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면요리수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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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죠 죠타로는 부족한 것이 없었다. 막대한 부를 가진 가정에서 미려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 언제든 그를 지지해주는 어머니와 프로이트에 따르면 태어나서부터 어머니를 두고 싸워야 할 아버지의 잦은 부재 아래서 자랐으며 사람을 원하면 사람이, 물질을 원하면 물질이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삶. 그러한 환경 덕에 그의 언행은 거침이 없었고 사람들은 그에게 더욱 열광했
무대 아래에서 들려오는 함성이 하늘로 승천하는 용처럼 우렁차다. 관객이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는 소리가 심박음과 같아서 살이 다 떨려온다. 조명이 오르고 스크린에 밴드 이름이 뜨자 살 떨리던 소리는 이내 우리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로 바뀐다. 폭풍우 치는 바다 같은 무대로 뛰어들기 전에 뒤를 돌아보면 하이어로팬트 그린을 든 카쿄인, 기타를 둘러메고 맥주를 들
하이어로팬트 그린의 숙주에게도 이름이 있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게 됐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적으로 스탠드사로서의 두각을 나타낸 - 다르게 말해서, 태어나자마자 스탠드로 분만실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다. - 그를 우리는 부모에게서 넘겨받아 키워왔다. 우리는 하이어로팬트 그린을 단련시키기 위해 숙주에게 적당한 영양분만을 공급하면서 정신적 수련을 폭
사랑과 세계 중 하나를 고르라는 질문은 너무 오래 씹어 과일맛이 다 빠진 껌처럼 재미없는 놀이다. 사랑을 구하면 세계가 망가지고 세계를 구하면 사랑을 잃는다니. 이 질문에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는 분명 무언가를 간절히 사랑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사랑이란, 멀쩡히 잘 있는 세계를 비틀어 잘게 부술 각오가 있어야 한다. 쿠죠 죠타로에게 열일곱의 겨울은 뜨겁고
쿠죠 죠타로는 가끔,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다. 금어기가 되어 어선이 쓸모가 없어졌을 때에 그는 어부에게서 배 한 척을 빌린다. 죽으러 가는 건 아니지? 늙은 어부가 그리 말하면 죠타로는, 나는 빌린 것은 반드시 갚는다, 고 말하며 작은 배의 시동을 건다. 날씨는 쾌청. 바람도 잔잔하다. 그런 날만을 골라 배를 빌린다. 가끔 그는 참을 수 없이 무언가를 욕
이 보고서는 19■■년 ■■월 ■■일 쿠죠 죠타로 박사가 국가 J 인근 바다에서 발견, 채집한 신종 생물에 대한 연구 보고서이다. 이 생물은 기존 학계에 보고된 적이 전무하며 해당 국가의 설화에도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보아 신종 생물이라 간주한다. (사진이 붙어있어야 할 곳이 거칠게 찢어져 있다.) 외형: 투명한 슬라임 형태. 이 때문에 물 속에 있는 이 생
“카쿄인, 널 좋아한다.” “⋯?” “너 말하는 거 맞다.” “아…….” 감정의 대상을 확실히 해주자 카쿄인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예스라고도 노라고도 볼 수 없는 모호함은 이내 안타까운 확실함으로 굳어졌다. “미안해요. 조금 더 빨리 말해줬으면 좋았을걸…….” “…무슨 뜻이지?” “널 좋아했어요, 죠타로.” “‘했다’는 건…….” “지금은 아니에요.” “…
사막의 낮이 뜨거운 만큼 사막의 밤은 차갑다. 뼛속까지 시린 추위를 고작 모포 한 장과 교복 차림으로 버티다 보면 감히 태양의 권위에 도전할 생각은 하지 않게 된다. 어깨 위의 모포를 더 끌어당기며 죠타로는 작게 욕을 씹었다. 아무리 작은 모닥불이 있다지만 오히려 불을 쬐지 않는 몸이 더 춥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불 위에서 뜨겁게 끓은 우유를 한 모금 들
망망대해에서도 죠타로 일행은 안심할 수 없었다. 스탠드사는 배를 크게 만들 수도,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알고 싶지는 않았다. 뒤따라오던 재단의 도움으로 가출한 소녀 앤과 함께 간신히 오른 육지에서 좀 쉴 수 있나 싶더라니 폴나레프가 홀로 스탠드사에게 당해 온데다 그가 배신자라는 정보까지 염사로 전해져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죠타로가 폴
“Whoop whoop pull up! Whoop whoop pull up!” 계기판이 위급한 소리를 내며 극단적인 고도 하강을 알렸다. 조종석 뒤로 승객들의 비명과 승무원이 그들을 안정시키는 소리, 안전벨트를 매라는 알림 소리가 섞여 어지러웠다. 이래서 영감 하고는 낙타도 같이 타면 안 되는 거라고, 과거의 자신을 한 번 탓하고는 조종석 안을 둘러보았다.
여정은 끝났다. 죽을 사람은 죽었고 살 사람은 살았다. 어머니는 무사하고 흡혈귀는 죽였다. 그리고 일본행 비행기에는 나와 영감밖에 타지 않았다. 일본에 도착한 뒤 영감은 나 보고 감정을 막아두지 말라고 했다. 감정은 물과 같아서 한 곳에 가둬두면 고이고 고여 썩어버린단다. 아마 카쿄인의 죽음을 안 뒤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걸 지적하는 거겠지. 하지만⋯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