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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는 든든하고 싶어!

나미는 무엇이든 잘 먹는다.

현대인이라면 하나쯤 갖고 있다는 알레르기에서도 용케 자유로웠고 편식은커녕 없어서 못 먹는 경우가 많았다. 단순한 성격 탓에 어린애 입맛, 요컨대 채소를 싫어하고 과자 종류를 좋아하리라 착각하는 사람도 많았으나, 오이는 물론 당근이나 풋고추를 쌈장에 푹 찍어 우적우적 씹어 먹는 것이 나미의 여름철 더위 나기 방법이었다. 이런 그에게 양파와 마늘은 다다익선이라 레서피의 ‘마늘 한 움큼’, ‘양파 적당량’은 어느새 ‘한 주먹’ 혹은 ‘내키는 대로’로 늘어나기 일쑤였다. 알리오 올리오에 마늘을 집어넣는 나미를 보면 동굴 밖으로 나오는 웅녀와 같은 기백에 압도되고 마는 것이다. 그릇을 비우고 나면 입 안쪽에 묵직하게 존재감을 잡는 구린내가 정겹다나 뭐라나 하는 변명마저도 참으로 대한남아스러웠다.

그러나 먼저 기술했던 대로 나미는 가리는 것 없이 무엇이든 잘 먹었기에 어떤 때는 어젯밤 회식 때문에 숙취에 찌든 아재처럼 해장국 콜을 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필터를 빡세게 먹이고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여 인스타에서 좋아요 받기 용으로 올릴 법한 홍콩식 에그 와플 3단 파르페에도 환장했다. 디저트를 좋아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부엌 찬장에는 삼단 트레이와 티컵 세트가 종류별로 고이고이 모셔져 있었고, 한 달에 한 번 갖는 가족 티타임에는 카나페, 햄 샌드위치, 잼 바른 스콘부터 시작해서 색색깔로 고운 무스 케이크, 몽글몽글 부드러운 바닐라빈 슈크림, 쫀득한 꼬끄가 일품인 마카롱은 무서운 기세로 나미의 위장에 들어가기 바빴더란다. 이때는 한창 현역 선수로 활약하고 있었기에 어머니는 ‘운동하는 애들은 다 많이 먹는 법이지’라며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고 원체 ‘니글니글하는 것’이라면 질색을 하는 아버지는 자기 몫까지 나미가 먹어 치워서 안심하곤 했다.

한편, 나미의 아버지는 ‘나는 자연인이다’, ‘천기누설’과 같은 프로그램의 애청자인데, 어릴 적부터 나미에게 영향이 뻗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아버지가 식사를 준비하는 날에는 밥상 위에 흰쌀밥이 올라오는 일이 없었다. 무 밥부터 시작해 곤약 밥, 곤드레 밥, 쑥 밥, 최근에는 아로니아 밥까지, 한국인은 밥심이 중요하니 좋은 밥을 먹어야 한다며 밥 배리에이션을 넓히는 것이었다. 밥만으로 끝났다면 다행이었으나, 건강식 신봉과 운동선수인 아들에 대한 부성애가 시너지를 일으켜 아버지는 온갖 몸에 좋다는 고기를 달에 한 번꼴로 가져오곤 했다. 흑돼지부터 시작해 오골계, 토끼, 개, 멧돼지, 심지어는 그 귀하다는 고래마저 사 와서 굽고 찌고 삶고 고아 나미에게 먹였다. 제아무리 나미라 한들 말 그대로 개구리 반찬이 나왔을 때에는 울고 싶었다. 그러나 아들 잘되라고 개구리까지 잡아 온 아버지의 사랑을 배신할 수 없었던 나미는 눈 딱 감고 전대미문의 고기를 삼켰고, 이후 무엇이든 다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나미는 자신이 먹지 못하는 음식이 없다는 사실에 은근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 점심 뭐 먹을래?”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한국, 중국, 일본을 찍고 서양을 돌아 베트남, 스페인, 러시아까지 만국 요리가 후보로 튀어나오면서, 동시에 ‘이건 알레르기가 있어서’, ‘저건 싫어해서’라며 저마다의 이유로 하나씩 탈락시키다 보면 결국 봉구스 밥버거를 입에 물게 되는 요즘 시대에, 알레르기도 호불호도 없는 나미의 입맛은 그야말로 치트키나 다름없었다…….

라고, 생각했었다.

일본으로 유학 오기 전까지는.

가나미, 스무 살, 만으로는 열여덟.

십 대의 끝자락에서 나미는 가깝고도 먼 타국에서 깨달았다.

자신은 소위 말하는 ‘든든충’이라는 사실을.

짧은 인생을 되돌아보면 그런 낌새는 많았다. 친구들이 애슐리 샐러드바에서 카르보나라를 집을 때 나미는 멸치국수를 말았고, 민트 초코가 적폐냐 아니냐를 논할 때 나미는 거꾸로 해도 이름이 똑같은 바밤바를 깨물어 먹었다. 중간고사를 망쳤다며 친구가 우울해하면 마음이 뜨끈해야 기운이 난다며 단골 국밥집에 데려간 적도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초밥이나 마라탕도 곧잘 먹었기에 나미는 자신의 입맛이 이렇게나 한국 토속적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일본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만 해도 세븐일레븐이니 로손이니 온갖 편의점에 쳐들어가 샌드위치와 오니기리, 후식으로 푸딩에 초콜릿을 휩쓸고 다녔다. 학교 근처의 맛집 리스트를 뽑아 도장을 깨러 다닌 결과 ‘맛집 구글 가나미’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러나 3, 6, 9가 권태기의 숫자라고 하던가, 일본에 온 지 3개월이 되자 나미는 몸이 뒤틀려 죽을 것만 같았다.

무엇을 먹어도 든든하지가 않다.

물론 무얼 먹든 배는 부르고 몸은 따뜻해지고 활력은 되살아났다. 그러나 유전자에 새겨진 한국인의 얼이 섬나라 먹거리는 양도 조막만 하고 간도 심심허니 요만큼도 든든하지 않다고 아우성치고 난리가 난 것이다.

불판 위에 기름을 흘리며 지글지글 익는 삼겹살, 깻잎과 마늘까지 넣어 푸짐하게 입안에 욱여넣는 한 겹 쌈, 짭조름하니 칼칼한 된장찌개에 라면 사리까지 넣어 먹었을 때 느껴지는 포만감과 기름내 가득한 일련의 코스.

어머니에게 들켜 등짝을 얻어맞을 것을 알면서도 냉장고를 뒤져 꺼낸 양푼이 속 김치찌개에 고기만 쏙 골라 먹을 때의 짜릿한 해방감과, 결국 쌀밥까지 데워 두 그릇 뚝딱 비우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 창밖으로 별이 총총 떠 있는 것을 본 순간의 기묘한 고양감.

묵은지와 파를 종종 썰어 끓이고는 후루룩 쩝쩝 흘러 넘기는 라면, 면이 조금 남았을 때 계란 하나 탁 깨뜨려 뭉근한 노른자를 밥과 함께 깨뜨리며 시작하는 라면 죽 2차전의 일상.

나미는 이런 것이 너무나 그리웠다.

마음씨 착한 동기 사토 A오가 나베 파티에 초대해주었으나 간장 베이스 국물은 나미의 영혼을 울리기엔 너무나 달았고, 라멘 가게 순회가 취미인 동기 다나카 B코를 따라서 간 라멘 가게에서 ‘게키카라 천상계’ 라멘을 먹어도 불닭볶음면을 처음 먹었을 때의 감동에는 미치지 못했다.

아! 펄펄 끓는 뚝배기에 담긴 순대국밥에 부추랑 다대기 팍팍 넣고 깍두기 국물로 단맛을 더한 다음 새우젓으로 마무리 지어 한 사발 후루룩 해치우고 자판기 밀크 커피로 입가심 한 번 하면 소원이 없겠다…!

나미는 오늘도 이렇게 눈물지으며 대학 생협에서 파는 200엔짜리 초특대 야키소바 빵을 열심히 씹는다. 힘내라, 든든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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