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것들

싫증난 브릴란테

brillante | 화려하게, 찬란하게

귀에 스치는 것은 무엇이었지? 사랑한다는 말이었나, 아니면 바람 소리였던가?

따스히 비추는 무언가가 오늘도 나를 내리쬔다. 이 주째 같은 꿈이었다. OO는 슬슬 이 황금색의 친절함이 진절머리 났다. 보란 듯이 재현된 고향의 어떤 기억. 그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찬란히 부서진 햇빛을 받으며 OO는 어딘가에 누워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어떤 손길이 뺨을 간질이듯 쓰다듬었다. 손길의 주인은 분명 흐릿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OO의 인식은 그것에 또렷한 눈이 있는 것처럼 당연히 여겼다. 그리고 그 눈은 OO를 내려다보며 항상 미소를 짓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했다. 마치 보아선 안 될 것 같은 존재가 나를 내려다보는 것만 같은 느낌에 OO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가만히. 따스한 잔디에 누운 여린 피식자 내지 애완동물이라도 된 기분을 느끼며 꿈에서조차 눈을 감고 있는 것이었다. 마음속에서 새어 나오는 공포가 혀끝을 쌉싸름하게 만들 무렵이면, 이제 싫증 났다는 듯이 차갑고 썰렁한 현실에 갑작스레 내던져졌다. 오늘도 OO는 그런 뒤숭숭한 느낌에서 눈을 떴다.

누군가는 호재라고 부를 꿈일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과 무의식이 구현한 모든 애정의 집합체 같은 것이 그 어디보다 안전한 장소에서 가만히 어루만져 주는 기분은 당연히 끝내주는 경험이다. 어딘가의 누구는 이런 꿈을, 돈을 주고라도 꾸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OO는 그 꿈이 지독히도 싫었다. 정확히는 그 꿈을 꾸고 난 뒤 눈을 뜨기가 싫었다. 눈을 뜨고 나면 한껏 자기 취향으로 잔뜩 꾸며 안정적인 나의 거처가 그냥 종이로 만든 작은 집처럼 황량하고 초라해 보였다. 뒤따라오는 외로움은 덤이라고 하기엔 지독히도 가슴을 짓눌렀기에, OO는 그것들이 싫었다.

꿈자리가 의심스러워 저명하다는 환술사에게 찾아가 나에게 저주가 걸린 것이 없느냐 묻기를 세 번째. OO는 그리다니아의 환술사란 환술사는 고귀한 ‘뿔의 아이’들을 제외하고 모두 만나본 것 같았다. 머릿속에 어떤 요마와 비슷한 존재가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제게 도움을 청하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정중하고 소름 끼치는 목소리는 듣기는 좋으나 크게 벌린 구렁이의 입으로 들어가는 꼴이었다. 내가 미쳤지. 근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판단력이 또 흐려지는 것이다. 그런 말들을 중얼거리며 OO는 환술사 길드에서 다시 거처로 축 늘어진 발걸음을 옮겼다. 고독에 목마른 사람의 얼굴을 숨길 여력조차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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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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