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14

[FF14/가내아젬] 고대인 트리오 조각글

“네가 하면 농담으로 안 들려.”

* 저희집 가내아젬과 휘틀로와 하데스… 고대인 트리오는 대충 이런 느낌이겠지~로 쓴 조각글

* 가내아젬… 아직 쓰고 싶은 게 더 있는데, 당장 다른 글 쓰는 게 많아서 이대로면 영영 묵히겠다 싶으니 냅다 올리고 보기.

* 아젬사제는 장난꾸러기가 맞겠지, 하며.


1.

현재 아젬 좌에 앉아있는 베네스가 후임 아젬을 점찍어놨다는 이야기는 알음알음 퍼졌다. 대다수의 사람이 은퇴하면 별바다로 돌아가는 것과는 달리, 그는 자리를 내려놓고서 계속 아이테리스에 남아 여행을 할 거라고 했다는 것도. 아젬인 베네스를 잃을 뿐 여전히 이 별의 총아인 그를 곁에 두고 가르침을 구하거나 함께 토론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안도를 느끼면서 사람들은 다음 의문으로 넘어갔다.

그래서 여타 중재자의 좌와는 달리 개입자이며 해결자인 현 아젬의 후계는 누구인가. 베네스는 후대의 아젬을 퍽 가까운 사이처럼 말했고 그런 순간의 모습을 보면 기꺼워하고 있음이 분명한데, 그가 그런 식으로 대하는 후임을 아모르트에서는 본 적이 없는 거다.

그래서 누군가 용기를 내어 물으면, 가끔씩 아주 장난스러운 얼굴을 하곤 하는 베네스는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대고 윙크했다. 그 친구가 자리를 물려받으러 올 때 볼 수 있을 거라고, 그때까지는 비밀이라며.

원래 감추면 더 찾고 싶어지는 법이다. 사람들은 제일 먼저 작가의 집과 그 언저리를 뒤졌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며 한탄했다. 어쩌면 여행을 사랑하는 베네스처럼 그 후임도 막대한 책임이 얹히기 전 마지막 자유 여행을 돌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돌았다.

반은 맞췄고 반은 틀렸다. 베네스가 근거지처럼 삼은 작가의 집 주변에 있느냐고 하면 같은 지역은 맞는데 근처는 아니었고, 그야 후임 아젬 역시 여행을 좋아하지만 막중한 책임감을 어깨에 얹기 전 가지는 비장하기까지 한 마지막 자유 여행 중인 건 절대로 아니다.

바로 이 소문을 낸 장본인이자 예상대로의 혼란을 준 베네스는 이 상황을 즐겼고, 마찬가지로 후임 아젬도 신나 했다. 지금 돌아다니는 곳은 사람 우르르 끌고 갈 곳이 아니라면서.

간계라기엔 귀여운 장난 수준인 꾀 덕분에 아직 이렇다 할 직함이 없는 아모르트의 두 청년이 이곳을 방문하며 베네스의 이름을 핑계로 댄 건 눈에 띄지도 않았다. 이 둘이 내정된 아젬과 아는 사이라는 걸 알았다면 사역마고 뭐고 뒤에 주렁주렁 붙는 참사가 벌어졌겠으나, 혹 그런 일이 생겼더라도 희대의 마도사가 될 재목인 하데스가 있고 소문 속 문제의 후임 아젬 역시 만만한 이는 아니었으니(오히려 독특하기 그지없지!) 휘틀로다이우스는 아주 가볍고 유쾌한 마음으로 아모르트를 떠도는 항간의 소문을 떠들었다.

“―라던데, 클라디야. 너 벌써 유명 인사야!”

“그게 어디가 좋은 거냐. 난 이 녀석이 아모르트에 오면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다 지끈거리는데.”

“휘틀로, 차 다 식겠다. 이거 진짜 맛있다구.”

하데스는 벌써부터 골이 아프다는 듯 미간에 주름을 잡고 한숨만 폭폭 쉬어댔고, 소문의 대상자인 클라디야는 아모르트에서 저를 가지고 입방아를 찧어대거나 말거나 전혀 관심이 없이 당장 친구가 티파티에 내어놓은 차의 가장 맛있는 순간을 놓칠지나 신경을 쓴다. 이 상반되는 반응을 늘어놓고 보는 게 요즘 그의 낙이었다. 즐겁지 않나! 역시 14인 위원회 중 가장 이질적이고 독특하며 궤를 벗어나는 좌의 예정자! 베네스님 역시 상당히 파격적인 사람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역시 이 친구가 한술 더 뜬다.

휘틀로다이우스는 친구의 말대로 아직 따뜻한 찻잔을 쥐고 향을 맡았다. 제가 알고 있는 허브 이데아 중 그 어느 것과도 일치하지 않으니, 모르는 종의 허브일 거다. 허브 이데아가 아니고, 실물 허브. 변방에서 살았다던 이 유쾌한 친구는 가끔 정식으로 명칭도 붙지 않은 무언가를 가지고 온다. 자생해서 거기 있을 뿐인, 아직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 다듬어지지 않은 원재료를. 이게 무엇인지 호기심을 채우는 건 지금을 즐기고서도 늦지 않겠지. 한 모금 머금어보니 쌉싸래한 향과는 달리 은은한 단맛이 퍼진다. 그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는 걸 곁눈질로 힐끔 바라본 하데스 역시 잔을 들어 아주 조금 홀짝였다가, 휘틀로다이우스와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친구들의 표정을 확인한 클라디야는 깔깔 웃으며 손뼉을 쳤다. 아무래도 기대했던 반응인 모양이다. 내정된 아젬은 다과로 내온 주전부리도 이 애들 앞으로 밀어준다.

“어때? 맛있지?”

“응. 허브차인데도 다과로 단 걸 내놓지 않은 이유가 이거였구나?”

“어쩐지….”

단 걸 썩 좋아하지 않는 하데스가 빠르게 차를 비우는 걸 보아선, 오늘의 다과회는 대성공이다. 이전에 정말 끝내주게 단 차(하지만 그건 정말 맛있는 녀석이었다!)를 내놓았다가 이 까탈스러운 마도사 친구가 뭐 하나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간 게 내내 맘에 걸렸던 클라디야는 아예 대놓고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그 모습을 갸름하게 뜬 눈으로 지켜보던 휘틀로다이우스가 툭 하고 말을 건다.

“이거 네 이름으로 이데아 등록할 생각은 역시 없는 거지?”

“응. 얘를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난 그냥 돌아다니다가 발견했을 뿐이니까.”

“차로 끓여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너 아닌가. …사실 아무거나 입에 넣지 말라고 잔소리를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아니, 하데스, 날 뭐로 보는 거야? 당연히 거기 살던 사람들한테 들은 거지! 아무리 내가 별의 축복을 받아서 몸 하나는 튼튼하게 태어났다지만, 정말 아무거나 주워 먹고 다니는 건 아니야. …뭐, 여행 도중에 굶어 죽겠다 싶으면 흙이라도 퍼먹겠지만.”

“네가 하면 농담으로 안 들려.”

“나도 농담한 거 아닌데? 아, 근데 지역마다 흙 맛이 다르긴 해. 이왕이면 더 맛있게 먹을 방법을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먹어봤냐!”

아이테리스를 가꾸겠다는 태도와는 정반대에 서 있는 후대 아젬의 답은 예상했는데, 거기서 하데스가 저런 식으로 끼어들지는 몰랐던 휘틀로다이우스는 그 뒤로 이어진 콩트에 기어코 웃어대다가 테이블에 이마를 박았다. 이걸 저 혼자만 봐야 한다는 사실이 어찌나 안타까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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