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Remain

1차 / 장례, 2천 자

노랗고 흰 조화로 빠듯하게 꾸며진 식장은 순식간에 인산인해가 되었다. 너의 이름을 아는 모두가 너를 배웅하기 위해 걸음했다. 셀 수도 없는 지폐가 너를 위해 불에 태워졌다.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너는 너무 빨리 잊혀졌다. 그것은 너를 위해 치러졌던 마지막 예식의 규모와 무관하다. 아니, 어쩌면 둘은 모종의 비례 관계에 놓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의 장례는 네게 달린 빚을 갚을 마지막 기회이자 절차 같았다. 이러한 현상은 언뜻 합리적이다. 너는 누구에게든 곁을 내어주는 법 없이 효율을 따라 움직였으니까. 그것은 곧 동일한 결과값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네가 존재할 필요는 없음을 뜻한다. 너 없이도 조직은 굳건하다. 또한 이렇게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너의 자리는 반드시 대체되어야 한다. 결국 너 또한 조직의 일부로 기능하는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너처럼, 그러나 너보다는 늦게. 깨달은 것인지도 모른다.

장례가 끝나고 겨우 일주일이 흘렀을 뿐이다. 너의 영정 앞에서 목놓아 곡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제는 다들 평온하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일에 매진하고 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은 것처럼. 이렇게 너를 위해 깊이 애도하는 이가 없다는 사실은 내게 부당하다. 누구보다 온전한 슬픔을 가지고 너를 기억하는 단 한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냐는 물음에 나는 돌려줄 대답이 없다. 이런 식으로는 너를 독점하고 싶지 않았어. 리우, 그들은 나만큼 비참하지 않아. 나는 그게 화가 난다. 모두가 너를 생각하느라 불능의 상태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네게 매달리느라 이 삶을 낭비하며 무너지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아무래도 좀 억울하다. 사람이 죽었잖아. 그게 하필 너였잖아. 그런데 왜 세상은 이번에도 멀쩡한 거냐고. 어딘가 어그러진 구석이 하나쯤 보일 만도 한데, 왜. 내일로 향하는 걸음들은 여태 멈출 기미가 없는지.

앨범 속의 너는 속없이 웃고 있다. 우리가 한때 얼마나 즐겁고 행복했었는지 증명하듯이. 나는 마냥 환해 보이는 너를 말없이 노려본다. 표정을 아무리 사납게 구겨도 사진 속의 네가 갑자기 울상짓는 일 따위는 없다. 필름은 꿋꿋이 반짝인다. 어떤 장면은 실제보다 나은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고작 이런 것이 너를 대신할 수는 없다. 내가 보고 싶은 건 그럴듯한 풍경이 아니야. 나는 살아 움직이는 너를 원해, 리우. 내가 만질 수 있는, 나를 만질 수 있는 너. 양팔을 벌리면 가득 들어차던 온기를, 내가 아직 기억하는데.

나누어 꼈던 반지는 유골함과 함께 돌아왔다.

부드러운 천으로 감싸인 하나의 상자. 이렇게 작은 것 안에 네가 담겨 있다니 믿을 수 없다. 나는 내 몫의 반지를 빼내어 네 옆에 내려놓는다. 나란히 놓인 한 쌍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문득 네 물건들을 마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부 태우는 것이 좋을까. 그런데 너를 남김없이 도려낸 후에도 나는 잘 살아갈 자신이 없다. 그래서 자꾸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려 하는지도 모르지. 내 고통을 함께 감당해 주었으면 해서. 혼자서만 생생히 괴롭고 싶지 않아서. 너를 아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는데, 리우. 그중에 한두 사람이라도 너를 나만큼 오래 기억해줄 수 있지 않을까. 말해 봐. 내가 너무 거창한 꿈을 꾸고 있나? 차라리 우리가, 서로를 조금만 덜 미워하고 덜 사랑했더라면. 한집에 같이 살지 않았더라면. 일말의 공간이나마 침범하지 않고 각자의 것으로 내버려 두었더라면…… 아. 이제 와 이런 후회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 내가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이제 한 줌으로 남은 뼛가루, 혹은 서서히 낡아갈 일밖에는 남지 않은 우리의 물건들뿐이다. 닫힌 앨범 속에서도 너는 여전히 웃고 있겠지만, 리우. 나는 그 모습을 다시 들여다볼 자신이 없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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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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