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6] 조류

사망소재주의~ 6러6 3인합작 그 중 하나(라고생각함)

“전우…”

전우, 그래.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전우’였다.

전우로서 이 관계에 끝을 맺을 수 있도록. 이 관계가 원한과 증오로 얼룩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라는 구실 좋은 명목이 사라지기 전에.

*

“감히 워치포인트 심도 내부에서 저희 아르카부스보다 한발 앞서나간 쥐새끼가 있는 모양이더군요. 신분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해방전선 또는 독립 용병일 겁니다. 모쪼록 처리해 주시길.”

브리핑 중 차석 대장이 내어 보인 흐릿한 화질의 AC 사진. 러스티는 화면 속 AC의 주인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루비콘 토착 기업의 흔하디 흔한 탐사용 AC. 그러나 그런 흔해빠진 기체를 타고서 대심도와 같은 전장을 누비는 존재라면 한 사람밖에 없었다. 레이븐. 함께 벽을 넘고, 우주 공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아이스웜도 함께 잡은 사이다. 그의 기체 구성이나 무기나 그에겐 익숙한 것이었다.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레이븐, 그는 루비콘에 있어 크나큰 위험이었다.

*

기나긴 사투 끝에, 반파된 AC 그 철로 된 관짝 속에서 몸도 가누지 못한 채 끄집어내진 상대를 바닥에 뉘이고서. 러스티는 그를 한참동안이나 내려다보았다.

“러스티… 내 뒤를 밟고 있던 게 너인 줄 알고 있었어…”

추락한 까마귀의 입술이 달싹였다. 까마귀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그가 한눈에 레이븐을 알아보았듯 레이븐 또한 그를 알아보았다. 그러면서도 서로는 서로를 죽이기 위한 임무에 기꺼이 떠밀어졌다. 이것이 그 결말이었다. 그를 내려다보며 러스티는 현기증을 느꼈다. 자유 의지의 상징, ‘레이븐’. 핸들러의 개라는 신분으로 어울리지 못하게 그런 이름을 달고서 누구보다 높이 날아오르던 이의 AC는 땅굴의 가장 깊은 곳에서 초라하게 뒹굴고 있었다.

그는 이윽고 까마귀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가까워진 붕대투성이 까마귀의 몸에선 약품으로 인한 악취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가냘픈 목이 그의 손 끝에 닿았다. 그것을 그러쥔다. 두 손으로 내리누른다. 체중이 실린 몸에 괴로워하는 소리를 낸다. 까마귀의 몸이 지면에 깊게 맞닿는다. 까마귀의 숨이 가빠진다. 까마귀는 저항하지 못한다. 아니, 저항하지 않는다. 어쩌면 까마귀 스스로도 아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것이 그가 사냥개가 아닌 까마귀로서 죽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전우… 내겐, 내겐 해야 할 일이 있어…”

그렇기에 널 죽여야 한다. 너인걸 알면서도 기꺼이 죽이기 위해 심도 깊은 곳으로 내려왔다. 레이븐의 붉은 눈이 마침내 빛을 잃을 때까지, 그는 몇 초, 몇 분, 어쩌면 시간이 될 때까지 그는 그곳에서 까마귀와 눈을 마주친 채 영원 같은 시간을 버텼다.

해오라기는 까마귀에게 닿을 수 있을까, 희지 못한 청백빛 새와 검지 못한 검은빛 새는 나란히 땅 속 깊은 곳에 내려앉았다. 구덩이 바깥으로 날아오르는 것은 푸른 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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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네 님 작성본

루에님 작성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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