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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의 헤그드

믕믕 by 믕믕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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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그드 전신 (@Dododok_cm) 님 커미션

Propile                                                                                                                                                          

백색으로 바랜 머리를 곱게 땋은 길이가 허리께를 간질이는듯하다. 뿔은 한때 그 자리에 있었다는 흔적만이 남아있다.

올리브 빛을 띄고있는 오른쪽 눈과, 검은 안대로 가린 왼쪽 눈이 보인다.

안대로 가려진 것을 들춰보면, 한때 이곳에 눈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조차 없이 공허하게 비어있다.

Story                                                                                                                                                               

바칼이 드락발트에 있었을 무렵부터 바칼을 모셔온 노룡 중 하나이다.

충성심은 있는건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강자가 추앙받는 용족 사회인 만큼 저의 주인으로 모시는 듯 했다.

그에겐 자식처럼 대하던 아이가 있었는데, 바로 메지리아다.

헤그드를 닮아 유순한 성격의 용족이었으며, 인간에게 친화적인 용이었다.

헤그드는 그런 메지리아를 보면서도, 특이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니 그걸로 된게 아닌가 싶었다.

메지리아는 인간을 감싸다가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으며,

그런 메지리아를 감싸던 헤그드 역시 처벌을 받았다.

두 뿔이 잘리며 한쪽 눈을 뽑히는, 그런 형벌이었다.

이후 헤그드는 거의 쫓겨나듯 폭룡왕의 성채를 나왔으며 그대로 나사우 삼림 한 구석에 숨어 살게 되었다.

어떻게 안 것인지 그곳까지 부득부득 쫓아와 용족의 자긍심을 버린 자신을 죽이려는 존재들을 손수 처리하며 쥐죽은듯 살아갔다.

헤그드는 살아도 살은 것이 아니었다.

용족들이 미웠고, 인간들도 미웠다.

그리고 홀로 살아남은 자신조차 미웠다.

그러던 헤그드의 은신처에도 또 한번 봄이 찾아왔다.

유난히 추운 날, 부모에게 버려진 작은 매화 한 송이가 헤그드의 동굴에 바람을 타듯 들어온 것이다.

메지리아가 재잘재잘 떠들던 것이 얼핏 기억났다.

인간은 연약한데, 그 어린 개체는 더더욱이 연약하다고.

그런 기억이 떠오른 헤그드는 제 은신처에 들어온 매화꽃 한송이를 들였고,

메지리아를 돌봤던 것처럼 매화꽃을 정성스레 돌봤다.

인간을 감쌌던 메지리아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것만도 같았다.

그렇지만 비극은 갑작스레 찾아온다 하였던가.

유난히 볕이 따스한 봄날이었다. 헤그드는 따스한 햇빛에 잠이 들었고, 매화꽃은 은신처 주변에서 놀고있었다.

잠에서 깬 헤그드는 매화꽃을 찾았다. 그러나, 소름끼칠정도로 조용하였다.

그리고 바람을 타고 날아온 혈향까지.

헤그드는 불안감이 솟구쳤다.

아니겠지, 아닐거야. 라는 생각을 끝없이 하며 바람을 따라갔다.

불안함은 현실이 되었고, 피로 물든 매화꽃 곁에는 하급 용족들이 있었다.

심심풀이로, 그렇게 매화꽃은 흐드러져 짓밟혀버린고 만 것이다.

헤그드는, 노룡은 진노하였고 그것들을 똑같이 만들어주었다.

그리곤 한참을 짓밟힌 매화꽃을 품에 안고있었다.

헤그드는 자신에겐 감히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 말할 자격이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빼앗긴 것들의 설움을 알 것같았다.

메지리아의 마음도 알 것같았다.

그 때 두려워하면서도 바칼에게 말을 올렸던건.

자신이 찢어발겨질 것을 알면서도.

인간을 사랑했기에.

너는 그들의 목숨이 장난감처럼 여겨지지않길 바랐던거구나.

헤그드는 한참을 울고, 웃었다.

그리곤 더 이상 용족을 자신의 일족으로 여기지 않았다.

제 피를 부정하고, 그들을 부정했다.

그의 바람은 더 이상 바칼을 위한 바람이 아니었다.

불의 숨을 멎게 할 바람이 되는 순간이었다.

"메지리아. 내 첫번째 아이야.

너는 틀리지 않았단다.

내가 반드시 그것을 증명해보이마."


해방(解放) - 다시 하늘이 되다

-칼바람의 헤그드

해방 직후, 헤그드는 온전치 못한 몸으로 폭룡왕의 정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투의 흔적이 남아 거뭇거뭇한 탄 자국, 매캐한 연기, 핏자국이 가득했던 전장 한가운데.

넓은 앞마당에 헤그드는 가만히 멈춰있다.

헤그드는 그날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날도 어김없이 폭룡왕이 약한 것들을 죽이던 날이었다.

평소에는 그저 약한 용을 죽여왔었다면

그날은 천계인들을 죽이려했던 것이다.

드락발트에 있었을 시절부터 제 백성을 죽이던 자였으니 그보다 약한 천계인이라고 죽이지 못할까.

헤그드는 늘 해왔던 것이니 그것을 아무 표정 없이 그저 지켜보려했다.

자신의 아이가 천계인과 폭룡왕 사이를 막기 전까진.

메지리아.

헤그드가 700년의 삶을 살아오면서 유일무이하게 자식처럼 여겼던 용.

인간을 사랑하던 용.

그런 아이가 제 발로 죽음을 향해 달려들었고, 헤그드는 제 아이를 지키기 위해 황급히 폭룡왕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한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메지리아는.

헤그드의 자식과도 같던 그 아이는 인간을 감쌌단 이유와 폭룡왕의 유흥을 방해했단 이유로  갈가리 찢겨 죽은 것이다.

그리고 본래라면 헤그드 역시 같은 운명이었으나,

아주 오랜시간 폭룡왕의 곁을 지켜온 공을 생각해 한쪽 눈을, 두 뿔을 잃고 쫓겨나는 선에서 그쳤다.

그리고, 그러한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이제는 그 흔적은 새로운 것들의 피로 수없이 쌓여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지만.

그날 세상을 잃고 홀로 살아남은 노룡의 마음 깊은 곳에는 영원히 그 흔적이 남아있었다.

헤그드는 천계 연합에 가입한 날 외에는 제 감정을 결코 드러내지 않았다.

그가 천계 연합에 들어오려던 이유를 아는 것도 극소수였다.

그렇기에 그가 폭룡왕이 기거했던 성채의 앞마당에서 오열하듯 우는 모습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당황했다.

누군가는 그래도 제 종족이 멸족하디시피 했으니, 그것이 슬퍼 우는것이 아니겠느냐 -라고 하기도 했지만

이어진 그의 말에 모두가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메지리아. 내 아가.

네가 믿고 사랑했던 인간들이.

네가 옳았음을 증명해주었단다.

이후 헤그드는 자신에 대한 처분은 온전히 천계측에  맡길 것을 약조하였다.

또한 자신에 대한 처분이 결정이 나기 전까지 헤그드는 천계 복구에 매달렸다.

천계 복구를 도우며 헤그드는 세상을 둘러보았다.

이렇게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을, 그저 동족들은 욕심으로 이러한 평화를 짓밟아온 것이다.

자신 역시 그에 동조해온 만큼 앞으로 남은 생을 바친다 한들,

지금껏 스러져온 것들이 살아야했던 삶을 보상하진 못할 것이다.

기계혁명이 일어난지 1년.

불의 숨이 멎은지 1년이 흐른 어느날.

흐드러지게 핀 매화나무 아래에서 헤그드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사인은 부상의 악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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