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온화상

[리발링크] 숨결이 다하는 순간

내가 널 죽여주겠어

푸른 눈의 괴물이 총구를 들이댄 그 순간. 리발의 가슴 속에 피어오른 것은 후회도, 한탄도 아니었다.

다만 그저, 누군가를 떠올렸다.

무자비하게 날아오는 총탄을 가까스로 피한다. 귀를 스치는 파열음과, 돌도 철도 아닌 고대 소재로 만들어진 지면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예민한 신경을 건드린다.

리토의 영걸이 신수 바・메도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이미 전쟁터로 변해버린지 오래였다. 애초에 이것은 재앙에 대항하기 위한 병기로 만들어진 것이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리토족 최고의 전사를 데리고 그저 병기를 조종하게 할 뿐이라니 어리석기 그지없다고, 그렇게 말한 것은 다름 아닌 리발 자신이었다. 그런데 이런 꼴이 되어버리다니.

너나 나나 체면이 서지 않네. 안 그래, 메도?

평정을 가장하며 파트너를 불러보지만, 대답은 들리지 않는다. 푸른 빛의 제어장치가 이질적인 붉은 색을 띤 시점에서 리발은 깨닫고 있다. 메도의 심장은 이미 괴물의 손아귀 안이다.

배리어 시스템마저 함락되었고, 도망갈 수 없다. 시간을 끌어봤자 자멸하는 것은 이쪽.

애초부터 도망갈 생각 따위 추호도 없지만,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할 수록 절망의 예감이 드리웠다. 평소 메도 위에 부는 잔잔한 바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섬뜩할 정도의 무풍(無風)에 날개가 무거워진다. 

그럼에도 온 힘을 쥐어짜 활시위를 당긴다. 생물인지 뭔지조차 알 수 없는 괴물은 외눈박이 주제에 정확한 반격을 가한다. 세 발의 화살은 뿔뿔이 흩어져 공중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젠장! 리발이 욕지거리를 내뱉은 것과 동시에, 톱니바퀴가 삐걱거리듯이 메도가 비명을 질렀다. 부자연스럽게 발밑이 흔들리고, 지면이 진동과 함께 울퉁불퉁한 언덕을 만든다. 피하기 위해 내디딘 발이 미끄러지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커헉..!"

숨이 가쁘다. 하반신의 감각이 없다. 영걸의 증표인 푸른 색 천이 붉게 물들어간다.

지혈을 시도해본들 소용없을 것이다. 누구랑 다르니까 말이지. 하염없이 피를 내뿜는 제 옆구리를, 리발은 마치 남 일처럼 멍하니 바라봤다. 머리 위로 철컥, 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리지만 한 귀로 흘린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리토의 영걸은 다소 한가한 생각을 했다.

이 자리에 있는 게 내가 아니라 그 녀석 -선택받은 자- 이었다면, 무언가 달랐을까.

푸른 눈의 괴물이 총구를 들이댄 그 순간. 리발의 가슴 속에 피어오른 것은 후회도, 한탄도 아니었다.

다만 그저, 그를 떠올렸다.

"나, 죽지 않으니까."

기억 속의 링크는 피투성이가 되어 그렇게 말했다.

"뭐?"

스카프를 풀던 손을 멈추고, 리발이 되묻는다. 링크는 담담히 되풀이했다. 죽지 않으니까, 괜찮아.

그러니까 내버려 둬, 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그랬어. 죽지 않는 게 이상한 상황인데도, 나 빼고 모두 죽었는데도. 내가 지키지 못했는데도. 정작 나만 죽지 않았어."

뜬금없고 두서없는 옛날 얘기였지만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리발이 도착했을 때, 이미 링크는 보통 사람이라면 숨이 끊어지고도 남을 정도의 피를 흘리고 있었다. 살아있는 것은 단순한 기적일까, 아니면.

나무에 힘없이 몸을 기댄 채, 링크가 말을 잇는다.

"여신 하일리아의 가호라 그랬어. 그러니까 떼 쓰지 말라고. '나도 데려가' 라니, 배은망덕하다고. 하늘나라로 간 그 아이도, 오빠가 이래선 화를 낼 거라고..."

조각조각 흩어지는 호흡이 실처럼 가늘고 얕다. 생명의 불꽃이 꺼져간다. 리발의 손놀림이 다시 다급해졌다. 무릎을 꿇고 링크의 옆에 앉는다. 푸른색 천을 상처에 덧대자 순식간에 피로 흥건해졌다.

"됐으니까 그만 입 다물어."

"가끔 생각해. 살아남은 게 아니라, 죽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을 뿐 아닌가, 라고."

"닥치라니까! 이러다 정말-"

문득, 희미한 날개 소리가 리발의 귓가를 스친다. 새나 벌레 같은 게 아니었다. 어렴풋하지만 따스한 빛. 생전 처음 보는 빛이지만 리발은 단번에 그 정체를 알았다. 그리고 이 빛이 링크를 구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라고 한순간에 이해했다.

".....요정."

리발의 혼잣말에 답하듯 투명한 날개를 퍼덕인 그것은 링크의 상처 부위를 감쌌다. 넘쳐흐르는 생명력을 발산하며 하얀 빛이 깜빡이고, 다음 순간엔 하늘로 사라졌다.

리발은 조심스럽게 스카프를 치운다. 하일리아인 특유의 깃털 없이 여린 살갗이 드러났다. 깊게 벌어진 상처는 그대로였지만, 출혈이 거짓말처럼 멈춰있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에, 리발은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 링크와 눈을 마주쳤다.

봐. 내 말이 맞지?

그렇게 말하는 듯한 눈은, 어딘가 죽은 채였다.

긴장이 풀리는 것과 동시에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여신 하일리아의 가호.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방금 두 눈으로 목격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걸 믿고 무모하게 구는 것은 바보 같다고 리발은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이건 믿음 같은 게 아니라-

그래. 말하자면, 학습된 체념.

'용사'가 용기 있는 자를 뜻하는 거라면, 링크는 절대 그런 고상한 것이 아니다. 여신 하일리아는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다. 혹은, 그녀가 망가뜨렸던가.

"......어물쩍 넘어가려 하지 마."

제 목소리가 스스로 듣기에도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스카프를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죽지만 않으면 아무렇게나 목숨을 내던져도 된다는 거야? 널 걱정하는 사람들 생각은 안 해?"

죽지 않으니까 괜찮다고? 내버려 두라고?

"잘 들어."

"윽."

아직 피가 묻지 않은 부분으로 다시 한번 링크의 상처를 감싼 다음 꽉 묶었다. 감정이 실렸다는 자각이 있지만, 리발은 아랑곳하지 않고 누르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지금 이 순간, 리발은 진심으로 링크가 살길 바랬다. 죽지 않는다던가, 허락받지 못했다던가. 그런 의미 모를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살기 원하길 바랬다. 왜냐면-

너, 하나도 안 괜찮잖아.

"한 번만 더 그 따위 말을 지껄여봐. 그땐―"

내버려 둘까 보냐.

――――내가 널 죽여주겠어.

저를 올려다본 눈동자를 기억한다. 희미하게나마 생기를 발하며 휘둥그레 커진 그것이, 그 어떤 하늘보다도 예쁜 하늘색이었다고 지금도 아주 선명하게 기억한다. 줄곧 외면해왔던 사실을 강제로 확인하게 된 마음속 동요도.

내가 널 죽여주겠어, 라니. 위로도 격려도 아닌, 살벌하기 짝이 없는 말에 왜 너는 그런 반응을 했을까.

애써 생각하지 않은 채로 있었다. 마주하면 나도 인정할 수 밖에 없으니까. 그때의 나는 아직 자존심 덩어리였다. 어차피, 그 말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지금에 와서는 의미 없는 일이다.

다시 그 하늘색을 마주한 것은 백년이란 시간이 지나서였다. 기억을 잃었다는 용사는 제법 그럴듯하게, 인간답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유 모를 안도와, 결국 내가 아니었다는 아주 조금의 분함.

늦은 밤, 가끔씩 메도를 찾아오는 그에게 괜스레 짓궂은 말을 입에 담기도 했다.

"내 화살이 네 심장을 뚫을 때, 어떤 기분이 들지 늘 궁금했는데 말야."

"너무하네. 내가 그렇게 싫었어?"

재미없는 농담에 어울려주듯이, 링크는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농담도, 싫었던 것도 아니지만. 나도 따라 웃었다.

하이랄 왕과 영걸들이 한 줄기 빛이 되어 사라졌을 때, 링크는 자신도 그들을 따라 사라지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지 않았을 때, 링크는 어째서인지 안도하기 보다 실망에 가까운 허전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명확했기에 링크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저에겐 할 일이 남아있다고, 본능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렇게 수년이 흘렀다. 마왕 가논돌프를 무찌르고, 행방불명된 하이랄의 공주가 돌아오고도 한참 더 시간이 흘렀을 즈음이다. 마침내 의심할 여지 없이 평화로운 하이랄을 목도했을 때, 링크는 이번에야말로, 라며 남몰래 무언가를 기대했다.

그러나 링크는 여전히 살아있다. 아직도 죽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다.

......아직도?

문득 떠오른 위화감이 충동으로 변하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링크는 리토의 마을로 달려가 마을 중앙에 우뚝 솟은 횃대를 찾았다. 신수 바・메도는 사명을 다하고 사라졌다고 했다. 아무도 그걸 이상하다 여기지 않았지만, 지금 링크가 느끼는 위화감의 중심에 분명 메도가 있었다. 무언가 힌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주인 없는 횃대에 올랐다.

그리고 정상에 선 순간, 거짓말처럼 모든 걸 기억해냈다.

"......!!"

지나간 시간이, 묻혀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와 숨쉬기가 힘들다. 감당하지 못한 만큼 눈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왜 이제서야 기억해낸 걸까.

링크는 원망스러웠다. 떠나버린 그가. 아무렇지 않은 듯이 그를 잊어가는 세계가. 무엇보다도 저 스스로가.

그런 링크를 비웃는 것처럼, 이 위에서 나눴던 수많은 대화들이 재생된다.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두번 다시 들을 수 없는 목소리. 너무 늦어버린 대답은 허공에 흩어진다.

날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없겠지.

아니야. 네가 지키고자 한 마을은 아직도 널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지금 상황엔 설득력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지든 이기든, 너랑은 결판을 내고 싶었어.

못 다한 약속은 그뿐만이 아니었잖아. 그걸 약속이라 불러도 될 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어. 죽는다면, 죽을 수 있다면, 네 손에 죽고 싶다고.

언제나 나한테만 엄격하고, 위로 따위 해주지 않았다. 동정 같은 알기 쉬운 상냥함도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분명 죽어가던 심장에 닿아, 마치 저온화상처럼 깨닫기도 전에 번져간 마음의 열―

내 화살이 네 심장을 뚫을 때, 어떤 기분이 들지 늘 궁금했는데.

――――화살이라면, 이미 오래전에 박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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