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타사토 / 데이터베이스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사람은 어째서 자신 이외의 타인이 될 수 없을까?
사람은 어째서 타인을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
어떠한 이유로 개인은 각자 타고나는 재능이 다를까?
왜 감정은 단 하나의 요소로 이루어지지 않고 복합적으로 작용할까?
수많은 물음표가 그려졌으나 후쿠베는 한숨 한 번으로 모두 날려버렸다.
겨울 향을 덧입힌 씁쓸한 한숨. 질문이 있어도 대답은 없다.
데이터베이스는 결론을 내릴 수 없으니까.
무거운 마음이 담겨 밀도 높은 한숨이라도 몇 초 만에 가볍게 흩어져 다른 부원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레키는 눈앞의 책에, 이바라와 치탄다는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다. 오늘은 2학기 마지막 날. 내일부터 시작되는 휴일에 들떠 겨울 방학에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우는 소녀들의 모습이 창문에 비쳤다.
유리창은 표면에 먼지가 조금 묻은 것을 제외하고는 얼룩 없이 깨끗하다. 집에서도 걸레 한 번 쥐어본 적 없을 것 같은 치탄다가 이따금 어디에선가 청소 도구를 빌려와 닦은 덕분이다. 이토록 허름하고 허술한 고전부라도 존속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부장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때면, 후쿠베는 종종 감탄을 삼키곤 했다.
언제나 올곧은 치탄다 에루. 그녀가 지닌 다정함과 성실함은 때로는 타인의 의욕을 고취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상실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너무 환하게 빛나는 것은 그 옆에 있는 것마저 자신의 빛에 삼켜버리기 마련이다. 지금은 그것이 마이너스로 작용할 뿐이기에, 후쿠베는 매끄러운 유리에 그려진 풍경에만 집중했다.
이파리 하나 없이 바싹 마른 가지, 점점이 찢어진 구름이 흐르는 하늘, 그 살풍경한 모습 위의 고전부. 창틀에 갇힌 고전부 부실은 마치 유리 상자에 고이 담긴 미니어처 같았다. 열심히 만들어 장식한 피규어나 프라모델처럼. 평온하고 아름다워서 계속 들여다보고 싶은 풍경.
그러나 이것은 후쿠베가 만든 것이 아니다. 후쿠베는 구경꾼에 불과하다. 이 상태 그대로 보존하고 싶다고 바란다 한들 이룰 수 있는 능력은 없다. 후쿠베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나아가 신랄한 시선으로 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을 지키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변화가 시작된다면 막지 않을 것이다. 액션을 취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다. 저지할 힘도 없다. 스스로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으므로 여기가 후쿠베의 한계다.
시선을 조금 옮기면 치탄다 옆에서 일방적으로 떠들고 있는 이바라가 있다. 자꾸만 남자들을 힐끔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초콜릿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여자들만의 비밀로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모양이다. 모른 척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면도 후쿠베의 시선은 이바라 주위를 맴돌았다.
추위 때문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 약간은 상기된 얼굴, 초등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앳된 이목구비와 커다란 눈, 움직일 때마다 턱 언저리에서 가볍게 살랑거리는 짧은 머리카락. 그런 사소한 것들, 이를테면 손가락 끝에 묻은 먹, 힘찬 걸음걸이 때문에 끼익 끼익 작게 울리는 실내화 소리, 오레키에게는 시니컬하게 쏘아붙이면서도 자신 앞에서는 누그러드는 목소리마저, 후쿠베는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온몸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자의 모습이 사랑스럽지 않을 리가 없다. 그만큼 괴로워서 후쿠베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번에도 대답을 보류한다면 어떻게 될까. 의문형이 아니다. 대답을 할 수 없으니까. 데이터베이스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 핑계 뒤에 숨어 지금까지 끌어버렸지만.
이바라를 대할 때 후쿠베는 막연한 부재不在의 감각을 느꼈다. 이것저것 재거나 따지지 않고, 자신의 모든 감정을 솔직하게 내보이는 이바라 마야카. 치탄다와는 종류가 다른 올곧음이지만, 모난 곳 없이 똑바른 것은 어떤 것이든 아름답다. 후쿠베는 이바라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면서도, 이토록 순도 높은 애정을 받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겠지, 라고 제삼자의 일처럼 관망했다. 후쿠베 사토시는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있어야 할 터인 충족감이 없다. 그 빈 자리는 부재의 감각, 공허한 열등감만이 채우고 있을 뿐이다.
후쿠베는 천천히 눈꺼풀을 열어 열등감의 원천인 친구를 보았다. 그다지 마주하고 싶지 않았으나, 오늘이 지나면 얼굴을 보기 어려울 테니 필요한 만큼 지금 새겨두어야 했다.
오레키는 재미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눈동자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집에 돌아갈 타이밍이나, 치탄다를 신경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슴 한쪽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끼며 후쿠베는 그런 자신이 우스워서 후, 하고 다시금 한숨을 가장해 비웃음을 내뱉었다.
후쿠베 사토시는 오레키 호타로를 친구라고 칭하고 있다. 둘 사이에 쌓인 감정에 대해 오레키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으므로 후쿠베도 친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데이터베이스는 감정도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내리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스스로 추론해봐도 오레키처럼 완벽한 해답에 도달할 수 없다. 그것이 정답이어서도 안 된다.
후쿠베는 턱을 괴는 척 시선을 감추며 오레키를 응시했다. 오레키는 지금 에너지 절약 모드지만, 눈을 마주치면 모든 것을 꿰뚫릴 것 같아 두려운 탓이다. 한때는 그것을 부러워했던 적도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파편을 짜 맞추어 그림을 만들어내는 재능을. 오레키처럼 되고 싶어 무리해서 호기를 부렸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의 일이다. 왓슨은 홈스가 될 수 없듯이, 행성마다 궤도가 다르듯이, 오레키와 함께 있을수록 후쿠베는 그에게 닿지 못한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을 뿐이었다. 중학생 시절에는 분하고 슬프고 처절했다. 어째서 나는 나고, 너는 너냐고, 태생을 탄식하며 울기도 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격렬했던 감정도 시간에 부딪혀 무뎌졌다. 분함은 단념이 되고 슬픔은 체념이 되었다.
차라리 체념만이 남았으면 좋았으련만.
우정인지 동경인지, 형태도 모호해진 것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눈길이 간다. 추리 결론을 듣고 있으면 내용보다는 높낮이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게 되었다. 옆자리라는 포지션밖에 남지 않아 그 자리에 있는 것이면서도 포지션에 걸맞게 무엇이든 도와주고 싶어졌다. 닳아 버린 과거의 감정을 떠올리게 되면서도, 결국은 곁을 떠나지 못하게 되었다.
어째서일까.
답을 원하지 않는 질문이다.
데이터는 많다. 책에 적힌 수많은 시나 소설부터 시작해, 노래, 드라마, 영화까지. 후쿠베 사토시 한 명에 다 담지 못할 만큼 세상에 데이터는 넘쳐난다.
이럴 때면 후쿠베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해본다.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이 감정을 소리 내어 말해버린다면 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니, 그렇게 멀리 갈 필요도 없다. 겨울 방학에 만나자는 말만으로도 오레키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을 것이다. 두 사람 사이는 친구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되긴 해도, 세간에서 흔히 통용되는 ‘우정’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처럼 애틋한 관계는 아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굳이 겨울 방학에 만나지 않는, 보통의 ‘친구’보다 건조한 사이다. 차라리 이바라처럼 직선적인 성격이었다면 어땠을까. 혹은 치탄다처럼 반듯한 성격이었다면. 그랬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이번에도 퀘스천은 있으나 앤서는 없다. 전부 의미 없는 가정일 뿐이니까.
후쿠베는 이바라가 될 수 없다. 치탄다도 될 수 없다. 두 소녀처럼 상냥하고 부드러워질 수 없다. 그러니 후쿠베는 선을 긋는다. 그 너머에서 오레키를 바라본다. 가끔 만지작거리는 앞머리, 단정한 손등, 나른한 눈가 따위를. 질리지도 않고, 눈을 깜빡이는 순간마다.
데이터베이스는 결론을 내릴 수 없으니, 이것은 사람인 후쿠베 사토시의 결론이다.
후쿠베 사토시는 오레키 호타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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