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 or Alive 1
드롭박스를 클릭하자 그 안에 숨겨진 시체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15cm 인형 크기의 작은 시체들이었다. 시체들은 한데 엉켜 팔이 짓눌려 빠지고 배가 터져 내장이 비어져나왔다. 디셰인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두 다리로, 탄탄히 바닥을 딛고. 갑작스러운 충격에 그는 날아가 서가에 온 몸으로 부딛혔고 팔이며 옆구리가 끊어질 듯이 욱신거렸다. 침을 뱉었다. 내장은 다치지 않았다. 폭발에 몸을 재빠르게 굴린 것이 피해를 줄여주었다.
고스트가 없네? 음, 우리 아빠-…….
디셰인은 절뚝이며 몸을 돌렸다. 엉망이 된 서가 맨 꼭대기에 K가 앉아 빙글거리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와 같이 온 조력자 둘이 쓰러져 미동도 않았다. 곱슬머리 여자는 상점 겸 술집 주인이었고, 짧은 머리 남자는 도망자 마을의 주민이었다. 폴을 검거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 그 도움 때문에 폴에게 인질로 잡혀버렸으며, 이제는 폭발에 휘말려,
저런 불쌍도 하지, 다 죽어버렸네.
K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괜찮아. 운이 좋다면 나처럼 고스트가 살려주겠지? 저들은 폴을 잡는데 일등으로 공을 세웠으니까. 난 말이야, 디셰인 네가 화났을까봐 너무 걱정 돼.
고통이 어느정도 가시자, 디셰인은 똑바로 걸으려 애쓰며 까맣게 탄 시신의 손목을 풀어주었다. 그거면 된 것이다. 디셰인은 임무를 마쳤다. 폴은 죽었고, 고스트도, 의도하진 않았지만, 폭발에 휘말려 죽었다.
왜 아무 반응도 안 보이는거야? 뭐가 문젠데! 생각해봐, 다 나잖아.
디셰인이 폴의 은신처이자 아무도 찾지 않는 도서관을 나서자, K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K는 절박하게 디셰인을 쫓아갔다.
폴에게 그 두 사람을 꼰지른 사람? 나야. 도망자 마을을 몰살한건 폴이 아니야, 나야! 폴의 고스트와 나머지들도 다 죽인 사람도? 나! 그런데 왜 넌 나를 무시하는거지?
디셰인은 묵묵히 걸었다. K는 단단히 골이 난 모습으로 팔짱을 끼고 그 자리에 섰다. 디셰인은 묵묵히 걸었다. 빠른 걸음으로. K가 소리쳤다.
네 우주선.
디셰인이 걸음을 멈췄다.
네 우주선에 네가 먼저 갈지, 내가 먼저 갈지 내기해볼래? 디셰인……. 나도 수호자야. 네 우주선을 뺏어서 최후의 도시로 가겠어.
K의 선언에 디셰인은 고개만 돌려 K를 보았다. 눈의 가장자리에 K의 모습이 흐릿하게 들어왔다. K를 누르면 드롭박스가 내려와 후두둑 후두둑 피와 내장을 떨굴까. 폭발 때문에 생긴 이명이 점점 커졌다. 디셰인은 차갑게 고개를 바로했다.
영화를 보고 있을게. 착한 사람들을 죽이는건 네 관심을 끌지 못해. 날 찾아와줘. 찾아오지 않으면 네 우주선은 없는거야.
K가 키득거렸다.
마치 네가 내 우주선을 부순 것 처럼, 나도 네 우주선을 부술거니까.
어린아이처럼 경쾌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물수제비를 뜬 돌처럼 통통 튀는 소리였다. 디셰인은 눈을 깜박이다가 관자놀이를 가볍게 두 번 쳤다. 이명이 영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셰인은 숨지 않았다. 그의 앞에는 교회 의자처럼 서가가 길게 늘어서있었다. 그는 주교였다. 온 몸에 붉은 칠을 한 채 무대의 한 가운데 서서 폴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폴은 기습을 포기했다.
그래, 헌터다 이거지. 기습이 들어와도 피할 수 있을거란 자신감인가.
폴이 300번대 서가에서 걸어나왔다. 그의 로브 자락이 움직일 때 마다 펄럭였다.
아니면 명예를 안다는 것인가. 혹은, 그냥 치기?
디셰인은 총을 뽑아들었을 뿐이다. 그건 폴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겨누었다. 서가가 시작되는 부분에 인질 두 명은 묶여 바닥에 널브러져있었다. 가파르게 오르내리는 어깨. 디셰인은 다시 폴을 쳐다보았다.
걱정되나? 위대한 빛에서 도망친 피라미 쥐새끼들이 걱정되나, 자신의 임무에서 도망친 자들……. 그건 너도 마찬가지다, 디셰인. 영혼을 어둠에 팔아넘긴 자여!
폴의 총이 먼저 불을 뿜었다. 디셰인은 고개를 살짝 틀었고, 회전하는 총알의 궤적에 귓바퀴가 날아갔다. 디셰인은 대신 태양을 불러냈다. 온 몸이 안으로 붕괴했다가 다시 밖으로 터져나왔다. 뿜어나오는 에너지를 손에 그러쥐어 총과 총알의 형태로 만들었다. 폴은 부정했다. 디셰인은 어둠을 받아들인 사람, 다시는 빛을 불러낼 수 없었다. 그의 머리가 순수한 힘에 녹아내리기 전 간신히 떠올릴 수 있었다…….
나의 파트너가 정식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요청하는 바입니다.
고스트가 실체화 되었다.
맞습니다. 폴이 한 일은 엄밀히 따지면 범죄이죠.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안됩니다. 이건 즉결처분이잖아요?
그러나 디셰인이 받은 명령은 즉결처분이었다. 폴과의 협상이 결렬된다면……. 워록 선봉대장이 말을 흐렸다. 디셰인은 가만히 그를 쳐다보았다. 침묵. 그렇게 길진 않았다.
죽여도 좋네.
어려운 임무였다. 수호자들은 도통 죽지를 않으니까. 그러나 그 아이코라 레이가 이렇게까지 강한 어조로 말한다는 것은 그만한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서류에는 죄목이 상세히 적혀있었지만, 디셰인은 꼼꼼히 읽지 않았다. 죄인과 교섭이 결렬되면, 죽인다. 그의 머릿 속에 명확히 입력한 한 줄의 코드였다. 고스트의 말을 반박하려고 입을 열었다. K의 행동이 이상했다. 디셰인은 재빨리 옆으로 굴렀다. 굉음이 이어졌다. 강한 열기가 디셰인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머리카락이 타는 냄새가 났다. 건물이 통째로 흔들리고 서가들이 우르르 무너졌다. 관자놀이를 두드리는 것은, 이명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란 주술적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디셰인은 잠시 생각했다. 우주선을 세워놓은 곳……. 그 근처에 낡은 영화관이 있었다. 몰락자 놈들이 우글거리는 지하철역 근처였다. 그걸 생각해내자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안녕.
반쯤 찢어진 스크린에 영사기가 빛을 쬐고 있었다. K는 맨 앞 좌석에 앉아있었다. 두 사람은 해야할 일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총을 뽑았다.
규칙이 있어.
K의 말을 경청했다.
우리는 등을 맞대고.
두 사람은 스크린이 찢어진 곳을 기준삼아 등을 맞댔다.
하나, 둘, 세 걸음에 총을 쏘는거야.
한 걸음. 영사기에서 지글거리는 소리가 났다.
두 걸음. 디셰인은 두툼한 융단 바닥에 닿는 발소리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두 걸음 반. 디셰인은 몸을 틀어 현실의 결을 잡아 뜯었다. 공간이 뒤틀렸고 총알이 빗나갔다. 그 기세로 디셰인은 K를 공간을 꼬은 채찍으로 후려갈겼다. 그는 규칙을 어겼다. 그것도 자신이 정한 규칙을. 채찍 끝에 달린 날카로운 인지가 K의 가슴을 꿰뚫었다. 디셰인이 힘을 주어 채찍을 거두자 인지는 K의 상반신을 찢어갈겼다. K가 피를 토했다. 허무하게 쓰러졌다. K의 고스트가 그를 살리려 현실로 내려왔다. 그러나 양자 사이사이에는 채찍이 남긴 덫이 있었다. 고스트는 덫에 걸렸고,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바둥거렸으나, 덫은 그럴수록 고스트를 파고들었다. 디셰인은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었다. 그렇게 K는 영원히 죽었다. 디셰인은 자신의 우주선으로 향했으나 우주선은 이미 고철덩어리가 된 다음이었다. 옛 시카고의 먼지와 재가 그의 상처를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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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3DAC9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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