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전야 1장

1-9. 우리의 비밀

1. 동쪽 구역의 비밀

한차례 소란이 있은 후, 하늘은 이미 하얗게 개어 있다.

오기에르는 만일에 대비해 방 안에 남아, 사라를 견제하기로 한다.

당신과 라모나는 젠킨을 따라 “구빈원의 유령”이 있다는 지하실 앞까지 따라간다.

젠킨

소리 낮춰, 사라가 보면 안되니까.

사라가 보면 일꾼들 시켜서 우릴 쫓아낼 거야.

라모나

오기에르가 사라를 감시하고 있으니, 그가 있는 한 저희가 발각될 일은 없을 겁니다.

지난번에 사라의 사무실에서 무얼 발견했는지 다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젠킨

아, 몇 번을 말해?

젠킨

그 여자는 구빈원 사람들을 나쁜 의사한테 실험 재료로 넘겨서 큰돈을 벌었어! 금은보화를 많이도 방 안에 숨겨뒀고.

젠킨

학생증까지 보여줬는데, 아직도 더 물어볼 게 있어?

젠킨

됐어, 이 방 안이야.

이제 다 왔어, 문 닫아.

대열의 순서는, 젠킨, 라모나, 그리고 당신.

당신의 뒤에서 브라운이 찍찍거리며, 나무로 만든 문을 닫았다.

……

젠킨

우리 언니, 그리고 당신들이 찾는 학생, 다들 분명 구빈원의 유령이 있는 이 아래에 있어.

젠킨

성냥, 성냥……

젠킨

그나저나, 너희들 몸이 좀 근질근질하지 않아?

젠킨의 말을 듣고서야, 두 사람은 깨닫는다. 그래, 피부에 알 수 없는 저릿한 가려움이 발 끝에서부터 발목을 거쳐 등까지 퍼지고 있다는 것을…

젠킨은 마침내 손전등을 켜고, 손전등의 높이를 조심스럽게 낮추어 땅바닥을 비춘다.

그 순간——

망막이 충격을 받는다.

셀 수 없이 많은 개미들이 빽빽하게 모여들어, 끊임없이 불안스레 기어다닌다.

그것들은 움직이며, 모이고, 소용돌이치다, 마침내 칠흑같은 심연 속으로 빠져든다.


같은 시각——

오기에르는 창문을 통해, 구빈원 주변의 풍경을 관찰하고 있다.

철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리자, 하얀 옷을 입은 괴인들이 물밀듯이 들어온다. 아이들은 회색으로 가득한 안개 속에서 줄을 서서 그들이 마음대로 고를 수 있도록 내버려져 있다.

아이들 가운데, 오기에르는 익숙한 모습을 알아본다. 그날 모두를 맞이했던, 작고 하얀 옷을 입은 소녀다.

소녀는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으로 자신의 옷자락을 꼭 쥐고 있다. 깜짝 놀란 듯한 모습이지만, 여전히 다른 아이들 앞에 서 있다.

소녀는 자신이 아주 작아지고 또 작아져서, 사라질 수 있기를 바란다. 거대한 그림자가 소녀를 덮치자, 소녀는 몸을 심하게 떨지만, 감히 움직이지는 못한다.

실랑이가 벌어진다. 하얀 옷을 입은 괴인들이 소녀의 팔을 붙잡고, 마치 억지로 따르게 하려는 듯 움직인다.

오기에르

——그만해!

오기에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곧바로 하얀 옷을 입은 괴인들과 소녀 사이로 뛰어든다.

사라

에, 에슈 작은도련님?

오기에르

데, 데려가지 마!

이봐, 꼬마.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 아니니?

우리는 구빈원에서 고용한 의사들이고, 정기 검진 때문에 데려 가려는 거란다.

오기에르는 얼굴을 붉히다, 불현듯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오기에르

안됩니다, 형님이 말하셨어요, 조금 이따 에슈 훈작님을 대신해서 저희가 아이지스에게 상황을 설명할 겁니다. 지금은 이 아이를 데려 가실 수 없습니다.

말을 안 듣는 어린이에겐, 어른의 수단을 써야겠지.


[스토리]

: 이번에 새로 온 친구는 좀 다른가 보군.

: 이제 진짜 행동으로 옮길 때가 됐어.


오기에르는 의사 여럿을 상대하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이리저리 재빠르게 움직여 피해내 짧은 시간이지만 그들과 맞선다.

됐어.

아이지스가 원하지 않는 이상, 우리도 강요하진 않습니다.

선별된 다른 환자들도, 진료소로 데려가 치료하고 나면 다시 돌려 보내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사라 아가씨.

빅은 아이지스를 한 번 힐끗 보고는,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떠난다.

사라는 억지로 웃으며 의사들을 배웅한 뒤, 아이지스를 향해 근엄한 표정으로 돌아선다.

사라

아이지스, 왜 말을 안 듣는 거니?

아이지스

사라 언니, 전……

사라

저분들은 로저스 선생님을 생각해서 오신 건데, 네가 그분들을 화나게 하면 내가 선생님께 뭐라 말씀드리겠니?

사라

빨리 준비하렴, 조금 있다가 내가 직접 진료소에 데려다 줄테니… 마이크도 같이 데려가야겠다. 그 아이도 오랫동안 검사를 받지 않았으니까.

사라

로저스 선생님께 주소를 여쭤봐야겠어.

아이지스

안돼요! 사라 언니, 제발요, 저희는 정말 가기 싫어요.

아이지스는 보호하고 있던 어린아이를 뒤로 밀어내고,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모두를 바라보다 결국 누나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재빨리 구빈원의 방으로 달려간다.

사라

마이크! 돌아와!

아이지스는 황급히 사라의 옷자락을 부여잡아, 이미 도망쳐서 보이지 않는 마이크를 쫒지 못하도록 막는다.

아이지스

정말… 정말로 꼭 진료소에 가야한다면, 이번에는 저 혼자 가게 해 주세요……

오기에르

사라 선생님.

사라

어쩐 일이세요, 에슈 작은도련님?

사라는 곧바로 아첨하는 웃음을 짓는다.

오기에르

대공의 기사 오기에르의 이름으로 명합니다. 아이지스에게 “치료”를 강요하지 마십시오.

사라

기, 기사요?

오기에르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는 순간 얼굴이 붉어진다. 잠시 후, 그는 머뭇거리며 말을 잇는다.

오기에르

그, 그렇습니다. 훈작 가문의 아이는 모, 모두 “기사”의 이름을 받아요.

요컨대, 제가 아이지스를 데리고 형님과 집사를 기다릴 테니, 이 아이를 난처하게 만들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오기에르는 아이지스의 손을 잡고 방으로 달려간다.

아이는 시종일관 머리를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흐느끼고 있는 듯하다.

오기에르

됐습니다, 이제는 사라 선생님이 따라오지 않을 거예요.

오기에르

아이지스, 왜 치료를 받고 싶지 않고, 다른 아이들도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하려는지 설명해줄 수 있겠습니까?

아이지스는 입술을 꾹 다문채, 목구멍에서 억눌린 울음소리를 내며 말을 하지 않았다.

오기에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저는 진짜 기사니까, 반드시 아이지스를 보호할 겁니다.

오기에르

반드시!

오기에르는 더듬거리며,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쓴다.

아이지스는 그런 오기에르를 바라보면 한참을 망설이다, 마침내 푸훗, 하고 웃는다.

아이지스

거짓말하지 마요. 책에서 봤는데, 기사는 공주를 지키는 거랬어요.

저를 좀 보세요. 제가 공주 같은지.

아이지스는 치마에 기워진 헝겊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한다.

오기에르

그렇지 않아요, 책이 틀렸습니다.

기사는 공주만 보호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보호하고, 모든 사람을 보호하는 게 일이랍니다.

아이지스는 오기에르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아이지스

진짜 기사예요?

아이지스가 자기 가슴을 톡톡 두드리자, 오기에르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오기에르

틀림없이 진짜입니다! 왕족께서 친히 수훈을 내리셨을 적부터, 저는 오로지 지키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아이지스

진짜 부러워요, 그 용기… 심지어는 방금 안 사람을 위해서 나섰잖아요.

아이지스

아쉽게도, 저는 기사도 아니고, 공주도 아니에요. 심지어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불쌍한……

아이는 끝말을 삼킨다.

아이지스

기사님, 기사님은 모든 사람을 보호한다고 하셨죠……

아이지스

범죄자도 지켜주니사요? 혹시…… 살인자도요?

오기에르는 가슴을 펴고 엄숙하게,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오기에르

기사는 범죄자를 지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사는 범죄자를 막고, 범죄자 손에서 사람들을 구해야 하니까요.

아이지스

역시……

아이지스의 한숨 속에 숨겨진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오기에르는 계속해서 말한다.

오기에르

기사는 만능이 아니니까요.

범죄자를 막은 뒤에…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은 사제에게 넘깁니다.

오기에르

자비로운 신부님께서는 모든 뉘우치는 사람을 도와주시지만, 결국 그 사람들의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을지는 그 사람들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아이지스

결정하는 건… 결국 나……

아득한 목소리

그래, 아직은 돌이킬 여지가 남아있어.

아득한 목소리

이 모든 건 너와 *&%@●#¢¥……

아이지스는 말의 의미를 곱씹는 듯 멍하니 있다.

한참 뒤, 아이는 천천히, 그리고 조금은 어려운 결심을 한 듯 입을 연다.

아이지스

기사님을 믿어요. 기사님을 위해 한 번 더 걸어볼게요.

그리고, 말씀드릴게요…… 그 치료의 진실을.

카테고리
#기타
추가태그
#번역

해당 포스트는 댓글이 허용되어 있지 않아요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