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o

3부 7화

기도가 끝나고, 프라이에가 시도폰의 뒤에 따라붙으며 말했다.

“루카에게는 비밀로 해두겠습니다.”

미카가 주술을 해제한 뒤에야 루카의 아버지는 제대로 진술할 수 있었는데, 그는 미카가 루카를 돌려받을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자신을 꼬여냈다고 말했다.

죄수로서 갇혀있었던 미카를 도대체 어떻게 만났느냐고 묻자, 자신이 그를 만난 건 기사단 건물 밖이라고 대답했기 때문에 베론은 바로 감옥 담당자를 문책했다.

담당자는 미카의 오랜 친구로, 그가 아무리 잘못을 저질렀다지만 감옥에서 해도 보지 못하고 일만 하는 게 불쌍해서 가끔 내보내 주었다고 털어놓았고, 그 즉시 담당자는 교체되었다. 그는 시도폰에게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는데, 폰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리를 떴다.

“그렇게 하게. 루카는… 모르는 편이 좋겠지.”

주위를 둘러보며 루카가 없는 걸 확인한 프라이에와 시도폰이 대화를 나눴고 저 멀리서 슈바헨과 대화를 마친 베론이 폰에게 다가갔다.

“미카의 처우에 대한 편지는 기도 전에 이미 남부 교회로 보냈습니다. 아마 그쪽에서도 사형 집행에 이견은 없을 겁니다.”

“처형집행인은 마땅한 사람이 있는가?”

“마을에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활동하는 이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를 불러두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시도폰이 직접 처벌하고 싶었지만, 세속의 율법으로 죄인을 다루는 자리에서 신의 힘과 그것을 새긴 도구를 사용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처형집행인을 구해야 했다.

‘오히려 다행일지도 몰라. 지금은 내가 당장 미카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해도 막상 그에게 칼을 들이대면 못 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건 그렇고, 기사단 기강을 다시 잡아야겠네. 자네도 대충 느꼈을 거로 생각해.”

“네. 죄송합니다. 계획을 세워서 올 테니 기다려주십시오.”

베론이 돌아서고, 눈치를 보던 프라이에는 시도폰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시도폰은 오늘 하루에 괜찮냐는 물음을 서른 번쯤 답했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하기 귀찮아질 지경이었지만, 프라이에의 걱정 가득한 눈빛에 괜찮다고 대답했다.

올해 오순절 행사엔 시도폰이 불참할 예정이었으나, 미카의 일 때문에 교황이 직접 집행자의 안위를 확인하고 싶다는 전갈을 보냈다. 물론 미카의 사형에 찬성하는 편지도 함께 동봉되어있었다.

“죄송하지만 이번엔 좀 피곤한데, 어떻게 해야 하나….”

“성하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에게 당신의 안위는 중대한 사안이니까요. 다녀오십시오.”

편지를 쥔 시도폰이 한숨을 푹푹 쉬었다. 솔라가 서류는 자신이 맡을 테니 안심하라며 빠릿빠릿하게 대답했지만, 그것이 시도폰의 의욕을 돋우어주진 못했다.

카리타스나 한 번 더 보고 오자는 마음으로 시도폰은 오순절 행사에 참석했고, 북부로 돌아오는 길에 일곱 번째 게이트에서 일행 전체를 열 번째 게이트로 이동시킨 뒤 쓰러졌다.

눈이 녹은 지 오래인 땅바닥엔 파릇한 잔디가 잔뜩 나 있어서 시도폰이 다치진 않았지만, 그를 뒤에서 지켜보던 일행은 깜짝 놀라 서둘러 그를 일으켰다.

“아냐, 살아있네. 조금 어지러워서 중심을 못 잡았던 것뿐이야.”

“찬성하는 게 아니었네요. 일어나실 수 있겠습니까?”

두코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내미는 손은 조심스러웠다. 시도폰이 그 손을 잡고 일어나 자리에 섰고, 잠깐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더니 괜찮다고 대답했다.

이리저리 시도폰의 몸을 살핀 두코가 미심쩍은 눈으로 시도폰에게 걸어보라거나, 무기를 쥐고 흔들어보라는 등의 지시를 내렸다.

“괜찮대도. 자, 보게!”

“…그래도 말은 타지 마십시오. 불안합니다.”

“말을 타지 않으면 너무 느리잖나.”

풀이 죽은 표정으로 시도폰이 두코를 올려다봤다. 결국, 두코는 시도폰을 제 앞에 태우고 말을 몰았고, 평소보다 5일 일찍 도착한 일행은 허겁지겁 달려오는 경비병 외에 자신들을 아무도 맞아주지 않는 것에 의아해했다.

말에서 뛰어내린 시도폰이 경비병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묻자, 그는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슈바헨 주교님께서 수행단 일행이 예상보다 일찍 도착하셨다는 소식을 방금 들으시고 굉장히 불안해하고 계십니다.”

“어, 어째서? 내 몸은 멀쩡하네만.”

“예…, 천만다행입니다. 주교님께선 혹시 집행자께서 무리하셔서 건강이 안 좋아지셨다거나 무슨 문제라도 생겼을까 봐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바로 주교님께 가시지요.”

잔소리를 무진장 듣겠다 걱정한 시도폰은 주교의 방으로 향했고, 두코와 여타 일행은 자신들도 곧 베론에게 불려가 얼차려를 당하겠다며 설렁설렁 짐을 풀었다.

“지난번에 짐승으로 실험을 해봤다고 해서 그렇게 사람 여러 명을 데리고 들어가시다니요. 저는, 그날 미카의 일 이후로 당신의 안위를 특히나 걱정하게 된 것 같습니다. 괜히 미안해하실까 봐 말씀을 안 드렸는데, 이번 일을 보아하니 말씀을 드렸어야 했나 보군요.”

여태껏 수많은 이들을 떠나보냈던 슈바헨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사들의 죽음에 무뎌진 건 아니었다. 그는 매번 진심으로 슬퍼했고, 영혼이 구원받아 행복해지기를 바랐으며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은 그들을 지킬 수 없었다고 자책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저 오랫동안 해왔기에 익숙해졌을 뿐, 소중한 이들을 떠나보낼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여전히 크다며 슈바헨이 시도폰의 손을 잡았다. 떨리는 손을 통해 시도폰은 슈바헨의 걱정을 느꼈고 자신이 경솔했다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면서 연무장을 들렀는데, 두코와 다른 기사들이 굴려지는 걸 보고 아연실색하며 베론에게 다가갔다.

“슈바헨 주교님과 이야기하고 오신 것이겠지요? 그러면 제가 왜 이렇게 하는지 이해되실 거로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 이들은 내가 하자고 한 대로 따른 것밖에 없네. 나 혼자 게이트를 뛰어넘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기왕 할 거면 다 같이 빠르게 돌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

“미카의 일이 없었다면 저도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이렇게 큰 힘을 쓰고 돌아왔을 때 누군가가 당신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보신 겁니까?”

“미안…하네. 그래도 너무 오래 하진 말게.”

작아진 목소리로 시도폰이 부탁했고 베론은 자신도 흥분해서 죄송했다고 말하며 기사들을 풀어주었다. 땀범벅이 된 기사들은 그래도 일찍 도착해서 좋긴 좋다고 말하다가 베론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닫았고, 두코는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연무장을 나섰다.

저녁 기도 이후, 두코는 프라이에를 찾았는데, 이디스도 그를 따라나섰다.

“안 졸려? 그렇게 중요한 일 얘기를 할 건 아니라서 들어야 할 의무는 없는데.”

“에이, 그냥 심심하니까 따라가는 거랍니다.”

“무슨 일이야? 일단 들어와, 차라도 내려줄까?”

됐다며 고개를 저은 두코는 프라이에의 침대에 앉았다. 책을 읽고 있던 프라이에가 책갈피를 끼워 넣고 의자에서 몸을 돌렸고, 이디스는 두코의 옆에 앉았다.

“별거 아닌데, 그냥 시도폰한테 미안한 일이 있어서.”

“아, 오늘 워프한 거 때문에?”

“빨리 갈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그 애를 못 말렸어. 근데 걔가 그 게이트를 작동시키고 나서 휘청였거든, 그제야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거 있지?”

“이해해. 나도 거기서 시도폰을 말리진 못했을 것 같거든. 다들 북부에 일찍 도착하길 바라니까…. 그리고 뒤에 나온 부작용도 알고 있었던 건 아니었잖아. 우린 그 애의 신성력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니까.”

“그래도 웬만하면 안 쓰는 게 좋을 것 같긴 하더라고요. 아니면 쓴다고 하더라도 두 개 정도를 뛰어넘는 정도로 힘을 조절한다든가, 뭐 이런 식으로요.”

이디스는 그렇게 말하며 두코에게 살짝 머리를 기댔다.

“맞아. 나중에 시도폰을 만나면 말리지 못해서 미안했다고 말하려고. 지금은 주교님이나 베론 님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풀이 죽은 것 같지만, 시도폰은 또 그걸 하려고 할 것 같은 느낌이라.”

“막으려고? 난 좀 다르게 생각하는데.”

프라이에의 말에 두코는 눈을 치켜떴다. 자신을 노려보는 눈동자에, 프라이에가 살짝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아니, 시도폰이 걱정되지 않는다는 게 아니야. 하지만 북부와 남부를 오가는 시간이 단축된다는 건 싸야 할 짐이나 야영을 해야 할 기간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굉장히 이득이 크잖아. 시도폰도 한 번에 강한 신성력을 사용하게 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게이트를 운용하면서 그런 훈련을 해볼 수도 있고….”

뒤로 갈수록 말끝이 흐려졌다. 두코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디스는 눈치를 보다가 그를 따랐고, 무심결에 두코가 세게 열어버린 문에 누군가 맞고 단말마를 질렀다.

“크로마! 미안해. 많이 다쳤나?”

“아, 아뇨 괜찮습니다. 다행히 머리에 두른 수건 때문에 아프진 않더군요.”

흐트러진 젖은 머리를 정리한 크로마가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프라이에는 제 룸메이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두코와 함께 방을 나섰고, 크로마는 이디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그렇습니까…. 저는 일단 시간이 단축되면 좋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집행자께서 무리하게 되는 문제가 있으니까 고민은 되시겠네요. 이번엔 안정적으로 잘 되었지만, 다음번엔 문제가 생길 수 있기도 하고요.”

“두 분이 잘 얘기하셔서 집행자님께 말씀드릴 것 같긴 해요. 따로 신성력을 주입하지 않아도 게이트가 바로 북부와 남부를 연결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디스는 크로마에게 잘 자라고 이야기하며 방으로 돌아갔고, 잠시 후 크로마는 머리카락을 말린 수건을 내놓기 위해 복도로 나섰다. 빨래방에 수건을 넣어둔 크로마가 되돌아올 때, 맞은편에서 프라이에가 터덜터덜 걸어왔다.

“형님, 어떻게 되셨습니까?”

“너랑 동갑인 두코는 나한테 편하게 대하는데 넌 여전히 꼬박꼬박 정중하게 대해주는구나…. 흠, 참패야. 시도폰이고 두코고 내 의견을 듣지 않더라고. 시도폰이 조금 솔깃 하는 눈치길래 더 말하려고 했다가 하필이면 그때 슈바헨님이 오셔서, 완전히 졌지.”

어깨를 으쓱거린 크로마는 시간이 지나면 집행자의 의견이 달라질지도 모른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그나저나 두코랑 이디스가 돌아왔으니까 다시 합동 훈련을 할 수 있겠네. 다음 주부터 바로 하려나.”

“일단 솔라가 말하는 걸 보면 모레부터 바로인 것 같았습니다.”

너무 힘든 일정이지 않냐며 투덜거린 프라이에는 크로마의 말을 곱씹다가 눈을 번뜩였다.

“솔라가 누구한테 말하는 걸 들은 거야? 아니면 네가 그 애한테 물어본 거야?”

“…제가 물어봤습니다. 왜 그런 눈으로 보시는 겁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프라이에는 웃음을 삼키며 뒤돌았고, 왜 그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하지 못한 크로마는 덩그러니 자리에 서 있다가 침대에 누웠다. 그러면서 크로마는 자신이 말을 걸었을 때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저를 올려다본 솔라를 떠올렸다.

‘상관인 두코를 두고 왜 자기한테 묻냐는 얼굴이었지. 너무 냉담해서 그런가? 자꾸 생각나.’

크로마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프라이에는 훈련 중에 자꾸 시도폰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크로마를 본 적이 몇 번 있었다.

혹시나 크로마가 시도폰에게 연심이 있나 싶어서 불안해진 프라이에는 유심히 그를 관찰했고, 마침내 그의 시선이 향하는 건 시도폰이 아니라 그 옆을 지키는 솔라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기사단 안에서 연애를 할 수 있었던가? 사례를 본 적이 없네. 다들 숨기고 지내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프라이에는 책상을 정리했고, 두코가 남부에서 기념품으로 샀다며 제게 건네준 말린 과일을 크로마에게 나눠주었다.

웬 과일이냐고 물으면서도 크로마는 거절하지 않고 침대에 앉아 꼭꼭 씹어먹었고, 프라이에가 두코에게 받았다고 대답하자 그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왜? 할 말 있어?”

“아닙니다. 맛있어서요, 잘 먹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뿌듯한 표정으로 프라이에는 침대에 누웠고 크로마는 양치를 하러 나갔다.

‘둘 다 서로에 대한 소문을 알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형님은 눈치가 없는 편이니까 모르는 게 확실한데 두코는 감이 좋은 편이니까. 집행자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냥 단순한 친구 사이일지도?’


합동 훈련 당일, 두코와 크로마의 분대는 전체의 후방에서 일행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날, 프라이에 형님이 주신 간식, 잘 먹었습니다. 맛있더라고요.”

순간, 두코는 그걸 네가 왜 먹었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크로마는 바로 사라져버린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잠깐의 공백 후 두코가 ‘아, 그거 맛있지. 남부에서 제일 유명한 가게에서 줄 서서 사 온 거라고.’라고 대답했지만, 태연한 척하는 건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두 사람 다 느끼고 있었다.

“…제가 부관이 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잘 모르겠는데, 언제부터입니까? 사실 옛날부터 궁금해하긴 했는데 두 분이 워낙 붙어계셔서 말이죠.”

“다른 사람들한테, 특히 본인한테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여부가 있겠습니까?”

드디어 궁금증을 풀 수 있겠다며 크로마가 환하게 미소지었고, 두코는 ‘꽤 오래됐는데, 언제였더라. 어머니 장례식 이후였어.’라며 말문을 텄다. 당연히 크로마는 올라가 있던 입꼬리를 슬쩍 아래로 내렸고, 숙연하게 두코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때 내 상태가 상당히 안 좋았어.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는데 이유를 명확하게 말해주지도 않으니까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답답했겠어? 그래서 다들 말없이 날 피하기만 했는데 프라이에는 꾸준히 나를 걱정해 주더라고. 덕분에 좀 마음이 편해졌고.”

“다정한 분이시죠. 당연한 말이지만 옛날부터 그런 편이셨군요.”

“그래, 그래서 나도 그 녀석이 베푸는 호의에 별로 뜻을 두려고 하진 않았거든. 나한테만 친절한 게 아니니까. 당장 네가 어딜 다쳤다고 하면 널 번쩍 들어 올려서 이디스에게 치료해달라고 부탁할 사람이잖아?”

“아, 별로네요. 전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만 다치렵니다.”

크로마의 농담에 두코가 작게 웃었다.

“아무튼, 그날부터 계속 신경을 썼던 건 맞아. 머리로는 아무한테나 저러니까 특별하게 받아들이지 말자고 하는데, 마음은 그렇게 안 되더라고. 자꾸 무례하게 굴게 된다고 해야 하나.”

“서로에게 격의 없이 대하는 거로 생각했는데요.”

“내가 아무렇게나 대해도 그 녀석은 다 받아주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당사자한텐 말하면 안 된다?”

“네, 그런데 경쟁자가 꽤 있을 것 같던데 언제까지 숨기실 생각입니까? 형님은 그런 거 직접 말하지 않으면 모를 것 같은 사람이라서요.”

“몰라, 죽기 전까지 말 안 할 수도 있겠지.”

무서운 농담은 하지 말라며 크로마가 속도를 줄였다. 훈련 장소에 도착했기 때문에 두코는 분대에 지시를 내렸고, 크로마는 직접 현장을 돌아다니며 제대로 일이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했다.

앞쪽에서 진지 구축을 마친 프라이에가 이디스를 데리고 시도폰에게 합류했고, 두코는 크로마를 불렀다.

“훈련 첫날부터 날씨가 좋군. 진지 구축은 이 정도면 괜찮나? 알려준 대로 하긴 했는데.”

야외 합동 훈련은 처음이었던 시도폰이 제 뒤에 서 있는 베론에게 물었다.

“예. 아마 이 형태에서 크게 바뀌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분대도 잘 나뉜 것 같군요.”

“돌격을 맡은 1조에 프라이에와 이디스, 중간인 2조가 나와 솔라, 갇힐 때를 대비해서 후방을 맡은 3조가 두코와 크로마. 음, 내가 생각해도 괜찮은 조합인 것 같았네.”

시도폰이 어깨를 으쓱였다. 점검을 마치고 훈련 시작까지 잠깐 여유가 있었기에 지휘관과 그 부관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잡담을 나눴다. 바람에 산들거리는 나무를 보던 크로마가 입을 열었다.

“저는 처음에 제가 두코 님의 부관으로 임명됐을 때 놀랐습니다. 보호막 계열의 신성 마법을 쓸 수 있긴 하지만, 전투 사제니까 뽑힐 가능성은 적을 거로 생각했거든요.”

“아, 안 그래도 나도 순수 치유 사제로 뽑을 줄 알았는데 집행자께서 크로마를 추천하시길래 놀랐지.”

두코의 대답에 크로마는 시도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에, 시도폰은 그게 그렇게 궁금했으면 뽑힌 날 물어봤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지원자 중에서 크로마보다 보호막을 잘 사용하는 사제가 없었어. 비등비등한 실력이라면 장점이 하나 더 있는 사람을 뽑는 게 맞았지.”

베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크로마가 검과 방패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며 시도폰에게 추천했었고, 직접 크로마의 실력을 본 시도폰은 두코에게 그를 붙여줘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이디스는 두코와 프라이에가 같은 조가 될 줄 알았다고 말했다가, ‘그랬으면 두코가 일으킨 바람에 내가 쓸려갔을걸.’이라는 프라이에의 지적에 웃음을 터트렸다. 시도폰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두코랑 프라이에를 같은 조에 넣고 내가 후방을 맡을 생각도 했었거든. 근데 그랬으면 두 사람 다 안 멈추고 계속 전진만 할 것 같아서 둘을 나눴지.”

“그럴 리가 있겠… 아니 정말로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프라이에는 두코를 흘끔 쳐다봤다가 시도폰에게 동의했다. 억울한 표정의 두코가 왜 그렇게 말하면서 자길 쳐다보냐고 물었다.

“난 널 막을 자신이 없거든. 아야.”

갑작스레 불어온 바람에, 커다란 나뭇잎이 프라이에의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크로마가 능력을 이런 데에 쓰시면 어떡하냐고 지적하자, 두코는 자신이 한 게 아니라고 변명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솔라가 훈련 시작 시각이 다 되었다고 알렸고, 시도폰은 어깨를 돌리며 기사들에게 집합하라고 외쳤다. 7일의 야외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짤막하게 다음화 예고)

카리타스는 이주마다 바뀌는 호위 기사 중 한 사람이 유독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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