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신자의 번호가 불량하여 통화를 종료합니다.
이름이요.
이선주요.
생년월일이요.
******이요.
잘못 부른 것 같은데. 다시 불러봐요.
그거 맞아요.
다시 불러보래도?
정말이에요.
몇 번을 말해줘도 마찬가지일텐데. 그는 이 지리멸렬한 상황에 염증을 느꼈다. 경찰인지, 형사인지 모를 사람들이 분주해졌다. 그들은 기어코 이선주의 손을 갈취하여 지문 조회까지 했으나 일치하는 지문이 없었다. 지갑에는 신분증이나 명함은 커녕 카드 한 장도 들어있지 않았고 휴대폰은 대포폰이었다. 이선주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사실 그의 죄명은 명확하지 않았다. 타인의 물건을 훔치려는 시도를 하였으나 그 물건이 위작이었으며, 잠깐 가졌다가 몇 시간 만에 주인에게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 주인도 하필이면 도둑이어서 서로에게 민망하기만 할 뿐 죄가 성립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그는 늘 하던 대로 이이주의 이름과 신분증을 내밀고 변호사를 부르면 1시간 내로 구치소를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선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그랬어?
30분쯤 지났을까. 이이주에게서 메세지가 도착했다. 이이주가 사준 휴대폰이 아니라 그에게 번호를 알려준 적 없는 대포폰인데도 이이주는 자연스러웠다. 이선주는 이이주가 보낸 메세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곧이어 변호사가 도착했다. 이선주는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을 받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경찰서 밖으로 나왔다. 하필이면 비가 왔다. 변호사는 우산을 주거나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건만 그에게 자신의 우산을 주었다. 무겁고 멋도 없는 검은색 우산을 들고 이선주는 자신의 발을 보았다.
갈 곳이 없었다. 숨이 턱 막힌다. 우산을 쓰고 있어도 바람이 불어 옷의 색깔이 점점이 짙어지고 있었다. 신발이 비에 젖어 양말은 물론이고 발까지 축축해졌다. 그는 우산을 접었다. 그리고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로 걸었다.
어느 옛날, 그는 건물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피부가 아린 통증이다. 그가 피부를 감싸안고 주저앉으면 이이주는 빈정거렸다. 꼴사납다나 뭐라나. 그 후로 이선주는 아무리 아파도 자신을 끌어안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비가 살갗이 따갑도록 내려서 어쩔 수가 없었다. 이선주는 주택가의 골목으로 들어가 쪼그리고 앉았다.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을 열어보니 몇 개의 메세지가 보였다. 이선주는 그 메세지를 읽지 않고 새로운 메세지 창을 켰다.
ㅇ#ㅣ쥬야 ㄴ 살고 221ㅅㅣㅊㅇㅏ
비 때문에 글자가 제대로 입력되지 않았다. 그는 한참을 씨름하다 글자를 고치는 것을 포기했다. 어차피 보내지 않을 메세지였다. 그때 커다란 빗방울 하나가 화면으로 떨어졌다. 하필 그 자리가 메세지를 보내는 칸이었다. 메세지가 입력되었다. 이선주는 소스라치게 놀라 화면을 마구 눌렀다. 삭제가 눌러지지 않았다.
"제발......."
이선주는 다급한 마음으로 아예 휴대폰의 전화를 끄려고 했다. 그때 그가 보낸 메세지 창 앞에 발송 실패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그는 손을 멈추었다. 여전히 하늘에서 비가 쏟아진다.
"아."
화면에 통신 상태가 불량하다는 메세지가 나타나고 나서야 자신이 들고 있는 휴대폰이 대포폰이며, 지불한 금액만큼의 데이터를 사용한 것을 깨달았다. 미친놈처럼 실소가 터져나왔다. 그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다른 사람들은 눈물과 빗물을 구분하지 못하겠지만 오직 자신만은 눈물의 온도가 빗물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그는 눈물이 많아서 곧잘 울곤 했다. 그러나 이를 아는 사람은 이이주 뿐이다. 그 외 많은 것들이 감추어졌다. 사람을 유난히 좋아하는 것과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을 감추려 늘 전전긍긍하는 것, 그리고 게임보다는 운동을 훨씬 좋아한다는 것들까지. 어떤 중요한 것들은 이선주 본인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렇다면 이이주와 이선주의 경계가 흐려져야 하는데 빗물과 눈물의 온도가 다르듯 이선주는 자신과 이이주가 다른 사람임을 빼곡하게 실감했다. 아마 이이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통화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휴대폰이 통화를 할 수 없게 된 사정에는 여러 사유가 있을 것이다. 데이터를 소진했다면 돈을 더 쓰면 되는 것이고 기기에 결함이 있는 것이라면 수리를 하거나 새로 사면 된다. 그러나 태초부터 불량하게 만들어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이선주는 눈을 감았다. 솨아아아아. 비가 쏟아진다. 그는 휴대폰의 전원을 껐다. 눈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그것이 그에게는 참으로 큰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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