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다오+시황제] 혀끝에서 전해지는 것
FGO 논커플링 전연령가 글
2022.07.25 포스타입 게재했던 글을 옮겨왔습니다.
2부 3장 이후 시점
자고로 요리 하면 중화, 중화 하면 요리 아니겠는가.
너른 땅덩어리 위를 차지한 다양한 민족이 반만년 역사 속에서 저마다의 특색을 응축시켜 만들어 낸 각양각색 요리를 빼놓고 중국의 문화를 이야기하기란 어려울 터다.
……그런 중국,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영세 신 제국이겠지만, 하여간에 그런 나라의 황제 되는 존재가 음식에 통 관심이 없다는 것은 확실히 기이한 일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공상수가 벌채되기 전, 아직 진인구체에 그 데이터를 옮겨 담지 않아 거대한 기계 몸뚱이를 하늘에 띄우고 있던 그 시절은 말할 것도 없다. 당시 시황제의 기신機身에 필요한 에너지는 농작물에서 나오기는 했으나 음식이라 부를 수는 없는, 말 그대로 연료에 불과했다.
현재, 진인구체에 몸담은 채 칼데아에 소환된 시황제라 한들 별다른 차이는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서번트에게 필요한 에너지는 마력뿐이다. 염마정 참새 오니의 활약으로 인해 식사를 통한 마력공급의 효율성이 극대화되었다고는 하나, 식사는 여전히 선택사항에 불과했다. 음식을 섭취하는 것으로 만족을 느끼는 여타 영령들과는 달리 시황제는 그러한 경구섭취에 그리 관심이 없었다. 2000년이 넘도록 하지 않은 일에 구태여 도전할 만한 이유가 없었던 탓이다. 게다가 굳이 필요도 없는 쾌락에 몰두하는 것인즉 사치와 향락이라, 그것이 반복되어서야 시기와 다툼을 낳는다. 시황제는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범인류사가 궁금한 것 아니었어?”
마스터는 그렇게만 말했다. 그러나 그 말에는 어폐가 있다. 궁금한 것이 아니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제국, 자신의 역사를 무너트린 역사에 과연 어떠한 값어치가 있는지. 시황제는 욕구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따름이다.
뭐, 그래도 그의 말에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자신의 것이 더 낫다며 낮잡아보고 있어서야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을 리가 없다. 언젠가 저 마스터가 무너지는 날이 올 때 영세 신 제국을 재건하겠노라 마음먹었다 하더라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더더욱 시황제는 올바르게 판단해야만 했다.
“무어, 그대에게는 발렌타인 초콜릿이라는 것을 받은 적도 있으니 말이다. 음, 참으로 달콤했지~ 그것.”
하여 시황제는 괜한 용심은 접어두기로 하였다.
“짠! 오늘의 요리를 도맡아줄 주방의 영령 에미야 씨입니다~!”
“그러니까 주방의 영령이 아니라고 했을 텐데.”
칼 같은 항의와는 달리 영령은 이미 요리할 준비를 완료한 상태였다. 전사처럼 우락부락하게 단련된 몸을 감싸는 주방용 앞치마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마치 제 자리인 양 자연스러워 기묘한 사내였다. 말과 행동이, 의복과 신체가 따로 노니 그야말로 불균형의 극치다. 시황제는 무심코 감탄했다.
“과연, 주방의 영령인가. 범인류사에는 참으로 기묘한 영웅이 다 있구나.”
“그러니까 주방의 영령이 아니라니까…….”
“무얼, 에미야라고 하였는가. 겸손은 필요한 것이나 지나치면 도리어 오만이 되는 법이다. 칼데아의 영령이라면 속속들이 꿰고 있을 마스터가 추천한 자이니 실력은 틀림이 없을 테지. 황제의 앞이라 몸을 사리는 것은 이해하나 겸양의 말은 더 올리지 않아도 좋다. 그보다 짐은 기대하고 있다고?”
불편한 듯 무어라 입을 달싹거리던 사내가 마스터를 흘끔거리더니 이윽고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 지나치게 겸손을 표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이해력이 좋은지고. 시황제는 싱글벙글했다.
“한데 에미야라, 상당히 특이한 발음이로구나. 어디, 어느 지방 출신이지?”
주방의 영령이라면 필히 범인류사에만 존재할 영웅이다. 난세가 아닌 주방을 전쟁터로 삼아 식칼과 국자를 무기로 위용을 떨쳤을 터이니 낯선 발음인 것도 당연하다고 시황제는 생각했다. 따라서 모르는 지방의 이름이 튀어나온다 하여도 놀라울 것은 없었다. 다양한 민족이 하나의 나라로 묶여 있다면 과연 그럴 수도 있을 테니. 그야 다름은 분란을 일으킬 뿐이니 시황제라면 그들을 다른 민족으로 놓아두지 않았겠지만, 이곳은 범인류사. 주방의 영령이 있을 정도가 아닌가. 시황제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역사니만큼 무어라 더 입을 댈 생각은 없었다.
“……일본이다만.”
“음? 일본?”
시황제가 눈썹을 크게 추켜올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것은 약간 이상한 탓이다.
“중화요리를 대접한다 하지 않았느냐?”
범인류사에 관한 일은 몰라도 식생에 관해서는 시황제도 나름대로 알고 있다. 지역이 다르면 생산할 수 있는 작물도 다른 법. 그러하다면 당연히 식습관도 달라지기 마련 아니겠는가. 아무리 주방의 영령이라 한들 일본 태생이라면 중화요리의 대가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그건 그렇긴 한데…….”
마스터는 말꼬리를 늘이며 뺨을 긁었다.
“처음엔 나도 중국 영령 쪽이 나으려나 했는데, 막상 살펴보니까 좀…….”
초점이 흐려진 눈이 아련한 기억을 더듬듯 먼 곳을 헤매었다. 시황제는 팔짱을 낀 채 마스터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지를 추측해 보았다. 그러잖아도 중국계 영령들이라면 시황제도 마주한 적이 있었다. 이를테면 로봇 같은 버서커 장군, 그 장군을 자폭시키려 드는 기묘한 성향의 책사, 당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말, 인간의 음식과는 그리 가깝지 않을 선녀…… 잠깐 새에 요리 대접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면면들만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주정뱅이 암살자는 애초에 논외다. 그자가 시황제에게 대접하려 드는 건 서슬 퍼렇게 벼려진 비수 정도뿐이겠지.
“과연…… 썩 요리가 기대되지는 않는 인선이긴 하다마는.”
“으응. 그래도 유유 정도라면 요리도 할 수 있겠지만 그럴 바엔 에미야 씨가 낫겠다 싶어서.”
“흐음?”
“그치만 폐하, 이천 년 전에는 이것저것 먹었을 테니까. 그때랑 가까운 요리보다는 요새 요리를 먹어보는 게 더 재미있는 체험이 될 거 같기도 하고. 일본에서도 중국 요리 정돈 먹으니까 말이야.”
“그래. 식문화 역시도 변하는 법이니까. 본고장의 맛과는 달라도…… 아니, 다르기에 알 수 있는 것도 있으리라 본다.”
주방의 영령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라면야 더 무어라 할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본고장의 맛이 아니라 하여도 시황제로서는 구분할 도리가 없다. 범인류사의 요리 따위는 모르기도 하거니와, 설령 자신이 먹었던 요리라 한들 2천 년이나 전에 먹었던 음식의 맛 따위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 탓이다.
……유유, 즉 양귀비와 시황제의 생몰년도는 범인류사 기준으로도 500년가량이나 차이 나며, 그 정도라면 식문화도 상당히 바뀌었으리라는 사실을 구태여 꼬집는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마파두부麻婆豆腐?”
“응!”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마는 구태여 한 마디 물어 두겠는데, 노파를 넣는 요리는 아니겠지?”
“아하하, 그럴 리가!”
미심쩍은 마음에 한 마디 묻자 마스터는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들은 양 까르르 웃었다. 주방의 영령이 재료를 손질하며 말을 거들었다.
“처음 만든 이가 노파라는 설이 있어 마파두부라 부른다더군. 사천 지방의 한 노파가 마차 사고로 남편을 잃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 요리를 만들어 팔았다던가. 맵다는 뜻의 마에 노파가 만들었다는 뜻의 파를 더해 마파, 라는 설이 있다.”
“흠, 제작자를 기리는 이름인 게로구나?”
“그렇다고 볼 수 있지. 한편 이 마가 맵다는 뜻이 아니라는 설도 있어.”
“그렇다면?”
별것 아닌 유래지만 식사 전의 여흥으로는 나쁘지 않다. 마스터 역시도 후자는 처음 듣는 내용인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붉은 영령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麻가 아니라 마마媽媽(천연두)라는 설이다. 그 노파가 과거 천연두를 앓아 얼굴에 얽은 자국이 있었고, 그 탓에 마마에 걸린 노파가 만든 두부 요리라 해서 마파두부가 되었다는 이야기지.”
“흐응~……. 고작 그 정도 병도 제대로 고칠 수 없어 평생 지울 수 없는 자국이 남았다는 게냐. 짐이 듣기에는 썩 자랑스러운 이야기는 아닌 거 같은데?”
“뭐, 폐하가 듣기엔 그럴지도 모르지만.”
뚱하게 반문하자 마스터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그 어조가 어쩐지 석연찮아 시황제는 입술을 비죽거렸다.
하여간 범인류사란. 질병 하나 정복하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늙은 여자가 홀로 살아남기 위해 악전고투해야 하는 상황을 참 잘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 이야기를 자랑스레 퍼트리는 심리를 시황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쳐도 생존을 확신할 수조차 없는 세계라니. 짐, 그런 거 싫어하는데 말이지.
그래도 왜 이런 이야기를 구태여 들려주었는지 눈치채지 못할 시황제가 아니었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노골적이지 않은가. 하여간에, 저 자그마한 머리로 이런 얕은꾀나 부리다니. 주방의 영령을 빤히 쳐다보던 소년이 시선을 느꼈는지 시황제와 눈을 마주쳤다. 앳된 얼굴에 금세 미소가 가득 찼다.
“왜?”
“……아무것도 아니다만.”
이래서야 대체 무슨 소리를 하겠는가. 어쩐지 허탈해진 시황제의 귓가에 촤아아, 폭우라도 쏟아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폭력적일 정도로 자극적인 향내가 코끝을 찔렀다.
“음?!”
평생 맡아본 적도 없는 매캐한 냄새에 시황제는 움찔거렸다. 진인구체가 아니었다면 볼썽사납게 기침하며 눈물을 글썽거렸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주방의 영령은 그렇다 치고 마스터 역시도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것을 보아 이들에게는 지극히 익숙한 모양이었다.
“자극이 좀 강한 것 아니냐? 짐은 코가 아픈데.”
“그래? 중국 음식은 보통 이렇잖아.”
보통, 보통이라. 그들의 보통은 시황제에게는 전혀 보통이 아니다. 2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옛 기억을 되짚어보아도 도통 무슨 냄새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불에 우묵한 번철을 올리고 향채를 기름과 함께 끓이는 것 역시도 익숙지 않은 조리법이었다.
“무엇을 하는 중이지?”
”고추기름을 내는 거다. 본고장 사천성의 마파라면 화자오 기름을 내겠지만 아무래도 그 얼얼한 맛은 호불호가 강하니까. 하물며 2천 년 만에 처음 먹는 요리라면 고추기름만으로도 자극이 강할 거다.”
“허어. 고추기름이라.”
그야 시황제도 일단 고추가 무엇인지는 안다. 그것을 먹기도 한다는 사실 역시도 알고는 있다. 그러나 정작 먹어본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시황제가 인간의 육신 속에 갇혀 있던 시절 진나라에는 고추가 들어오지 않았고, 고추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식사가 필요 없게 된 후로도 한참이 지나서였으니. 그것으로 기름을 낸다는 이야기는 더욱이 들어본 적조차 없다.
“……정말 먹어도 되는 게냐? 짐을 고문하려는 건 아니겠지?”
“에이, 그럴 리가 없잖아!”
시황제의 의심에도 마스터는 변함없는 미소를 만면에 띤 채 손을 내저었다. 참 잘도 웃는단 말이지. 세계의 존폐와 만인의 목숨을 내건 싸움이 괴로워 오래도록 번민하는 소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아니, 그렇기에 오히려 억지로라도 웃는 것일는지도 모르지만.
그 표정 아래에 어떤 감정이 자리하고 있을지는 시황제가 판단할 영역이 아니었다. 혹여 소년이 지배자의 위치에 있었더라면 그에 걸맞은 품격을 지니라 이야기할 수도 있었겠으나, 마스터라는 호칭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소년은 지배자의 자질이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뼈를 깎는 노력뿐이다.
그러니 이 모든 행동이, 그저 이 세계를, 그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 달라는 간절한 호소처럼 느껴지는 것이겠지.
만인이 동등하다고 여긴다면, 만인의 목숨은 얼마나 무겁게 느껴지겠는가.
상념에 젖은 잠깐 새에 주방의 영령이 불에서 번철을 내렸다. 오목한 그릇 위에 거름망을 받치고 기름을 따라내는 행동이 문외한인 시황제가 보기에도 썩 그럴싸했다. 후각세포가 마비되기라도 했는지 고통스러울 정도로 자극이 강하던 냄새가 어느새 은은하지만 섬세하고 복잡한, 무어라 묘사하기 어려운 맵싸한 향으로 바뀌어 있었다. 시황제는 저도 모르게 코를 울렸다.
“맛있는 냄새…….”
마스터가 침을 꼴깍 삼켰다. 과연, 이것이 ‘맛있는’ 냄새인가. 그러고 보면 식당 근처를 지나갈 적에 이 비슷한 향을 맡았던 것도 같다. 그리 생각하니 2천 년간 한 번도 주려본 적 없는 배가 꾹 조이는 듯했다. 부지불식간에 입안에 침이 고였다.
주방의 영령은 과연 허명이 아닌지, 조금도 허튼 움직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내의 모습에는 분명히 어떠한 경지를 느낄 수 있었다. 기름을 다시 두른 번철에 미리 갈아 둔 돼지고기와 다진 마늘을 넣고 잘 눋도록 휘젓는 내내 사내의 통나무 같은 팔뚝에는 지렁이처럼 굵은 혈관이 불끈댔다. 이리 보아하니 요리에 근육 단련이 필요한 이유를 알겠다고 시황제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저 향기란.
돼지고기와 마늘이 기름에 지져지는 냄새가 머리를 어찔하게 만드는 듯했다. 어찌 생각하면 역하고 지독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 ‘곧 자신이 먹을 것’에서 풍기는 냄새라 생각하니 도리어 기대를 더욱 돋우는 장치로만 느껴져 신기할 노릇이었다. 곁에 선 마스터도 기대되기는 마찬가지인지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리 기대되느냐? 그대는 먹어본 적도 있으면서.”
“아는 맛이 더 무서운 거야!”
농을 건네자 마스터가 재빠르게 단언했다. 흠. 아는 것이 더 무섭다, 라. 그 말에는 시황제도 동의했다. 무지는 사람을 평안하게 만든다. 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 어떤 것이 두렵겠는가. 만일 소년이 공상수를 베어내는 행위가 이문대의 소멸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밤마다 잠 못 이루고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 채 번민하는 일 따위는 없었으리라.
“한데, 그리 생각하면서도 그대는 알고 싶어 하는구나?”
변함없는 농조였다. 그럼에도 그 속에 내포된 뜻을 눈치채었는지 마스터가 고개를 돌려 시황제를 바라보았다. 푸른 시선이 곧게도 쏘아졌다.
“모른다는 말로 넘겨 버리는 건 싫으니까.”
정말이지 맹랑한 꼬마다. 이전의 시황제였더라면 반드시 생매장해버렸을 녀석. 그러나 이곳은 영세 신 제국이 아니며, 소년은 황제의 마스터였다. 그렇다면 이곳의 질서에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잠깐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요리는 막바지에 이른 듯했다. 시황제로서는 무엇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각종 양념과 직전 만들어 둔 고추기름이 갈린 돼지고기를 알알이 감싸자 한층 강렬한 냄새가 비강을 강타했다. 보기만 해도 시뻘건 것이 들끓는 용암이라도 만들어낸 듯싶었다. 사람이 먹는 음식이라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것만으로는 아직 요리가 끝나지 않았는지, 주방의 영령은 이번에는 작은 육면체 모양으로 자른 두부를 붉은 탕에 옮겨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불을 약하게 해 국자로 조심스레 탕을 퍼내 두부에 끼얹기를 수차례, 희멀건 액체를 휘, 둘러 끼얹자 묽던 탕이 금세 질척질척하게 변했다.
“음? 허어, 녹말인가?”
열을 가하면 금세 끈적해지는 특성을 기억에서 끄집어내어 묻자 사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렇게 하면 양념이 두부에 잘 붙어 있게 되니까. 자, 완성이다.”
가운데가 우묵한 흰 그릇에 마파두부가 푸짐하게 담겼다. 흰 두부조차 제 색을 잃고 붉게 물든 가운데 시뻘건 고추기름이 둥둥 떠 있는 흉흉한 광경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고슬고슬한 흰쌀밥을 소복하게 담은 밥그릇이 뒤이어 내어지자 마스터가 먼저 경탄을 내질렀다.
“맛있겠다!”
하얀 쌀밥에 기름이라도 친 것처럼 윤기가 자르르 돌았다. 불그죽죽하니 보기만 해도 위험한 기운을 내뿜는 것만 같은 마파두부와는 정반대로 소박한 느낌을 준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감상이다. 곡물이 희다는 것인즉 불순물이 없다는 뜻이므로. 정교하게 도정해 쌀겨를 전부 제거한 백미는 그야말로 사치의 상징일 터였다. 영양분이 가득한 부위를 죄 깎아내어 삼키기 좋은 부드러운 부분만 남긴 것이니 어찌 낭비라 하지 않을 수 있으랴.
“식기 전에 먹어라. 식으면 향이 날아가니까.”
“으음.”
사내의 말을 듣고서야 시황제는 숟가락을 들었다. 마스터가 먹는 것을 훔쳐보고 따라 할 요량이었건만, 그는 아예 숟가락을 들지도 않은 채였다. 먹는 방법을 물어도 어깨만 으쓱거릴 뿐이었다.
“원하는 대로 아무렇게나 먹어도 돼.”
본래 아무렇게나 라는 말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애당초 정량, 정해진 규칙 없이 마음 가는 대로 하여도 괜찮은 존재는 그만큼 숙달되었기 때문이건만. 이런 냄새만 맡아도 코가 아픈 것을 먹으라 하며 그 방법조차 알려주지 않는다니. 시황제는 마스터를 한 번 흘겨보고는 두부와 양념이 한 숟가락에 고루 들어가도록 주의를 기울여 퍼 올렸다. 희끄무레한 김이 함께 올라와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숨을 크게 들이쉰 시황제가 이윽고 한입에 숟가락을 밀어 넣었다.
숟가락 뒤편에 묻어 있던 기름이 가장 먼저 혀에 미끄러진다. 다음으로는 뜨거운 두부가 입천장에 닿자마자 부드럽게 뭉크러지며 혀 위로 쏟아져 내렸다. 짠맛과 희미한 단맛이 먼저 느껴지고, 생각보다는 그리 고통스럽지 않아 안심할 때쯤에서야 매운 기가 훅 끼쳤다.
“!”
단숨에 몸에 열이 오른다. 거울 따위로 살피지 않더라도 자신의 얼굴이 새빨개져 있으리라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다. 갑자기 체온이 오른 탓인지 귀에 이명까지 울었다. 입안 점막을 보호하려 뒤늦게 침샘에서 침이 솟구쳤다. 시황제는 거의 씹지도 않은 채 입안에 든 것을 꿀떡 삼켰다. 뜨겁고 물컹한 두부가 끈적한 양념에 섞여 목구멍 뒤로 넘어가자 채 삼키지 못한 고기 알갱이만이 입에 남았다. 불수의적으로 턱이 움직인다. 어금니가 양념을 듬뿍 머금은 돼지고기를 짓씹는다. 뒤늦게 목구멍이 타는 듯 뜨거워졌다.
시황제는 자기도 모르게 수저를 다시 들어 이번에는 쌀밥을 입에 넣었다. 고통을 달래듯 혀로 밥을 문지르자 밥알 사이사이에 숨어 있던 뜨거운 김이 입안을 공격했다. 입을 열어 열기를 어떻게든 내보내려 하는 움직임과 입안의 것을 씹어 삼키고 싶다는 양가감정이 몸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도록 만든다. 결국, 시황제는 한 번의 숨만을 내뱉은 채 다시 입을 다물었다.
쫀득거리는 쌀을 침과 섞어 한껏 씹자 전분이 호화되며 은은한 단맛이 혀 전체로 퍼져나갔다. 입안에 남아 있던 양념이 함께 뒤섞이며 그전까지는 경험하지 못했던 조화로운 맛이 느껴졌다. 그러나 여전히 매운 기는 입안에 남아 있다. 마치 불에 덴 것처럼 혀가 화끈거린다. 그것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눈앞에 얼음물 한 잔이 내밀어졌다. 시황제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물을 꿀꺽꿀꺽 들이켰다.
“……후~!”
깊은숨을 내쉬고 나서야 온몸의 땀샘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음이 실감 났다. 달궈져 있던 머리가 다소 식었다. 과연, 이런 것이군. 아드레날린, 도파민, 엔도르핀. 고통을 마비시키기 위해 각종 호르몬이 뿜어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야 당연히, ‘기분 좋다’고 느낄 수밖에 없겠지. 이런 것은 반칙 아니냐.
단순한 쾌감이 아니라 강렬한 자극과 미식이라기엔 지나친 고통 뒤에 찾아오는 쾌감이다. 그 격차가 크면 클수록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겠지. 이래서야 한순간의 쾌락을 위해 스스로 고문해버리는 꼴 아닌가. 비효율적이고, 난잡하고,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더 먹고 싶다고, 무심코 바라게 되는 것이다.
“나원, 참……”
끄응, 앓는 소리를 낸 시황제는 두 사람을 흘겼다. 마스터는 물론이요, 주방의 영령의 입가에까지 얄미우리만치 뿌듯해 보이는 미소가 슬쩍 올라와 있다. 감상 따위 물어보지 않아도 알겠다는 뜻이겠지. 그런 표정을 지으면 배배 꼬인 심술을 부리고 싶어진다마는.
시황제는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내곤 흥, 콧바람을 내뿜었다. 여전히 입안에는 아릿아릿한 매운맛과 향채의 톡 쏘는 냄새가 아른거렸다. 어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한두 군데뿐이랴. 시황제의 기준으로 판단하자면, 이런 요리는 당장에 명맥을 끊어야 마땅했다. 맛은 지나치게 자극적이며 영양은 불균형하다. 특히나 이 맵고 아릿한 감각은 사람을 도취시켜 몸의 고통을 무시하고 쾌락에 탐닉하도록 만들었다. 즉, 백성을 홀리는 사특한 요리라고 보아도 무방할 터였다. 그러나…….
“뭐어, 그대가 구태여 이 ‘마파두부’를 진상하고자 한 까닭은 이해 못 할 것도 없다만은.”
“응?”
“짐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 아니냐. 이 ‘마파두부’라는 요리, 짐의 영세 신 제국에서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만 하고, 스스로 자신의 욕망을 좇는 ‘인민’이기에 고안할 수 있는 것…… 그런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게지?”
삶을 갈구하는 몸부림과 욕망을 붙드는 손짓에도 저마다 가치가 있으며, 그리하여 범인류사는 서로 다른 갈망 속에서 싸우고 상처 입으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하며 이어져 내려왔노라고. 그것은 분명히 영세 신 제국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고하는 시황제에게 마스터는 뺨을 긁으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렇게 깊게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뭣이?”
한순간에 어처구니가 없어진 시황제는 잠시 말을 잃었다. 주방의 영령이 큭, 헛기침하는 소리만이 작게 울렸다. 뒤늦게 마스터가 손을 내저으며 부연했다.
“그게, 에미야 씨의 마파두부, 엄청 맛있으니까. 폐하랑 같이 먹고 싶었어.”
“……허어.”
같이 먹고 싶었다, 고. 고작 그게 전부란 말인가. 그러나 그 논리에는 다소 모순점이 있다. 시황제는 눈썹을 휙 치켜들며 물었다.
“짐에게 맛보여주기에는 자극이 강하다는 생각은 안 했느냐? 모르는 것은 배척당하기 쉽다는 것쯤은 그대도 알고 있을 텐데.”
그렇다. 말하자면 유아에게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이는 것과 다름없는 꼴이다. 한 입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거부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저 마스터가 모를 리가 없었을 터였다.
“으응…… 에미야 씨도 다른 게 낫지 않겠냐는 말은 했었는데.”
“매운 음식은 호불호가 심하니까 말이지.”
주방의 영령이 첨언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고개를 짧게 끄덕거린 마스터가 시황제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폐하는 몰랐던 걸 알고 싶은 거잖아? 그러니까 거절 안 할 거라고 생각했어.”
무지는 평안, 앎은 고통. 그리 생각하면서도 ‘알아야 한다’고 여기지 않느냐고.
소년의 푸른 눈이 다시금 시황제를 꿰뚫듯이 쳐다보았다. 맑은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묘하게도 낯설게 보였다. 아, 그렇군. 시황제는 무심코 웃음을 터트렸다.
“하, 하하하하하하!”
결국, 그 마스터에 그 서번트였다는 이야기다. 한참을 폭소한 후에야 시황제는 가까스로 웃음을 멈출 수 있었다.
“그래. 알고 싶다. 더 많이 알고 싶구나. 짐은 그러려고 이곳에 소환된 것이니 말이다.”
요리도, 마스터도, 범인류사도. 그리하여 그 지식은 영원히 남게 되리라.
언젠가 저 마스터가 마음이 꺾이고 발길이 멈추어 무너져 내리는 그때, 새로이 세울 영세 신 제국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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