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사무소] 할로윈의 오전
2022. 10. 15
2023년 7월 프로젝트 문 사상 검증 및 직원 부당 해고 문제 발생 이전에 작성된 글입니다.
현재 프로젝트 문 장르 창작 및 소비 없습니다. 단순 백업을 위해 업로드합니다.
프로젝트 문 비공식 할로윈 합작 <재회의 밤> 참가작입니다.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 엔딩 스포일러 있음
V사 둥지에서는 온종일 탄내가 났다. 무언가를 태울 때 나는 향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게 타오르고 남은 재의 냄새였다. 냄새는 새끼라도 된 양 둥지를 떠나지 않았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어디를 가도 검은 그을음이 보였다. 건물들은 대개 다 타버려 앙상한 뼈대만 남았던지 혹은 어중간하게 타올라 휘청거렸다. 둥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전쟁이 한바탕 벌어진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랬다. 전쟁이라고 하면 전쟁이 일어났던 것일지도 모른다. 허나 일방적인 학살만이 벌어진 전쟁이었다. 사람들 대부분은 그 일 이후에도 변함없이 둥지에 머물렀다. 둥지에서의 삶을 포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개중에서도 다른 의미로 둥지를 떠나지 못 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유나 양.”
“스승님 오셨어요.”
살바도르가 사무소의 불을 켰다. 순식간에 공간이 환해진다. 간이침대에서 잠을 청하고 있던 여자가 부스스 상반신을 일으켰다. 유나의 안색이 창백했다. 남자 역시 그랬다. 두 사람은 썩 좋은 꼴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이야기였다. 여자가 덮고 있던 피에 물든 겉옷은 언뜻 불에 탄 것처럼 보였다. 유나는 옷을 뒤집어 놓았다. 스승의 시선이 그것에 닿았다가 곧 떨어진다. 살바도르가 코트를 걸어 놓으며 은근히 묻는다.
“어젠 집에 들어갔었나?”
“……차 한 잔 타 드릴까요?”
“부탁하지.”
여자가 말을 돌렸다. 드문 일이었다. 남자는 굳이 답을 캐내려 하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아는 것 구태여 물었다. 유나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살바도르는 창문을 연다. 무언가, 끊임없이 타오르는 냄새가 매캐하게 차올랐다. 그럼에도 문을 닫지 않는다. 그와 제자 한 명이 사무소에서 의식주를 번갈아 가다시피 해결하기 시작한 지도 제법 오래되었다. 그것은 둥지 어딘가에서 갑작스레 눈을 뜬 이후, 막내 제자의 소식을 끝까지 전해 들은 이후부터 이어진 일이었다. 이제는 일상에 퍽 가까울 정도로는 익숙해졌다.
츠바이 협회로부터 직접 받은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향한 ‘도서관’은 그들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외곽으로 추방된 후였다. 분명 도시질병급이었던 도서관은 도시의 별이 되어 있었다. 리우 협회의 부장들까지 그리로 향했으나 협회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고들 했다. 소문에 의하면 엄지와 검지도 그 일에 뛰어들었고 특색 푸른잔향이 이끄는 잔향악단과도 대치했다고 했다. 살바도르도 유나도 모두 그런, 시끌벅적하고 어찌 보면 허무맹랑하기까지 한 소문에 대해서는 덤덤한 편이었으나 이번만큼은 그렇게 넘길 수 없었다. 그들의 동료이자 제자이자 후배가 잔향악단의 일원으로 엮여 있었으므로.
쌍화차 특유의 향이 공간을 메운다. 커피 냄새도 묘하게 섞여 있다. 유나는 익숙하게 차를 내어 온다. 쟁반에는 잔 두 개. 누가 봐도 각자의 것이다. 살바도르의 잔에는 계란 노른자가 떠 있다. 노란색이 넘실거린다.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동시에 한 사람을 떠올린다. 필립.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가을을 닮은 초연한 인상의 사람. 남자는 제 실력에 비해 솜씨를 제대로 발휘하는 일이 적었다. 제 실력의 상한선을 정해두고는 했는데 그것이 실제 남자의 실력보다 훨씬 아래를 맴돌았다. 그는 언제나 자신보다 주변을 우선했고 매사에 조심스러웠다. 허나 그것은 단점이 아니었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섬세하고 따뜻한 영혼의 반증이었다. 이따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을 때도 있긴 했지만 대개, 두 사람은 그의 내면을 꿰뚫어 보곤 했다. 그래서 더 잘 알 수 있었다. 남자는 틀림없이 언젠가 크게 될 인물이었다. 다만 오직 그 이유로 그를 안타깝게 여기는 것만은 아니었다.
새벽 사무소의 남은 자들은 과거를 기억한다. 입사 초기의 일이었다. 셋이서 함께 의뢰를 처리하러 간 첫날이었다. 새벽 사무소는 늘 인력난에 허덕였으므로 흔한 일은 아니었다. 보통 둘과 하나로 쪼개져서 의뢰를 처리하는 일이 잦았다. 필립은 스승과 선배의 눈치를 살피는 것인지 아니면 마땅히 말을 고르지 못한 탓인지 입을 여닫기만 반복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유나가 운을 뗐다.
“그러고 보니 넌 뭐, 좋아하는 거 없니?”
“그, 글쎄요. 딱히 없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다문다. 미간 사이가 좁아질 만큼 골몰한다. 입이 열리지 않는다. 도통 떠오르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좋아하는 게 딱히 없다고는 했지만 남은 두 사람은 알았다. 새벽 사무소의 일과 중 하나인 다과 시간에 그는 언제나 허브차를 고르곤 했다.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랬다. 차 특유의 향이 피어오르고 물이 곱게 물들면 언제나 따스한 낯이 되곤 했다. 그즈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제가 좋아하는 것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남자를 조금 더 챙겨주고 싶었던 것은. 그 애가 자신을 향한 확신을 갖기를 바라게 된 것은.
새벽 사무소는 확실히 전투에 능통한 곳이었기에 도서관의 의뢰도 도중까지는 그럭저럭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도중까지는, 이라는 말에는 다른 뜻이 필연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전반과 후반은 명백하게 그 형세가 달랐다. 도서관의 사서들은 전투를 거듭하는 와중에 점점 더 강해졌다.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필립은 제게 무수히 쏟아지는 칼날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할 수밖에 없었다. 접대 혹은 전투의 형세가 점점 한쪽으로 기울어 갈 때 유나는 생각했다. 살바도르 역시 같은 마음이리라고 믿었다. 애초에 유나가 지금껏 살아남은 것도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므로. 그 언젠가의 대화를 기억한다. 대체 왜 절 먼저 보내셨어요? 제자를 우선시하지 않은 스승은 없으니까 말이야. 그랬다. 여자는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니었다. 무기를 휘두르면서도 언뜻언뜻 필립이 눈에 밟혔다. 처음 맡는 도시질병급 의뢰로 긴장한 남자는 그래도 평소와 다름없이 잘 해내고 있었다. 상대가 생각보다 더 강했을 뿐이었다. 유나는 은연중에 제 부족함을 느낀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와중에 살바도르가 주저앉는다. 고개는 여전히 뻣뻣하다. 스승이 자신을 바라본다. 유나는 그 눈빛으로부터 많은 것을, 읽어낸다.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이쪽에는 여유가 있다. 유나는 이를 꽉 문다. 선택의, 시간이었다.
“필립. 도망가.”
“그, 그치만…….”
“허튼소리 하지 말고, 당장 가. 내가 스승님까지 모시고 갈 테니까.”
남자는, 명백하게 망설였다. 여자는 일부러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짜증을 냈다. 말은 뻔뻔하게 했지만 살아나갈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였다. 한 명을 살려야 한다면 필립을 살리고 싶었다. 그게 선택이었다. 남자가 머뭇거리는 사이로도 공격이 쏟아져 내렸다. 유나는 제 첼로 케이스를 방패 삼아 뒤로 숨는다. 가, 가라고! 그 외침은 누구를 향한 것이었는가. 남자는 결국 뒤를 돌아본다. 필립의 삶 속에서 이렇게 빨리 달려 본 적이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서들은 그를 노리지 않았다. 겨우 다시 일어선 살바도르와 유나만을 끈질기게 노린다. 정확하게는, 살바도르는 거의 처리가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사서들의 손은 일관되게 유나를 노렸다. 마지막 일격이 여자에게 꽂힌다. 의식이 차츰 멀어져간다.
“유나 양. 지금껏 수고 많았네. 사무소 걱정은 말고 푹 쉬게나.”
“……”
여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소위, 주마등이라고 부르는 것이 눈앞에서 빠르게 한 바퀴 돌고 사라진다. 여자는 기억을 본다. 뒷골목에서 나고 자란 건 도시 사람에게 있어서 고난과 역경조차 되지 못했다. 뒷골목의 밤에서 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남았다고 하면 조금 달라질까. 새벽의 한복판, 연기 전쟁에서 활약한 남자에게 구해져서 그대로 해결사가 된 제 삶을 보았다. 그리 볼만한 구경거리가 있는 삶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완전 엉망이지는 않았다. 피가 섞이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 여자는 제 삶을 긍정할 수 있었다. 꽤 괜찮은 삶이었다. 여자의 기억은 거기서 한 차례 끊겼다.
살바도르 쪽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여자가 눈을 감자마자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이 생겨났다. 어딜 봐도 책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 책은 챙겨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고개를 들었으나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출혈이 심한 모양이었다. 안쪽 코트가 축축했다. 전성기에는 이 정도 출혈에도 거뜬했는데. 남자는 새삼 노화를 실감했다. 유나는 걱정되지 않았다. 걱정되는 게 있노라면 부인과 자식, 그리고 이제 막 날개를 펼치기 시작한 어린 제자뿐이었다. 필립의 발소리는 멀어진 지 오래였다. 그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남자 역시 눈을 감는다. 어쩐지 편안한 감각이었다.
죽은 자들이 돌아오는 날은 대개 10월 31일을 칭한다. 허나 그들은 할로윈이 아니었음에도 돌아왔다. 눈을 뜬 장소는 공교롭게도 그들의 사무실이었다. 순간 꿈을 꿨나 싶었다. 깨지 않는 긴 꿈을. 그러나 묘하게, 재의 냄새가 사방에서 났다. 피부에 닿는 공기가 지나치게 건조했다. 자리를 오래 비운 듯 사무실에는 먼지가 눈에 보일 정도로 떠다니고 있었다. 미처 치우지 못한 찻잔에 곰팡이가 슬었다. 모든 감각이 예리했다. 꿈을 꾼 게 아니라 전부 현실이라면 필립은 왜 이 자리에 없는가.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달아나지 못했던 걸까. 그렇다면, 왜 이곳에 함께 있지 않나. 도시란 대개 늘 그런 법이었으나 유난히 돌아가는 일이 모르는 것투성이었다. 설명해 줄 사람도 없었다. 유나가 그저 커튼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러 창가로 다가갔다.
“스승님.”
여자가 커튼을 걷어낸다. 창 너머로 보이는 바깥은 온통 폐허였다. 과장 없이도. 새벽 사무소를 제외한 일대가 전부 불타 있었다. 유나가 창문을 열자 무언가 타오르는 냄새가 지독하게 내부를 침범했다. 여자는 몸을 내밀고 바깥을 내다본다. 까맣게 그을린 바닥. 건물의 드러난 뼈대. 반쯤 녹아내린 가로등과 철제 구조물……. 그들이 자리를 비운 새에, V사 둥지에서는 둥지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던 게 틀림없었다. 필립은 무사할까. 새벽 사무소는 불을 주로 다뤘기에 입는 옷 역시 불에 잘 타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강한 불길 속에서는 그 누구라도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먼저 돌려보낸 필립이 그런 불길에 휘말렸던 건 아닐까. 괜한 짓을 벌인 건 아닐까. 두 사람은 걱정했다.
새벽 사무소의 일원들은 얼마 지나지 않고 그 행방의 끄트머리라도 알게 되었다. 형제 사무소인 쐐기 사무소로부터 연락이 왔다. 필립은 무사히 돌아갔을 뿐만 아니라 언젠가 살바도르가 전해 준 충고를 잘 지킨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쐐기 사무소의 오스카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했던 그 말을. 그럼에도 유나와 살바도르는 안심할 수 없었다. 쐐기 사무소와 함께 도서관으로 향했을 그 애는 지금, 그렇다면 어디 있는가. 쐐기 사무소의 세 사람과 필립 사이에서 있었던 대화는 들을 수 없었다. 그들의 반응으로 추측건대, 그닥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살바도르는, 제 어린 제자를 도서관에 데려가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게 최선이었다.
새벽 사무소는 본래 리우 협회 직속 사무소였고 살바도르는 과거에 제법 이름을 날리던 해결사였으므로 그 이후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일이 그리 막막하지는 않았다. 다만 진실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두 사람 모두 가슴이 답답해졌다. 백야와 흑주 사건 이후로 피아니스트가 한 차례 뒷골목을 뒤집어 놓은 이후 뒤틀림이 몇 차례 나타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생경했다. 이질적인 존재였다. 쐐기 사무소가 8시의 서커스와 대치한 것마냥 그것을 처리하는 의뢰를 받는다면 몰라도, 아는 사람이 뒤틀림으로 변해버리는 일은 상상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리우 협회로부터 받은 자료 속 인물은 부정할 수 없이, 필립이었다. 도서관 근처에서 대리석 조각상 하나가 오랫동안 울었다는 것. 밀랍 인간이 새벽 사무소로 향했다는 것. 그곳에서도 그것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을 파괴하기 시작했다는 것……. 모든 내용을 읽고 나서도 두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때로는 소리가 실재하지 않는 것이, 소리가 존재하는 공간보다 나을 때가 있는 법이다. 새벽 사무소는 화재의 중심지였을 텐데도 이상하게 멀쩡했다. 그것 역시,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뒤틀림 탓인가. 뒤틀린 필립에게는 우는 아이라는 이명이 붙었으나 살바도르와 유나는 결코 그를 그렇게 부를 생각이 없었다. 필립은, 필립이었다.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리우 협회의 우는 아이 보고서 가장 하단에는 특색 푸른잔향이 필립을 데려갔다고 했다. 특색. 그 이름만으로도 유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4급 해결사인 유나에게 특색은 그 이름만으로 아득한 존재였다.
잔향악단이 L사 둥지의 도서관 앞을 점거한 것을 보았다는 사람은 여럿 찾을 수 있었다. 허나 필립의 행방은 그게 끝이었다. 필립이, 잔향악단의 일원으로서 또다시 도서관을 찾은 건 쉬이 추측할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의 끝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도시 곳곳에서 도서관에 다녀왔다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으나 잔향악단만은 달랐다. 마치 영원히 사라진 것처럼 그들의 행방만이 묘연했다.
“대체 어디 있는 걸까요?”
“그러게나말일세.”
누구에 대한 것인지 두 사람은 굳이 그 대상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서로가 알고 있었다. 차가 식었다. 식은 차는 왠지 입에 대기 껄끄럽다. 살바도르도 유나도 말없이 잔을 내려놓았다. 커튼을 걷은 창 너머로 서서히 붉은 기운이 번져 나간다. 새벽을 여는 노을이다. 잿빛의, 무채색 건물들이 색을 건네받는다. 10월 31일의 새벽이 밝아 온다. 오늘은 할로윈.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기는 하였으나 근본을 따져 보면 죽은 자들이 돌아오는 날이다. 그런데 그 애는 어디에 있는지. 이 땅에, 도시에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그가 영영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았다. 사무소를 떠나도 괜찮았다. 그들이 아닌 필립으로 존재하지 아니해도 상관없었다. 다만 그의 행방이 알고 싶었다. 살아 있는지라도 알고 싶었다.
두 사람은 도서관 문 앞에서 끊긴 잔향악단의 소식을 접한 이후로 번갈아 가며 사무소에서 잠을 청했다. 혹시라도 그 애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었다. 허황된 사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때로 헛된 꿈을 꾸고 마는 것이다. 희망을 걸고. 살바도르는 가정이 있었기에 이따금 집에 돌아가고는 했으나 유나는 거의 사무소에 살림을 차렸다. 뒷골목보다는 둥지가 낫죠. 농담조로 그런 말을 건네는 여자의 표정은, 퍽 씁쓸했다. 사무소의 화장실에는 의뢰가 뒷골목의 밤에 끝났을 때를 대비하여 샤워 부스가 딸려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요긴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갑자기 일정한 간격을 두고, 주저하듯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유나는 몸을 일으킨다. 매무새를 정돈한다. 해결사 사이에서 규칙적인 업무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 날아들지 모르는 게 의뢰였다. 어떤 식으로든 우는 아이 사건에 연루되고 들어오는 의뢰의 양도 부쩍 줄었다. 길게 자리를 비웠던 탓도 있을 것이다. 월세를 위해서는 시간과 장소를 가릴 일이 없었다. 곧 나가요. 덮었던 겉옷을 그 자리에 내버려 둔 채 여자는 문을 연다.
“……”
“너…….”
문 앞에는 오랫동안 찾아 헤맨 사람이, 있었다. 그뿐이었다. 살아 있었구나. 그 말이 혀끝까지 차올랐으나 여자는 내뱉지 않았다. 지금까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냐는 질문도, 하지 않는다. 그저 제 발로 사무소에 돌아온 것만으로 고마웠다. 앉아 있던 살바도르도 몸을 일으킨다. 두 사람 모두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말을 건다.
“열쇠 잃어버렸어?”
“……아뇨.”
“무단결근을 왜 이렇게 오래 해?”
“죄, 죄송합니다…….”
“유나 양. 그쯤 해두게.”
그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아무 대답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남자가 문을 앞에 두고 도망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 어떤 말도 오가지 않는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소에도 나눴을 법한 말만을 주고받는다. 그럼에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가둬 두었던 감정이 울컥 치밀어 오르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유나가 어울리지 않게 눈가를 비빈다. 흘러나오는 눈물은 그렇게 해서 멎을 만한 양이 아니었다. 살바도르가 제자의 등을 두드린다. 그러는 그의 낯에도 투명한 액체가 묻어 있었다. 필립은 울지 않았다. 우는 아이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도망치지도 않는다. 다만 두 사람의, 우는 얼굴을 보고 조금은 안도할 뿐이었다.
완전하게 하나가 된 세 사람이 마주 본다. 도서관으로 향하기 전과 다를 바 없는 인원 구성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끌어안는다. 그게 전부였다.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오늘은 한 차례 떠난 자들이 돌아오는 날. 그리운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날. 새벽노을이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어떤,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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