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지타임

인어미출몰예정구역

인외AU

PITA BREAD by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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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씻고 나온 전영중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제 원나잇 파트너는 씻으러 들어갔고, 좁은 모텔은 침대 외에 마땅히 앉아 머리 말릴 공간이 부족했다. 드라이기를 베드 테이블 밑 콘센트에 끼우려 큰 몸을 납작하게 접자 무게가 쏠린 메트리스에 구슬 몇 알이 도르르 굴러왔다.

크고 작은 은색 구슬들이 제게 쏟아지는 걸 보고 처음엔 은단인가? 생각했다. 싸구려 모텔이라 그런가 청소 제대로 안 하네. 그러다 간밤에 건장한 남성 둘이 레슬링에 가까운 행위를 했음에도 이런 건 본 적 없다는 게 떠올랐다. 한 알 집어 가까이에서 살펴본 그것이 크기만 작을 뿐인지 언젠가 제 어머니 귀에 걸려있던 것과 같은 걸 알아챘다. 킁. 냄새를 맡자 하룻밤 상대의 체취 사이로 미미하게 소금 냄새가 났다.

미성년자는 알면 안 되는 그런저런 용도로 만들어진 모텔의 보안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화장실 출입을 오롯이 사람의 양심에 맡겼으니. 잠금장치 없는 욕실 문이 양심 없는 파트너의 손에 활짝 열렸단 소리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복작복작 샴푸질 중이던 성준수가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긴 다리를 대신한 푸른 빛이 도는 어류의 하반신이 중심을 잡느라 수면을 거칠게 내리쳤다.

"너... 인어야?"

인어도 샴푸질해? 물에 사는데? 바디워시도? 그러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치 없는 의문은 해소는커녕 소리조차 되지 못했다.

"문 닫아 씨발롬아!"

예로부터 사이렌의 울음소리에는 사람을 홀리는 힘이 있다더라. 그대로 정신을 잃은 전영중은 체크아웃 시간에야 눈을 떴다. 벗어놓은 옷가지는 누군가 자근자근 밟아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전영중이 광진구 게이바에서 만나 원나잇을 한 상대에 대해 아는 건 딱 두 가지였다. 이름, 성준수. 종족, 인어. 상호 지난밤이 꽤나 흡족했기에 전화번호까지 딸 수 있었으나 프라이버시를 개무시한 화장실 개방으로 그 찬스를 날렸다는 걸 전영중은 알지 못했다.

인어라는 정보값은 중세시대든 현대사회든 대놓고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니 전영중은 광진구 게이바 출몰 성준수라는 단어만으로 사람을 찾아야 했다. 서울에서 김서방... 아니 성서방 찾기네. 하는 수 없이 전영중은 오픈카톡을 킨다. 한국WW 2030. 한때 '한국늑대인간 2030방'이었던 이것은 순혈인간과 사귀던 한 늑대인간이 채팅방을 들키고 '오빠, 그 나이까지 중2병이면 정신과 진료를 받아'라며 헤어진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이름이 바뀌었다.

아무튼 성준수 이름 세 글자만으로 물거품처럼 사라진 인어 찾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전영중은 3대 폐단이라는 혈연지연학연 중 혈연을 이용하기로 한다. 늑대인간은 모두 가족이니까!

[성준수라는 인어 아는 사람?]

심심하고 혈기 넘치는 전국 팔도의 늑대인간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자고로 세상 제일 재밌는 구경이 싸움과 남의 사랑이었다. 특히 한창 짝짓기가 제철인 나이대에 후자만큼 재밌는 게 없다. 물론 전자여도 좋고. 짐승 같은 촉으로 유잼을 감지한 이들이 부지런히 손가락을 놀린다. [나이는?] 나랑 비슷할 듯? [사기당했어요?] 무시. [사는 곳] 알면 여기 묻겠냐. [어디서 만났는데?] 광진구 게이바. 근데 걔 처음 왔다더라. [먹버당했어요?] 비슷... 무시. [주민등록번호]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름 말고 아는 건 뭐냐?] 잘생겼어. [영중아 장난해?]

[가장 유효한 제보에 교촌치킨 10마리]

인어 성준수라는 다섯 글자가 '한국늑대인간♡5060화이팅^^!'방까지 퍼져나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닭튀김에 미친 늑대인간들의 수소문 덕에 머지않아 단톡에 사진 한 장이 도착한다. 강릉의 한 스포츠용품점에서 찍힌 사진이었다. 사진을 본 이들이 감탄하며 내뱉는다. 잘생긴 거 맞네. 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제보는 성준수의 출국 소식이었다. 성준수 10일 후 출국 신고했는데요? 갑자기? 인어 중에는 철 따라서 서식지 옮기는 개체도 있대요. 사정없는 개인정보 유출이었다.

두 정보 간 우위를 가릴 수 없던 덕에 치킨 10마리는 5마리로 분할되어 두 사람에게 돌아갔다. 원성이 있었으나 그럼 둘이 싸워서 몰아주기 하든가, 라는 떡밥 투척에 채팅방은 다시금 불타올랐다. 역시 싸움 구경이 제일이지!

무슨 철새도 아니고 서식지를 옮겨? 어처구니없었으나 열흘 후면 최소 반년간 못 볼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마음이 급해진 전영중은 가방 하나만 들고 강릉으로 출발했다.

남의 사정에 관심 많은 어르신들 덕에 성준수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 비린내 나는 꼬마? 저쪽에서 지내는 거 같던데. 얼마를 사기당했길래 여기까지 잡으러 와? 다소의 오해와 종족 차별적 발언이 있었으나 전영중은 고맙습니다, 하고 말았다.

바닷가에 포구였으니 비린내는 사방에서 풍겼다. 그중에서 냄새를 신중하게 골라낸다. 포근함이 섞인 바닷냄새가 커피 향에 섞여 있었다. 몇 번 더 코를 울린 전영중이 카페거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인외의 존재가 살아가기에 한국은 썩 나쁘지 않았다. 심장에 말뚝이 박히고 불에 타죽는 모진 핍박에 숨어 살았던 유럽 친구들과 달리 한반도에서 그들의 지위는 신령에 가까웠다. 어쩌다 사람들 눈앞에서 동물로 변해도 아가신령님, 애기동자님 하며 귀여움 받았단다. 식민지 때에 들키는 족족 잡혀가 차마 말할 수 없는 짓을 당했기에 숨어 살았지.

지금이야 뭐, 공표만 없다 뿐이지 멀쩡하게 주민등록번호 발급받고 사는 어둠의 국민 취급이었다. 종족마다 특성이 워낙 다양하니 특별행정처리팀도 생겼고. 그나마도 전영중같은 늑대인간들은 땅에 뿌리내리고 사는 종족이라 생활방식이 사람과 비슷해 별문제 없었다. 하피나 인어같이 하늘이나 바다에 터를 잡은 이들이 문제였지. 넓은 영역을 오가던 이들이 국경 문제로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성준수도 그렇겠지. 제게는 성준수라 알려줬지만 다른 나라에서 쓰이는 이름이 따로 있을지 모른다. 너른 바다를 헤엄치는 인어들이 대개 그러했으니까. 그제야 성준수가 진짜 이 땅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났다. —왜?

"안녕."

대뜸 맞은편에 앉는 이의 얼굴을 알아본 성준수가 얼굴을 구겼다. 그러고 보니 나한테 마법 썼지. 인어라는 걸 들킨 기억을 지웠나? 나 늑대인간이라 안 통했을 텐데. 저를 빤히 보기만 하는 모습에 생각 많은 머리가 오버클럭되어 돌아간다. 갑자기 말 걸어서 당황했을 테니 일단 안심시켜야.......

"그날 함부로 문 연 건 내가 잘못했는데, 나도 너랑......"

"이 미친 새끼가."

자신도 이종족이라는 걸 알리려고 테이블에 올린 손을 본체화시키자 성준수가 화들짝 놀라 들고 있던 것을 뿌렸다. 촥! 짙은 갈색 액체가 순식간에 얼굴부터 바지까지 꼼꼼하게 적셨다. 단맛이 입술 사이로 배어들어 왔다. 음. 인어는 아이스 초코를 좋아하는구나.

"시발, 니들은 조심성이 없냐?"

찰칵. 누군가 그 모습을 찍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리자 갯과 특유의 체취를 풍기는 이가 핸드폰을 이쪽으로 하고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띠링. 동시에 한국WW 2030 방에 진득하게 젖은 전영중의 사진이 올라간다. [영중이 물따귀 맞음 ㅋㅋㅋㅋㅋㅋㅋㅋ] 전영중의 행색이 전영중이 포함된 오픈채팅에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잠깐만."

핸드폰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전영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방비하게 버려진 것을 슥슥 올려 채팅방을 구경하던 성준수가 질색하며 한 늑대가 다른 늑대의 멱살을 잡고 사라진 곳을 쳐다보았다.

전영중은 함께 사라졌던 늑대와 옷을 바꿔입고 멀끔해진 낯으로 다시 나타났다. 아이스초코가 엎어진 테이블과 의자를 대강 닦고 새로 음료를 주문해 갖다 놓는다.

"그날은 내가 실수......."

"너 시발 내 뒷조사했냐?"

등줄기를 타고 섬뜩함이 흐른다. 어떻게 알았지? 핸드폰 봤나? 지금 생각하니 이 인어에게 실례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전영중의 무릎이 속삭인다. 야, 지금 내가 나서야 할 타이밍 같은데.

"남의 출국 일정까지 빼돌리고 난리 났네. 너 나 쫓아서 여기까지 온 거냐? 서울에서? 니 스토커야? 희귀종 인신매매단?"

무릎의 의견은 옳았다. 큰 몸이 신속하게 의자를 벗어나 바닥과 미팅했다. 비장함만은 은행나무 침대의 황장군이었다.

"미안."

"개빡대가리 새끼. 벌건 대낮에 함부로 팔 본체화하고."

"내가 경솔했어."

"남 씻는데 문 열어제끼고."

"네 눈물 보고 놀라서......."

"원나잇이면 깔끔하게 끝내야지. 왜 질척거리며 쫓아와?"

"그게...."

벌어진 입에서 다음 문장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게. 왜지? 고작 원나잇이다. 속궁합... 끝내주긴 했는데 살면서 이런 사람 또 만날 수 있겠지. 너무 취향이어서? 취향 탈 얼굴이 아니긴 하다. 어, 취향?

붕어마냥 뻐끔거리던 전영중이 목을 긁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말했다. 나도 몰랐는데....

"나 인어 패티시 있나봐......."

성준수의 표정은 더 썩었고.

그렇게 끊어진 대화 사이로 경쾌한 노래만 울려 퍼진다. 다 다 다 다랏 다 다 다 다 스탑 출입금지야....... 인어는 제게 바쳐진 음료를 한참이나 쪼옥 빨았다. 전영중에게는 지옥 같은 기다림이었다.

"육지 짐승이 무슨... 너 내 꼬리에 박아 보고 싶냐?"

"아니아니야아니아니아니, 그건 아니지 인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날 뭐로 보고!"

"패티시라며."

"아니야! 아니, 박고 싶다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집착이었다. 인간을 의태 한 여느 짐승들이 그러하듯 전영중 역시 자신의 본능을 믿었다. 성준수가 인어라는 의심이 들었을 때부터, 제 눈으로 인어의 특징을 확인하고 곁에 붙들고 싶다는 바람이 머리를 지배했다. 저 인어를 이 땅에 묶어두라고.

"그러니까, 내, 내 짝이 되어, 줬으면......."

꼭 각인한 상대를 마주한 듯한 맹목적인 소유욕이었다. 각인해 본 적 없지만 그랬다. 또륵. 기어코 눈물이 방울져 흘러내렸다. 성준수가 이 땅을 떠나 반년은 못 볼 거라 생각하니 애달픈 마음이 홍수처럼 넘쳤다. 내가 그날 밤에 얘 목덜미를 물었던가? 원나잇 상대로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게다가 각인은 본체일 때만 가능한데. 전영중은 아랫도리를 헤프게 놀릴지언정 이빨 간수만큼은 잘한다고 자부했다. 사람 모습일 때도 행여나 잘못될까 목덜미에는 송곳니 끝도 대지 않으니. 그런데 혹시 실수로? 그럴 리가 없는데?

싸늘하게 제 앞에 꿇은 늑대를 쳐다보던 성준수가 입술을 구겼다. 푸흡. 참지 못한 웃음이 결국 터졌다. 어? 고개를 들자 입술을 짓씹으며 비집고 나오려는 웃음을 어떻게든 삼키려는 녀석이 보였다.

"병신. 머리도 나빠서 홀라당 까먹어 놓고 패티시 이 지랄."

"어?"

"니 아직도 맥주병이냐?"

셔츠 깃을 당겨 드러낸 흰 목덜미에는 이빨 자국이 선명했다.

의태라는 것이 날 때부터 가능한 것은 아니다. 사람이 힘을 키우고 제 몸 쓰는 법을 연습해야만 기고 걸을 줄 아는 것과 같다. 갓 태어난 짐승은 제 무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본래의 몸을 쓰는 법부터 익힌다. 의태는 그다음이었다.

그러니까, 성준수가 아직 인간의 다리를 모사하기는커녕 시도조차 해본 적 없던 나이였을 때다. 어린 인어는 해달처럼 누워 새카만 털뭉치를 안고 참방댔다.

'엄마, 나 이거 키울래요.'

그의 어미는 이마를 짚었다. 이렇게 털이 긴 것은 바다의 자식이 아니었고, 눈은 상서로운 짐승의 것으로 이채를 띄었으며, 잔뜩 겁먹어 꼬리를 바짝 붙이고 제 아들 위에 엎드려 있었다. 웅크린 몸이 진동하듯 떨었다. 겁먹을 만하지. 육지든 섬이든 가까스로 보이는 먼바다 한가운데에 납치당했으니.

'너 그거... 걔 어디서 데려왔어?'

'울릉도 절벽 아래서 물장난하길래 주워 왔어.'

어미의 말투에서 기민하게 반대 의사를 읽어낸 아들이 몸을 일으켰다. 배에 얹어져 있던 육지의 짐승이 놀라 앞발을 허우적거리며 어깨에 올라탔다. 추운가, 몸을 계속 떠네. 성준수가 축축하게 젖은 털을 꼬옥 끌어안았다.

물에 빠진 걸 구했나 본데. 한 사람의 목숨을 살렸으니 응당 칭찬해야 할 일이지만.......

'안돼. 도로 갖다 놔.'

'아 왜! 얘 털 길고 부드러워서 좋단 말이야. 꼭 말미잘같아. 이렇게 귀도 있고. 얘 예쁘지 않아? 물개는 털도 없고 귀도 없어서 못생겼잖아. 내가 잘 키울게, 응? 밥 챙겨주고 산책도 시킬게.'

기다렸다는 듯 어린아이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읊으며 책임을 지겠다 선언했다. 또래보다 책임감 강한 아들이니 빈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걔는 물에 살면 죽어.'

그건 몰랐다. 어쩐지 잠수하려 들면 버둥거리고 난리가 나더라니. 놀라서 팔 아래 손을 넣어 마주 보자 물개보다 잘생긴 검은 짐승이 열렬하게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리고 걔 사람이야. 웨어울프지?'

이번에도 열심히 끄덕였다. 드디어 살 수 있다 생각했는지 두 다리 사이로 말려들어 갔던 꼬리가 슬그머니 풀어진다. 실망감에 눈썹이 늘어진 얼굴을 짐승이 위로하듯 핥았다. 포근하고 짭짤한 맛이 났다.

'주웠던 자리에 갖다 두고 와. 얘네 엄마아빠가 찾고 있을 거야.'

시키는 대로 했다. 성준수는 반려동물이 갖고 싶던 거지 사람을 키우고 싶던 게 아니었으므로.

어린 인어의 등에 납작 엎드려 하얀 등에 귀를 댔다. 제가 숨을 쉴 수 있도록 물 밖에서 헤엄치는 인어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 내가 잘 키울 수 있는데. 왜 하필 사람이어서. 얘 진짜 귀엽게 생겼는데. 나도 동물 키우고 싶은데. 귀가 있어야 할 곳에 위치한 지느러미가 축 늘어져 있었다. 위로하듯 목덜미부터 지느러미까지 몇 번 핥아준 늑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랑 헤어지는 게 아쉬워?'

'너 말도 할 줄 알았냐?'

'사람인데 당연하지. 그래서, 아쉬워?'

인어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죽음의 공포 앞에 한참을 떨었지만 진정하고 보니 어린 인어는 꽤 예쁘게 생겼다. 뒤에서 보는 통통한 뺨과 또래보다 날렵한 인상, 특히 포식자의 눈을 가진 게 마음에 쏙 들었다. 어린 늑대는 문득 이갈이가 시작되려는 것처럼 입안이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나, 커지면 진짜 멋있는 늑대가 될 거야. 우리 아빠 닮았다고 하니까 덩치도 다른 애들보다 클 거고, 지금도 무리에서 제일 잘 달려.'

'근데?'

'다시 만날래?'

누군가 보면 스톡홀름 신드롬 아니냐 지적했을지도 모르나 애석하게 바다에는 어린아이 둘 뿐이었다. 인어는 바지런히 꼬리를 움직이며 끄덕였다. 등허리를 간질이는 젖은 털결이 마음에 쏙 든 탓이다.

'응.'

그러자 검은 늑대가 목덜미를 덥석 물었다. 미친, 악! 너 뭐 하는데! 아! 아프다고! 어린 인어가 버둥거리며 늑대를 떼내려 할수록 턱에 힘을 강하게 주었다. 물 먹으면 죽을 것 같이 발버둥치던 녀석이 인어의 몸부림으로 코에 물이 들어가든 말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목덜미를 물었다. 아이를 잃어버린 늑대인간 부부가 배를 타고 바람에 실려 오는 아들의 냄새를 쫓아 올 때까지. 계속.

그때 각인했다고.

존나 발랑 까진 미친 짐승 새끼. 어쩐지 고백받고 소개팅해도 감흥이 없더라. 그래서 제대로 된 애인 한 번 못 사귀다 욕구불만이 쌓이면 게이바나 전전했던 거다. 이제야 제 행동 원리를 깨달은 전영중은 출생의 비밀을 알아버린 듯한 충격을 받았다. 울릉도에서 물에 빠졌던 사고가 5살이라 들었으니 그 정도면 출생의 비밀이라 쳐도 상관없을 나이긴 했다. 발랑 까진 새끼. 5살에 각인했다고. 전영중은 다시 한번 어렸던 자신에게 감탄했다.

그래서 아직도 맥주병이냐 하면, 지금의 전영중은 물을 굉장히 좋아했다. 어렸을 땐 물이 발끝에 닿기만 해도 자지러지게 울었다는데 어느 순간 어린이 수영단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다 육지에 발붙이고 하는 운동이 더 좋아져 종목을 틀긴 했지만... 지금도 시간 나면 헬스장에 딸린 수영장에 가곤 했으니. 이것도 설마 인어에게 각인하고 물이 좋아져서?

"너 진짜 각인한 거 홀라당 까먹었냐?"

면목 없었다. 차마 끄덕이지도 못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던 전영중의 희망회로가 급발진했다. 근데 얘는 날 기억하고 있던 거잖아? 광진구에서 만난 건 우연이라 치더라고, 원나잇은 우연이 아니지! 그거 합의 섹스였다고!

"혹시 나 만나러 서울까지 온 거야?"

절벽 끝에서 만난 한 줄기 희망에 전영중의 눈이 빛났다. 각인한 것처럼 애달프던 상대가 진짜 각인 대상이라는 것만으로 확신에 찬 애정이 흘러넘쳤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얼굴도 제 취향이고. 존나 잘했다, 5살 전영중. 조금 전까지 발랑 까졌다고 까던 과거의 자신을 칭찬한다.

"응."

"진짜? 내가 보고 싶...."

"곧 한국 뜨는데 나한테 이빨 박은 늑대 새끼는 한 번 보고 가야 할 것 같아서."

쿵.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이... 이쯤 분명히 떨어진 것 같은데. 아래를 보자 당연히 아무것도 없었다.

"늑대들은 각인한 상대랑 평생 산다며. 근데 그거 늑대한테나 해당하지 난 아니거든."

진짜? 왜 아니지? 인어는 각인 안 해? 내 목 안 물어? 그제야 전영중은 자기가 인어에 대해 물에 산다는 것과 눈물이 진주로 변한다는 것 외에 아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자기가 인어에게 각인한 줄도 모르고 20년 넘게 산 놈이 뭘 알겠냐만은.......

"안 가면 안 돼?"

헤픈 눈물이 또 떨어졌다. 점찍은 짝과 재회하자마자 생이별하게 생겼으니 당연한 일이다.

"안돼. 세계 인어 수구 대회 참가해야 하거든."

그건 또 뭐지. 잠깐 혼란이 온다. 대충 물에서 하는 공놀이 같은데. 그러니까, 인어들의 피파 같은 건가?

"너 수구 뭔지 모르지."

"으응......."

"공을...... 에휴, 바다에 골대 띄워놓고 집어넣는 거야."

길게 말하려다 귀찮아져 다 잘라먹은 게 분명한 설명이었다.

"나, 나는 농구해!"

전영중이 다급하게 외쳤다. 물에서 공놀이하시는구나! 공 좋아하세요? 전 좋아하는데! 저는 육지에서 공놀이해요. 현역 농구 선수랍니다. 하하 우리 공통점이 있네요. 제가 수구를 배워볼 테니 성준수 씨도 농구 배워보지 않을래요? 좋아하는 걸 공유하고 싶어요—라는 사고의 흐름이었으나 상대를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튀어 나간 건 앞뒤 맥락이 다 잘린 직업 자랑뿐이었다.

"근데?"

망했다. 눈만 도록 굴리던 전영중이 최후의 어필을 했다. 원래 운동한다는 놈들치고 관중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보러 가도 돼?"

"인도양 한가운데서 하는데?"

"배 빌릴게."

"이 시즌에 사이클론 자주 생겨서 육지생물한텐 위험해."

"아니, 그런 날 무슨 경기를 해?"

"물에 사는 것들이 날씨 신경 쓸 거 같냐? 그리고 파도 세게 치면 존나 재밌어."

근데 얜 관중 그런 거 싫어하나 봐. 거절에 어깨가 축 늘어진다. 드러나지 않은 짐승의 특징이 늘어진 것처럼 보였다. 성준수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냥꾼의 본능이 약점을 찾았다. 이거다. 가만히 머리를 내어주던 전영중이 슬그머니 물었다.

"만질래?"

"만지고 있잖아."

"짐승 모습으로. 다 큰 모습은 본 적 없잖아. 나 진짜 멋있게 컸어. 꼬리도 만지게 해줄게."

애초에 성준수가 자신을 주워 온 것도 본신이 잘생겨서가 아니던가. 긴 털을 만지는 것도 좋아했고. 손해 볼 것 없는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영중이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 모습을 바꾸고 네 발을 방방거리며 뛰어왔다. 아까 사기꾼을 잡으러 간 어린 늑대가 어찌 되었나 들렸다 그 꼴을 본 강릉 어르신이 얼굴을 구겼다. 저 저, 채신머리없는, 늑대 망신 다 시키는 새끼.

가까이 내민 머리에 손을 얹는다. 늑대 모습의 전영중은 자기가 아는 어떤 개보다도 컸다. 전영중이 들으면 기함할 소리였다. 당연하지, 늑대인데!

"아예 가는 거 아냐. 경기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올 거니까 기다리고 있어."

한참 귀 뒤를 긁으며 부드러운 털결을 만끽하던 성준수가 선심 쓰듯 말했다. 귀가 쫑긋하더니 동그란 눈을 귀엽게 뜨고 저를 쳐다본다. 정말?

"집 정리하러 와야 하거든. 완전히 뜨긴 할 거야."

"지금 나 놀려?"

제가 늑대 모습인 것도 잊고 크게 외쳤다. 손이 커다란 주둥이를 위아래로 눌러 막았다. 조심 안 해? 꿈이 동물농장에 말하는 늑대로 출연하기냐?

전영중도 억울했다. 아니 그치만 들어봐. 각인 상대가 날 아주 갖고 노는데? 간댔다, 돌아온댔다, 아예 떠난다잖아! 지금 심장 담금질 당해서 죽겠는데?

"일본에서 방사능 오염수 방류하는데 이 바다에서 어떻게 사냐?"

아. 그렇지. 그건 문제지. 전영중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귀가 축 늘어지고 커다란 머리가 힘없이 성준수의 허벅지에 파고들었다. 피휴우. 긴 한숨이 뜨끈하게 바지에 고인다.

"안 가면 안 돼? 나 방류 반대 시위 열심히 나갈게."

"이미 방류 시작했으니 아쉬운 놈이 방 빼야지 어쩌냐? 이쪽 바다까지 오염되는 거 순식간일 텐데."

"어디, 어디로 가려고."

"테네리페."

"거기가 어디야"

"스페인."

"아이 씨이... 존나 멀잖아....... 스페인어는 할 줄 아냐고......."

"Hola?"

전영중이 두툼한 앞발을 들어 성준수의 몸에 파고든다. 무거워 떼려는데 제게 늘어진 거대한 몸에서 낑낑거리는 소리가 울리는 게 제법 불쌍해 목덜미만 쓰다듬는다.

"나는 너랑 살고 싶어......."

손가락 사이를 파고드는 털의 감촉이 나쁘지 않았다.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 물에 빠진 걸 안아주니까 풍성한 털이 축 늘어지고 물에 잠긴 부분이 말미잘처럼 찰랑대는 게 예뻤다. 이 녀석, 물에 담그면 어떠려나. 이제 사람이든 동물이든 책임질 수 있는 나이니까 반려 뭐시기 하나 들여도 되지 않을까?

"야, 빡대가리. 이번에는 까먹지 말고 잘 기억해라."

비늘이 있는 것들은 의태를 해도 신체에 흔적이 남는다. 두툼한 앞발을 가져와 제 허벅지 안쪽에 누른다. 원나잇 하던 날 밤에 절대 못 만지게 했던 부분이었다.

"여기가 내 역린이다."

흔히 약점이라 알려진 곳이다. 정확히는 의태 했어도 흔적이 남아 민감한 부분이었다. 노골적인 말로는 성감대. 늑대가 각인하듯 인어가 제 배우자에게만 알려주는 비밀이었다. 물론 인어에 대한 지식이 어린이 동화에서 멈춰있는 전영중은 무슨 소린지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걸 언제 가르치냐. 혀를 차면서 성준수는 몸을 숙여 두툼한 귀를 세우고 속삭였다.

"스페인은 동성혼 가능해."

동양의 늑대인간 한 마리가 유럽 진출을 결심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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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멋부리는 하마

    이것만을 위해 글리프 가입했습니다...너무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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