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GO

낙원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다.

FGO by 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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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설기(@SaSam_GH3)님 그림 3차창작입니다. 근데 본래의도와는많이달라진

* 이상한 현대AU(서번트 미등장)

* 마슈 사망소재.

* 다윗과 마리스빌리가 그리 좋은 역할로 나오진 않습니다. (많이 애정하신다면 피해주세요 정말입니다. 진짜정말쓰레기로나옵니다. 필자는 다윗과마리스빌리를 좋아합니다. 제 다윗 120렙임 인연13렙임)

* 여러가지 트리거 요소가 있습니다. (사망 등등)

*1편이고 2편 따로 있습니다. 2편에선 무려 로마니가 ■■■을 만납니다!

* 작품 내 등장하는 모든 사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특정 등장인물의 사상은 필자와 매우 다름을 밝힙니다.

*10000자

로마니 아키만은 모태신앙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득히 먼 선조부터 그리스도를 믿어왔으며, 그 신앙은 핏줄을 타고 내려왔다.

그 증거가 다윗, 로마니의 아버지였다. 다윗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유명한 신부였다. 주변 사람들이 그가 이스라엘이 아닌 바티칸에서 태어났다면 교황이 되었을 것이라 말할 정도였다. 다윗을 보러 이스라엘 전국은 물론 바티칸에서조차 찾아올 정도였다. 오로지 그의 예배를 듣기 위하여 말이다.

그런 다윗의 아들인 로마니 또한 자연스래 예배를 들었다. 주일마다 성당에 가 다윗을 보았으며, 식사 전과 취침 전엔 늘 기도가 함께했다. 로마니의 삶에 종교란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신부인 아버지를 신도들이 둘러싼 광경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다윗의 말을 하나라도 더 듣고자 하는 사람들로 성당은 늘 북적였으며 다윗은 그들을 거부하지 않았다. 타고난 카리스마로 그들을 지휘하는 모습은… 그래. 이상했다.

로마니 아키만이 그 ‘이상’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사춘기를 겪으며 감정이 들쑥날쑥 했으며 그와 함께 조금 더 성숙해지고 있는 순간이었다. 동급생들과 대화를 하며 로마니는 자신이 어딘가 비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보통의 사람들은 모든 일에 신을 울부짖지 않는다. 보통의 아버지는 신도들에게 웃어보이며 그들을 종교의 늪에 이끌지 않았다.

이상했다.

고작 신부 하나를 보자고 저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아무런 증거 없는 허울뿐인 존재를 믿는 사람들도,

그리고, 자연스래 그를 받아들여 신을 믿고있던 자신도.

헛구역질을 했다. 입에서 나오는 것은 없었지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자신이 알던 세계가 비정상임을 깨달았기에 나온 토악질이었다.

쨍그랑!

탁자 위에 있던 컵을 깨뜨렸다. 그와 함께 주위를 둘러싼 장막이 하나 깨진 것 같았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보였다. ‘신앙심을 길러 신부가 된다.’ 로마니에게 정해져 있던 길이었다. 여태까지 눈 앞엔 그 길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옆에 아주 작은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길. 앞에 보이는 넓고, 안락한 길이 아닌 위태로운 길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런 길에 눈길조차 주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로마니는 머뭇거리지도 않고 그 작은 길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갔다.

로마니 아키만, 낭랑 13세. 전세계급 가출의 시작이었다.

낙원

생각해보자. 기실, 13세의 가출은 매우 간단한 일이었다. 보통의 13세들의 가출은 당일 밤에 부모님의 신고를 받은 경찰들이 인도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로마니 아키만은 ‘보통의 13세’가 아니었다. 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범재, 수재정도는 되는 영특한 두뇌. 거기에 더불어 로마니에겐 ‘인맥’이 있었다.

기실, 인맥이라 적을 만큼 많지는 않았다. 로마니에게 친구란 단 한명이었으니까. 하지만 친구가 아닌 존재라면 한 명 더 있었다. 그는 늘 아버지를 찬양하는 존재들만 만나왔기에 인간관계에 서투른 로마니가 정의내리지 못하는 관계였다.

3년 전, 로마니가 11살이었을 무렵이었다. 다윗이라는 투자자를 만들기 위해 온 한 인물이 있었다.
영국의 대기업, 칼데아. 영국과는 먼 이스라엘에 사는 로마니도 알 정도로 유명한 기업이었다. 의약, 반도체 등에서 두각을 보이는 그런 기업의 CEO가 다윗을 찾았다. 하지만 그런 존재라도 다윗이란 유명한 신부를 만나긴 힘들었다.

기약없는 기다림을 하던 도중 보인 것은 성당을 돌아다니는 작은 아이였다. 노을빛 머리를 가진, 다윗을 똑 닮은 아이.

“ 안녕? 난 마리스빌리 아니무스피어라고 해. 이름이 뭐니? ”

칼데아 CEO는 다윗에게 접근하기 위하여 그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11살. 한창 경계심이 하늘을 찌르다가도 뭐 하나 쥐여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경계를 그만두는 나이였다. 마리스빌리 아니무스피어는 사탕 하나로 아이의 이름부터 취향까지 전부 알게되었다.

“ 로마니, 로마니 아키만. 아키만은 여기에 너무 많으니까 로마니라고 불러주세요. ”

“ 그래, 로마니. 마리스빌리라 불러도 좋아. ”

“ 네, 아저씨. ”

그래도 역시, 아저씨라는 말은 상처였다.

마리스빌리와 로마니는 많은 대화를 했다. 어느새 다윗을 만나러 왔다는 목적을 잊었을 만큼, 긴 시간 대화를 하며 두 명은 서로가 꽤나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자신이 부족해서 패배한 것이라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요? ”

로마니는 학교에서 있던 일을 말하는 중이었다. 수업 중 있던 작은 게임에서 패배한 동급생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내용으로 시작한 말이었다. 언듯 들으면 그저 자신을 괴롭히는 행위에 대해 반발하는 것으로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마리스빌리에겐 다른 점이 보였다.

“ 로마니라면 어떻게 했을것 같아? ”

“ 으음… 패배를 받아들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티나게 행동하진 않겠죠. 물건을 숨기는건 너무 티나잖아요. 차라리 제 물건을 몰래 숨겨둘거에요. ”

마리스빌리는 미소지었다.

그래, 두 명은 비슷했다. 어딘가 비인간적인 사고방식도,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마리스빌리는 처음 만난 자신의 ‘동지’에게 친절해지기로 했다.

“ 후후… 이건 내 연락처야. 일때문에 곧 떠나야겠지만… 내년에 다시 올게. ”

마리스빌리는 명함을 남겨주고 이스라엘을 떠났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그는 한 사람과 함께 다시 이스라엘을 찾았다. 갈색 머리의 미녀. 이제 성인은 됐을까 싶은 동안의 여성이었다. 여성은 로마니를 보더니 미소지었다.

“ Bonjour, 로마니. ”

“ 누구? ”

“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다 빈치짱이라 불러줘! ”

“ …안녕, 다 빈치짱. ”

로마니는 레오나르도의 텐션을 따라가지 못한 듯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로마니와 레오나르도의 대화는 마리스빌리와 로마니의 대화와는 사뭇 달랐다. 밝게 웃으며 떠드는 레오나르도와 그를 겨우 따라가던 로마니는 어느새 같이 밝게 웃고 있었다.

마리스빌리는 슬쩍, 미소지으며 저번처럼 이상한 질문을 몇 개 던지고는 먼저 영국으로 귀국했다.

“ 복수는 했니? ”

“ 응, 도움이 됐어요. ”

레오나르도는 굳이 건들이지 않았다. 마리스빌리의 ‘비인간성’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동지라 부르는 존재를 만나기 위해 이스라엘까지 왔다. 이 작은 아이를 결코 마리스빌리처럼 만들지 않을 것이다.

마리스빌리는 그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 기대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어린 아이 시절에 ‘인간성’이란 것을 배우면 어떻게 바뀔지. —과거의 자신도 바뀔 수 있었을지.

레오나르도는 밝게 웃으며 로마니를 대했다. 마치 사람을 대할땐 이렇게 해야한다는 것을 알려주듯이. 부러 경박하게 행동하곤 했으며, 천재성을 숨기는 법도 알려줬다. 로마니는 그를 보며 따라서 미소지었으며, 경박하게 행동하는 법을 배웠다. 학교에 돌던 ‘로마니 아키만은 이상하다.’라는 소문은 어느새 없어졌으며, 로마니는 또래 아이들처럼 웃을 수 있게되었다.

“ 이런, 로마니. 나는 가야해. ”

“ 레오나르도… 응, 잘가! ”

레오나르도가 머문 약 한 달. 어느새 둘은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으며, 친구가 되었다. 로마니는 유일한 친우를 얻었으며 레오나르도는 작은 친우를 얻었다.

이스라엘을 떠나기 직전,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자화상과 함께 작은 쪽지를 남겼다. 연락처와 집주소였다.

12살의 나이에 영국의 대기업 CEO와 전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화가의 번호를 알게된 경위였다. 워낙 바쁜 사람들이라 그 이후에 만난 적은 없지만 연락을 이어가며 그 인연은 점점 돈독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1년 뒤. 로마니 아키만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 단 하나의 문자만을 남긴 채로 실종됐다.

[나 가출했어.]

공항 쓰레기통에서 그의 휴대전화가 발견되기 직전에 한 유일한 연락이었다.

로마니는 통장에 있던 전재산, 약 20달러를 인출했다.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현금으로 결제하고 비자를 발급받았다. 아직 그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은 가출이기에 가능한 행보였다. 비행기에 타기 직전, 레오나르도에게 연락하고 휴대전화를 공항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이스라엘과 연결된 모든 연을 손수 끊어버리곤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눈을 꾹 감은채 잠에 든다. 5시간. 5시간만 버티면 그 이상한 세계에서 떠날 수 있다. 로마니는 그 5시간 내에 실종신고가 접수되지 않기를 빌었다.

이스라엘 시간으로 오후 3시, 영국으로 오후 1시. 로마니는 런던에 도착했다. 아직 중학생의 학교가 끝나지도 않았을 시간대라 신고따윈 들어가지 않았다.

1년 전, 로마니는 레오나르도에게서 주소 하나를 받았다. 로마니는 자연스래 그 주소지로 향하기 시작했다. 초행길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로마니는 영국의 영어에 아주 익숙해져 있었으며, 자신이 호감을 사는 얼굴임도 알고 있었다. 13세의 아이가 길을 물으면 답해주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단 뜻이다. 로마니는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울상으로. 여러가지 도움 -택시를 잡아 준다던가, 대로까지 데려다 준다던가-을 받아가며 그곳에 도착했다.

런던 외곽. 하지만 치안 만큼은 런던 중심부보다 좋을 것이다. 고급 주택가 중에서도 가장 비싸보이는 집이었다. 그리 크다고 할 순 없었지만 저택을 꾸미고 있는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그 가격을 짐작치 못하게 했다. 로마니는 자연스래 그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 여, 로마니! 오랜만이네! ”

“ 응, 오랜만이야. —레오나르도. ”

레오나르도는 예상했다는 듯, 문을 열어주며 그를 환영했다. 기실, 레오나르도는 그 비정상적인 집안에서 로마니가 자신의 의지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레오나르도는 로마니의 연락을 받자마자 웃으며 그의 방을 만들기까지 하였다. 결코, 신고는 하지 않았다.

“ 로마니, 너는 이곳에서 지내면 돼. ”

“ 고마워, 레오나르도. ”

그렇게 레오나르도에겐 13세의 동거인이 생겼다.

로마니 아키만이 집을 나선 지 약 7시간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레오나르도는 마리스빌리에게 연락을 넣어주었다. 마리스빌리는 소식을 듣자마자, 로마니에게 핸드폰을 전해주며 학생 비자를 발급받았음을 알려주었다. 그리곤 내일부터 사립 학교 9학년 (Senior School 3년) 으로 학교에 다니면 됨을 알려주었다. 로마니는 감사히 대기업CEO의 권력을 받아들였다. 3월이기에 벌써 학년의 절반은 지난 시점이었다.

기존에 이스라엘에서 배운 것과는 다른 내용이 많았다. 다른 학교들보다 난이도가 높은 사립학교였던 특성 탓에 전체적인 수업의 난이도가 매우 높았다. 로마니는 처음엔 버벅였지만 어느새 그 누구보다 수업에 잘 따라가고 있었다.

로마니는 천천히 영국에 적응해나가며 학교를 다녔다. 중간중간 레오나르도와 놀러가기도 하고, 마리스빌리와 이상한 문답 -소시오페스적인- 을 하기도 했다.

이제 와서 다윗이 로마니를 찾으려 한다 해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멀리 와버렸다. 로마니에게 이스라엘은 고향이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으며 영국은 낙원 그 자체였다.

영국에서의 생활도 어느덧 2년이 지났다. 11학년을 마무리해가는 시점. 로마니는 10학년 부터 졸업시험(IGCSE)를 준비하고 있었다. 해당 성적으로 졸업 여부가 결정되고, 대학 입시에도 영향을 끼치는 편이라 준ㅂ니를 열심히 해야했다.

“ 로망, 대학을 가고 싶은거야? ”

“ …아직은 잘 모르겠어. ”

로마니는 가슴 한 켠에 불안감을 간직한 채로 졸업시험을 치르고, ALL A+로 학교를 졸업했다. 중등학교를 졸업한 로마니를 반긴 것은 마리스빌리였다. 그는 웃으며 꽃다발을 건네주었으며, 로마니 또한 웃으며 화답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무기질적인 아이는 사라진 지 오래였으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던 어른은 어느정도 모습을 숨길 줄 알게 되었다.

그 날, 로마니는 대학 진학의사를 밝혔으며, 졸업과 동시에 Six Form(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2년 뒤, A-level 시험을 또다시 All A+로 마무리했다.

로마니 아키만, 18세. 단 한번의 실패도 없이 런던 대학교 의과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로마니 아키만, 24세. 졸업과 동시에 시험에 합격하여 의사 면허를 획득하였다.

로마니 아키만, 25세. 칼데아 대학병원 인턴으로 취직했다.

A-level 시험을 치르기 전 까지만 하더라도, 로마니 아키만에게 딱히 의대 진학의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있었다면 옥스포드 의대와 연결된 식스폼을 갔을테니. 로마니 아키만이 의사의 꿈을 키우게 된 이유는 우연한 만남에 있었다.

약간의 타박상으로 칼데아 병원에 가게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간단한 처치를 받고 마리스빌리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해진 로마니는 잠시, 칼데아 내를 돌아다니게 되었다. 새하얀 복도를 가득 메운 창들을 몇개나 지났을까. 어느새 인기척 하나 없은 칼데아 한쪽 구석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로마니는 그곳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할 수 있었다.

“ —어? ”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문을 열었더니 보였던 것은… 한 소녀가 있었다. 분홍색 머리의 자안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가. 햇빛을 쬐어 봤을까, 피부는 백옥처럼 맑았다. 칼데아 병원복을 몸에 걸친 소녀는, 침대 위에 앉아 로마니를 보고 있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왜인지 모를 동질감이 들었다. 방 한 칸에 갇혀있는 것이 이스라엘에 갇혀있던 자신 같았던 것일수도 있고, 어른들에게 휘둘리는 모습이 다윗에게 휘둘리던 자신 같기도 하였다. 하여, 로마니는 입을 떼었다.

“ 저기, 너는 이름이 뭐야? ”

“ …마슈, 마슈 키리에라이트. ”

“ 안녕, 마슈! ”

그의 유일한 친우의 첫만남을 흉내내며 로마니는 밝게 웃어보였다. 그것이 18살의 로마니와 8살의 마슈의 첫만남이었다.

마슈는 몸이 약한 아이였다. 기본적인 면역력이 약해 자칫하면 감기에 걸리기 일수였으며, 한 번 걸린 감기는 자칫하면 앓아 누울 정도로 심해졌다. 평소엔 무균실에서 살아가며 만날 수 있는 인물들도 한정되어있었다. 병원 밖에 나가본 적이 없었으며, 늘 링거를 맞느라 양 팔은 주삿자국으로 얼룩져있었다.

로마니와 만난 날 또한 마슈는 앓아누웠다. 마리스빌리는 로마니에게 사정을 설명해주었다.

‘난치병에 걸린 소녀’ 라고.

로마니는 그 말을 믿었다. 8살의 아이가 병원에 갇혀있을 이유로는 합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후로도 로마니는 종종 마슈를 만나러 병원으로 향했다. 마슈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한에 따라서, 주치의의 허락 하에 달콤한 간식을 가져다 주기도 하였으며, 여러 소설책을 가져다 주기도 하였다.

그렇게 1년, 마슈와의 교류를 갖던 로마니는 의사를 꿈꾸게 되었다. 언젠가 그를 치료해주고 싶었다.

“ 언젠가, 널 낫게 해줄게. 이 좁은 병원에서 나가 하늘을 보게 해줄게. 정확히 언제라곤 말 할 수 없겠지만. 언젠가… 그래도, 이런 날 믿어주겠어, 마슈? ”

“ —네, 닥터 로망! ”

로마니는 칼데아 병원 취업이 결정되자마자 마슈에게 달려갔다. 의사가운을 입고, 주홍빛 포니테일을 한 친절한 의사의 모습에 마슈는 밝게 웃어보였다. 로마니 또한 마주 웃어보였다. 창밖에서 내리쬐는 햇빛 아래에서 두 명은 밝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꼬박 1년이 지났다.

“ 그게 무슨소리야!!! 마리스빌리, 그건.. 그건 너무 비인도적이잖아!! "

“ 어라?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로마니. 너도 알고 있던 사실이잖아? ”

“ — ”

고함소리가 들렸다.

두 명이 싸우는 소리에는 늘 웃는 얼굴로 아름다운 말만 하던 당신과 다르네요. 닥터 로망. 마슈는 귀를 막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작금의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막혀버린, 새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숨을 내쉬는 것 뿐이다. 아니, 이것도 쉽지 않았다. 숨소리는 거칠었으며 언제든 턱, 하니 막힐 것만 같이 연약했다. 온 몸은 계측장비로 가득했으며 양 손과 팔목엔 링거가 꽂혀있었다.

마슈 키리에라이트는 그 짧은 생을 마감하기 직전이었다. 일주일, 아니. 내일까지 버틸 수 있을까. 16살의 소녀가 하기엔 너무나 슬픈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슈는 현실적으로 생각했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답게… 닥터에게, 부담되지 않게 보낼 수 있을까.

“ 마슈는, 그럼… ”

“ 로마니. 본 것을 보지 못한 척 한 대가를 치를 때인거야. ”

“ …널 용서하지 않을거야, 마리스빌리. ”

어느덧 밖이 조용해졌다. 노크소리와 함께 닥터가 방으로 들어왔다. 마슈는 고개만 겨우 돌려 웃어보였다. 그런 그를 보고 닥터 또한 웃어주었기에, 마슈는 행복했다.

“ 좋은 오후에요, 닥터. ”

“ …응, 좋은 오후야. 마슈. ”

마슈의 시야는 흐릿하였기에, 지금이 오후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밝은 햇빛이 내리쬐는 오후였으면 했다. 그쪽이 조금 더, 낭만있으니까.

“ 저… 닥터. ”

“ 왜그러니, 마슈? ”

“ —저번에, 들어준다고 하셨던 소원. 지금 빌어도 되나요? ”

마슈는 3년 전을 떠올렸다. 로마니가 아직 학부생일 무렵, 상태가 호전된 마슈는 병원 내라면 산책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 날, 처음으로 식당에 내려가 밥을 먹었으며 처음으로 카페를 가보았다. 병원 내라면 어느정도의 자유가 보장되었다. 처음으로, 주치의와 로망이 아닌 동년배의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리고 그 해 생일, 로마니는 한가지 약속을 해주었다.

“ 생일축하해, 마슈! 선물로는 뭐가 좋으려나… 아! 이번에 병실 밖으로 나가는 것도 가능해졌으니— 내가 소원 하나를 들어줄게! 아아.. 그래도 너무 비싼 거라면 안되려나… ”

“ 소원, 이요? ”

“ 응, 뭐든지! 그…그래도 적당한 가격 안에서 정해줘야해..! ”

“ …나중에, 나중에 빌래요. 로망과 밖에 나가는 날에. 엄청 비싼걸 사달라고 할거에요. ”

“ 뭣, 너무해! ”

너무하다며 툴툴거리는 로마니의 얼굴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마슈 또한, 웃고있었다.

사실 그 때부터 마슈의 소원은 정해져있었다.

“ 하늘을… 보고싶어요. ”

“ — ”

“ 이곳에서 보이는 하늘은, 너무 작아요. 눈 앞을 가득 채워주는… 그런 하늘을, 보고싶어요. ”

마슈는 알고 있다. 지금 자신의 몸으로는 병원 밖은 커녕 이 병실 밖으로 나가는 것 조차 불가능 하단 사실을. 하지만… 하지만, 죽기 전에 한가지 억지 정도는 부려도 되지 않겠는가. 안된다는 것은 안다. 그래도 보고싶은 것이다. 하늘을, 아름다운 광경을.

“ …알겠어, 마슈. 내가 어떻게든 보여줄게. —약속이야. ”

마슈는 단 한번도 병원 밖을 나간 적이 없다. 옥상조차 가지 못했다. 지금의 몸 상태로는 병실 밖도 나가지 못할 것이다. 마치, 로마니와 만난 그 날 처럼.

그런건 싫었다. 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다. 불가능한걸 알아도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런게 인간이니까. 인간이 말하는 로망이니까.

그 뒤로 사흘간 로마니는 병원 내를 뛰어다녔다. 때로는 언성을 높이며 싸웠고, 때로는 타협했다. 몇번이고 논쟁을 하고 몇번이고 설득을 했다. 그렇게 마슈에게 약속을 하고 사흘이 지났다. 마리스빌리와의 거래를 통해 얻은 ‘마슈의 외출권’. 로마니는 웃으며 병실로 들어갔고, 반겨주는건

삐———-

한 소녀의 생명이 끊기는 소리였다.

순간, 현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납득되지 않았다. 왜, 왜 하필 지금. 단 하루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저 아이의 단 하나뿐인 소원을 이뤄줄 수 있었을텐데. 왜. 왜 하필, 지금.

“ 이런, 로마니. ‘거래’는 쓸모없게됐네. ”

“ …알고 있었던거구나. 마리스빌리. ”

“ 아쉽게됐네. 실험체 001번으로서 훌륭했는데. 첫 성공작이라 많은 공을 들였는데 말이지. ”

“ 마리스빌리 너는— ”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로마니는 얼굴을 구겼다. 알고있었어. 너의 ‘비인간적인 면모’는. 그래서 너와는 친구가 되지 않았던거야. 나는 인간이 되고싶었으니까. 알고있어. 너의 모습은 나의 모습이 될 수 있었으리라는걸. 나와 너는 꽤나 잘 맞는 사이였으니.

“ …오늘부로 이 칼데아 병원에서 퇴사하겠어. 그동안 고마웠어, 마리스빌리. ”

“ 아아. ”

목에 걸고 있던 사원증을 건네주었다. 던지지 않은 것은 그동안 돌봐준 것에 대한 예우일테다. 가운을 벗어던지고 물건을 챙긴다.

아아, 마슈. 너의 장례식엔 갈 수 없겠네. 열리지도 않을테니 말이야. 마리스빌리의 비서였던 레오나르도가 그만 두었을 때 부터 같이 나갈걸그랬어. 그랬더라면 이렇게 인간성을 얻고 슬퍼하지도 않았을텐데.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대신, 하늘을 바라보았다. 너와 함께 보지 못한 하늘을.

—도망친 곳에 낙원따위는 없었다.

로마니는 영국을 떠날 준비를 했다. 고작 1년간의 인턴이지만 나름 이름있는 병원에서의 근무였다. …난치병을 앓고있는 소녀를 진료한 경험도 있었다. 로마니는 그 경험을 살려 국경없는 의사회에 들어가려 했다.

[놀이를 다 즐겼다면, 이제 돌아오렴.]

13여년만의 연락이었다. 자신은 도망조차 치지 못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26살의 로마니 아키만은 13살의 로마니 아키만과는 달리 다윗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기엔, 로마니는 너무 지쳐있었다.

13년을 산 영국이건만, 챙길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챙긴 것이라곤, 마슈와 찍은 사진과 레오나르도와 찍은 사진 뿐이었다. 이스라엘에서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작은 짐만을 챙겨 다시 돌아갔다.

돌아온 고향은 지옥의 입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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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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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유영하는 족제비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 자체도 로마니한테 참 잘 어울리지만 현대AU에서 신부와 자식으로 서술되는 이스라엘 부자가 너무 기분 묘해져서 좋았어요... 이쪽의 로마니는 이 패배 뒤를 극복하고 본편처럼 나아갈 수 있을까요 ㅠ 생각 많아지는 내용이라서 쭉 재독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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