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 졸려
What ???
멧카이나에 온 후로 네테이얌은 딱히 숲을 그리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제이크와 네이티리는 네테이얌이 항상 하고 다니는 장신구 따위를 보고선 숲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기는 했으나 차마 그 그리움의 양을 가늠해볼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삶의 모든 것이 바뀌었고 그것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건 어른인 부모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네테이얌은 항상 숲이 그리웠다.
바다는, 아니- 솔직히 판도라의 어느 곳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아름다웠다. 그것만은 사실이었다. 네테이얌이 무얼 원했는지와는 무관하게 열대 우림과는 전혀 다른 자연은 네테이얌에게 새로운 놀라움과 즐거움을 주었다. 그런 긍정적인 감정만 주었으면 참 다행이었을까? 바다는 네테이얌에게 그리움을 함께 가져다주었다. 의도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물 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노라면 마음껏 발 닿는 곳을 뛰어다닐 수 있었던 풀이 그리웠다. 이크란을 타고 원하는대로 하늘을 누비며 만끽할 수 있었던 숲내음이 그리웠다. 오로지 “타인”들로만 가득한 곳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웠다. 해안가에서 어떤 가족의 웃음소리가 들려올때엔 숲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들이 그리웠다. 모든 숨결이 닿는 곳 마다 숲을 떠올리지 않게 하는 곳이 없었고 발길이 닿는 곳 마다 그리움의 감정이 떠오르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 가족의 첫째 자식이야. 그리고 첫째는 첫째로서의 의무가 있는 거지.”
자신이 이 가족의 장남이라는 사실만이 네테이얌의 괴로운 그리움을 눌러두고 살 수 있게 해주었다. 다른 이들은 그리 하더라도 “나는” 장남이기 때문에 그래서는 안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집을 그리워하잖아? 나만 이런 것도 아닐테고, 특별할 것 없는 감정이니까 어서 이곳을 집으로 둘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모두가- 아버지와 어머니도 이곳을 집으로 두기 위해 노력하고 계셔. 투크도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나 집에 가고 싶다 울었지. 막내조차 그렇게 하는데 제일 맏이인 내가 그렇게 떼쓰는 것은 썩 보기에도 좋지 않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테이얌은 아직 15살이었다. 때문일까, 덕분일까? 네테이얌은 숲에 가지는 가지는 모든 그리움과 아픔을 마음 가장 어두운 곳 한 켠에 밀어놓고선 다시는 꺼내보지 않기로 결정했다. 네테이얌이 몰랐던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런 감정은 때때로 꺼내서 잘 닦아주고 살펴주어야 썩어 짓무르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네테이얌이 먼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으니 그 누구도 네테이얌에게 물어본 적이 없었고, 덕분에 한여름의 미처 잊어버리고 버리지 못해 썩은 물이 흐르는 음식물 쓰레기 봉투처럼 네테이얌의 마음에서도 고름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짓무른 마음이 더 큰 병으로 썩을 일은 없었다.
“ Bro, 완전 쩔었어! 이제 가자, 형! 어서! ”
“ 멍청아…. ”
“ 나 총에 맞았어. ”
네테이얌은 욱신거리는 머리와 아프다 못해 무감해진듯한 상처 입은 가슴깨를 부여잡았다. 휘청휘청 흔들리는 정신을 애써 부여잡으려 노력한다. 그 날 네테이얌의 뚫린 가슴에서 줄줄 흘러나오던 것은 피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누군가는 말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어지러운 정신과 고통 속에서도 네테이얌은 숲의 풀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 죽음이 임박한 자에게 내려주는 자비인걸까? 그러나 네테이얌은 살고 싶었다. 간절하게 살고 싶었다. 그는 죽어서 숲에 묻히고 싶지 않았다. 살아서 숲을 뛰어다니며 발 밑의 대지를 느끼고 싶었다. 다시 한 번 일루가 아닌 이크란을 타고, 바다가 아닌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싶었다. 바닷물의 짜고 비린 향은 이제 지겨웠다. 숲 속의 시냇물이 그리웠다. 그래, 어릴 적 그때처럼 물고기 하나를 잡은 것 만으로 아버지에게 “위대한 낚시꾼 네테이얌!” 이라 칭찬 받으며 깔깔깔 웃을 수 있었던 그곳이 그리웠다. 쌓아둔 마음을 총알이 모두 터트리고 지나갔다. 마치….
‘그 이야기 같아….‘
아이들이 어릴 적 제이크는 네테이얌과 키리, 로아크를 불러 (투크는 너무 어렸었고, 아직 나비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 만으로도 벅찼다.) 아이들에게 지구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제이크가 들려준 몇몇 이야기 중엔 [나라를 구한 한스] 도 있었다. 지면이 해수면보다 낮은 곳의 제방에 구멍이 생기자 흙과 돌로, 손가락으로, 주먹으로, 팔뚝으로, 온 몸으로 막아 나라를 구한 한스. 어린 네테이얌은 울상을 짓고선 한스라는 아이가 불쌍하다고 말했고, 제이크는 웃으며 “ 그렇지만 이건 만들어낸 이야기일 거야, 많은 사람들이 진짜 있었던 일이라고 믿고 동상을 세워 업적을 기린다고도 했지만 제방에 구멍이 뚤려 물이 샌다는 건 어린 아이의 몸으로- 그것도 우리 보다 훨씬 작은 어린아이의 몸으로는 막을 수 없는 일일테니까. 정말로 있었던 일이라면 한스는 물을 막으려 구멍에 다가갔을때 이미 제방이 물의 수압-음,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저 멀리 슝-하고 날아갔을 거란다. 아니면 제방이 무너졌던가! ”
그 말을 듣고선 로아크와 키리는 깔깔거리며 “에이, 뭐야- 전부 가짜였잖아!” 하고 웃었지만 네테이얌은 끝끝내 웃음에 낄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아버지, 아버지가 절반은 틀린 것 같아요.
그건 정말로 있었던 일이였잖아요….
네테이얌은 한스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가족 사이에 뚫린 마음의 구멍은 시간이 메꿔주어야 했다. 구멍 사이로 휘휘 불어오는 그리움의 바람도 시간이 무감하게 만들어주길 기다려야 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상처에 딱지가 앉듯 그 구멍도 오래 걸릴지언정 곧 시간이 두터운 둑을 쌓아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바람이 모두를 아프게 하는 걸 보고 더 이상 시간을 기다려줄 수 없던 성급한- 고작 열다섯 어린 아이가 맏이라는 이유로 의무와 책임감을 짊어지고 온 몸으로 구멍 틈새로 슬픔이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막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절반은 아버지가 옳았죠….
맏이, 위대한 전사, 토루크 막토의 아들, 열다섯 어린아이.
열다섯 어린 아이가 막을 수 있는- 막아야 하는 구멍은 없었고 그 사실을 알기엔 네테이얌은 너무 어렸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만큼 성숙했다.
그러니까 이곳에 누워있는 것은 열다섯 아이다. 이 순간엔 오직 그 간단한 사실밖에 남지 않았다.
“집에 가고 싶어요…”
네테이얌은 파도 소리를 듣는다.
“아빠, 전….”
네테이얌은 나무와 풀에 바람이 스치는 소리를 듣는다….
‘ 단 하루도 집이 그립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
더 이상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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