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것들

양초

「명사」 서양식의 초. 동물의 지방이나 석유의 찌꺼기를 정제하여 심지를 속에 넣고 만든다.

어느 아침에 그 어두컴컴한 불안과 마주친 뒤로, 점성술사는 그것이 자신에게도 흔적을 남겼음을 깨달았다. 반려가 임무를 나선 아침 이후에, 향 호트고는 간만에 외출을 결심했다. 먼지 쌓인 모자의 먼지를 털어내고, 아직은 살짝 냉랭한 초봄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오늘도 그 분류의 책 이십니까?”

점성원의 서고에서 한참 고민한 책을 꺼냈을 무렵이었다. 점성원에 제대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몇 달 알고 지낸 연구원이 말을 건넸다. 흠칫 얼어붙기도 잠시, 향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네, 근래에 좀 관심이 생겨서요.”

말을 마치며 자신이 뽑은 책의 앞표지를 잠시 바라봤다. ‘점성술과 심적 치유의 관계’ 라고 금색 실로 자수 놓은 글씨가 건물의 등불에 비춰 따스한 느낌을 주었다. 남색 비단으로 표지를 감싼, 언뜻봐도 고급 서적을 품에 조심스레 안았다. 향은 시선을 다시 들어 연구원을 바라봤다.

“고민이라도 있으신 것 같습니다.”

물음에 잠시 시선을 구석의 등불로 던졌다. 양초를 오래도록 갈지 않아 불꽃이 은은한 등불이었다. 가만히 그것을 보다가 고개를 다시 한 번 끄덕, 하고는 싱긋 웃어보였다.

“제 고민은 아니지만요. 금방 해결될거라 믿어요.”

다음에 뵐게요. 상체를 살짝 숙이며 걱정하는 얼굴의 연구원에게 안부를 전했다. 품에 안은 책을 들고 천천히 걸어 점성원 바깥으로 나왔다. 상냥함이 조금 남았던 찬 공기 마저 따스하게 덥히는 것 같았다. 성도의 정오는 드물게 눈이 그쳐 있었다. 회색빛 흐린 구름 사이로 언뜻 새어나온 하늘과 햇빛이 백색 오로라를 만드는 것을 보며 텔레포 주문을 영창하기 전이었다. 문득 가고 싶은 장소가 생겨, 주문을 외우는 대신 발걸음을 떼었다. 이슈가르드 상층으로 향하는 오르막을 천천히 오르며 성도 주변에 펼쳐진 풍경을 멍하니 감상했다. 눈이 내려 온통 백색으로 삼켜진 하얀 산맥들과 아래의 끝을 모르는 백색 안개. 창을 든 여신의 국가임을 알아서 인지 뾰족하게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지붕들. 느긋한 발걸음은 최후의 보루, 거기에서도 제일 안쪽의 원형 광장에 멈췄다.

어릴 적 성 겔리올 점성원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마음 힘든 일이 있으면 한밤중에 찾아와 보는 별의 아름다움을 추억했다. 비록 지금은 낮의 백색 베일이 하늘에 넘실거리고 있지만, 맑은 밤의 커르다스는 언제나 드높고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아득함을 자랑했었다. 당장 손에 닿는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지니 닿지 않는 곳에는 좀 체 돌아올 수 없었다. 멀리 있는 것을 바라보기엔 손에 쥔 등불이 따스했기에.

카테고리
#기타

해당 포스트는 댓글이 허용되어 있지 않아요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