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Don't Stop Believing

just a city boy, born and raised in south detroit

유적 by 량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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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여름, 까만 배냇머리의 남자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디트로이트 남부의 뒷골목에 도착했다.

그때 아이는 클리브 라몬테인이라고 불렸으며, 그마저도 자주 언급된 적 없었다. 모친은 그를 낳다 죽었으며, 손위의 형제 제이슨 라몬테인이 생계를 책임졌다. 배운 것 없고 할 줄 아는 것 없는 디트로이트 할렘가의 젊은이가 택한 일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깨끗하지 못했다. 클리브 라몬테인에게는 썩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지만.

클리브 라몬테인은 모든 불순한 것을 통해 자랐다. 사람을 죽여 번 돈으로 배를 채웠고, 학교에 다녔다. 훌륭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특별한 문제아도 아니었다. 그러는 종종 거실 바닥을 뜯어 권총을 지나치게 꼭 쥔 채 침대 밑에서 숨죽였고, 마약임이 분명한 꾸러미를 가방에 넣던 자신의 형이 어린 자신을 서글프게 바라보는 것을 마주 보았다.

삶은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그냥 당연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대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국 육군에 입대했다. 썩 숭고한 의도는 아니었다. 기초적인 교육을 계속 받을 수 있고, 일정에 따라 움직일 수 있으며, 급료를 따로 받는 동시에 의식주가 제공되었다. 클리브는 자신이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 알지 못했다. 조국은 확실히 아니었다. 어쩌면 그의 이름. 그를 살게 한 것들. 형. 연인. 친구를 지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군대에서 그는 뜻밖의 재능을 발견했다. 클리브 라몬테인은 천부적인 살인자였다.

이라크전에 파병되어 그는 깨달았다. 전쟁은 삶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삶은 또다시 그에게 슬픈 것도 기쁜 것도 아니었다. 당연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 것도, 날붙이 하나를 잘만 다루면 사람의 숨이 끊어지는 일도, 힘을 준 손아귀 안에서 목뼈가 부러지는 감각도. 그리고 그런 일이 자신과 전우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도. 무엇보다 자신이 그 일에 지나치게 재능이 있다는 사실도. 그는 태어나 자랄 때부터 사람을 죽여 살아갔고, 그 일을 즐기지 않았지만 동시에 죄책감을 지나치게 갖지도 않았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조국의 이름을 명예롭게 하고 돌아온 클리브 라몬테인의 손끝과 발끝은 피멍과 살점으로 너덜거렸다. 그때 그는 더는 클리브 라몬테인이 아니었다. 루. 귀국 후 특수부대원에서 CIA 정보원으로 적을 옮길 때, 그는 자신을 그렇게 설명했다.

클리브 라몬테인 씨, 맞죠?

아니요. 루 라몬테인입니다. 그렇게 적어 두세요.

그리고 루는 클리브를 설득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항불안제와 항우울제, 수면유도제와 진정제를 이용해서. 너는 이제 네가 아니라고. 네가 될 수 없다고. 그러나 이게 루 라몬테인이라고. 그러니 가서 이기라고. 정복하고 짓밟으라고. 그게 네 삶이니까.

그에게 삶과 전쟁은 다르지 않았다. 본질적으로 군인과 유사한 요원 일을 그만두고 별안간 청부업자로 직업을 바꾼 것도 그런 뜻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삶이 전쟁이라면, 그는 살인자로 남고 싶었다. 어차피 그가 디트로이트 뒷골목에 도착한 1980년 8월부터 시작된 전쟁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면, 차라리 누구에게도 미안해하지 않는 비정한 이로 남고 싶었다. 변명해 보았자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클리브 라몬테인은, ‘사실은 살인을 원하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천재적인 살인자였으니까.

그 모든 것을 아울러 가장 끔찍한 점은 클리브가 여전히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는 헨리 오를로프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방아쇠를 당기기 전, 꼬마 오를로프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셰카이나 오를로프의 무언가 결여된 눈동자를 기억한다. 아주 천성적인 결핍이어서, 불편함을 느낄 수조차 없는 사람의 눈 말이다. 애당초 글을 새길 수 없는 재질의 텅 빈 석판처럼. 아마 아버지가 죽는다고 해도 꼬마 셰카이나는 슬픔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눈물을 흘릴 수는 있겠지. 그게 다른 모든 사람이 보이는 반응이고 셰카이나는 일반적인 반응을 통해 감정을 가장하는 데에 밝았으므로. 하지만 헨리 오를로프의 죽음이 셰카이나의 마음을 괴롭게 하지는 않을 터였다.

루는 헨리 오를로프의 눈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외면하려 애쓰던 무언가가 코앞에 있는 듯한 느낌에 총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방아쇠를 마저 당기지 않은 선택을, 그는 평생토록 후회한 적 없다.

어쩌면 루 라몬테인은 지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헨리 오를로프에게 총을 쥐여 주고, 그 앞에 무릎 꿇은 뒤 자신을 쏘라고 하고 싶을 만큼 지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굴었으면서, 뻔뻔하게도 고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감정에 굴복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주제넘게 슬퍼하고 싶었는지도, 어쩌면 멍든 손끝과 자신의 이름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가도 떠올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나아갔다. 고작 그 정도. 단 한 번 방아쇠를 당기지 않은 정도만.

 

앞을 봐요. 올곧고 명백하게. 당신은 한계를 정복할 수 있어요. 한 발짝. 그거면 돼요.

 

셰카이나의 말을 들은 순간 그는 분노했다. 다음 순간 그는 억울했다가, 모멸감을 느꼈다. 그러나 끝에는 무력해졌다. 셰카이나가 자신을 정말로 미워할 수 없기에 할 수 있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마치 진심으로 그가 더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셰카이나 오를로프는 누군가를 싫어하는 데에 재능이 없었다. 그런데 그 앞에서 루 라몬테인은 마치 온 세상이 자신을 미워하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루는 그런 자신이 싫었고, 동시에 셰카이나의 용서가 기뻤다.

그는 후회하고 있었다. 그래서 셰카이나를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지쳐 있었다. 그래서 삶으로부터 도망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이미 도망치고 있었다. 그래서 달리던 대로 계속 달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셰카이나 오를로프가 루 라몬테인의 패배에 유예를 두었으므로. 그리고 오로지 셰카이나 오를로프만이 그럴 수 있었으므로 그러지 않았다. 루는 그녀를 비롯해 더는 어느 무엇도 기만하고 싶지 않았다.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이유로 그는 살고 싶었다. 인간이기 때문에. 셰카이나가 인간이기 때문에. 작은 심장이 뛰고 숨소리에 웃음이 섞이는 인간이기 때문에.

셰카이나가 그를 용서하기 이전부터, 루는 이미 셰카이나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 묻고 싶다고 생각했다. 때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완벽한 때가 될 거라고 기대한 적은 없지만, 그에 준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한다고 말해도 되겠습니까?

 

그는 이제 도망치지 않는 법을 안다. 피하지 않는 법을 안다. 지는 법을 알고, 사랑하는 법을 안다.

왜냐하면, 그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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