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USS 스타맨 임무 중 이상 무

스타트렉 AU

유적 by 량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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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 일지. 우주력 2260. 24. USS Starman.

USS 스타맨의 선장 루 라몬테인이다. 현재 임무 사항, 중립 지대 성운 내부에서 감지되는 미확인 형태의 신호 추적, 미확인 유기 종족 존재 여부 확인. 현재 연방 순양선 USS 스타맨은 목표 성운에 도달 중이다. 대상 확인 후 보고 예정.

라몬테인 선장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수신기에서 짧은 신호음이 들렸기 때문이다. 기록을 중단한 그는 수신기의 뚜껑을 열자마자 들려오는 쾌활한 목소리에 작은 안도를 느꼈다. 이 함선에 있는 선원 대부분이 그렇듯 ‘제법 든든한’ 조타수 세베르 알피어스의 목소리였다.

─ 함교에서 선장님께 알립니다! 워프 완료했습니다. 성운으로 진입할까요?

“잠시 대기하십시오.”

─ 알겠습니다. 함교 아웃!

통신이 끊겼다. 루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로 소리 내어 말했다.

“함교까지. 직행. 트랜스포트.”

익숙한 트랜스포트의 감각 이후, 문이 열렸다. 몇 년 전까진 스타맨의 일등 항해사였던 루는, 전임 선장이 소장으로 진급하고 재고의 여지 없이 바로 선장이 될 수 있었다. 4분의 1 정도는 벌칸이고, 나머지 4분의 3은 인간인 이가 어느 정도로 선장 자리에 적격인지에 대해 논할 필요는 없었고, 스타플릿의 제독들은 그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USS 스타맨은 앰배서더 급의 순양선으로, 연방 영역 우주의 최전방에서 탐사 임무를 주로 맡고 있다. 스타맨의 현재 임무는 특정 성운 안에서 감지되는 미확인 신호의 정체를 확인, 새로운 생명체일 가능성이 있는 해당 신호의 송신자와 접촉하는 것이다.

“선장님 입장하십니다!”

지구 스코틀랜드의 억양을 클링온 언어를 사용할 때조차 유지할 수 있는 경이로운 능력의 조타수 세베르 알피어스가 외쳤다. 지구 출신의 프렌치-스코티쉬로서 완전히 다른 억양의 불어와 그와 유사한 외계 언어도 구사할 수 있는 그가 수석 통신 장교가 아닌 이유는 오직 스타플릿 최고의 천재 통신 장교 셰카이나 오를로프 대위가 탑승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빨간 셔츠보다는 노란 셔츠가 그에게 어울린다. 적어도 세베르는 그런 이유로 함교에 머물기를 주장했다. 물론 세베르가 위험에 처하기만 하면, 그러니까 걸핏하면 루에게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수준의 폭언을 퍼붓는 수석 군의관 오델 오데트를 진정시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이기도 했다.

“신호는 있습니까?”

자리에 앉으며 루는 말했다. 보이는 것처럼 선장석은 그다지 푹신하지 못하다. 신경이 쓰이는 지점은 아니다. 선장 루가 함교에서 크게 좋아하지 않는 점은 선장석이 중앙에 위치한다는 부담감 정도뿐이다.

함선 바깥에 비치는 성운은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한 광경이었다. 최연소 수석 통신 장교 셰카이나 오를로프가 대답했다.

“미확인 신호가 있습니다. 분석 시도할까요?”

“예. 부탁합니다.”

루는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셰카이나가 어깨를 으쓱였을 것을 알았다. 긍정의 날갯짓 같은 그런 동작을 루는 꽤 좋아했다. 물론 몇 초 지나지 않아 부적절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잠시 함교 안에 미확인 신호를 분석하는 신호음만 정적처럼 가라앉았다.

“분석이 불가하네요. 너무 멀어요. 위치는 현재 함선 목표 행성과 대략 일치합니다.”

“성운 내부로 진입합니다. 선내 전체 통신 채널 연결 부탁합니다, 오를로프 소령.”

“연결됐어요.”

루는 잠시 언어를 골랐다. 그리고 말했다.

“라몬테인 선장입니다. 현재 임무 수행 대상 행성이 있는 성운까지 도달했습니다. 지금부터 성운 내부로 진입, 할당 임무를 수행할 준비를 합니다. 성운 내부에 진입하게 되면 본부와의 연결이 끊어질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알아서 해결해야 합니다. 스타플릿의 모든 함선과는 다르게, 스타맨에는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지요. 그러니 싸우게 된다면, 지더라도 돌아오십시오. 이기고 죽어버리는 것은 용서하지 않습니다. 이상.”

통신이 종료되었다. 루가 전체 통신 채널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면 언제나 감동했다는 표정으로 글썽거리며 돌아보는 세베르의 시선을 무던히 마주하며 루는 말했다. 그것은 존경이나 경외보다는 ‘어떻게 저런 말을 맨정신으로 입 밖에 낼 수 있습니까? 정말 대단합니다.’ 에 가까운 것을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입하지요.”


선두부터 후미까지의 거리가 500m가 넘는 앰배서더 급의 순양선인데도, 우주를 유영하는 동안 스타맨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 바다에는 암초와 파도, 그리고 포식자 계층의 생명체가 있지만, 암흑 물질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주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 목적 없이 떠다니거나 거대한 질량의 힘에 이끌리는 소행성과 우주복을 입어도 몇십 분 만에 유전자가 국수처럼 죄 풀려 버릴 정도로 강한 방사능, 핵분열 때문에 발생하는 엄청난 열과 동시에 별의 열이 닿지 않는 곳의 엄청난 추위, 질량의 명백한 증거인 중력 등이 있을 뿐이다. 솜씨 좋은 조타수의 운전 덕분에 USS 스타맨은 순조롭게 눈에 보이는 장애물을 피해냈다.

붉은, 그러나 때로는 푸른, 또는 초록색의 다양한 먼지가 빛을 반사하며 반짝였다. 함선을 스치고 지나가는 빛의 구름. 그 모든 경이를 위해 탐험가들은 그곳에 있다. 바로 이곳이 그들이 있을 자리인 것이다.

“목표 행성 도달했습니다. 문명의 흔적이 감지됩니다. 스캔 결과 생명 신호 다수 감지됩니다.”

“트랜스포트가 가능하겠습니까?”

“좌표를 특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럼 내려가겠습니다. 셔틀베이, 출발 준비 완료되었습니까?”

 ─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선장님.

루는 선장석에서 일어나며 지시사항을 줄줄이 뱉기 시작했다. 벌칸답게 불필요한 사조가 많을 법도 했지만, 다행히도 말이 많은 성격은 아니었기에 루의 언어 구사는 보통보다 조금 과묵한 사람의 그것과도 같았다. 조금이라도 말이 길어질 때 수석 군의관이 빌어먹을 선장 어쩌고 하지 않아도 그는 말이 적다.

“사나크 과학 전문가. 행성 스캔 진행하고 샘플 분석 준비하십시오. 오데트 소령, 메드베이는 혹시 있을 응급 상황에 대비하십시오. 셔틀이 준비 완료되었다고 하니 오를로프 대위와 알피어스 소령은 나를 따라오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신이 난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세베르는 일어섰다. 루를 지나쳐 함교를 뛰듯이 가로지르는 꼴이, 아마 이런 식의 현장 투입에 많이 목이 말랐던 모양이다. 루는 잠시 셰카이나를 응시하다 함교 출입문으로 시선을 돌리고 걸어갔다.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현장 팀에 연인을 투입하기란 그다지 내키지 않는 일이고 그것을 매번 강력하게 주장하는 오델 오데트의 말을 매번 적극적으로 무시하는 선장 루지만, 임무 대상 행성에 어떤 종류의 익숙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는 종족이 존재한다면 금세기 최고의 천재 중 한 명인 셰카이나 오를로프가 함께하는 것이 응당 옳은 판단일 것이다. 물론 세베르의 경우에는 세베르 본인이 좀이 쑤셔 못 견딘다는 사실이 변명이 되어 주지만, 셰카이나의 경우에는 그런 변명도 그리 강한 이유가 되어 주지는 못한다. 그야 자그마한 덩치에 빼빼 말라 톡 치면 날아가게 생긴 이를 누가 현장 요원이라고 여기겠는가.

“빨─리─ 오세─요 함─장─님─!”

먼저 달려나간 세베르의 목소리를 쫓아 루는 느린 걸음을 옮겼다. 셰카이나의 보폭에 맞추기 위함이었다. 빨리 오라는 말과는 정반대의 행동이었으나, 선장은 세베르 알피어스가 아니라 루 라몬테인이므로 세베르의 불만이 큰 문제가 될 일은 없다. 적어도 루는 그런 마음으로 매사에 임하는 편이다. 세베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 178cm짜리 골든 리트리버를 닮은 청년에게는 아쉬운 일이겠으나.

“꼭 선장님이 가야겠어요?”

“같은 말을 돌려주고 싶군요, 대위.”

“저는 유용하잖아요.”

“나는 안전합니다. 저 행성도 특별히 위협적일 것 같지는 않군요.”

“미모의 통신 장교 한 명쯤 더 안전하게 해줄 수 있죠?”

“당신도 안전할 겁니다. 약속하지요.”

“……물론 저 역시 그런 영광을 누리게 해 주시겠죠, 선장님?”

셔틀베이 입구에 서서 양손을 허리에 얹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세베르를 마주하고도 루는 웃지 않았다. 그의 등 뒤에서 광분한 발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왜?”

루는 돌아보지 않았다.

“왜냐고, 이 망할 선장 자식아! 왜 또 셉인데! 데려갈 선원이 스타맨에 차고 넘치는데 왜 매번 하필─”

수석 군의관 오델 오데트 소령은 함선 내에서 유일하게 라몬테인 선장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삼가지 않는 인물이다. 루 라몬테인은 물론 언제나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알피어스 소령은 임무 수행 중입니다. 수석 군의관 오데트. 나는 스타맨에 승선한 어떤 선원도 편애하지 않습니다.”

“아, 그러시다? 그러면 저기 계시는 당신 애인한테나 그렇게 말해 보시지.”

세베르는 급기야 오델을 끌어안고 ─둘의 키는 완전히 똑같았기에 꽤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었으나─ 자기야 왜 그래, 우리 자기가 한 번만 봐주자, 나 진짜 요즘 좀 나가구 싶었어, 등의 말을 주워섬기기 시작했다. 하다 하다 선장의 애인까지 건드리는 자신의 애인을 말리기 위한 필사의 시도였다. 루는 셰카이나를 곁눈질로 돌아보았다. 귀가 새빨개진 채로 애써 셔틀베이의 담당 선원에게 말을 걸고 있는 셰카이나를 발견한 루는 다시 한번 말했다.

“예. 편애하지 않습니다. 나는 알피어스 소령이 스타맨 최고의 사격 성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데려가는 것이고, 오를로프 대위가 비인간 언어에 능숙한 통신 장교이기에 데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당신의 자리, 그러니까 메드베이에서 혹시 있을 수 있는 응급 상황에 빠른 대처를 할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는 것이 가장 좋겠군요. 베르게르트 소령. 승선을 준비해 주십시오.”

오델을 끌어안은 채로 고개만 돌린 세베르가 말했다.

“선장님, 오델도 같이 가도 될까요? 거기서 응급 상황이 생기면 아마 제일 잘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수석 군의관이니까요. 네?”

루는 고민하는 척했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실천해 보여주는 저 오델 오데트가 함선 안의 누구에게도 히스테리를 부리지 않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세베르 알피어스의 도움이 필요하다. 오델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세베르의 손을 꼭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셔틀에 자리 하나 남지?”

루는 고민하는 척을 멈췄다. 딱 그 정도의 시간을 들여야만 그의 말에 조마조마하게 집중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소령이 길길이 날뛰기 직전에 그는 대답했다.

“좋습니다.”


USS 스타맨의 셔틀이 행성을 향해 출발했다. 큰 함선을 조종할 줄 아는 이가 작은 수송선을 조종할 수 없을 리가 없으니 셔틀의 조종은 세베르가 맡았다. 흔들림 없이 먼지구름을 뚫고 행성 대기로 진입하는 그의 솜씨는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대기 진입 완료했습니다.”

“M급 행성. 생명 신호가 여럿 감지됩니다. 미확인 생명체일 가능성이 있어요.”

“신호 가까이에 내리지요, 알피어스 소령.”

“넵!”

우렁차고 씩씩한 대답이 돌아왔다. 군기가 잡힌 것은 아닐 테지만, 세베르의 조용한 대답은 되려 드물다. 그러니 씩씩하지 않은 대답이 돌아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착륙합니다. 조금 흔들릴 수도 있어요!”

말은 그렇게 해도, 셔틀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부드럽게 착륙했다. 칭찬을 바라는 얼굴로 셔틀 안을 쭉 돌아보는 세베르에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세 명이 동시에 말했다.

“잘했어, 셉.” “대단했어요. 세베르.” “흥미롭군요.”

세 명의 칭찬을 동시에 받은 세베르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간식은 칭찬에 동봉되지 않았지만, 세베르는 마치 가장 좋아하는 간식을 방석 아래 숨겨놓은 양 흐뭇해했다. 아카데미의 생도들이 저 표정에 대부분 홀려 있었다는 소문을 부정할 수도 없겠다고 루는 생각했다.

“M급 행성이라면 인간형 생명체가 존재할 수도 있어요. 이 행성이 어느 정도의 문명의 흔적이 있는 것을 보아, 그리고 아주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소통이 가능한 문명 지성체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셰카이나의 브리핑은 셔틀 바깥으로 나간 뒤로도 종알거리며 이어졌고, 다른 세 명의 스타플릿 장교들은 말을 끊거나 재촉하지 않았다. 미지를 향해 한 발짝 나아가기 직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셔틀 바깥의 풍경은 밝고 부드러웠다. 지구와 닮은 풍경은 아니었다. 지표는 옅은 분홍색의 입자로 덮여 있었고, 곳곳에 금빛 식물이 지구의 산호와 비슷한 모양으로 뻗어 있었다. 대기에는 연두색의 미확인 입자가 빛나며 떠다녔다. 행성의 중력은 지구보다 아주 살짝 약한지 우주복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기압 차가 느껴졌다. 세베르는 평소보다 높이 점프할 수 있다며 지표를 박차고 뛰어오르려 했다. 그것을 묵묵히 손짓으로 말리며 루는 지표의 샘플을 채취하는 셰카이나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생명 신호는 어떻습니까.”

스타맨에서 가장 사무적이기로 유명한 커플인 루와 셰카이나는 둘만 남겨지지 않은 상황에서 특별한 애정행각을 하는 것을 삼갔다. 적어도 그의 의도는 삼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편애적인 눈빛이나 목소리 같은 것은 어쩔 수가 없었고, 오델은 다른 사람과 세베르를 향한 자신의 태도 차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그것을 당당하게 역겨워했다.

셰카이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기계를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이상하네요. 지표 아래서 감지돼요. 지하가 아니라 지표에서 느껴지는 생명 신호는 없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지표에 있는 문명의 흔적이 다가 아닌 것 같아요. 행성 기후가 밤이 되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하에도 뭔가가 있어요. 생명체들은 이 아래서 사는 모양이에요.”

그리고 셰카이나는 루가 기계의 화면이 아니라 자신의 옆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갑작스러운 시선의 마주침이었으나, 루는 당황하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셰카이나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루가 먼저 말했다.

“그럼 내려가야겠군요.”

숨결이 닿을 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다만 속눈썹이 떨리는 소리가 들릴 수는 있었다. 셰카이나는 입술을 꾹 다물어 옆으로 잡아당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는 셰카이나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고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오델은 세베르가 펄쩍펄쩍 뛰어다니지 못하도록 손을 꼭 잡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경멸하는 투로 바라보고 있었다. 기이한 광경이었으나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쾅!

굉음과 함께 무언가가 갈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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