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 확인은 확실하게.
아즐유키 /트위스티드 원더랜드 아즐 아셴그로토 드림
“……그래서, 이게 뭡니까?”
“까르보나라 파스타 위에 반숙 수란을 얹어봤어요.”
대답하는 목소리가 제법 새침했다. 아즐은 접시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을 한참 쳐다보았다. 모스트로 라운지에 있는 재료들로 만들었을 테니 분명 식재료에는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평범하디 평범한, 아니, 품질이라면 최상품인 식재료들이었을 텐데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즐 아셴그로토는 혼란스러운 시선을 올렸다.
“제 기억이 맞다면, 일전 식비를 아끼기 위해 주말에는 그림과 함깨 꼭 유키 씨가 직접 식사를 준비한다고.”
“네. 혹시 뭔가, 문제라도 있을까요?”
걱정스러운 얼굴로 대답하는 유키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즐은 다시 시선을 파스타로 내렸다.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이것을 까르보나라 파스타와 반숙 수란이라고 부른단 말인가? 아즐은 어디서부터 지적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음식을 다시 한참 쳐다보았다. 일단 까르보나라 파스타에는 크림이 들어가지 않고, 토마토 소스를 베이스로 한 크림 파스타는 로제 파스타라고 부른다는 점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니, 그것보다. 펜네 면은 제대로 익은 게 맞을까? 그리고 이게, 계란이라고? 아즐은 착잡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들어 유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방글방글 웃는 얼굴이 원망스러웠다.
이걸 알려줘야 해, 말아야 해.
아즐은 진심으로 고민했다. 제 사랑스러운 연인에게 현실을 알려주는 게 좋을까? 이대로 자신은 요리를 잘한다는 망상에 빠져 살아가게 하는 게 맞는 걸까? 그러나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줄 거라고 믿는 순진하게 웃는 얼굴을 보면 차마 당신의 요리는 끔찍합니다—등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맛없는 건 먹지 않는 그 마수도 유키의 음식은 괜찮다고 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라 이런 것을…….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아즐은 안경을 위로 치켜올렸다.
“……유키 씨, 혹시 제 앞으로 생명보험이라도 들어두셨습니까?”
“어머, 어떻게 알았어요?”
“……보험 약관 확인은 제대로 하셨습니까?”
“그거야 당연히 확인하고 지장 찍었죠.”
“못 믿겠습니다. 지난번 저와의 계약 때도 그렇고…….”
내내 방글방글 웃던 유키의 얼굴이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유키가 질문했다.
“……리치 씨가 이르던가요?”
“그건 내가 말했는데?”
“제이드 씨든 플로이드 씨든 결국에는 리치 씨가 아즐 씨한테 이른 거잖아요! 아즐 씨가 저를 뭘로 봤겠어요?”
“괜찮습니다. 애초 그 때의 그에게 당신은—”
“—제이드.”
아즐이 머리가 아픈지 관자놀이 부근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 제이드는 말뜻을 알아듣고 빙긋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눈에 힘을 주고 제이드를 쏘아보던 유키는 다시 아즐에게 고개를 돌렸다.
“진짜입니까?”
“제가 아즐 씨한테 그런 걸로 거짓말을 왜 해요?”
“아니, 제발 그런 걸로는 거짓말을 하세요.”
유키가 의아한 표정을 했다. 제 앞으로 생명보험 들어놓고 누가 봐도 수상한 요리를 먹이려는 여자를 어떻게 하면 좋나. 쌍둥이들이 제대로 감시했을 테니 독 같은 건 안 들어있겠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너무 당당해서 화낼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즐은 한숨을 쉬며 포크를 들었다. 어쨌건, 재료가 아까우니까 먹긴 먹어야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왜요? 안 죽을 건데 뭐가 문제예요.”
“……음. 진심입니까?”
“제가 죽긴 왜 죽어요. 집에 가야 하는데.”
아즐이 눈을 깜박였다. 유키는 어느새 식탁 맞은 편에 앉아 손으로 꽃받침을 한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방글방글 웃는 모습이 객관적으로 귀여워 보이긴 했다. 중요한 게 그게 아니라 문제지. 아즐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질문했다.
“집에 간다고요?”
“영원히 여기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 보험은 왜 들었습니까?”
“매번 죽을 뻔 하는 게 불안해서요?”
“예? 제가 왜 죽음의 위기를 겪는 겁니까?”
“아즐 씨. 우리 이야기가 좀 엇갈리는 것 같은데요.”
아, 나왔다. 바보 같은 얼굴. 유키가 배시시 웃었다. 휙휙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저런 얼굴을 보는 게 재밌어서 매번 아즐을 놀리긴 하지만, 이번에는 좀 큰 오해를 한 게 아닐지? 생글생글 웃던 유키가 입을 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아직 아즐 씨와 법적으로 아무런 사이도 아닌 제가 아즐 씨의 명의로 생명보험을 들지는 못하지 않을까요?”
“……설마.”
“뭐, 그렇게 된 거죠.”
“뭐가 ‘뭐, 그렇게 된 거죠.’예요! 당신 제정신이에요?”
“제정신이니까 들어두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빨리 플로이드 씨 요리나.”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 요리, 플로이드가 만든 겁니까?”
“아. 들켰다.”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모습에 아즐이 소리를 질렀다. 정말이지, 저 여자는……!
“들켰다는 뭐가 ‘아, 들켰다’입니까?! 정말, 아까 전부터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아무튼. 그냥 보험이에요. 보험.”
대충 화제를 뭉그러뜨린 이후 카트의 아래쪽에서 음식을 꺼냈다. 보온 마법이 걸린 접시에 담은 덕에 수란을 올린 까르보나라 파스타는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유키가 웃으며 아즐의 앞에 놓인 플로이드의 요리와 제 요리를 바꿔 갔다.
“플로이드 씨에게 일부러 음식을 망쳐달라고 부탁드리긴 했는데, 이렇게 훌륭하게 해 주실 줄은 몰랐네요.”
“음식 쓰레기의 처리비는 고물 기숙사에 청구하겠습니다.”
“네네, 당연하죠.”
“그리고 보험 건은…… 저랑 조금 있다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죠.”
“엑. 싫은데요.”
유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즐은 부드럽게 웃는 얼굴로 유키를 바라보았다. 눈만은 전혀 웃지 않고 있었지만.
“당신에게 아직도 거부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아즐 씨 지금 하나도 안 멋있는데요.”
“이런 실례. 그렇지만 그런 저도 사랑하시죠?”
유키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이것만큼은 들키지 말았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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