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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넬 나구모X가이드 나츠키

유난히 구름이 높은 날이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 쓰러져 누운 나구모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부패한 생선에서 나는 물비린내, 오래된 공간 특유의 텁텁한 공기와 어렴풋한 잡내 따위가 한데 뒤엉켜 신경을 긁어댔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우는 소리가 샜다.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울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이곳이 아닌, 다른 어느 곳에도.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떼어낸 나구모가 코트 주머니를 뒤적였다. 손끝으로 딱딱한 것이 걸렸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유리병이었다. 그는 유리병을 높이 들어 올렸다. 병의 가장자리에 걸린 하늘이 둥글게 왜곡되어 보였다. 비틀린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 손목을 흔들자 밑바닥에 있던 것들이 잘그락대는 소리를 냈다. 특별히 의미가 있는 행동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반쯤 나가 있던 정신이 돌아왔다. 기울어진 모서리에 사이좋게 모여있는 알약은 정확히 세 정으로 충분한 양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불평해봤자 남은 약이 몇 배로 불어날 리도 없으니 남은 건 현실과의 타협뿐이다.

입을 벌리고 뚜껑을 연 유리병을 뒤집자 남은 약이 혓바닥 위로 후둑 떨어졌다. 빈 병은 대충 내던졌다. 시원스레 날아간 유리병이 어딘가에 부딪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물도 없이 씹어 삼킨 약에서는 불쾌하게 비리고 쓴맛이 난다. 몇 년을 먹어도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 맛이었다. 약효를 높이고 독성을 낮추는 연구가 계속되는 내도록 한결같은 맛에서 개선의 의지라곤 손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좋잖아. 레몬 맛, 딸기 맛, 이런 거. 볼멘소리에 약을 꺼내던 여자가 몸을 돌렸다. 오래 빛을 보지 않은 듯 핏기 없이 창백한 낯에 눈 아래가 시꺼먼 여자는 이곳의 수석 연구원이었다. 에노모토 유코. 가슴팍에 매달린 아이디 카드를 뒤늦게 발견한 나구모가 소리 없이 탄식했다. 아, 실수했다. 뒷모습만으로 상대의 직책을 지레짐작해 넋두리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때늦은 뉘우침에 철퇴를 가하듯 꽉 채운 약병이 신경질적으로 테이블에 놓인다. 안경알 너머 눈빛이 따가웠다. 이게 당신 입 심심할 때 먹으라고 만든 사탕인 줄 알아요? 기다렸다는 듯 잔소리가 쏟아진다. 안정제가 신체에 끼치는 악영향이 어쩌고 내성이 어쩌고 하는. 침울한 기색으로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 걸린 약병을 응시하던 나구모는 피로에 반쯤 쉰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자들의 경고는 담뱃갑에 프린팅된 경고문과 하등 다를 게 없다. 나구모가 경고를 듣고 안정제 복용을 중단할 확률은 흡연자가 담뱃갑에 프린팅된 경고성 사진에 돌연한 두려움을 느껴 금연에 성공할 확률과 비슷하단 의미였다. 담배, 이래도 피우시겠습니까? 따위의 문구에 위협을 느끼는 건 비흡연자뿐인 게 현실이었다. 경고문 몇 자 본 것만으로 담배를 끊을 수 있었으면 금연 패치나 금연 정책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겠지. 대부분 흡연자는 담배의 악영향을 인지한 채 담배를 피운다. 나구모도 마찬가지였다. 약물의 남용에 대한 오랜 경고는 수년째 안정제를 복용 중인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약물의 과다한 섭취는 신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약을 먹지 않으면? 그쪽이 더 큰 문제가 되리란 걸 그도, 자동응답기같은 주의사항을 늘어놓는 이들도 알고 있다.

개중 몇은 그런 소리를 했다. 차라리 가이딩을 받으라고. 나구모는 새로 받은 약병을 만지작대며 웃었다. 그런 게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어? 그러면 저들은 하나같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다물었다. 말을 하는 이유는 안다. 과반의 센티넬이 능력의 사용으로 마모된 정신을 안정시키고 신체의 부하를 줄이는 수단으로 가이딩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가이딩은 안정제와 달리 센티넬에게 어떤 부작용도 끼치지 않는, 그야말로 안전하고 효율적인 수단이었으니까.

그러나 이 합리적 수단에는 신체적 접촉이 불가결했다. 접촉의 수위는 다양했다. 가볍게는 손을 잡는 것부터, 깊게는 몸을 섞는 것까지. 말이 좋아 가이딩이지 실상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의 섹스 아닌가. 능력을 사용하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센티넬들이야 모르는 사람과 섹스 좀 하는 게 대수냐는 입장이었지만, 센티넬이 없다고 사는데 지장이 생기는 게 아닌 가이드의 입장에서야 충분히 해볼 법한 고민이었다. 그래서, 나구모가 제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도 가이드의 입장을 고려할 줄 아는 이타적인 인간이라 가이딩을 받지 않느냐 하면 그런 건 아니고.

가이딩의 목적은 단순히 센티넬의 정신을 안정시키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센티넬과 파장이 유사한 가이드는 손을 잡거나 입을 맞추는 수준의 접촉만으로 부작용 없이 센티넬의 파장을 안정시키는 것은 물론, 그의 부상마저 치유한다. 격전지에서 급이 높은 가이드의 효용성은 감히 약물이나 의료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실제로 급이 높은 센티넬과 각인을 마친 가이드는 훈련을 받은 뒤 그의 임무에 동행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나구모의 입장에선 이것도 저것도 다 요원한 이야기였지만.

평균 23퍼센트, 최대 46퍼센트. 최대 동조율을 보인 가이드는 B급. 나쁜 의미로 독보적인 수치는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접촉 수위를 시사한다. 능력을 사용한 뒤엔 어김없이 이름도 모르는 이들과 몸을 섞었다. 대단한 효력은 없었다.

물론 센트럴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을 가지고 있다. S급 센티넬보다도 희귀하다는 S급 가이드의 존재가 그것이었다. A급 이하의 센티넬라면 동조율이 30퍼센트 이하여도 그를 말 잘 듣는 개로 만들 수 있으며, 어지간히 지랄 같은 파장을 가진 센티넬이 아닌 이상 대부분 센티넬과 40퍼센트 이상으로 동조할 수 있다는 괴물. 당연히 나구모가 속한 센트럴 J지구에도 S급 가이드가 있었다. 문제는 둘의 동조율이었다. 그와 나구모의 동조율은 무려 1.7퍼센트로 가이드의 안전을 위한 최저 동조율인 30퍼센트를 한참 밑돌았다.

일곱 명의 S급 센티넬과 한 명의 S급 가이드. 센트럴이 취해야 할 입장은 명확했다. 동조율이 1퍼센트 수준인 센티넬을 가이딩하는 일에 귀한 S급 가이드를 소진할 수 없었던 센트럴은 즉각 그의 가이딩 명단에서 나구모의 이름을 배제했다.

일 년에서 이 년을 주기로 이루어지는 동조 검사를 마치고 사흘 정도가 지났을 즘이었다. 으레 그렇듯 사무실로 두툼한 파일이 도착했다. 가이드의 등급과 동조율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효율이 높은 순서로 인적사항을 정리한 파일이었다. 묵직한 파일을 품에 안은 비서가 그의 눈치를 살폈다. 나구모님, 검사 결과가…. 나구모는 손을 휙 흔들었다. 몇 번의 경험으로 그것이 ‘적당히 치우라’는 의미임을 깨달은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몸을 물렸다. 나구모는 답답하게 목을 죈 넥타이를 풀었다. 한가하게 가이드의 얼굴이나 들여다볼 기분이 아니었다. 감각은 끔찍할 만큼 예민한데 전신이 무겁고 나른했다. 시험 삼아 테이블을 굴러다니던 펜을 집어 던졌다. 무섭게 날아간 볼펜이 TV에 처박힌다. 그는 TV 한가운데에 박힌 볼펜을 가만히 바라보다, 펜을 던진 손을 눈앞으로 가져와 펼쳤다. 그리고는 펼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움직임이 감각을 따라가지 못한다. 괴리감에 숨이 턱 막혔다. 기다렸다는 듯 난폭한 충동이 고개를 들었다. 얄팍한 의지를 쥐어짜 날뛰는 욕구에 목줄을 채웠다. 벌어진 입술로 한숨이 샜다.

아무렇게나 치워두었던 서류는 오래지 않아 빛을 보았다. 한바탕 전투를 치른 뒤였다. 나구모의 복귀 소식에 센트럴의 사무원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주 업무는 센티넬 복귀 시 가이드를 우선순위에 따라 배정하는 일이었다. 센티넬의 지정 가이드란을 확인해 그가 가장 선호하는 가이드를 호출하고, 해당 가이드가 부재중이거나, 가이딩 중이거나, 가이딩을 거절하면 차례로 다음 순위의 가이드를 호출하는. 문제는 나구모 요이치의 지정 가이드란이 공란이라는 데에 있었다. 그가 일전에 보낸 서류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탓이었다.

센티넬이 가이드를 선택하는 기준은 동조율뿐만이 아니다. 동조율이 높은 가이드가 괴상한 성벽을 가진 변태일 가능성은 얼마든 존재했다. 센티넬 역시 사람인 이상 그런 상대와 몸을 섞고 싶진 않을 테지. 일반적으론 가이드가 센티넬을 거절할 가능성까지 따져봐야 하겠지만 나구모가 오더인 이상 그는 고려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전투 능력이 없는 가이드의 안전을 위해 가이딩은 반드시 적확한 절차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건 모든 센티넬과 가이드를 관리하는 센트럴(중앙)의 가장 수위 높은 규율 중 하나였다. 절차는 총 네 단계로 이루어졌다. 먼저 센티넬이 지정한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신청하면 가이드가 이를 수락하거나 거절하고, 가이드가 가이딩을 수락하면 센트럴에서 안정실을 배정하는 식이었다. 보통은 그랬다. 그리고 나구모 요이치는 그 ‘보통’에 속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S급 센티넬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이들을 모아놓은 특수 전투집단 ‘오더’. 인간보다 생체 무기에 가까운 이들은 가이드와 센티넬을 관리하는 센트럴 권력의 핵으로, 오더에겐 그 자신과 국가의 안전을 위해 가이드를 ‘이용’할 권한이 주어진다. 즉, 센트럴에 소속되어 있으며 각인을 하지 않은 정규 가이드라면 누구든 오더의 부름에 응해야만 했다. 거기에 가이드의 의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편 나구모는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여느 센티넬들은 가이드의 외모는 센티넬의 정신적 안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항으로 응당 고려해야 할 기준의 하나라는 헛소리를 해댔지만 그에겐 가이드의 외모도, 성별도, 성격도, 하물며 고약한 성적 취향조차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필요한 건 능력을 사용한 뒤 어지럽게 날뛰는 머릿속을 잠재워줄 무언가뿐이었다. 안절부절못하며 곁을 서성이는 사무원을 옆으로 밀어 치운 나구모는 개방된 안정실 하나를 아무렇게나 열고 들어가며 짧게 지시했다. 순서대로 불러와. 일머리가 나쁘지 않은 남자는 단박에 그의 말을 이해했다.

그로부터 열흘가량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센트럴에 복귀한 나구모는 빈 안정실로 들어갔다. 늘 그렇듯 ‘순서대로’ 불려온 가이드 서넛이 그 뒤를 따랐다. 능력 사용의 후유증으로 눈앞이 아득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입을 벌리면 내장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손을 뻗었다. 일상적인 동작이었다. 동조 검사에서 가장 높은 효율을 보인 가이드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맞닿은 손이 덜덜 떨려왔다. 나구모는 고개를 들었다. 가이드의 얼굴이 희게 질려 있었다. 일렬로 선 네 명의 가이드 모두가 고개를 숙인 채였다. 나구모는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뭐라 형언할 수는 없지만, 아주, 불쾌했다.

침묵이 길어지자 한참 바닥을 바라보던 가이드 하나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대로 눈이 마주쳤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 질겁한 가이드가 급하게 옷가지를 벗어 내리기 시작했다. 그와 몸을 섞었던 가이드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초주검이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반응은 아니다. 그래서…. 자각은 찰나에 이루어졌다. 가이드의 의사를 배제한 가이딩이 강간과 다를 게 뭐지. 나구모는 가이드와 맞잡고 있던 손을 쳐냈다. 도열해있던 가이드들이 동시에 그를 응시했다. 여러 쌍의 눈동자가 그를 향하고 있었다. 공포로 까맣게 죽은 눈이었다. 구역질이 치밀었다. 그날 나구모는 가이딩을 받지 않은 채 모든 가이드를 돌려보냈다.

안정제를 먹기 시작한 건 그 후였다. 안정제 복용의 결과는 가이딩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허무할 정도였다. 부작용이 어쩌니저쩌니하는 소리는 한 귀로 듣고 흘렸다. 그 정도 부작용이야 감수할만했다. 센티넬의 장점이 튼튼한 몸 말고 또 있나. 같잖은 짓이라며 손가락질하는 이들도 적진 않았다. 가이딩이나 안정제나 그게 그건데 뭐. 그렇게 받아치면 저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다물고 동정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대부분이 A급 이하의 센티넬이었다. 달갑지 않은 동정이다. 난교에 가까운 섹스로 얻을 수 있는 결과라는 게 고작 안정제 몇 알과 같은 효과라니. 섹스에 미친 인간이 아니고서야 전자를 고를 이유가 없다. 단순한 효율의 문제였다.

비슷한 처지의 동료(오더)들은 그를 이해했다. 엮지 마라. 내는 평균 23퍼센트까진 아이다. 이야기를 듣던 시시바가 지적했다. 위로 좀 해주면 안 돼? 소파에 머리를 기댄 나구모가 투덜거리자 (오더 중 유일하게) 평균 60퍼센트 이상의 높은 동조율을 보이는 효우가 한 마디를 보탰다. 네 성격이 그 모양이라 동조율이 안 나오는 거 아니냐. 60퍼센트의 지적에 마땅한 답변을 찾아내지 못한 나구모는 웃는 낯으로 화살을 돌렸다. 어떻게 생각해, 평균 32퍼센트의 사카모토? 사카모토가 특유의 무심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시비거냐?

나 결혼해.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귀를 의심했다. 거짓말이지? 반사적인 물음에 사카모토가 대꾸했다. 정말이야. 멋쩍은 표정. 양성소에서부터 지금껏, 그를 알고 지낸 십몇 년의 시간 중 처음으로 보는 얼굴이었다.

상대는 가이드라고 했다. A급 가이드라는 그녀와 사카모토 타로의 동조율은 92퍼센트. 동조율이 높은 센티넬과 가이드 사이에 감정이 생긴 건 필연적인 일이다. 누군가의 설명이 귓가를 빙빙 돌다 흩어졌다. 이십칠년 인생에 약물보다 나은 가이딩을 겪은 바 없는 그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결혼이라니. 고작 그런 이유로? 가이드란 건 결국 안정제 아닌가? 두서없이 떠오르는 의문을 목구멍 아래로 삭였다. 소위 있는 집 자식으로 태어나 S급 센티넬로 각성한 이래 남 눈치를 본 적이 없는 그에게도 그 정도의 예의는 있었다.

사카모토에게는 다행하게도 그의 연인은 좋은 사람이었다. 밝고, 다정하고, 강인했다. 그녀의 곁에 선 사카모토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삶이 무료한 탓인지, 능력의 부작용 탓인지, 매사 묘하게 의욕이 없고 표정이 드물던 과거의 그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동조율 때문만은 아니었겠지. 식이 진행되는 내내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사카모토는 그녀의 손에 반지를 끼우는 순간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나사가 좀 빠져 보이긴 했지만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언젠가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정말 그녀를 사랑하느냐고. 사카모토가 한창 신혼일 무렵이었다. 실례라는 자각은 있었지만 그보다 호기심이 앞섰다. 첫눈에 반했다니. 그건 지독하게 사카모토와 어울리지 않는 이유였으므로. 돌아보는 얼굴이 사나웠다. 얼마쯤 맞을 각오까지 다졌건만,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던 사카모토의 눈은 곧 평소의 그것으로 변했다. 질문에 악의가 없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사카모토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랑 파장이 맞는 가이드여서 반했다고 착각한 거 아니야? 사카모토는 구태여 나구모의 물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당장에 눈이 멀어 사랑의 계기조차 부정할 만큼의 머저리는 아니었다. 그녀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으면? 사카모토는 그래도 그녀를 사랑했을까. 약 기운이 다 지우지 못한 구역감에 머리를 젖힌 나구모가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사카모토가 짧게 대꾸했다. 그래도.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맹목적인 애정은 신앙을 닮은 면이 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센티넬이라는 건 태어나기를 불완전한 생명체였다. 가이드라는 존재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반쪽짜리 유기물. 신앙이라. 단어를 혓바닥으로 굴린 나구모가 턱을 괴었다. 평균 동조율 23퍼센트. 안정제로 능력 사용의 후유증을 근근이 억누르며 살아가는 그로선 불가해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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