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14][빛의전사]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에메트셀크 드림주, 칼리타 루인
#00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에오르제아 남쪽 끝, 사골리 사막 너머 이름조차 없는 모래사막.
유독 태양이 뜨겁게 타오르던 날, 허공에 에테르가 휘몰아치며 작은 구멍이 생겼고 그 틈을 비집고 사람 하나가 모래 위로 떨어졌다. 삼각형 귀와 긴 꼬리를 가진 창백한 여자는 짧은 단어만을 중얼거리며 첫 여행을 시작했다. 가여운 조난자와 아말쟈족의 시체를 뒤져 짐을 꾸리고, 바위 틈에 웅크려 밤을 보내며 한참을 사막 망령처럼 떠돌았다. 목적지가 없으니 여행이라기보단 방랑에 가까웠다.
한동안은 다날란 끝자락 작은 마을에 머물렀다.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 밥값 겸 사냥을 다녔고, 그렇게 꽤 오래 머무르니 울다하의 모험가 길드를 추천받았다. 그 말을 듣고 바로 다음 날 이른 아침에 길을 떠났다. 단단한 가죽 주머니에 물을 채우고, 오래 먹을 수 있는 육포와 대구절임과 납작빵 따위를 가방에 쑤셔넣었다. 단출한 짐가방 하나에 제 몸만 한 대낫 하나만 들고 떠난 두 번째 여행이었다.
도시는 시끄럽고 복잡했다. 귀찮은 인간들이 한가득. 신경써야 할 일이 뭐 이리 많은지.
"나이도 출신지도 불명... 아니, 큰 문제는 없어. 각자 저마다 사연이 있는 법이니까. 여기에 이름만 쓰면 끝이야. "
눈살을 살짝 찌푸린 채 깃펜을 잡았다. 희미한 기억을 되짚어 이름을 쓴다. 이것이 제 이름인지조차 확신이 없지만, 가장 강하게 기억나는 것. 글씨체는 깔끔했지만 적힌 이름은 남의 것을 베껴 쓴 것 같았다. 쓰고 나니 제 이름이 맞다는 기묘한 확신과 이유 모를 불안감이 밀려왔다.
name_ caly t a
언제까지고 이방인으로 지낼 수는 없다.
칼리타는 방랑을 끝내고 여행과 모험을 시작하기로 했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물 부어진 수채화처럼 흐릿한 자신을 찾기로 했다.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칼리타의 가장 큰 결점은 무연고도 기억상실도 아니었으니. 그것은 공감능력의 부재.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또한 알 수 없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니 소중한 것도 없다. 살아기로 했으나 특별히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 시작부터 벽에 부딫힌 셈이다. 결국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 당장 흥미가 가는 것 만을 쫓으며 어린아이처럼 굴었다. 이제는 제법 친해진 모모디는 그런 칼리타를 걱정했지만 어째 처음 만났을 때보다도 감흥이 없었다. 익숙해진 것은 금방 질린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더 밝게 불타오를 것. 이 끝없는 공허를 채울 것이 필요했다.
눈을 떴더니 태양인 줄 알았던 빛이 겨우 제 발밑만 비추는 촛불이었다면, 그 촛불을 잔뜩 켜 두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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