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김 단편

[테리김] 유성

20230315 테리 생일 기념

테리 보가드는 밤하늘을 바라볼 때가 많았다. 혼자서 훌쩍 떠난 여행 중에도, 파오파오 카페에서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고 나오는 날에도, 그냥 정처없이 혼자 사우스타운 거리를 걷던 와중에도 고개를 들면 언제나 밤하늘이 보였다. 차가운 밤공기와 까만 밤하늘은 꽤 잘 어울렸다. 가끔은 환한 달이 뜨기도 하고, 어쩔 때는 달빛 하나 없이 별만 총총 뜨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밤하늘을 보고 고개를 내리면 다시 어둠 속에 네온사인만 보였다. 그 환한 빛들은 테리가 혼자라는 사실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깊은 고독은 자신이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테리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걸었다.


낮에 하늘을 보는 일은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밤에는 자주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고독한 순간에는 이렇게 밤하늘을 보게 되는 그 분위기가, 혼자가 되면 자꾸만 밀려오는 여러 감정은 테리의 입을 다물게 했다. 과거에도, 이 순간에도, 미래에도 아마도 테리는 그럴 것이다. 평생을 홀로 살아가야 하는 저주같은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걸지도 모른다. 이제는 당연한 것들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버거울 때가 있었다. 그래, 지금처럼- 꼭 이렇게 봄이 오는 시기가 되면, 그랬었다.


"아."


분명 오늘도 그런 날이어야 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오늘따라 밤하늘이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분명 고독한 이 순간, 많은 감정에 지쳐 씁쓸한 미소가 번져야 하는 지금, 밤하늘이 너무 예뻐서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되었다. 왜 갑자기 밤하늘을 보고 이런 기분이 들었냐고 하면, 테리 보가드는 아마도 작은 변화 때문이라 생각했다. 아마도, 그럴 거다. 그냥 작은 변화. 테리 보가드는 한참을 걷다 근처 계단에 털썩 주저 앉아 하늘을 보았다. 밤하늘은 맑았고 별빛은 너무나 반짝였다. 그리고 콩닥거리며 뛰는 심장까지. 테리는 밤하늘을 보며 많은 감정이 아닌, 단 하나의 감정이 이렇게 가득찬 순간은 처음이었기에 신기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 정말 작은 변화인데 말이다.


테리 보가드는 계단에 걸터 앉은 채, 자신의 작은 변화를 생각하기로 했다. 작은 변화. 뭐라고 해야하나. 작은데, 작지 않아. 분명 그를 보는 시선이 아주 조금 달라진 건데, 왜. 테리는 한숨을 작게 쉬고서 다시 하늘을 보았다. 이 감정이 아닌 다른 감정이 일어나길 바랬지만, 정말 지금 가득찬 이 감정은 강력한 힘을 가진 것 같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이 순간, 그 작은 변화로 이렇게까지 그 사람으로 가득차는 걸 보면 말이다. 거기다 그 변화로 인해서 테리는 생전 느낄 일 없던 욕심마저 일어났다. 욕심이라니.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바라는 게 생기다니.


"하아- 큰일이군."


정말 큰일이라는 표현 외에는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테리는 이 기분이 싫지 않았다. 그래, 오늘부터 밤하늘을 보면 그 감정보다 이 감정이 가득차고, 바라는 일도 많아질 것 같았다. 그래, 바라는 것. 내가 바라는 것은-




 


"테리 씨!"

"아."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테리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눈앞에 밝은 미소를 띄고 있는 그가 서 있었다. 볼 때마다 밝아지는 이 느낌. 보는 순간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이 느낌. 테리는 혹시라도 지금 자신의 얼굴이 붉어진 건 아닌지, 걱정을 해야만 했다. 둔하다고 소문난 그지만 그래도 빨개진 얼굴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안되니까. 테리는 그래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을 걸기로 했다. 아, 이런. 그런데 처음부터 떨리는 목소리에 조금 삑사리가 난 이상한 목소리로 말하고 말았다. 정말 멋 없네.


"기, 김! 안녕."

"하하, 갑자기 말 걸어서 놀랐어요? 무슨 생각 중이시길래 이렇게 골똘히 생각하세요."

"아아, 별 거 아냐."


'그 이유가 김 때문이야-'라고 말하면 깜짝 놀라겠지. 테리는 피식 웃고서는 그런 김을 바라보았다. 얼마전에 사이가 좋아진 김갑환이라는 사내. 테리도 친구가 많다보니 꽤 다양한 사람을 알고 지냈다. 그래서 김처럼 진지한 사람도, 상냥한 사람도, 어른스러운 사람도 알고 지냈지만 그래도 김은 뭐랄까. 테리가 알고 지내는 사람 중 꽤 독특한 사람이었다. 좋은 의미로 충격적인 사람? 아무튼간에, 테리가 김과 친하게 지내고서 느낀 건 어른스러우면서도 서툰면이 많은 사람이었다. 신기할 정도로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느낌을 가진 김이, 유독 자신과 어울릴 때는 서툰 모습을 많이 보였다.


서툰 모습이 많다고 해야하나. 테리를 신기할 정도로 선하고 좋은 사람으로 본다는 점이었다. 보통 테리랑 지내는 사람은 꽤 빠르게 테리의 본질을 파악했다. 여러가지 평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좋은 평보다는 나쁜 평이 많았다. 그런데 김은 신기하게도 나쁜 평보다 좋은 평 외에는 다른 평을 하지 않았다. 그런 점이 신기했다. 물론 김이 일부러 말을 하지 않은 걸수도 있지만(그는 어른스러운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꽤 뻔뻔한 성격을 가진 테리마저 조금 민망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김은 테리를 좋게 생각했다. 게다가 그의 평소 성격을 생각하면 절대 빈말이 아니라는 것이 테리에게 부담이 되었다.


맹목적인 신뢰, 우정? 그런 것들이 흔한 것은 아닐거다. 특히 이렇게 친해진지 얼마 안된 사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김은 정말 테리를 진심으로 신뢰하고 믿어주었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여주지 않은 그 환한 미소를 보고 있으니 가슴이 간질간질 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이건 신뢰나 우정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음, 정확히 말하면 애정이라는 감정에 더 가까울 것이다. 김이 실제로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테리가 생각했을 때 이건 애정이라는 감정에 가까웠다. 다만, 테리가 알고 있는 애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냥 단순히 연애를 할 때 가지게 되는 그 애정이라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냥, 그래. 뭔가 더 깊고 편안하고 사람을 간지럽히는. 그래, 그런 느낌.


"그러고 보니, 식사는 하셨어요?"

"김은 맨날 나 밥 먹었냐고 물어보더라."

"아직 드시지 않았으면 같이 먹자고 하려고 했죠?"

"음, 그럼 먹을래."

"같이 메뉴판 볼까요?"


그래. 뭔가 다르다. 다른 종류의 애정이야. 하지만 그 애정이 너무나 편안하고 자신을 품는 것 같아서 자꾸만 어리광을 부리게 되었다. 그의 성격상 곤란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성격인 것도 알고, 어른스럽고 상냥하기에 그런 걸수도 있지만. 그래도 테리는 그동안 받아보지 못했던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 좋았다. 너무 좋으니까, 당연히 테리는 김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사랑이 아가페에 가까운 사랑인 것도 알고 있었기에, 테리는 자신답지 않게 지금 이 마음을 꾹꾹 눌러담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 더 김이 나를 다른 시선으로 보면 좋을텐데. 조금만 더 설레는 모습을 보이면 지체없이 고백을 할텐데.


"그러면 소세지 어때?"

"소세지 좋죠. 하지만 대신 야채도 드셔야 해요."

"야채는 싫은걸?"

"그러니까요. 평소에도 잘 안챙겨드시죠? 그러니 저랑 같이 드셔야 해요."

"그럼 야채만 빼고 먹으면 되는데!"

"그럼 제가 직접 먹일거예요. 편식은 안돼요."

"아."


그러니까. 이런 말 갑자기 하면 반칙이라니까. 테리는 그 말에 결국 어물쩡 '그래-'하고 넘어갔지만, 가슴은 다시 콩닥콩닥 뛰기 시작해서 곤란했다. 테리는 김보다 키도 훨씬 크고 그 누구보다 강한 편이었기 때문에, 테리를 아무리 어린애 같다고 말해도 정말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김은 정말로 자신을 귀여운 아이같이 다룰 때가 많은데, 이상하게도 테리는 그런 김의 행동에 설레고 있었다. 이거 내가 변태라서 그런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그 설렘을 부정하려 했지만, 이렇게 또 가슴이 콩닥거렸다. 아마 김의 성격상 누구에게나 이런 느낌으로 다가가겠지? 그러니까 이 모든 것들이 나한테만 특별하게 행동했으면 좋겠어.


"김, 소용 없어. 분명 안 먹을걸?"

"아니에요. 테리 씨가 얼마나 제 부탁을 잘 들어주는데요. 그렇죠, 테리 씨?"

"응? 아아, 뭐."

"뭐야, 김한테만 특별대우 하는 거냐?"

"그래서 불만이야? 김도 나한테 특별대우 하니까 그렇지?"

"김은 누구한테나 친절할걸?"

"그래도 이렇게 신경 쓰는 건 테리 씨가 유일할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그러니까, 김. 나한테만 특별하게 행동해줘. 나도 김한테만 특별하게 행동할테니까. 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 테리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지금은 그저 꾹꾹 참을 수밖에.




 


오늘 파오파오 카페가 떠들썩한 이유는 별 거 아니었다. 사우스타운에서 가장 인기쟁이인 누군가의 생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모두 파오파오 카페에 모여 그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도시 전체가 축제인 느낌이 들 정도로. 테리는 그런 그들의 축하에 감사하며 왁자지껄 어울리면서도, 시선은 한 사람에게 고정하고 있었다. 오늘 특별한 날이니까. 아니 정말 특별한 날인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모두들 날 특별하게 생각하는 날이니까. 그런 날이니까 오늘 그가 하는 행동은 아마 모두 테리를 위한 특별한 행동일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만큼은 그렇게 생각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테리 씨, 생일 축하드려요."

"고마워, 김."

"이렇게 많은 분들이 테리 씨 생일을 축하하러 왔네요! 정말 행복하시겠어요."

"아, 그도 그런데…. 내가 꼭 왔으면 하는 사람이 와줘서 더 행복해."

"정말요? 누군데요?"

"음, 김이랑 가장 친한 사람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김에게 특별한 사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김만 보이는 걸 보면, 정말 중증이다 싶었다. 구석에서 김과 얘기하면서도 테리는 틈틈히 다가오려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듯 이따 오라는 손짓을 하며 쫓아냈다. 덕분에 이 시끄러운 파티 사이에서 집중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김을 특별히 여기는만큼, 김도 나를 특별히 여기길 바래. 오늘은 특별한 날이고, 밤하늘도 정말 예뻤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김이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네? 제가 가장 친하고 특별한 사람이요? 음-"

"반응이 이상하네?"

"그야 그런 사람이 당사자니까 그렇죠. 테리 씨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사람도 없는데."

"응?"


테리는 한참 김이 맞추지 못하면 그때 조용히 그를 데리고 나가 고백을 할 생각이었다. 정말로. 김은 죽었다 깨어나도 답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추측하면서 나올 많은 인물들에 대해 어느정도 상상은 했지만, 정말 예상치 못한 이름이 툭 튀어나오니 머리가 굳어지고 말았다. 그러니까, 가장 친하고 특별한 사람이 나라고?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자 테리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정말로? 자신이 김을 좀 놀래켜주려고 했었는데, 되려 이렇게 자신이 놀라서 굳게 되니 더 이상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저 어버버 거리며 김을 바라보고 있자, 김이 평소처럼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서 정답은 뭔가요?"

"어?"

"테리 씨가 테리 씨를 기다리지는 않았을 거 같아서요.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나요?"


아, 정말. 이제는 나도 모르겠다.


"…이야."

"네?"

"김이라고. 그러니까 지금 내 앞에 있는 김."

"저요?"

"응…."


이렇게 멋없게 말을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김이 이상하게 생각하려나? 아니면 부드럽게 거절하려나? 하지만 가장 친하고 특별하다고 말을 했는데, 이렇게 얘기해도 되지 않을까? 사춘기 소년 같이 고백에 가까운 말을 하고서 부끄러워 어쩔줄 몰라하는 테리를 보며 김은 잠시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김은 아무렇지 않은가? 그리고는 곧 시선을 슬쩍 돌린 채 테리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아마 테리에게만 뭔가 말을 전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 말 하면 제가 착각하게 되는걸요. 그러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돼요."

"…착각이 아닌데. 나, 사실 가장 와주길 바란건 김이야."

"왜요?"

"나도 가장 특별한 사람이 김이거든."

"……."

"싫으면 거절해도 돼. 나는 친구로 돌아갈 수 있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김의 반응에 테리는 시선을 내리깔며 물었다. 역시 섣부른 판단이었나? 너무 내 생각만 밀어붙인걸가? 테리는 복잡해진 마음과 상실감이 뜨던 그때, 다시 김이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혹시 저희 여기서 나가서 말하면 안될까요?"

"나가서?"

"그, 여기는 사람도 많고…. 차분히 말하기도 어려울 거 같아서요."

"아…. 그럼…. 몰래 나갈까?"

"네, 그러죠."


혹시? 이번에는 방금 전까지 느꼈던 감정과 전혀 다른 감정이 테리를 가득 채웠다. 시끄러울 정도로 울리는 심장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파오파오 카페를 나오자 밖은 테리가 평소 보던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귓가가 시끄러울 정도로 울리는 심장소리에 테리는 당장이라도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밖에 나온 김은 여전히 차분해 보였고, 평소와 그렇게 다른 모습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테리는 설레는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부디,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으면. 내가 그를 특별히 여기고, 그도 나를 특별하게 여기는 그 마음이 같은 마음이었으면. 이럴 때 별똥별이라도 떨어져서 소원을 이루어주면 얼마나 좋아.


"테리 씨."

"아, 응."

"그, 같이 나와주셔서 고마워요."

"어? 아냐. …그…."

"사실, 저 사우스타운에 와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어? 아, 응."


조용히 김의 말이 시작되었다. 거절인지 아니면 허락인지 궁금해서 죽을 것만 같았지만, 테리는 최대한 김의 말을 듣기로 했다. 김의 화법상 빙빙 돌려서 말하는 건 아닐테니까, 곧 결판이 날 것이다.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가도 곧 밤하늘 아래에서 조용히 얘기하는 김의 모습에 넋이 나가 듣기 시작했다. 김이 자신의 말을 하는 것도 흔치 않은 기회니까.


"사실 제가 의도하던 않던 저를 불편해 하는 사람은 많거든요. 제 입장에서는 옳은 말이라고 한다지만 그 옳은 말이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니까. 어쨌거나, 그래서 처음에 테리 씨랑 친해졌을 때도 그분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하, 그래?"

"네. 그런데 테리 씨는 언제나 있는 제 모습 그대로 보려고 하고, 그런 저와 친해지려고 하고, 편하게 대하더라고요. 물론 연기일수도 있지만…."

"그럴리가. 정말로 친해지고 싶었고, 편했어."

"다행이에요. 그런데 그런 테리 씨랑 지내는게 어느 순간부터 너무 좋고 기대가 됐어요. 테리 씨를 만나면 제가 굳이 이 사람과 멀어질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모든 걸 순수하게 받아들여 주시고, 또…. 언제나 절 바라보는 그 푸른 눈도 좋고, 헤어지고 아쉬운 마음에 돌아보면 별이 보이는 것도 그렇고…."


테리는 김의 말을 들으며 놀란 얼굴이 되어 바로 김을 바라보았다. 분명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김의 얼굴은 홍조가 띄워져 있었고, 조금 두서없지만 자신을 왜 특별하게 여기는지 얘기하고 있었다. 그렇다는건, 그렇다는건? 테리의 얼굴이 다시 타들어가듯 붉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테리가 바보라도 이 분위기가 어떤 분위기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요, 테리 씨. 음, 그래서요…."

"응."

"그래서 테리 씨가 특별해진거 같아요. 하하…."

"좋아해, 김."

"아…."


그 많은 말을 듣고 내린 결론은 그랬다. 김이 나를 그렇게까지 생각하는데, 내가 고백을 어떻게 하지 않을 수 있어? 테리는 많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하고 싶었고 먼저 해야하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김도 놀라서 테리를 보고 있었다. 서로 얼굴이 붉어진채 바라보는 모습이 그들의 뒤에 있는 까만 밤하늘을 배경으로 두니 꽤 볼만한 그림처럼 느껴졌다.


"난 김이 나에게 주는 그 애정이, 상냥함이, 걱정이 다 너무 좋아. 가볍고 단순한 마음이 아니야. 내가 김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듯이, 김도 내 마음을 모를 거라고 생각해. 김이 오직 나를 위해 그러기를 밤하늘의 별에 빌고 빌었어. 나만 특별해지길, 김의 특별한 사람이 나이길, 김도 나를 내가 느끼는 특별함과 같기를."

"테리 씨…."

"그러니까 김. 만약 김도 나와 같은 특별함을 느낀거면, 우리 관계도 특별한 관계가 되지 않을래?"

"당연히…. 좋죠. 이미 테리 씨는 제게 특별한 분이니까요."

"하아…."

"테리 씨?"


테리는 김의 허락과 동시에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얼마나 긴장이 되었는지, 혹시라도 같은 특별함이 아니면 어떡할지. 갑자기 마음이 바뀌지는 않을지. 그 모든 것들이 김의 허락과 함께 탁 풀리니 다리에 힘이 빠졌다. 테리가 주저앉듯 앉아버리자 김이 놀라서 다가왔다.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김의 얼굴을 보자, 이번에는 자꾸만 입가가 비실비실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몰려오는 감정에 테리는 그대로 김을 확 끌어안았다.


"김!"

"테리 씨! 놀랐잖아요."

"하지만 너무 좋은 걸 어떡해? 아- 김이 거절할까봐 엄청 긴장했어!"

"네? 정말요?"

"그야 김은 너무 침착해 보였는 걸?"

"하하, 사실 엄청 떨고 있었어요."

"그러면, 김. 앞으로 잘 부탁해!"

"…저도요, 테리 씨."


그렇게 주저앉은 채 김을 끌어안고 있던 테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 내가 한박자 빨랐네. 이제야 하늘에서 길게 떨어지는 유성을 보며 테리는 웃고 말았다. 테리의 소원이 이루어진게 유성이 이루어준 것보다 빨랐다는 사실이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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