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

불식의 비행

빵준

가마솥 by 숭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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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는 꽤 개같은 스포츠다. 

예비된 추락을 거역할 수 없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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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수준 이상의 사람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으면 그 개개의 가치는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하나하나의 역사를 지닌 인생이 매몰되고 오로지 숫자만이 남는 까닭에. 

10명의 죽음은 비극이다. 100명의 죽음은 감히 개인이 혼자서 감당키 어려울 정도의 슬픔을 몰고 온다. 1,000의 죽음부터 점점 슬퍼하기 어려워지다가 10,000을 돌파하는 순간 사람의 목숨은 오로지 숫자로만 치환된다. 일만의 목숨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곧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돌고 돌아 인지와 은유로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슬픔의 총량은 그토록 미약하다. 어쩌면 실감을 향한 이성의 방해야말로 연약하기 짝이 없는 자신을 지키려는 영혼의 몸부림일지도 모르겠다. 동굴에 비친 그림자로 하여금 형상을 파악하는 일이 태양을 직시했다가 눈이 머는 것보다야 나을 테니. 

명확한 것은 직관이 일만의 숫자를 넘지 못한다는 검증된 사실뿐이다. 인간은 여전히 열 손가락 열 발가락으로 숫자를 세던 시절을 벗어나지 못했다. 미완의 감각으로 웃자란 이성을 위태로이 붙들며 사는 생물인 것이다.

'성준수, 결국 은퇴 소감 밝혀……어깨 부상이 원인?'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다" 불굴의 슈터가 밝힌 마지막 한 마디'

전영중은 무감한 눈으로 스마트폰을 바라본다. 한 손으로 넉넉히 쥐고도 남을 자그마한 액정을 오랫동안 쳐다보는 모든 현대인들이 그렇듯 사이언스 논문 저널을 읽는 뼈철학도처럼 표정에 동요 하나가 없다. 스포츠 면에 뜬 숱한 헤드라인만 슥슥 검토하던 영중은 결국 화면을 껐다. 거기서 거기인 이야기투성이었다. 설령 의미있는 기사가 있다 하더라도 일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요약으로 응축한 데스크발 헤드라인은 그 의미를 너무도 쉽게 퇴색시켰다. 클릭수 한 번이 조회수 한 번이고 그 조회수 한 번이 광고로 직결되니 오늘도 인터넷 뉴스 게시판은 미끼와 떡밥과 소재에 눈이 벌게진 전장이었다.

수렵과 채집에 익숙한 인간의 눈은 현대 사회에 아직도 적응하지 못해 화면 빛에 쉽게 피로해졌다. 영중은 뻐근한 눈을 질끈 감으며 안와와 콧대에 제 팔을 얹었다. 화면 너머로 읽었던 기사의 헤드라인이 살아있는 것처럼 눈꺼풀을 스크린 삼아 어룽거렸다.

"보호자 분 들어오실게요."

감정이 배제된 지극한 목소리가 영중을 일깨웠다. 팔을 내리고 일어서자 무게에 짓눌렸던 시야가 돌아오는데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뻑뻑한 눈을 손으로 한 번 문지르며 영중은 방 안으로 들어섰다. 담당 의사의 이름이 적힌 팻말 위로 진료실 3이라는 글자가 지독히 무미건조하다. 그 방 안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슬픔과 절망이 진료라는 이름을 입고 배양되었을지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진료실 너머의 창으로 개나리가 활짝 펴 있었다. 벌써 봄이었다.

성준수는 지난 겨울, 사고로 어깨 관절과 쇄골이 무너졌다. 

부위가 부위인지라 한동안 꼼짝을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재활을 해도 위화감이 느껴질 수 있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다. 농구선수로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었던 성준수에게는 사망 선고나 다름 없는 진단이었다. 병원을 몇 번 옮겨봤지만 의사의 말은 한결같았다. 

격한 운동은 절대 금물입니다. 일상 회복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추후 재활에 달렸지만 몇 년 간은 힘드실 겁니다……. 

영중은 황당했다. 그런 걸 고치라고 있는 게 병원 아닌가. 마음 같아선 그 무책임한 말들을 뱉은 의사를 전부 직무유기로 고소해버리고 싶었더랜다.

깁스를 풀고 뼈는 전부 붙었지만 그간 빠져버린 근육과 굳은 관절과 덜 아문 살성과 한 번 끊어져버린 신경은 컵 하나 쥐는 것조차 어렵게 했다. 깁스를 푼 직후 머그컵을 평소처럼 쥐었다가 그대로 놓쳐 깨트린 준수는 한참을 그대로 앉아있었다. 바닥을 구르는 깨진 머그잔이 유독 희어서 영중은 그만 아찔해졌다. 발 밑이 푹푹 꺼지는 감각. 심장이 뻐근하게 굳고 폐부에 시멘트를 처바른 것 같은 느낌. 그 장소에서 곧장 도망치고도 싶었지만 감히 그러지 못했다. 그때의 심정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있을까? 영중은 결코 그러지 못하리라 여긴다. 

최악의 겨울이고 지독한 계절이었다.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과묵하지도 않았던 준수는 사고 이후 한동안 아예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영중은 결국 참지 못하고 멱살을 잡아 그를 일으켜도 보았지만 그 이상의 대거리는 하지 못했다.

'놔.'

이 한 마디가 끝이었다. 그것을 뱉는 것조차 준수는 지독히 피로해보였다. 

윗학년 선배도 뒤 보지 않고 들이박던 어마어마한 성질머리는 세월에 밀려 다 어디로 가버렸나? 수술방에서 어깨가 아니라 성격을 뜯어 고치기라도 했나? 

돌아오는 게 길다란 매도나 욕지거리이길 바랐다. 아니면 눈물이라도 짓던가. 혹은 화를 내던가. 영중은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랬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을 터였다. 준수의 무감한 얼굴이 소름끼치도록 끔찍했다. 깊어지는 눈동자에서 어떤 우울이 언뜻 비칠 때마다 그것이 생경하고 역겨웠다. 우울, 이라는 이름과 그를 닮은 모든 감정은 성준수와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느니 앞을 바라보고 할 수 없는 것을 세느니 할 수 있는 것을 연마하던 사람이 성준수다. 그를 이따위로 넘어트린 게 만약 신이라면 영중은 신을 죽이는 방법을 매일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중은 무신론자에 가까웠고 그에게 신이 임할 일은 없었다. 

하여 밤마다 자비나 용서 없이 너의 꿈이 내 안에서 되감아졌다. 평생 농구 하나만을 꿈꿨던 너를 내가 품은 까닭에. 

그의 꿈까지 남김 없이 사랑한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영중은 불면의 밤을 감내했다.

진료실로 들어가 준수를 데리고 나왔다. 정기 검진이 끝난 후 담당의는 늘 비슷한 말을 해 영중은 거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다음 검진 날에 봅시다, 경과가 좋네요, 많이 노력하셨네요, 고생하셨습니다, 뭔가 이상하면 바로 병원으로 오세요. 이젠 눈 감고도 줄줄 욀 지경이었다. 본디 노력이란 것이 지긋지긋함을 넘어서 어떤 관성이 되었을 때야 비로소 결과를 볼 수 있는 것이라지만. 평생을 스포츠 선수로 살아 온 영중이 노력의 차가움을 모를 리 없었지만, 그래도. 

"연습하러 안 가냐?"

"오늘은 괜찮아."

준수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영중은 준수의 정기검진 날에는 귀신 같이 스케쥴을 전부 빼왔다. 그 탓에 해당 주차의 앞뒤로는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든 생활을 해야 했음에도 요지부동이었다. 몇 번 설득해보기도 하고 매일같이 싸우기도 했지만 이 분야에서 영중의 고집은 준수의 성질머리를 아득히 상회했다. 준수는 더 말 얹기를 포기하는 대신 모든 일정을 얼른 해치워 그를 저녁 쯤에나마 구단 전용 체육관으로 걷어차듯 보냈다. 처음에는 이조차 안 가겠다며 강짜를 놓던 놈이 이마저도 안 할 거라면 너랑 분가하겠다고 단호하게 선을 긋자 겨우 수긍했다.

영중과 준수는 대학 리그 말미부터 동거를 시작했다. 서로 알게 된지 15년만의 일이었고 연애한지 3년만의 일이었다. 드물게 둘의 의견이 합치하자 그 뒤의 일은 일사천리였다. 이야기가 나오고 집을 합치는 데까지 두 달도 걸리지 않았으니 속도위반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처음 함께 지냈던 월세방에서 지금의 집까지 세 차례 이사를 거듭했고 지금의 집에 오기 직전쯤에는 양가 어른들이 이미 그들을 결혼한 사이로 취급했다.

처음 그것을 알았을 때 영중은 먹던 밥 숟가락도 내려놓고 턱을 헤 벌렸더랜다. 그 얼빠진 꼴을 못 견디고 준수가 입 좀 닫으라며 한 마디하자 영중은 척수반사처럼 넌 왜 하나도 안 놀랐냐며 거의 시비조로 되물었다. 그러자 이마에 핏줄이 바짝 돋은 성준수가 젓가락을 탁 내려놓더니 그럼 씨, (영중은 분명 그 뒤의 '발'까지 들었지만 준수가 급히 ㅂ의 시작에서 얼버무려 확실하지 않았다.) 니는 이래놓고 나랑 결혼 안 할 생각이었냐며 대차게 갈궜다. 영중은 그 말에 K.O 당하며 양 손에 얼굴을 묻었고 준수는 멀끔한 얼굴로 다시 밥을 먹었다. 그 염병천병을 두 눈 앞에서 목격한 양가 어른들의 반응은 흐뭇과 민망 사이를 파도처럼 오갔다.

"뭐 먹을래."

"글쎄……밥?"

"그니까 밥 뭐."

"순대국밥."

"보쌈고기 또 니가 다 처먹기만 해."

"남긴 거 해치워줬더니 말이 많다."

준수는 다시 금방 앞을 보는 사람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웃으며 슛을 날리는 것이 어떤 무엇도 감히 박탈할 수 없는 그의 천성이었다. 설령 더는 슛을 날릴 수 없는 몸을 지녔을지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는 거, 언제고 승리를 원한다는 거, 그건 무엇보다도 자신을 몰아붙이는 짓이다.

앞으로 그는 농구선수로서의 삶이 아니라 코치나 감독의 루트를 밟기로 했다. 준수의 고등학교 은사인 이현성 감독은 준수의 이른 은퇴 소식에 감독이 쉬울 거라 생각하지 말라며 담담하고도 농담 어린 응원을 보내왔다. 자신의 어린 제자와, 그 제자의 반짝이는 미래를 그려보았을 사람치고는 응원의 말에서 안타까움이나 슬픔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영중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이현성 감독이 어째서 명감독이라 불리우는지를 알았다. 온전히 선수를 위한 말을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만큼만 건넬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흔치 않다. 그 속이 어찌 되었든 간에. 영중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 사실이 쓰라렸지만 불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은 영중이 또한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준수는 재활과 동시에 준비를 진행하려 했지만 영중의 신랄한 비판에 결국 재활을 끝낸 뒤로 시기를 미뤘다. 치료에 전념하기만 한다면 영중은 준수의 빈 시간에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젠 도저히 병실에 못 처박혀있겠다며 뛰쳐나온 후 준수의 취미는 하나에 정착하는 일 없이 공연히 배회했다. 근래에는 기타연주에까지 닿아서 손가락 끝이 물집으로 가득했다. 영중은 슈터의 손이 아니게 된 준수의 손을 보며 치미는 울분을 삼키느라 다시 또 날밤을 새야 했다. 그러나 준수는 기타가 꽤 마음에 들어보였다. 

병원에서 집으로 가는 길 중간 쯤에 위치한 국밥집은 리모델링을 반쯤 하다 만 인테리어였다. 창과 식탁은 깨끗하고 수저통은 테이블 옆에 달려 있으며 신발을 벗고 들어가지 않지만 반찬과 물은 셀프가 아니고 홀서빙을 맡는 직원은 오래 근무한 사람 특유의 친절과 무심함을 절묘하게 겸비했다. 불빛은 과하게 하얗지 않았고 정수기는 전자식이 아니라 기계식이었다. 준수와 영중은 마주 보고 앉은 채 순대국밥 두 개를 시켰다. 

따끈한 국물과 고소하고 찰진 순대가 입 안에 짝짝 달라붙었다. 맛은 있었지만 영중은 오늘따라 국물이 느끼해 숟가락을 놀려 순대만 몇 개 떠먹었다. 준수는 묵묵히 밥을 잘 먹고 있길래 영중은 깍두기를 슬쩍 밀어주었다. 이제 밥 먹는 일 정도로는 손을 떨지 않지만 영중은 그래도 준수의 오른 어깨를 자연스레 눈에 담았다. 기실 영중은 언제나 준수의 오른어깨와 오른팔, 오른손에 온 신경이 쓸려 있었다. 아닌 척 흘끔대는 눈길에 준수가 제대로 화를 낸 적도 있었지만 영중은 모른 척 훔쳐보는 기술만 늘었을 뿐 습관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영중은 밥을 먹다 말고 물을 홀짝이며 창밖을 건너봤다. 난방을 끈 식당 내부는 주방의 열기와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으로도 춥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영중은 말이 없었다. 

봄. 이 신록의 계절 가운데서 오로지 영중만이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준수는 그 낯을 찬찬히 살펴보다 작은 한숨을 삼켰다. 

영중은 그날의 루틴을 소화하러 체육관으로 떠났고 준수는 기타를 쥐었다. 농구 외의 것에 흥미를 지녀본 적이 얼마만이더라. 초등학생 때 피파 이후로 처음이지 않나. 돌고 돌아 여기까지 흘러들어왔지만 준수는 자신의 삶을 아꼈다. 못 아낄 건 또 뭔가.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이제 손가락에 공 대신 줄을 걸었다.

성준수라고 처음부터 모든 시련에 꿋꿋할 수는 없었다. 좆같은 사고로 어깨가 박살났을 때 구급차에 실려가며 이제 더는 농구를 하지 못하게 될 것을 직감했다. 병실에서 눈을 떴을 때 너나할 것 없이 엉망이 된 가족의 얼굴과 시체처럼 질린 영중의 얼굴을 보고 확신했다. 난 다시는 코트 위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아, 이 씨발. 이럴 줄 알았으면 차 타지 말고 곱게 지하철이나 탈 걸. 

허망했다. 그래, 솔직히, 절망스러웠다. 세상에 운 나쁜 새끼들을 전부 모아놔도 나만한 놈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벌벌 떨리는 오른손과 급작스럽게 닥치는 고통의 굴레 속에서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줄었다. 병문안을 온 관계자와 팀원들, 지인들의 얼굴을 볼수록 그랬다. 왜 나만 이래야 해? 같은 쪽팔린 말을 차마 내뱉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 겨울은 성준수에게도 아주 많이 추웠다. 

'성준수! 너 이대로 뒤질 거야? 그래?'

그러나 그날 밤. 전영중이 제 멱살을 틀어쥐었던 그날. 별 말 않고 꾸준히 병문안만 오가던 전영중이 머리 끝까지 빡친 그날에 성준수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냥. 영중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한심해서. 

그러고보니 전영중이 언제 마지막으로 울었더라. 

"전영중. 너는 왜 니가 뒤진 것처럼 구냐."

"뭐라고?"

전영중이 집에 돌아와 씻고 나오자마자 들은 말이 그것이었다. 이게 뭔 개소리지? 

"계속 그 상태잖아. 너."

"준수야. 말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줄래?"

"이제 다 괜찮아지고 있는데 왜 너 혼자만 죽상이냐고. 새끼야."

영중의 낯에서 웃음기가 싹 빠졌다.

"뭐가 다 괜찮아졌는데?"

"전영중."

"괜찮은 게 대체 뭔데?"

 

나는 니가 그 별 이상한 기타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빈 시간에 밖에서 뛰는 게 아니라 집에 있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병원에 가도 똑같은 소리만 들어야 하는 것도 안 괜찮고 식탁에 아직도 쌓여있는 약봉투를 보면 정신이 나갈 것 같아. 그런데 뭐가 괜찮은 건데? 

"하……. 니가 안 괜찮아 보이니까 내가 묻는 거 아냐. 너 왜 그러냐고."

왜 그러냐고? 왜냐니. 준수야. 너 정말 몰라? 

성준수의 꿈이 꺾였을 때 영중은 꼭 일만의 목숨이 제 안에서 모조리 도살된 것 같았다. 숫자로 치환될 수 밖에 없는, 이지의 영역을 벗어난 참담함에 영중은 매몰되었다. 준수가 다친 후로 단 하나의 눈물도 흘리지 못했다. 어떤 슬픔은 영혼을 메말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말을 너한테 할 수는 없잖아. 네가 농구 못하는 거 억울하고 속상해서 이러고 있다고 내가 말하면 안 되는 거잖아. 방금까지 코트 위에서 뛰고 온 건 누군데. 아직도 농구공을 튀기며 다음 시즌을 걱정하는 내가, 너 농구 못해서 속상해 죽겠다고 입 털면, 그건 진짜 죽일 새끼인 거잖아. 

"됐다. 내가 니 뭔 생각하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뭐?"

"농구해. 등신아. 훈련이 쉬운가 보네. 헛생각도 다할 짬이 있고."

"……."

"하라고. 농구. 마음 편하게 농구하라고. 개새끼야. 올해 MVP 못 따오면 죽여버릴라니까."

"MVP가 옆집 개 이름이니, 준수야……."

"닥치고 하라면 해. 그리고 자꾸 내 기타 그딴 눈깔로 보면 가만 안 둔다."

전영중은 자신이 숨기려고 했던 모든 것이 이미 까발려졌음을 이제야 알았다. 

너는 다 알고 있었구나. 

하나부터 열까지. 그냥 다 알고 있었구나.

그래, 난, 아직 네가 하늘을 향해 뛰는 꿈을 꿔.

추락과 낙하를 구분짓지도 않고 그 끝에 걸린 것이 행복인지 불행인지 셈하지도 않고 단지 높이 오르는 것만을 생각했으면 했어. 나와 같은 곳에서 나와 같은 것을 봤으면 했어. 끝이 난다면 그게 함께였으면 했어. 누가 설령 먼저 끝나버린다면 도전하는 네가 아니라 버티는 내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정말로 농구를 계속해도, 그래도, 괜찮아?"

그래도 돼? 

내가 정말로 농구를 해도 괜찮아? 

전영중은 거의 헐떡이고 있었다. 우스운 질문이고 회피이자 면피의 단어로밖에 구성되지 않은 문장이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래도. 

너를 꿇어앉힌 농구를 아직은, 나는 아직. 조금만 더 해보고 싶어서. 허락하는 만큼 최선을 다해 뛰고 싶어서. 너의 추락을 뒤에 두고 나는 비행하고 싶다니, 그 마음을 내가 용납할 수도 차마 용서할 수도 없어서…….

영중은 겨울 내내, 농구가 즐거운 자신이 끔찍했다. 

"그래. 이 띨빡아."

성준수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긍정한다. 그러나 말이 가볍단 뜻과 등치되지 못한다. 그의 검은 눈에 빛이 있었으므로. 

한끗의 망설임도 없이 올곧기만 한 시선으로 영중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중은 그 시선이 자신을 끌어올려주는 것만 같다. 빛 아래로. 그가 있어야 할 코트 위로.

 "띨빡이 뭐야, 네 애인한테……."

"그래. 띨빡아. 그만 울어."

"안 울었어."

"말을 말자 내가……."

퉁명스러운 어조와 다르게 성준수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영중을 가만 끌어안았다. 영중은 코를 훌쩍이면서도 준수를 꽉 끌어안았다. 

늦은 봄이 오고 있었다.

"그럼 악보 가져오면 기타 쳐 줘……."

"갖고 와서 입을 털어라."

"왜 연주 나한테는 안 들려줬어."

"그걸로 프로포즈할 거였으니까, 띨빡아."

"……프로, 프로포즈?"

"하여튼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새끼……꺼져. 잠이나 자. 얼른 들어가."

"준수야?"

"어, 잘 자라."


감사합니다.

밑으로는 소장 겸 사담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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