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아이 / 결국은
드래곤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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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거랑 더운 거 중에는 역시 추운 게 나아. 아이오나는 종종 그렇게 말했지만, 그 아이가 추위를 타는 일은 없었다. 루비나트가 털옷을 껴입고 불까지 피우고 있음에도, 아이오나는 반바지를 입은 채 눈 위를 걸어 다녔다. 그런 차림새로 잘도 돌아다니는구나. 루비나트가 비아냥을 섞어 말하면 아이오나는 저의를 눈치채지 못한 채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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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위에 한 발 한 발, 제 무게만큼 가라앉는 눈을 보며 언젠가 아이오나는 말했다. 나는 정말로 살아있구나아…. 녹아내린 눈처럼 짓물러 물기가 가득한 목소리였다. 루비나트는, 인생은 즐겁게 살아야 하는 거야, 짜증스러운 말투로 충고했지만, 아이오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눈썹을 팔 자로 구부렸다. 그런 것을 바라면 안 된다는 단호한 눈빛은, 아이오나에게선 처음 보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눈치를 살피며 몸을 잔뜩 움츠리면서도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는 다른 세계의 일처럼 잘라버리는 눈빛이었다. 그 모습에 루비나트는 늘 목이 멨다. 하지만, 옛 기억은 잊고 같이 즐겁게 살자, 그렇게 손을 내밀 때마다 아이오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느은, 그러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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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기억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깊은 슬픔을 떠안아야 하는가. 루비나트는 그것이 한없이 안타까웠다. 어쩌면 하플링 눈 속에 파묻혀 있었던 시간이 아이오나를 얼려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끝나지 않는 겨울이 잠든 몸 위로 쌓여간 만큼 그 안에는 차갑게 식어간 마음이 있었다. 루비나트가 눈 속에서 아이오나를 꺼냈을 때, 그 아이의 몸은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차가웠다. 눈을 뜨자마자 울음을 터뜨린 일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눈 속에 다시 묻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이오나는 깨끗한 눈동자 가득 눈물을 담은 채 말했다. 결국, 이렇게 돼버렸구나…. 두 손 가득 파묻은 흐느낌은 수천 년 전의 죄만큼이나 무겁게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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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나는 이름을 받을 자격도 없다고 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릴 때면 울듯 말듯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작은 눈송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큰 눈송이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그렇게 말하며 후후 웃었던 적도 있었지만, 루비나트로서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단지 루비나트는 아이오나와 있는 시간이 무척 답답하고 즐거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면 아이오나는, 응, 그렇구나아, 곤란하다는 듯이 받아주었다. 언제나 말하는 것은 루비나트였고 듣는 것은 아이오나였다. 아이오나가 먼저 말을 건 것은 한 번뿐이었으며, 그것은 사명에 대한 이야기였다. 너는 사명이 기억… 나?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아이오나와는 반대로 루비나트는 유쾌하게 대답했다. 그놈의 사명, 사명, 난 그저 조용히 신나게 살고 싶다고. 언제나처럼 장난기 섞인 목소리에, 아이오나는 그저 난감하다는 듯 웃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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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거기에 두고 오는 것이 아니었다.
다시 하플링을 찾아갔을 때, 루비나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눈 위에 새겨져 있던 목소리도 발자국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온통 새하얀 그곳은 아이오나가 없어도 끝없이 눈이 내렸고, 그 하양에 지워진 것처럼 아이오나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루비나트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워진 기분이었다. 그 어디에도 아이오나가 없다. 그것이 너무나도 서러웠고 마치 그래서는 안 되는 일처럼 느껴졌다. 아이오나가 없는 세상, 그것은 네가 없다는 부조리와 불합리 그리고 눈이 멀어버린 하양밖에 남지 않은 세상이었다. 루비나트는 목이 터질 만큼 아이오나의 이름을 외치며 눈을 파냈다. 아이오나, 어디 있어. 아이오나, 대답해. 대답 좀 해줘. 제발……. 그를 처음 발견했던 날처럼 파내고 파내고 또 파내도 아이오나는 나타나지 않았다. 손끝은 시리다 못해 붉게 얼어붙었고, 눈가에는 뜨겁게 열이 올랐다. 그 순간 루비나트는 눈물만으로 이루어져 있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 결국.
결국은, 이렇게 돼버렸구나….
루비나트는 그 차갑던 손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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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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