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몬 서바이브에 관한 소고
(2024.04.12. 19:44 수정)
앞서서, 이 글은 디지몬 서바이브와 그 외 디지몬 미디어믹스에 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서바이브를 영업하는 의견이 강한 글이 될 수 있으니, 서바이브 게임이 별로라고 느끼셨던 분들께서는 동의하지 못할 부분이 많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다른 의견이 궁금하시다면 읽어주십사 읍소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개인적인 의견이 담긴 글이니, 이게 아닌데? 싶은 부분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부족한 글이니 부담없이 반박하시면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_ _)
디지몬 서바이브.
스토리도 아니고 월드 시리즈도 아닌, 중간 땜빵용으로 기획된 게임입니다. (…) 개발이 한 번 엎어져서 발매가 몇 년 늦춰진 게임이기도 합니다. 배틀과 육성 비중이 엄청 줄었기에, 거의 비주얼 노벨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게임으로서 게임성은 거의 없습니다. 컨트롤이 필요하지 않은 게임으로서, 겜알못인 저 또한 총 6번 플레이 했을 정도로 좋아하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컨트롤 안 해도 되어서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발매 이후 여러 의견이 오가는 게임으로서, 기실 ‘디지몬’ 시리즈 게임이라기에는 부정적인 시선을 받고 있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서바이브가 나름 디지몬 시리즈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서바이브에 관한 얘기, 더 나아가 디지몬 시리즈에 관한 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디지몬 시리즈는 명실상부 유명한 프랜차이즈 시리즈입니다. 육성기기로부터 시작된 디지털 몬스터는 토에이 애니메이션에서 TVA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여러 이미지로 덧씌워졌지요. 일단 언급해 두는 것이지만, 저는 굳이 따지자면 디지몬 어드벤처 TVA 시리즈를 시작으로 디지몬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고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단순히 어드벤처 팬으로서만 이 글을 작성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 역시 언급해 둡니다.
그렇기에 디지몬 시리즈에 대한 수많은 인식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육성기기로부터 시작한 디지몬, 소위 말해 본가. V 테이머를 비롯한 코믹스. 디지몬 어드벤처 시리즈. 디지몬 테이머즈. 프론티어. 세이버즈. 크로스워즈. 어드벤처 콜론. 제일 최신작 고스트게임까지. 그 외에도 스토리 시리즈 게임과 월드 시리즈 게임도 있지요. 디지몬 카드 게임, TCG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또 그렇게 다가갈 테고요. 다양하게 전개되는 개념이니만큼 디지몬은 다양하게 변용되고 응용되어온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 이렇게 거창한 얘기를 시작했느냐면, 디지몬 서바이브를 둘러싼 가장 큰 의견 중 하나가 바로 ‘이게 디지몬이냐?’하는 의견이기 때문입니다.
저 의견 자체는 저도 딱히 사감은 없습니다만…, 실제로 게임 내에서 디지몬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수신 (獸神-케모노가미)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는 점, 디지털 월드라는 개념 대신 그저 이세계라고 표현했다는 점 등등이 이게 과연 디지몬의 개념을 차용한 게임이 맞나, 싶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요. 케모노가미, 수신이라고 칭해지는 디지몬들은 분명히 디지몬 형태인데 마치 요괴처럼 표현되고 있기도 하니까요. 따라서 일각에서는 이러한 서바이브를 보며 요괴, 오컬틱, 디지몬스럽지 않다, 등등의 의견을 표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디지몬스러운 건 무엇일까요?
저도 디지몬에 관하여 그리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디지몬스러운 게 무엇인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제 개인적 의견으로는 이렇습니다:
디지몬이란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나는 이야기’를 총칭한다고 말입니다. 이건 또 뭔 소리냐… 하시겠지요. 서로 다른 존재라면 대체 무슨 범주에서 말한 것이냐… 하실 수도 있고요. 인간과 디지몬이라고 지칭하지 않은 이유는, 인간이 나오지 않는 제볼루션 같은 애니메이션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본가에서도 딱히 인간의 존재가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인간은 디지털 월드를 관측하고 어쩌면 이용하려는 존재로 그려지기도 하고요.)
따라서 디지몬을 제 방식대로 설명하려면 저 말만큼 적당한 표현이 없을 겁니다. 서로 다른 존재란 인간과 디지몬이 될 수도 있고, 다른 타입의 디지몬들이 될 수도 있으며, 어쩌면 만날 일 없었던 속성의 디지몬들이 될 수도 있겠지요. 중요한 것은 ‘만남’입니다. 제가 방점을 찍은 부분이기도 하고요. 디지몬은 유구하게 만나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육성기기의 디지털 몬스터도 결국, 벽돌을 통해서 만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조금 비약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그렇습니다. 만남이라는 표현은 다른 세계가 맞닿는다, 서로를 인식한다고도 표현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일뿐, 다른 분들이 생각하는 디지몬 시리즈의 개념은 가지각색이겠지요. 디지몬을 데리고 다니는 테이머가 나와야 한다든가, 선택받은 아이들처럼 세계를 구해야 한다든가, 혹은 악의 세력과 싸워야 한다든가……. 이러한 면에서 보면 서바이브는 확실히 디지몬스럽지 않은 게임입니다. 아이들은 분명히 선택받았으나, 디지몬이라고 불리지 않는 수신들을 데리고 다니며, 세상을 구해야 한다기보다는 세상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서바이브는 분명 디지몬스러운 게임입니다. 일단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났으니까요. 제가 디지몬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딱 잘라 말할 수 있는데요. 바로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는 이야기를 통해, 이해할 수 없었던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어드벤처에서 선택받은 아이들이 디지몬들과 유대를 쌓아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을 도와준 디지몬들을 생각하는 것 또한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겠습니다. 가장 최신작인 고스트게임에서 이러한 부분을 비중 있게 다루기도 했던 만큼, 디지몬이란 좁게 말하면 비인간과 인간, 넓게 보면 비인간들끼리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맞부딪히며 산전수전을 겪는 내용을 다루는 시리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서바이브는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존재들의 불협화음과 이해해 나가는 과정을 잘 다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자기들을 잘 따르고, 지켜주겠다고까지 말하는 수신들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결국 그들을 믿고 함께 나아가기로 합니다. 그 과정이 능동적이거나 마냥 화평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세계를 구하는 주체라기보다는, 세계로부터 생존해야 하는 객체로 조명되며 죽기 싫으면 먼저 공격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으니까요. 세계와 아이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운명적인 만남 대신에 불신 가득한 만남이 뒤를 잇습니다. 결국 파트너 수신을 믿지 못하고 비참한 결말을 맞는 이들도 생길 만큼 말이지요.
그렇다면 이제 좀 더 나아가서, 서바이브가 ‘굳이 디지몬 개념을 차용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이야기일까?’하는 물음에 관하여 고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디지몬스러운 작품이냐 아니냐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고, 디지몬의 다양한 이미지에 관련된 문제이기도 합니다. 서바이브는 디지몬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요? 디지바이스 같은 건 존재하지 않으며,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이세계에 사는 수신들. (짐승이겠지요?) 이 세계는 현실세계의 그림자 같은 곳일지도 모르고요. 예전에는 이 두 세계가 이어져 있었으나 모종의 이유로 단절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세계와 인간세계가 공존이라는 키워드로 엮였던 적이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디지몬 어드벤처 tva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벽돌 육성 기기로부터 시작된 디지털 몬스터를 애니메이션화하면서 애니메이션 나름의 설정을 만들고 본래의 설정을 변용하였던 시리즈입니다. 디지몬 어드벤처 시리즈 (어드벤처, 02) 감독인 카쿠도 감독은 디지몬 어드벤처 시리즈의 엔딩을 ‘디지몬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로 그려낸 바 있지요. 이 시리즈에서 디지몬은 선택받은 아이의 파트너에서 더 나아가, ‘또 다른 자신’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소울메이트, 영혼의 반쪽…… 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따라서 파트너 인간이 죽으면 디지몬 또한 죽는다는 설정이 있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가혹하죠?) 디지몬 서바이브에서 나오는 디지몬, 즉 수신 역시 이러한 설정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디지몬 서바이브의 프로듀서 하부p는 평소 디지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곤 했는데, 서바이브 개발 과정 중에서 카쿠도 감독의 자문을 얻은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서바이브는 어드벤처 오마주가 많이 들어간 게임이라고 평가되곤 하지요. 한편으로는, 이게 무슨 어드벤처냐? 하는 평가도 듣곤 합니다. 이렇게 정반대의 평가를 듣는다는 것은 역시 앞서 계속 얘기한, ‘서바이브가 굳이 디지몬 ip를 사용해야 가능한 스토리인가?’ 질문과 이어지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 서바이브는 디지몬 ip를 차용해야만 가능했던 이야기였습니다. 왜냐하면 디지몬을 빼놓고 보면 서바이브의 스토리는 너무나 진부하고,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이야기이거든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구시대적입니다. 어드벤처 오마주냐, 혹은 디지몬 시리즈에 대한 존중이 없는 망작이냐, 하는 평가는 그후에 논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서바이브는 디지몬 요소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계속 언급하고 있지만, 디지몬 시리즈의 메시지는 역시 ‘공존’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바이브 역시 이러한 부분을 의식하고 있고, 이는 아마도 어드벤처 시리즈 애니메이션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디지몬 어드벤처가 15소년 표류기를 모티브로 했고, 서바이브는 파리대왕을 연상하는 면이 있다는 점에서 (파리대왕은 15소년 표류기를 비튼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요) 더욱 그렇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공존이니 뭐니 메시지를 논하기 전에, 스토리의 밀도를 분석해 보면 이 이야기는 디지몬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아이들과 어른 한 명이 이세계에 떨어지면서 시작됩니다. 이세계는 아이들에게 적대적입니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이형의 생물체에게 보호받으면서도 그들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합니다. 공통 루트에서 데면데면하게 어울리던 동료(친구라고 하기엔 그들의 사이는 가깝지 못했죠)를 잃으면서 그 공포감은 더욱 심해집니다. 믿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또다시 아이들에게는 다른 시련이 닥치지요. 죽음은 선명한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아이들은 이세계에서 살아남는 것에 급급합니다. 이세계가 그들을 어째서 데려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살아남는 것이지요.
사실 아이들, 그러니까 아직 판단능력이 미성숙한 아이들을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는 이야기 자체는 현대 사회에 널렸습니다. 극한의 상황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할까 상상해 보게 되는 것은 아마도 인간의 본성과 맞닿은 취향일지도 모르고요. 그렇기에 서바이브는 캐릭터들이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까, 하면서 마냥 지켜보기에는 진부한 이야기입니다. 선과 악 중 하나를 선택한다거나, 위선을 떤다거나, 그러한 선택의 기로에 선 이들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나름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겠지요. 아마도 서바이브가 굳이 디지몬이 나와야 하는 이야기였나?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이 때문에 이 게임을 불쾌하게 느끼셨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이것은 아이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괴롭힘 당하는 이야기니까요. 이 세계가 아이들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오히려 잡아 죽이려고 하고 있고, 디지바이스나 문장도 없고 (디지몬 어드벤처를 생각하고 플레이하신 분들이라면 분명히 이 부분에서 의문을 느끼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왜 디지몬들과 서로 반목하고, 또 갑자기 오컬트…? <-아마도 이런 반응이 대다수였으리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저러한 의문들 때문에 역설적으로, 서바이브에서 디지몬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오컬트라는 부분에 관하여 첨언하자면, 앞서 잠깐 말씀드렸듯이 프로듀서인 하부p가 디지몬 어드벤처 애니메이션에 영향을 받았다는 부분이 그러한 이미지를 부여한 것 같습니다. 디지몬 어드벤처 02에서는 디지몬이 요괴와 비슷한 존재라고 말하거든요. 이는 본가에서 디지털 몬스터라고 디지몬을 전적으로 네트워크 상의 디지털 데이터로 표현한 것과 전혀 다른 해석이지요. 계속 이 세상에 존재해 왔던 초현실적인 생물이 컴퓨터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그 세계에서 나름의 형태를 입고 디지몬이 된 것이다… 라는 느낌입니다. 그러니 어드벤처로 디지몬을 접하신 분이라면, 디지몬에게 오컬트한 해석도 붙어 있다는 점을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런 가설이 나온 편 ‘미야코의 수학여행 편’은 한국에서 방영되지 않았습니다. 왜색이 짙다고 판정받았기 때문이지요…….)
디지몬은 공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서바이브의 아이들은 살아남기 급급하면서도 결국 끝에 공존을 선택합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은 선택지 세 개를 통해 여러 개의 루트를 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엔딩은 다 공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디지몬과 반목하고 디지몬과 함께하는 이를 배척해도, 디지몬을 겨우 받아들여도, 혹은 디지몬과 이별하더라도. 결국 서로의 세계가 맞닿았다는 것에 서바이브의 엔딩은 의의를 얻습니다. 분명히 아이들에게는 디지몬과의 유대를 증명할 만한 디지바이스가 없습니다. 완전체, 궁극체 진화를 가능하게 할 만한 문장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디지몬을 믿지 못하고 ‘너도 나를 그렇게 하면…’ ‘무서워…’ 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디지몬을 믿기로 결심합니다. 분명히 운명적인 만남이겠지만, 그 과정은 운명적이지 않습니다.
디지몬 ip를 차용하지 않은 게임이라면, 이 얘기는 뻔한 아포칼립스 생존물이 되었을 테고 재미가 없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사실 저는 서바이브가 디지몬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원하는 요소는 다 집어넣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마음이 공명했을 때 진화하는 디지몬, 파트너 인간에게 충실한 디지몬(수신), 거대한 적과 싸우는 아이들(물론 자의적인 싸움은 아닙니다만), 게다가 죠그레스 진화도 나오지요. 그러니 디지몬스럽지 않다고 하시는 분들께서는 아마도…… 전통적인 디지털 월드에 관한 이미지를 선명하게 품고 계시는 분이거나, 육성을 좋아하시는 분이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바이브는 육성 비중이 거의 없으니까요 배틀도 노잼이다) 구체적인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상세한 이유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요소를 제하고, 디지몬이라는 소재 자체만 생각한다면 이형의 존재와 인간이 만나서 서로를 알아간다는 점에서 정석적인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는 구석이 많은 인간과 수신이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해 나간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생각하고요. 물론 잔인한 부분과 어두운 분위기는 조금 너무했다고 저 또한 생각합니다.
게다가 서바이브의 엔딩 여러 개는 다 다른 방향성의 내용으로 전개되는데요, 저는 이 부분이 요새 시대에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좋아하는 편입니다. 어드벤처 오마주가 들어가기도 했지만, 그것을 제하고도 이런 결말은 복잡하고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한번쯤 생각해 볼 구석이 있는 메시지를 던져주거든요. (제 최애 엔딩은 격정 루트입니다.) 선택지를 통해 엔딩이 갈린다는 점은,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나름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대한 대가를 무겁게 치른다는 점에서도 메타적으로 눈여겨볼 만한 구석입니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전개해 가면서 선택합니다. 어떠한 선택은 그들을 영원한 절망에 빠트리기도 하고, 혹은 이제는 괜찮다며 웃으며 이별을 고하는 장면을 만들기도 하지요. 그러나 아이들은 그러한 이야기 속에서 어쩌면 자기를 충실하게 비추는 영혼의 반쪽, 디지몬을 통해 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충실하게 부담하며 이야기를 완결짓습니다. 세상을 구하고 희망적으로 결말내지는 못해도, 이로써 서바이브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어드벤처의 오마주, 게임 버전도 아니고 디지몬이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낯선 세계를 알아가고 공존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든요.
마지막으로 다른 유명한 작품인 사이버슬루스 해커스메모리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강력하게 추천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며 (분위기가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두 작품 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입니다) 글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부족한 게임이지만 많이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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