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1

1

그 애를 처음 만난 건 중학교 3학년 2학기가 중반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 때 그 애를 처음 만난 건 그 애가 중3 2학기가 되도록 같은 반이라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없어서가 아닌-아무리 존재감이 없다고 한들 중3 2학기가 되도록 반 일원임을 모를 리 없다-중학교 3학년 2학기에 전학을 왔기 때문이었다. 당시 그 애의 등장은 다른 아이들에게 다소 충격을 주었다. 중학교 3학년이 전학을 오는 건 드물 뿐만 아니라 2학기에 전학생이 올 확률은 현저히 적기 때문이었다. 대단한 사고를 쳐 강제 전학을 오지 않는 한 중학교 3학년, 더구나 2학기에 전학을 오는 일은 없었다. 하여 한가로운 3-5반-5반의 정원은 29명으로 30명에서 31명 정도 되는 다른 반에 비해 인원이 적었기에 전학생이 5반에 오는 것으로 결정됨은 당연했다-의 아이들은 전학생의 등장에 제법 겁을 먹고 있는 상태였다. 여자 아이들은 웹툰이나 소설, 드라마에서나 등장하는 일진이 오는 것은 아닌지 수근대기 시작했고, 남자 아이들은 부러 큰소리를 치며 겁을 물렸다.

당시의 나는 그닥 별 감흥이 없었다. 반 안에서 나는 외톨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기에 시시덕거릴 친구 따윈 없었다. 단지 전학생이 나를 건드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같은 반 학생들처럼 그저 그런 대로 지나가듯 인사를 가끔 나누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구태여 건드리지는 않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숙덕대며 들썩이는 반 안으로 선생님이 앞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이들은 금세 조용해졌고 반 안은 긴장감이 맴돌았다. 선생님은 대강 반의 기류를 알아챈 것인지 아이들의 멀뚱한 시선을 한 바퀴 둘러 보다 입을 열었다.

"전학생이 왔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중학교 3학년 2학기에. 대강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이만 전학생 소개를 할까?"

아이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라면 활기차게 대답했을 반의 모든 학생들이 입을 꾹 다물고는 상상 속 흉악한 전학생의 모습을 떠올리며 긴장감에 눈을 바삐 굴렸다.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님은 앞문을 옆으로 밀어 열고는 밖에서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전학생을 불렀다. 앞문을 열고 들어오는 선생님 뒤로 전학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심리적인 요인에서인지 전학생의 발걸음 소리는 다소 묵직하게 들렸다.

검게 내려앉은 머리카락과 다소 희게 보이는 피부, 왼쪽 눈 아래에는 작은 눈물점이 있었으며 가녀린 체형은 아니었다. 운동을 제법 열심히 한듯 보이기도 했다. 눈꼬리가 올라가 조금 길게 찢어진 여우의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예상과는 다른 전학생의 모습에 아이들은 눈을 깜빡이며 입을 다문 전학생을 바라 봤다. 시선이 온통 전학생에게로 향했다는 것만은 왼쪽 창가 가장 뒷줄 구석에 앉은 나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전학생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정유민, 서울에서 전학 왔어."

그리고 곧장 입을 다물었다.

선생님은 더이상 할 말이 없는지 묻기라도 하는 양 정유민을 바라 보았다. 정유민은 그에 답하기라도 하듯 입을 굳게 닫은 채 말을 잇지 않았다. 선생님은 왼쪽 창가 뒷줄 구석에 앉은 내 옆 텅 빈 책상을 가리켰다. 모든 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신비로운 전학생 '정유민'의 자리는 왼쪽 창가 뒷줄 구석에 앉은 외톨이 '윤재현'의 옆자리였다.

한 반에 전학생이 오면 적어도 1시간, 길면 2시간 정도 관심을 받기 마련이었다. 더구나 서울에서 온 전학생이라면 더욱이 관심을 받기 충분했다. 간만에 텅 빈 옆자리가 소란스러워진 유일한 날이었다. 아이들은 하나둘 정유민에게 질문을 날렸다. 우선 가장 중요한 전학을 온 이유부터 거론되기 시작했다. 왜 전학 온 거야? 반에서 제법 당당하기로 소문난 남자 아이가 이야기를 꺼냈다. 정유민은 한참을 대답이 없더니 아이들이 한 번 더 물어서야 귀찮은듯 질문에 답했다. 아버지 일 때문에. 아버지 무슨 일 하시는데? 몰라도 돼. 다시 이야기가 뚝 끊겼다. 눈치 빠른 몇몇의 아이들은 정유민이 반 학생들을 귀찮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용히 뭉쳐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짓궂은 몇몇의 아이들은 끝까지 남아 정유민에게 질문을 던졌다. 서울은 어떻냐는 둥, 학교는 어땠냐는 둥, 간단한 질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유민은 영 대답할 마음을 내보이지 않았다.

몇몇 아이들은 3교시가 끝난 후 쉬는 시간까지 정유민의 자리에 찾아가 질문을 했으나 더이상 정유민이 입을 열지 않자 그제서야 그의 곁에서 사라졌다. 정유민은 작게 숨을 내쉬며 책상 위에 엎드리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내가 있는 왼쪽 창가 뒷줄 구석의 자리로 말이다. 가만히 그 꼴을 염탐하던 나는 정유민과 눈을 마주치자 잘못을 들키기라도 한 것마냥 숨을 들이킨 상태로 굳어 그 애의 검은 눈동자를 마주볼 수밖에 없었다. 1초, 2초, 3초, 딱 3초 정도 지났을 무렵 다행히도 정유민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 애의 동그란 뒷통수를 응시하던 나는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쉬는 시간을 조용히 나만의 시간으로 누릴 수 있는 건 외톨이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했다. 창문 밖은 겨울이라는 사실을 잊어 버릴 수 있을 만큼 햇살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래도 겨울이기는 한 건지 손끝은 늘 차게 얼어 있었다. 가장 끝쪽 자리이다 보니 아무리 히터를 틀고 산다 하더라도 히터의 따뜻한 바람은 미약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창가이기도 하여 내 자리는 매 겨울마다 빠짐없이 추웠다. 이게 반 아이들이 선생님의 눈을 피해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음에도 이 왼쪽 창가 뒷줄 구석 자리를 피하고 싶어하는 이유였다.

2

시간은 무심히 흘러 어느덧 조별 수행평가 과제와 기말고사 준비로 바쁠 시기가 되었다. 시간이 이렇게나 바삐 흐르도록 정유민과 나는 한 마디도 섞지 않았으며 이따끔, 어쩌면 자주 눈을 마주칠 뿐이었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피곤한 아침시간이 끝나자 나는 곧장 책상 위로 엎드렸다. 이만 잠에 들던 차에 누군가의 손이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기분 탓이려나 싶어 무시한 채 잠을 청하자 다시 한 번 더 어깨 위로 가벼운 울림이 퍼졌다.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보니 정유민이 내 옆에 서 있었다. 검은 눈동자를 멀뚱히 쳐다 보자 정유민이 입을 열었다.

"다음 시간 체육이야. 옷 갈아입어."

단 한 번도 말을 나눠본 적 없는 옆자리의 전학생이 처음으로 말을 걸어 준 계기가 되었다.

"어? 어··· 응."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멍청한 대답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사물함으로 걸어 갔다. 중학교 3학년, 게다가 2학기가 된 시점인 학생의 사물함에는 체육복 따위 있을 리는 만무했으며 검은 슬랙스 바지가 곱게 접혀 들어 있었다. 검은 슬랙스를 들고 남자 화장실로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어느덧 뒤에는 똑같이 검은 슬랙스를 든 정유민이 따라 걷고 있었다는 사실만을 빼면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체육 시간 전 나의 동선이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뛰어간 남자 아이들이 없는 화장실은 나와 정유민만이 그 자리를 채웠다. 어색한 기류가 무색하게 내 뒤를 따라오던 정유민은 두 번째 칸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런 그 애의 모습을 바라 보다 그 옆 칸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난 바지를 다 갈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옆 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 후에야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도 정유민은 체육관을 간 것 같았다. 작게 숨을 뱉고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나는 그대로 굳고 말았다. 정유민이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서 있었던 것이다. 입을 벙긋거리며 자신을 바라 보는 나를 응시하다 유유히 학년실 앞 가운데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2초 정도를 화장실 문 앞에 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다 사물함으로 가 교복 바지를 곱게 접어 넣어 두었다. 나는 우리 반 옆 계단을 이용해 빠르게 내려갔다.

1교시 체육 시간이 끝나고 바지를 갈아입지 않은 채 반으로 들어가 책상 위에 엎드렸다. 체육이라는 이유로 방해받은 잠을 잘 생각이었으나 그것마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앞에서 따사로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 보는 정유민 덕분이었다. 다음 시간은 체육도 아닐 뿐더러 그간 몇 번 마주친 시선이 전부였던 전학생이 돌발 행동을 하니 영 불편한 기색을 숨기기가 어려웠다.

정유민이 입을 열었다.

"다음 시간 미술이야. 오늘은 교실이니까 조 만들어."

안타깝게도 주위를 둘러 보았을 때 책상을 붙여 조를 만드는 아이들은 없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

"지금."

"아무도 안 만드는데?"

"알 바야?"

"······ 어, 으응."

정유민이 입을 꾹 다물다 다시금 입을 열었다.

"싫으면 좀 이따 만들어."

"어? ······ 응."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앞자리를 차지한 정유민은 내 책상에 보란듯이 팔꿈치를 올리고 턱을 괴 나를 바라 보고 있었다. 제법 부담스러운 시선에 몸을 뒤로 물렸다.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그 애가 처음으로 전학을 온 날과 같이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 자리는 히터의 더운 열기가 닿기에는 역부족이었으므로 한기가 맴돌았다.

정유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안 추워?"

"괜찮아."

"내 자리도 춥던데."

"괜찮아."

"내 담요라도 줘?"

"어?"

대답할 시간도 없이 정유민은 자신의 어깨와 등을 덮은 회색의 담요를 건네 주었다. 멀뚱히 바라만 보자 내 머리 위에 담요를 덮어 주기까지 했다. 담요로 덮인 시야 덕에 앞이 보이지 않아 책상 아래에 두었던 손을 올려 담요를 아래로 내렸다. 어느덧 정유민은 내 책상 위에 엎드려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너 이름이 뭐더라······. 윤······."

"윤재현."

"아, 그래. 윤재현. 난 정유민."

"알아."

"알아?"

"응."

"모를 줄 알았는데. 나한테 통 관심이 없는듯 보여서."

"전학생 이름을 모를 리는 없잖아."

"하긴."

다시 또 침묵이 이어졌다. 정유민은 그런 대로 가만히 두는듯 했다.

길고도 긴 침묵이 이어지던 찰나에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하나둘 서둘러 책상을 붙이며 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정유민도 내 앞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돌려 조를 만들었다. 내 책상은 자연스레 정유민의 책상과 맞닿았다. 나, 그리고 정유민, 내 앞자리, 정유민 앞자리의 아이까지 합해 한 조가 완성 되었다. 이렇게 한 조가 완성될 거라고 누가 예상하기나 했을까. 미술 선생님은 지금 만든 조 대로 미술 수행평가를 진행한다고 통보를 했다. 몇몇 아이들이 탄식을 뱉으며 원하는 친구들과 조를 짜면 안 되겠느냐 물었으나 선생님은 도통 의견을 굽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금세 포기하고 결과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우리 조는 환희와 절망, 그 사이에서 줄을 타는 반응을 보였다. 내 앞자리 아이는 내가 그림을 잘 그리니 다행이라며 안심을 했고 정유민의 앞자리 아이는 정유민이라는 존재가 조금 불편한듯 보였다. 그건 정유민을 제외한 조원 전부가 그렇게 느낀 듯이 보였으므로 조심히 정유민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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