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로그

동부저지의 추억 하나

Esh Eil, 블루벨 버드

* '자캐 커뮤니티 <Esh Eil>'을 러닝한 블루벨 버드의 과거 로그입니다.



“너는 집이 어디냐?”

“집이요? 여긴데.”

아이가 가리킨 곳은 커르다스 동부저지의 이름 모를 들판과 그 들판 위에 걸쳐진 하늘이었다. 그것을 본 트리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 작은 탄식을 들은 아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왜 그러는데요?’라는 질문을 했다.

“네 인생 참 기구하다 싶어서.”

“뭐, 그런 편이죠.”

어쩐지 달관한 듯한 아이의 대답에 그는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 그 몇 초간의 짧은 정적을 뚫고 나온 아이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런데, ‘기구하다’가 무슨 뜻이에요?”

트리시아는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뜻도 모르면서 ‘그런 편이죠.’라고 답하는 아이를 어떡하면 좋을까.

“됐다, 내가 어린애 데리고 무슨 말을 더 한다고. 그건 네가 다 먹어라.”

”고맙습니다. 이거, 엄청 맛있어요.”

아이는 신난다는 표정으로 그가 준 밀크티를 맛있게 꿀꺽꿀꺽 마셨다. 타들어 가는 그의 속도 모르고.

“그런데 너, 앞으로 갈 데는 따로 있냐?”

“딱히요? 그냥 걸어가다가 마을이 보이면 하루 신세 지고 그러는 거죠.”

그는 슬슬 이 대화가 짜증이 나려고 했다. 아이의 태도를 보아서는 자신에게 나쁘게 대하던 사람은 없었던 모양이긴 했다. 하지만 고작 해봐야 10세를 채 넘겼을까 싶은 어린애 주제에 혼자서 떠돌아다니는 것도, 달관한 말투를 쓰는 것도 달갑지가 않았다.

그 감정이 뭐라고. 트리시아는 아이에게 꺼낼지 말지 고민하던 말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너, 그러면 나랑 같이 가자.”

트리시아 딴에는 이틀을 넘게 고민했던 일이었다. 자신이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객식구를 하나 늘리는 꼴이었으며, 이리저리 출장을 다니며 치유사 일을 하는 자신이 아이를 얼마나 잘 챙겨줄지도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아이를 데리고 떠날 결심을 하게 된 까닭은… 아마도 동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은 언약자를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에.

하지만 그런 용기가 무색하게, 아이의 반응은 꽤 쌀쌀맞았다.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면 안된댔는데.”

“야… 씨… 교육은 잘 받았네. 그래 나를 몇 번이나 봤다고 덥석 따라오겠냐…”

하지만 트리시아는 이 아이를 커르다스에 두고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이야 운이 좋아서 떠돌아 다녀도 멀쩡하게 지낸다고 하지만,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이 들판 한가운데에 두고 가는 것도 할 짓이 아닌 것 같았다.

“너, 근데 어차피 따로 지붕 짓고 사는 데도 없잖아. 그리고! 내 지갑 훔치려고 들었으니까 적어도 나한테 혼은 나야 하지 않겠냐?”

그래서 결국, 자신이 가장 쓰고 싶지 않았던 억지를 부리며 어떻게든 데려가기로 결심했다.

“그, 그건 그렇지만… 원래는 지갑을 훔치려고 했던 게 아니라 그 옆에 있던 육포 주머니를…”

“아, 어차피 훔치려던 건 똑같잖아. 도둑질 할 마음을 먹은 게 괘씸한 벌이다. 나 따라다니면서 내가 하는 일이나 좀 도와.”

자신이 부리는 것이 억지인 것을 본인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이 아이에게 정이 들어버린 것이다. 그깟 정이 뭐라고.

“음… 나한테 선택권은 없는 거죠?”

“잘 아네. 그러니까 지금부터 따라와서 일 좀 해.”

하지만 그런 억지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그를 고분고분 따라주었다. 중간중간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으면서 그의 정신을 쏙 빼놓고는 했지만, 그런데도 트리시아는 그런 그 아이가 밉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꽤 즐거워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던 것을 보면 말이다.

“그래서, 넌 이름이 뭐냐. 깜박하고 여태 한 번도 안 물어봤네.”

“내 이름이요? 아마도 ‘블루벨’일 거예요.”

“아마도가 뭐냐? 아마도가… 아무튼 처음이니까 그냥 가벼운 물건이나 옮겨 놔.”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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