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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드로나와 아슈바타만의 대화

언젠가 아버지께 드리스타디윰나에 대한 일을 여쭤본 적이 있다.

“아버지께서는 어째서 스스로를 죽일 운명을 타고난 자를 가르치려 하십니까?”

그가 판찰라 왕 드루파다의 자식으로, 제 아비의 고행을 통해 아버지를 죽일 운명을 타고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아버지께서는 흔쾌히 그의 교육을 받아들이셨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내게 드리스타디윰나의 존재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를 미워하지 않기란 불가능했다. 언젠가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갈 존재. 그 낙인이 너무나도 증오스럽고 두려웠기에. 헌데 아버지 당신께서는 어째서 제 목을 노리는 자를 가르치신단 말인가?

나의 말에 아버지께서는 그저 말없이 미소를 지으실 뿐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아버지께서는 드루파다 왕과 그 자식을 미워하지 않으십니까?”

그것은 드라스타디윰나뿐만 아니라 그의 여동생 드라우파디에 대한 말이기도 했다. 드라우파디는 몇 년 전 스와얌바라를 통해 판다바의 아내가 되었다. 그녀 또한 원수의 딸이긴 매한가지일 터. 그럼에도 아버지께서는 여즉 그녀와 맺어진 판다바를, 아르주나를 친아들 보듯 아끼셨다. 나는 도저히 아버지의 의중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한 손으로 내 머리를 간질이며 말씀하셨다.

“어느새 나보다 크게 자랐구나.”

곧 머리칼을 간질이던 손질이 떠나갔다. 나는 그것이 못내 아쉬워 그 분의 온기가 느껴지는 머리칼을 매만졌다.

“내가 드루파다에게 찾아갔던 것, 카우라바와 판다바에게 닥슈나를 요구해 그의 왕국을 침탈했던 것 모두 네가 나보다 작았을 적의 일이지. 오래 전의 일이지만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비록 원인을 드루파다가 제공했다고는 하나 나는 그의 것을 빼앗아 그의 원수가 되었다. 그렇다면 나 또한 그에게 무언가를 빼앗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설령 그게 목숨이라도 말이다.”

“그를 죽여 살아남으실 수도 있으시잖습니까?”

“그래서는 안 된다. 아슈바타만. 운명이란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고, 또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다. 두료다나가 쿠루 족의 멸망을 불러오리라는 것도, 아르주나가 영웅이 되리라는 것도, 나의 죽음도 모두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 나는 두 번 다시 네가 배를 곯으며 살아가지 않기를 바랐고, 그것은 이루어졌다. 그러니 나는 대가를 치를 뿐이다. 나는 준비가 되어 있어.”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버지께서는 그런 내 모습을 잠시 바라보시더니 말씀을 이으셨다.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똑같은 선택을 할 테지.”

“제가 없었다면 아버지께서는 그런 운명을 맞이하지 않으셔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것은 상상하고 싶지 않구나. 그리고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나는 그 이유를 일찍이 알았을 뿐, 달라질 것은 없어.”

그리고는 긴 한숨을 내쉬셨다. 그것은 한탄이나 후회보다는 후련함에 가까운 것이었다. 아버지께서는 곧 나를 똑바로 바라보셨고, 나도 아버지의 눈을 마주 바라봤다.

“나는 네가 언젠가 닥쳐올 나의 죽음에 너무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명심하겠습니다. 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솔직하니 좋구나.”

아버지께서는 너털웃음을 터뜨리셨다.

“모든 것은 운명대로 될 테지. 너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이 너무 가혹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아슈바타만.”

그때 아버지께서 남기신 마지막 말씀은 아직도 내 안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함께 바라보던 노을도, 내 어깨를 짚던 그 분의 온기까지도.

운명은 나와 아버지 모두에게 가혹했다. 아버지께서는 당신께선 상상도 못하셨을 비겁한 수로 돌아가셨고, 나는 분노를 금치 못하고 죄를 저질렀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3000년의 형벌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순간이 돌아온다면, 오래 전의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아버지께 똑같은 질문을 하고, 똑같은 삶을 살고, 똑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 운명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 만약의 세계만큼이나, 내가 살아온 세계도 소중하기 그지없기에…….

아버지를 이해하기까지는 300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그 시간 또한 무의미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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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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