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o

3부 11화

악마냐 인간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베론 님은 제외하고 부르셨군요?”

모집된 사람들을 둘러본 피데이스가 시도폰에게 묻듯이 말했다. 시도폰의 집무실, 모인 사람은 총 여덟 명으로, 평소 모임이었다면 여기서 니옌 사제가 아니라 베론 기사단장이 앉아있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뵙는다며 니옌 사제가 대화의 물꼬를 텄고, 시도폰은 그제야 모임의 목적을 설명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프라이에에게 쏠렸고, 그는 이미 말했던 이야기를 다시 해보라는 데에 의아해했다.

“다시 그걸 이야기해보라고 하셨습니까? 알겠습니다.”

캐서린과 비슷한 형태의 인간을 봤던 일. 그 이야기를 다시 하는 건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었기에 프라이에는 막힘 없이 말을 이었다. 이미 들었던 이야기라 두코는 프라이에의 말에 집중하지 못했다.

‘프라이에가 요새 힘든가? 가만 보면 참 심약한 것 같단 말이지. 걱정되네.’

‘이렇게 약해빠져서야, 대공 가 얼굴에 먹칠이나 하고 다니겠구나. 실망이다.’

두코는 불쑥 튀어나온 과거의 음성을 다시 뱃속으로 집어넣었다. 저 말을 들었을 때 비참했던 기분과 절대로 저런 사람이 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이 스쳐 지나갔고, 착잡해진 두코가 제 얼굴의 흉터를 매만졌다.

‘죽어서도 끝까지 민폐네요, 어머니.’

목격담이 끝나고 니옌 사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시도폰에게 이 이야기만 들려주려고 부른 게 아니지 않냐고 물었다.

“지적한 대로네. 나는 프라이에가 그것을 봤다고 이야기했을 때, 비슷한 일을 겪었던 것이 생각났네.”

피데이스는 곧바로 시도폰이 떠올렸던 일을 알아맞혔는지 ‘그래서 베론 님은 부르지 않으셨던 거군요.’라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응. 헤일로 전 기사단장이 사망했을 때와 상황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네.”

발언자 외에는 정숙이 기본이니 애초에 조용했던 집무실이었지만, 그때만큼은 숨소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적막했다. 공교롭게도 두 사건에서 결정적인 목격자가 되어버린 프라이에는 시도폰을 바라본 채로 굳은 돌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다시 떠올리게 해서 미안하지만, 캐서린 사건 때 보았던 것과 헤일로 전 기사단장 사건 때 목격했던 존재의 차이점을 이야기해줄 수 있겠나? 내가 생각해본 건 있지만….”

그때 두코가 시도폰의 말을 끊었다.

“저기 갑자기 끼어들어서 죄송하긴 한데,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 일로 프라이에가 힘들어했다는 걸 가장 잘 아시는 분께서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솔라와 크로마는 벌떡 일어나려는 두코를 양옆에서 붙잡았다. 시도폰은 두코에게 굳이 진정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침착하게 왜 프라이에의 증언이 필요한지 설명할 뿐이었다. 그 모습에 크로마는 자신이 부관이 되기 전, 헤일로 전 기사단장의 시신을 수습할 때의 시도폰을 떠올렸다. 상황에 몰려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시도폰은 사건 당시에 놀라우리만치 침착하게 기사들을 지휘했다.

프라이에에겐 그 일이 트라우마가 되었지만, 시도폰에게 그 일은 성장의 기회였다. 시도폰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크로마는 저와 비슷한, 평범한 인간인 프라이에에게 마음이 기울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두코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순 없으니 그는 두코를 억지로 자리에 도로 앉혔다. 맞은편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이디스가 말했다.

“진정하세요. 두 경우 다 프라이에님이 목격자니까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렇게 바로 말씀하시기 전에 뭔가, 완충 역할을 할 만한 말씀을…, 하셨으면 좋았을 것 같지만요. 하지만 사건이 워낙 충격적인 일이다 보니 그런 말이 의미가 없었을지도요.”

그래도 이건 아니라며 화를 내는 두코를 보다가, 프라이에가 입을 열었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그때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아, 그전에. 헤일로… 전 기사단장님 때 나타났던 이를 뭐라고 부를지 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계속 단장님 이름이 언급되는 건 그분께 모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르카눔(arcanum: 비밀, 미스터리). 그 정도로 부르지.”

“아르카눔과 캐서린의 차이. 기억이 잘 안 난다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저는 아르카눔이 온전한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다고 인식했습니다. 캐서린은 얼굴 아래로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요. 그것 외에는 차이점이라고 할 게… 죄송합니다.”

프라이에가 고개를 숙이자 두코는 몸에서 힘을 풀고 얌전해졌다. 그의 양옆에 앉아있던 두 사람도 두코를 붙잡았던 손을 놓았고, 시도폰은 증언해줘서 고맙다며 말을 이었다.

“내가 생각한 차이점은 이거네. 캐서린은 악마들 사이에 섞여서 그들과 한 무리인 것처럼 행동했지만 아르카눔은 악마들에게 공격을 지시했어. 그때 우리는 아르카눔이 악마 숭배자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정작 그 일 전후로 잡아들인 악마 숭배자들은 아르카눔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지.”

피데이스가 불쑥 끼어들었다.

“잠시만요 집행자님. 지금 그럼 이야기하는 주제가 아르카눔과 캐서린의 존재 규명인 겁니까? 아니면 그 둘과 악마 사이의 상관관계입니까?”

그 말에 시도폰이 잠시 고민을 하더니 둘 다라고 대답했다. 솔라는 아르카눔은 악마 숭배자가 맞을 거라고 말했다.

“그가 다른 악마 숭배자들이 모르게 숲속에서 혼자 은둔 생활이나 하고 살았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저는 캐서린도 악마 숭배자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르카눔과는 다르게, 악마를 조종하는 게 아닌 악마에게 영혼을 바치고 그 대가로 힘을 얻는 계약을 한 게 아니었을까요. 분명 마을에서 시신이 발견되어 무덤에 매장되기까지 했던 사람이 되살아나서 숲에 있었다니요. 그것도 악마와 함께.”

그때 이디스가 물었다.

“만약 악마와 계약을 했다고 한다면 언제 할 수 있었을까요? 집행자께서 들었다는 증언에 따르면 남편이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 같았고, 시신도 아이에 의해 발견이 되었다면서요. 인간이 죽고 나서 계약을 맺을 수 있나요?”

자연스레 사람들의 고개는 니옌을 향했다. 그는 제 품에 있는 두꺼운 악마학 서적의 표지를 매만지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인간은 살아있는 영혼을 대가로 계약을 진행하고, 진행 과정에서 계약자인 인간이 사망하면 악마도 자의적으로 계약을 진행할 수 없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캐서린은 악마와 직접 계약한 악마 숭배자가 아닌 것 같군요.”

니옌은 직접이라는 단어에 강세를 줬다. 곧바로 시도폰이 그에게 물었다.

“잠시, 그런 거라면…, 계약자와 대가를 바칠 인간은 다를 수도 있다는 말 아닌가? 여태까진 다들 자기 영혼을 대가로 뭔가를 이루려는 자들뿐이었잖나. 악마학에 대해 배울 때도 그런 예시들만 봤는데.”

“예. 엄밀하게 말하면 그 둘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영혼을 제물로 바치려던 자들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원인 불명의 사고로 계약 주문을 외우던 중에 사망하거나, 성공하더라도 희생 제물이었던 이들 몸에 악마가 깃들어서 계약자들을 죽여버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캐서린보다 아르카눔에 집중하던 피데이스가 말했다.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아르카눔처럼 강한 악마 숭배자가 계약자고, 캐서린을 제물로 한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고요.”

“하지만 방금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그건 불가능….”

“여태까지 실패했다는 거지, 이번엔 성공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아르카눔은 평범한 악마 숭배자가 아니잖습니까. 그자는 기사단 본부와 가까운 ‘테라’ 구역까지 악마를 끌고 올 수 있는 놈이에요. 게다가 그 흉악한 것들을 자기 뜻대로 정확하게 통제할 수 있는 자입니다. 그런 능력이 있으니 캐서린을 악마로 만드는 계약도 성공했을 수 있죠.”

다들 피데이스의 의견에 반박할 말이 없어서 침묵하던 중, 프라이에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 거라면 캐서린을 악마로 만든 목적이 뭘까요? 그자가 처음 나타났을 땐, 단장님을… 그렇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악마 숭배자다운 목적이 있었는데, 이번 건은 목적을 모르겠습니다.”

두코가 동의하며 의문을 덧붙였다.

“게다가, 계약이 진행된 결과로 캐서린이 악마가 되었다고 해도 그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인간이 어떻게 악마가 될 수 있나요. 잠시 생각해봤는데…, 이단의 주술로 잠시 영혼이 돌아온 것처럼 움직이는 시신이 있었던 거로 기억합니다. 아르카눔이 그런 계약을 성공한 것보다는 그쪽일 가능성이 더 크지 않겠습니까?”

어깨를 으쓱인 피데이스가 답했다.

“네 말도 맞아, 성공 사례가 있었으니 내 말보단 더 가능성이 큰 추론이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캐서린을 그렇게 만듦으로써 달성되는 목표가 선명하지 않아. 게다가, 캐서린의 육신은 무덤에 그대로 남아있었어. 무덤에서 흙이 뒤집힌 흔적 따윈 없었고.”

그 후로도 여덟 명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가장 간단한 설명은 죽은 캐서린의 영혼이 악마가 되었다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가장 간단한 동시에 가장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인간과 악마는 엄밀히 다른 것이었으니까.

니옌이 프라이에에게 물었다.

“혹시 인간형 악마에 대해 알고 있으신가요?”

“악마 숭배자들과 계약을 맺음으로써 인간들에게 개입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초대 집행자께 지하 깊은 곳에 봉인된 후로 직접 인간들에게 위해를 끼치는 건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설마 캐서린이 인간형 악마라고 말씀하시려는 겁니까?”

처음 시도폰이 헤일로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보다 더한 침묵이 덮쳤다. 밖에서 부는 바람 소리가 가장 큰 소리일 정도의 정적. 그것을 깬 사람은 크로마였다.

“그게 맞다고 한다면, 여태까지 이상했던 점이 모두 해소되지 않나요? 죽었던 척했지만, 사실 아니었고, 신성 무기로 재생력을 방해받지 않았으니 남편 되는 인간이 사라지자마자 태연하게 되살아났을 수도 있었겠죠. 시신은 대충 연배가 비슷한 여성의 얼굴만 바꿔놓으면 되는 거고요.”

그의 말에 솔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의 행동은 저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으니까요. 아이의 꿈에 어머니인 척 나타나, 아이가 자신에게 매달리거나 자신을 두려워하는 반응을 즐겼을 수도 있고, 남편을 죽인 것도 단순히 유희였을 수 있죠.”

이번엔 니옌도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만약, 만약 여러분의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지금 바깥에 인간형 악마가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다는 뜻이 되지 않나요? 숲에서 캐서린을 봤다고 하셨지만, 거기서 그것을 처치했다곤 안 하셨잖아요.”

“그렇지…. 인간형 악마는 매우 강하니까 죽였다고 한다면 분명 기억에 남았을 텐데. 이번 전투에서 그 정도로 강한 개체는 없었네. 아, 이디스, 잡아!”

그 말에 이디스는 제 옆에서 쓰러지려는 니옌을 잡았다.

“어떡하죠? 몇십 년 전까지 나오지 않았던 비행형 개체도 이젠 전투 세 번 중 한 번은 출몰하는데, 거기에 인간형까지 더해지면…. 저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이미 모두가 죽은 것처럼 슬퍼하는 니옌에게 시도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초대 집행자가 봉인해 둔 뒤로 아무도 본 적도, 싸워본 적도 없는 인간형 악마에게 대항할 수 있을까? 솔라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집무실을 나서다가, 혼자 의자에 앉은 채 생각에 잠긴 시도폰에게로 되돌아갔다.

“불안하십니까?”

시도폰에게선 대답 대신 한숨이 흘러나왔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선 그렇게 말할 수 없지 않겠나?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야지.”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하십시오.”

“그럼 저녁 기도 이후에 나랑 같이 도서관으로 가지. 그때 니옌 사제를 데리고 오게. 초대 집행자께서 어떻게 그것들을 봉인하셨는지 알아야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네. 그럼 그때 다시 뵙겠습니다.”

문이 닫히고 시도폰은 의자에 눕다시피 몸을 묻었다.

‘캐서린이 원래부터 악마였다고 생각하면 이상한 게 아무것도 없긴 해. 아이도 어딘가에서 데려오고 임신한 척만 했겠지. 하지만… 아냐 이상해. 이상하다고. 우리가 숲에서 작전을 진행한 뒤에 아이가 캐서린을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다들 잊었나.’

시도폰은 캐서린이 숲에서 소멸했으리라 확신했다. 솔라에게 대책을 논의하자고 하긴 했지만, 그건 니옌을 안정시키기 위한 술수일 뿐이었다.

‘인간의 영혼이 악마가 될 가능성이 오히려 더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피데이스와 이야기해봐야겠군. 아르카눔과 캐서린이 연결되어있으려나.’

그날 저녁, 시도폰은 예정대로 솔라, 니옌과 함께 도서관에서 악마와 관련된 책을 전부 뒤졌으나, 초대 집행자가 인간형 악마들을 봉인했다.라는 짧은 기록 외에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인간의 악마화’라는 책을 발견한 시도폰이 태연한 척 그것을 속독했다.

‘인간이 도덕적으로 타락하면 악마와 다른 바 없다는 내용이잖아. 내가 찾는 건 아니었네.’

“집행자님. 아무래도 여긴 더 없는 것 같습니다. 집행자와 관련된 기록은 남부에도 남아있을 테니 그쪽에 협조 공문을 넣어보심이 어떠신가요.”

솔라의 말에 시도폰이 그렇게 해보겠다고 답했다. 니옌은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볼 테니 답이 오면 알려달라 부탁하고 도서관 입구에서 시도폰과 헤어졌다.


일주일 후, 남부 교회에서 온 답장이 시도폰의 책상 위에 놓였다. 피데이스는 시도폰이 손에 든 편지를 보다가 그래서 어떤 내용이 있었느냐 물었다.

“다른 건 겉치레니까 빼고 보면, 초대 집행자께서 시작의 땅 맨 아래, 햇빛이 바늘구멍만큼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지하에 그것들을 봉인했다고 되어있네. 어떻게 그렇게 하셨냐는 제자들의 물음에도 답하지 않았으며 그저 신께서 도우셨다고, 지상에 올라오자마자 태양을 향해 세 번 절을 했다고 하는군.”

“하지만 시작의 땅은 이미 악마들 손에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망할 제망 놈들.”

“이미 망한 나라를 원망해서 무엇하겠나. 우리가 버티지 못하면 쿠나블라 쪽 사람들이 우릴 똑같이 ‘망할 브리오소 놈들’이라고 하겠지. 인간형 악마들을 다시 봉인하려면 우리는 적어도 시작의 땅까지 경계선을 올려야 하네. 하지만 캐서린이 그것이 아니어서 이미 소멸했다면 무리해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거고.”

“잠시만요. 이미 캐서린이 인간형 악마라고 결론을 내리신 줄 알았는데요. 그래서 니옌 사제님과 도서관에 간 것 아니었습니까?”

그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솔라가 끼어들었다. 시도폰은 아직 고민 중이라고 대답했다. 지난주, 시도폰과 같은 의견이었던 피데이스는 그새 의견이 바뀌었는지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저도 다시 생각해보니 인간이 악마가 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것 같아서요. 혹시 니옌 사제께서 악마 숭배자나, 인간형 악마에 대한 자료를 주신 게 있으실까요?”

“그때 도서관엔 없었어. 하지만 니옌 사제의 스승이 물려준 자료엔 있을지도 모른다고 해서 오늘까지 자료를 받기로 했네.”

마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니옌이 품에 종이와 책을 안고 들어왔고, 피데이스는 그것을 받아들어 책상 위에 펼쳤다. 네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자료와 씨름했다. 니옌은 시도폰에게 캐서린의 아이에게 온 소식이 있냐고 물었다.

“그날 밖으로 사라진 이후로 캐서린이 더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하네. 아, 혹시 몰라서 부부 관계는 어떻냐고 물어봤는데,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더 어렸을 때 보다는 두 사람 사이가 좋진 않았던 모양이야. 남편 쪽은 캐서린에게 자주 화를 냈고, 캐서린은 그럴 때마다 별로 반응이 없었다고 하네. 따분하다는 말도 자주 했다더군.”

“악마 숭배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악마들은 인간의 삶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것 같더군요. 하지만 지루한 걸 싫어해서 금방 싫증 내며 다른 인간을 찾는다고요….”

피데이스가 그렇게 말하며 니옌에게 동의를 구했다.

“네, 그래서 저는 캐서린의 남편이 계약을 통해 캐서린을 불러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니옌의 추론에, 시도폰이 손에 들고 있던 자료를 내려놓으며 이마를 짚었다.

“남편이 악마 숭배자였고, 아내는 악마였다? 그러면 캐서린이 그를 죽인 것도 이해가 되지. 지루한 계약자를 없애고 계약을 억지로 끝내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거라면.”

“하지만, 악마들은 어둠 속에서 시간의 흐름도 느끼지 못한 채로 갇혀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지루하다고 해도 그런 곳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솔라가 반박했고, 이번에도 니옌이 대답했다.

“캐서린은 아이의 탄생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계약을 유지했습니다. 이정도면 악마 중에선 계약 기간을 오래 유지한 편이에요. 평균적으로 악마들은 3년 이내 계약을 끝내고 돌아갑니다.”

“…계약 직후 사망한 건은 뺀 통계겠죠?”

관련 서류를 찾아낸 피데이스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물었다.

“네. 물론이죠.”

“하… 그럼 캐서린은 인간형 악마가 맞지만, 이곳에 떠돌아다니지 않는다는 게 결론인가?”

시도폰은 책을 덮어서 무릎 위에 놓았다.

“다행히 그런 것 같군요. 니옌 자매께서도 이제 안심하고 주무실 수 있겠어요.”

“어머, 티가 났나요? 사실 삼 일 정도는 제대로 잠을 못 잤는데 오늘은 푹 잘 수 있을 것 같네요.”

근래 본 것 중 가장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니옌이 집무실을 나갔다. 혼자 남은 시도폰은 악마가 동상 앞에 왜 남편의 시체를 가져다 두었는지 고민하다가, 신께 모욕을 주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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