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o

3부 10화

북부기사단 야외훈련일지(2)-마을편

“흠, 이번 마을도 아무 이상이 없네요. 다행이다.”

이디스가 한 마을을 떠나며 안도했다. 두 번째 마을을 떠날 때 받은 간식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두코가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 번째 마을은 전날 시도폰과 기사들이 훈련했던 숲과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기사들이 마을로 들어서자 사람들은 봄꽃을 여기저기서 뿌려주었다. 기사단이 중앙에 난 길로 향했고, 사람들은 그 길의 양쪽 가장자리에 줄을 서서 환호했다.

“잠시만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당신이 집행자신가요? 제 말을 들어주세요.!”

한 아이가 시도폰을 향해 달려들다가 기사들에게 막혔다. 아이가 위험한 물품을 들고 있지도 않았던 데다가, 나이가 어려 보였기에 그를 막는 기사들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마을로 오시면서 숲을 지나오셨죠, 거기서 저희 어머니 못 보셨어요? 짙은 갈색 머리카락에 아마 하얀 옷을 입으셨을 거예요!”

놀란 시도폰이 행진을 멈추라는 신호를 뒤에 보내자 일행은 그 자리에 멈춰섰고, 기사단을 교회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마을 이장이 헐레벌떡 뛰어나와 아이의 어깨를 잡아 뒤로 물렸다.

“죄송합니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감히 실례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아, 저는 이 마을의 이장되는 사람입니다. 바로 교회로 안내하겠습니다.”

“알겠네. 자세한 사정은 가서 듣도록 하지. 아이를 놓아주게.”

기사들은 시도폰의 명령에 아이를 제압하고 있던 힘을 풀었다. 작은 마을이라 모두 이 아이의 사정을 아는 것인지, 환호성이 그쳤고 마을 사람들은 기사단의 시선을 피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다들 이런 반응이냐며 난감해하던 두코는 갑작스레 안색이 나빠진 프라이에를 발견했다.

“뭐야, 너 뭐 아는 거 있어? 아니면 갑자기 어디 안 좋냐?”

“갈색 머리…. 숲. 아냐, 확실한 건 아니니까 여기서 말하긴 힘들 것 같아.”

프라이에는 이틀 전 다쳤던 부위가 다시 아픈 것 같아 소매를 걷어보았지만,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다. 그런 반응에 두코는 더 묻지 않고 교회로 고개를 돌렸다.

교회 건물이 작았기 때문에 모든 기사가 안으로 들어가는 건 힘들었다. 두코와 크로마, 이디스는 다른 기사들과 함께 건물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고, 시도폰과 솔라, 프라이에가 이장을 따라 교회로 들어갔다.

아이는 이장의 옆에 붙어서 시도폰을 간절한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었고, 의자에 앉은 시도폰은 이장에게, 마을로 오는 길엔 악마가 전혀 없었으니 안심하라고 전했다. 그 뒤로는 마을의 재정이나 안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고, 빠르게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그럼 이제, 이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아이의 어머니께서 실종되신 건가?”

“하….”

이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집행자 앞에서 실례했다며 사과했고 시도폰은 괜찮으니 어떤 사정인지 이야기해보라고 재촉했다.

“사실 아이의 어머니는 죽은 지 일주일은 되었습니다.”

“아니에요. 어머니는… 어머니는 그렇게 되시고 나서도 계속 제 곁에 계셨다고요. 왜 제 말을 안 믿어주시는 거예요! 어머니는 살아 계실지도 몰라요.”

아이가 소리치자, 프라이에는 그에게 진정하고 이장의 설명을 들은 뒤에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다.

“일주일 전, 아이의 어머니는 살해된 채 발견되었습니다. 아이가 외출했다가 돌아와서 어미의 시신을 발견하고 이웃들에게 알렸습죠. 추정하건대, 범인은… 아이의 아버지인 것 같습니다. 그날 이후로 사라졌고,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으니까요.”

말하면서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났는지 이장은 중간중간 말을 끊었다. 이런 이야기를 제삼자에게 해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아이는 시도폰이 들어주길 바라는지 이장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는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캐서린, 아이 어머니의 이름입니다. 캐서린이 죽은 날 아이가 잠을 잔다고 방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서 그 방에서 계속 무슨 소리가 들리더군요. 저는 아이가 울고 있는 줄 알고 방해하지 않았지만, 아이는 다음날 제게 와서 어머니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해가 뜨기 전까지 제 곁에 계셨어요. 저는 눈을 감지 않으려고 했지만 해가 뜨기 시작하자 굉장히 졸려서 저도 모르는 새에 잠들었고, 깨고 보니 어머니는…. 하지만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도 밤마다 저를 보러 와주셨어요.”

“그건 네가 너무 힘들어서 꿈에서 본 거라고 말했잖니.”

이장이 타일렀지만 아이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랬는데… 나흘 전, 어머니는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하셨어요.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내면서 네발로 기어 다니기도 하셨고, 제가 무섭다고 해도 전혀 그런 걸 멈추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다음 날 밤엔 밖으로 뛰쳐나가셨고 그 뒤로는 보이지 않으세요.”

“그래서 어머니를 우리에게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구나. 미안하지만 우리는 오면서 캐서린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단다. 다른 마을에 그런…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이 몇 명 있기는 했지만, 다들 그 마을 출신이었고.”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인 시도폰이었지만,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다. 아이는 실망한 눈치로 고개를 숙였는데, 그때 프라이에가 아이에게 물었다.

“네 어머니가 짐승처럼 행동했다고 했지? 외형이 변했다고 느끼진 않았니?”

“밤이라서 잘 안 보였어요. 죄송합니다.”

프라이에는 무언가 생각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지만, 아이의 대답에서 시도폰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밤이라서 잘 못 봤다고 했지. 그런데 그 영혼인지 뭔지 모를 게 네 어머니라고 어떻게 확신한 거지?”

“그건, 그건… 그냥 어머니였으니까요. 제대로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어요.”

아이는 확신이 없었는지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 이장이 자리를 마무리하자며 일어섰고, 시도폰은 그러마 하며 그를 따라 교회 문을 열었다.

시도폰의 뒤에 바짝 따라붙은 프라이에는 잠깐 이야기하자며 그를 구석으로 데려갔다. 솔라는 따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두 사람을 두고 본대로 돌아갔다.

“뭐야, 혹시 네가 캐서린을 봤다든가 아는 사람이라든가 그런 거야?”

“응. 확실하게… 증명할 만한 근거는 없지만, 캐서린을 내가 본 것 같아. 우리가 이틀 전에 토벌했던 숲의 악마들 사이서. 이상하잖아, 악마들 사이에 사람이 있는 게. 그래서 그쪽으로 가까이 가다가 나무가 있는 걸 못 보고 팔이 거기다 부딪혔단 말이야.”

프라이에는 이디스가 치유해줘서 말짱해진 팔을 들어 올렸다.

“그랬는데, 다시 보니까 거기엔 사람은 무슨, 짐승 같은 악마뿐이었지. 그땐 내가 벌써 피곤한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지금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게 설마 캐서린이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하지만 네가 본 인간이 악마로 변하는 건 못 본 거 아냐? 아이는 캐서린이 네발로 기어 다니기까지 했다고 했는데, 넌 그 형체를 인간이라고 인지한 걸 보면 두 발로 서 있었던 거 아냐?”

“말을 타고 있어서 높이가 잘 가늠이 안 됐어. 얼굴을, 이목구비는 기억나지 않지만, 얼굴을 봤는데 그 밑의 몸뚱이가 어땠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

“음….”

사실 시도폰은 프라이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가지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야기했다간 프라이에를 자극할 것 같아 그 추론은 묻어두기로 했다.

‘프라이에의 말을 들어보면 헤일로 단장 때의 일이 생각나는데, 그때도 프라이에는 누군갈 봤다고 했지…. 외형은 캐서린과 다른 것 같지만 악마들과 함께 나타난 존재. 다른 점이라고 하면 캐서린은 악마들 사이에 섞여 있었고 짐승처럼 행동했지만, 그 사람은 말을 할 줄 알았고 악마들이 그의 지시에 따르는 것처럼 행동했다는 거.’

길게 고민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기에 잠시 후 솔라가 두 사람에게 떠나야 할 시간이라고 알렸고, 시도폰은 캐서린을 찾게 되면 알려주겠다고 이장에게 이야기했다.

물론 죽은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가 이장의 곁에 붙어있었기에 그렇게 의례적으로라도 말해주는 게 나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을에 들어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부대가 마을 경계를 벗어났다.

시도폰은 다음 마을로 향하면서 생각에 잠겼고, 프라이에도 고민이 많았는지 말이 없었다. 심각해진 두 사람에 두코만 눈치를 보았고, 그는 괜히 크로마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본전도 못 찾고 조용해졌다. 이후 마을 순찰에선 특별한 일이 없었고, 캐서린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음날 들른 마을에서 신원 미상인 남성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시도폰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캐서린이 살았던 마을에 소식을 전했고, 얼마 뒤 도착한 이는 남성이 캐서린의 남편이 맞다고 증언하였다.

‘짐승한테 여기저기 찢긴 것 같은 모양인걸.’

“알려줘서 고맙네. 그런데, 다른 부분보다 얼굴의 훼손이 심각한데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나?”

“이장님께서 어디까지 설명해 드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이가 상당이 거칠게 살았습죠. 그래서 저런 허벅지 같은 데도 상처가 있는 것이고요…. 옷도 도망가기 전날 입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 일이 있었던 날에 함께 있었나?”

“예…뭐. 마을 남자들끼리 술 마시는 일이야 잦으니까, 그날도 평소처럼 다 같이 마시고 떠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저이가 많이 취했는지 ‘마누라 찾으러 간다!’라며 벌떡 일어났었고요.”

“아무튼, 저 남자가 캐서린의 남편이라면 아이는….”

대화를 듣고 있던 솔라가 시도폰에게 보호소에 연락해두겠노라 말했다. 시도폰이 아이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니 소식을 알리되 결정권은 아이에게 주어야 한다고 지시하고 다른 기사들에게 시신 수습을 명령했다.

“아무래도 악마에게 당한 것 같으니 정화 의식부터 해야겠네. 이디스, 할 줄 알아?”

“네, 니옌 사제님께 배웠어요.”

자신이 할 수 있다며 의욕적으로 나선 이디스는, 시신의 상태를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속을 게워냈다. 프라이에는 익숙하게 등을 두드리며 크로마에게 물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이래서 언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던 거군요. 쿨럭, 감사합니다.”

“미안. 네가 시신을 처음 봤다는 걸 생각을 못 했어. 물론 익숙해져야 할 일이지만 처음 다루는 시신 치곤 외양이 상당히 난이도가 세지. 눈을 가려도 정화는 가능하니까 눈 감아 봐.”

입을 닦아낸 이디스의 뒤에서 프라이에가 손수건을 꺼내 눈을 가렸다. 이디스가 시신을 정화할 동안 시도폰은 시신이 어디서 발견되었는지 물었는데, 이장은 마을에 있는 신성한 동상 앞에 제물을 바치듯 놓여있었다고 답했다.

악마와 대치하는 경계선에 있는 마을엔 집행자들의 모습을 본뜬 동상이 하나씩 있었는데, 이장은 바로 그 동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악마에게 당한 시체가 집행자 앞에 바쳐졌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일단 정보를 기억해둔 시도폰은 본부로 돌아가서 의논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정화 의식이 끝난 시신은 캐서린의 마을로 보내달라고 이장에게 부탁했다.


“내일은 경계초소 방문이고… 그거 끝나면 바로 본부로 돌아가나요?”

졸음을 참던 이디스가 두코에게 물었다. 두코는 반쯤 조는 얼굴로 이디스의 볼을 잡아당겼다. 덕분에 잠이 깼다며 이디스가 반격했지만, 졸고 있던 두코가 이디스보다 빨랐기에 그의 사소한 반항은 실패로 끝났다.

“본부로 돌아가는 데만 이틀 걸리니까 아마 그럴 거야. 하아암.”

“그나저나 아무리 봐도 악마한테 당한 거로 보이는 시신이 마을 한복판에 있는 동상에 놓였다는 게 신기하지 않나요? 악마도 사실 신을 숭배하는 거라든가.”

“학교에서 그런 말 하면 이단으로 몰린다는 말 듣지 않아?”

이디스의 말에 두코는 황당해하며 물었다. 이디스는 입을 쭉 내밀고 투덜거렸다.

“당연히 학교에선 못하죠. 사실 비밀리에 신학 공부하는 아이들끼리 그런 논쟁을 하곤 했었어요. 세상에 악이 왜 존재하는가. 신께서 전능하시다면 악을 왜 없애지 않으시고 인간이 고통받는 걸 두고 보시냐 같은 거요.”

“흠…. 오드샤가 하도 동생 자랑을 하길래 그런 데 관심 없을 줄 알았는데.”

“어, 언니께서 제 칭찬을요?”

“응, 나한테 귀족적인 면이 부족하다며 자기 동생 좀 보고 배우라고 하더라.”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런 생활과 동떨어진 논쟁도 귀족적인 거니까요.”

이디스는 언니의 말이 크게 틀리진 않았다며 웃었고, 두코는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디스의 컵에 든 게 술인지 물인지 확인했다. 싸한 향이라곤 전혀 나지 않는 맑은 물인 걸 확인하고 두코가 자리에 앉았다. 곧이어 이디스는 니옌 자매님께 들은 이야기인데, 라는 말로 대화를 이끌었고 다음 불침번 담당이 오기까지 그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

“신성 무기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했나?”

“넵. 금일 아침에 점검했습니다.”

악마가 지배하는 땅과 그들에게서 지켜낸 땅의 경계에 세워진 초소. 그곳에서 시도폰은 기사들과 신성 무기를 점검하고 근무자들에게 이변이 없는지 살폈다.

“저쪽 구멍으로 들어왔나 보네.”

드문드문 세워진 초소와 초소 사이엔 담이 있었고, 신성 무기들은 담벼락에 매달려있었다. 본부 기사들이 사다리를 타고 담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넘어갔고, 원형의 신성 무기들이 잘 작동하는지 점검하였다.

얼마 전 훈련에서 토벌한 악마들의 시체 일부를 무기 앞에 두고, 무기가 작동하면 통과였다. 시도폰은 활활 타올라 재가 된 시체 조각을 보고 베론에게 물었다.

“신성 무기를 더 빽빽하게 배치할 수는 없나?”

“여기서 더 늘리면 병사들이 여기에 채운답시고 신성력을 다 써버릴 겁니다. 그럼 직접 싸울 힘이 없어지기 때문에 아마 힘들 것 같습니다.”

“내가 매번 여기 신성력을 채우러 올 수는 없으니 안 되겠군….”

다행히 근무 초소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훈련은 이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다들 수고 많았네. 훈련이 끝났으니 성과 및 성찰 보고도 해야 하지만 그건 본부로 돌아가서 하면 되는 일이니 실질적인 훈련은 여기서 끝이지.”

집행자가 공식적으로 훈련 종료를 선언하고 부대 복귀를 명령했다. 기사들은 신나서 말을 몰았지만, 본부에서 이미 멀리 나왔기 때문에 돌아가는 데에는 꼬박 이틀이 걸렸다. 슈바헨과 피데이스가 그들을 맞이했고, 시도폰은 간부 몇 명과 함께 훈련 성과를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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