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n
1차 / 장례, 2천 자
불필요한 가정은 하지 않는다. 그것이 애머디가 새롭게 정립한 가장 첫 번째 수칙이었다. 정확히는, 지금껏 사용해 온 ‘불가능’의 범주를 약간 조정하는 것이다. 상실 이후의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절대로 바꿀 수 없는 몇 가지 사실에 관해서라면, 이제 와 어떤 대처도 무용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생각들에는 아무런 효용이 없다. 첫째, 그날 일라이저가 죽지 않을 수는 없었다. 둘째, 그 사실은 어떻게도 돌이킬 수 없다. 그리고 셋째,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애머디는 삶을 중단할 수 없다.
방 안에 틀어박혔던 애머디가 바깥으로 다시 나오기까지는 꼭 한 달이 걸렸다. 복귀를 더 미룰 수는 없었다. 일라이저의 공석은 새로운 얼굴이 차지했다. 무엇보다 과묵하고 신중할 것을 우선하여 선발한 인재였고, 애머디가 보기에도 제법 만족스러웠지만. 애머디는 이전에 일라이저와 그러했듯 그와 긴밀해질 수는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 또한 애머디의 불가능 중 하나였다. 부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언제 어디에서건, 그는 두 번 다시 누군가에게 등을 기댈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별로 슬프지 않았다. 어차피 일라이저의 무덤 앞에서가 아니라면 결코 솔직해질 수 없을 테니. 앞으로는 비밀 아닌 비밀이 많아지겠다고, 애머디는 생각한다. 같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키득대던 아침이 전생 같다. 집안 곳곳에 묻어나는 흔적들을 차마 말끔히 걷어낼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그의 흔적도, 그와의 추억 또한. 영원히 보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애머디는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의 빛이 바래는 시기를 조금이나마 유예하고 싶다.
그러나 살아가야 할 나머지를 잉여로 두고 싶지는 않았다. 애머디는 아직 과업을 완수하지 못했다. 일라이저와 함께 보고 싶었던 세상. 그것은 지금에도 여전히 아름답다. 완성된 이상을 나란히 만끽할 연인은 이제 없지만, 그렇다고 그와 꾸려 왔던 모든 계획을 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일라이저가 흙으로 돌아갔다면 그는 이제 이 세상의 일부나 다름없다. 애머디가 보고 만지고, 느끼는 세계의 모든 부분에. 일라이저는 조금씩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죽었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적어도 애머디가 살아가는 동안, 영원히. 그러니 일라이저. 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너를 혼자 기다리게 두어서 미안하다. 하지만 우리는 약속하지 않았나. 우리의 꿈을 꿈으로만 남겨두지 말자고. 끝의 끝까지 힘써 노력하자고.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자고.
이렇게 전 생애를 건너 꾸준히 네게로 향하다 보면. 분명 너를 다시 만나게 되겠지. 애머디를 지탱하는 것은 그런 믿음이다. 연인을 멀리로 떠나보내고도 허물어지지 않는 사랑, 그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언젠가 함께였던 생활보다 길어지더라도.
부쩍 볕이 좋았다. 성묘를 가기에 적당한 날이었다. 모처럼 일정을 비운 애머디는 멀리서부터 혼자 걷는다. 일라이저를 기억하는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애도라면 더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애머디는 항상 동행을 거절했다. 어떤 방해도 없이 온전히 둘만의 시간으로 남기고 싶었다. 오늘은 일라이저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어쩌면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을지 모르지. 천천히 걸어가는 발길을 따라 뒤쫓아오던 오후의 느지막한 햇살이, 애머디의 어깨를 감싸듯 타넘고 길가에 가득 자라난 풀꽃들에게로 흘러 넘친다. 등 뒤에 어리는 온기가 일라이저의 그것을 닮았다는 생각 때문에. 애머디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부시게 쏟아지는 빛이 애머디를 온통 휩싼다. 걷고 있던 흙길 곳곳에 솟아난 새싹이, 바람에 흔들리며 산들대는 꽃잎이. 그러니까 이토록 아름다운 세계가.
애머디를 향해 가득 미소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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