬러 갔을 시간이다. 손가락이며 발가락 끝이 긴장으로 뻣뻣해진 것을 느끼며 그가 조소했다. 자신의 책상으로 가 앉은 그는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깃펜을 하나 뽑아 들어 잉크병에 담갔다. 종이 위에 펜을 가져간 그가 문득 움직임을 멈추었다. 내용은 커녕, 받는 이조차도 정하지 못했다. 충동적으로 생각한 뒤 행동한 일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펜 끝에서 떨어진 잉크가 종이 위로 번졌다. 점점 면적을 넓혀가는 자국을 보던 그가 말없이 팬을 병에 담갔다.

“이름 정도는, 쓸 거라고 생각했는데.”

구부정하게 앉아있던 그가 허리를 폈다. 상당히 귀에 익은 목소리였기에 상대의 정체를 굳이 물을 필요는 없었다. 책상 위로 길게 그림자가 져 있었다. 어디로 들어온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암살자는 그의 등 뒤에 서 있었다.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긴 그림자는, 의자에 묻혀 있던 그의 그림자 따위는 쉽게 덮어버린 채 서재의 문까지 닿아 있었다. 턱에 닿는 서늘한 느낌에도 그는 당황하지 않은 채 지그시 눈을 감았다.

“클라크의 일도, 경의 짓인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아무 반응이 없는 것 자체가 긍정이나 마찬가지다. 조금 뜬금없는 상대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제야 상황이 이해가 되는 느낌이다. 그의 입가에 허탈한 웃음이 걸린다.

“이것 참, 쓸데없이 얕봤군.”

더 이상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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